-미르카엘.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지?
-이모탈이란 존재가 정말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거, 확실한 거냐?
-그것은 왜 묻는 거지?
-만약 남아 있다면 어떤가?
내 말이 끝나는 순간 미르카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은 설마?
-그래. 매개체가 정말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지금껏 나는 최악을 가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로드를 넘어서는 매개체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르카엘의 말처럼 이모탈이란 존재가 정말 그 정도로 강한 존재이고, 살아남은 개체가 존재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이모탈은 그분들이 직접 지워 버린 존재다. 실수란 있을 수 없어.
-쯧쯧쯧.
당황한 미르카엘을 보며 혀를 찬 존재는 내가 아니었다.
-수왕?
-너의 생각에는 빈틈이 존재한다. 모든 이모탈을 어딘가로 쫓아낸 것은 맞겠지. 하지만, 그 이후로 태어난 존재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맞아요. 그 당시에는 얼마든지 태어날 가능성이 있었다면서요?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던 수왕과 하이엘프가 대화에 끼어들며 이모탈이란 존재가 남아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그럴 리 없다. 그 이후 태어나는 모든 이모탈은 죽임을 당했다.
-너는 모성애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너희 천족은 그것이 가능했을지 몰라도 다른 종족들은 아닐 수도 있어. 특히 우리 수인족은 모성애가 지나치게 강하단 말이지.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우리 엘프 역시 마찬가지예요. 조화를 추구하는 엘프가 갓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다고요.
수왕과 하이엘프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여졌지만, 미르카엘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너희가 그 당시의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당시에는 모든 종족이 이모탈을 지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이모탈이라 의심되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을 정도로 말이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단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에요. 개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요.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긴 하겠지만, 분명 그때 역시도 종족과 떨어져서 홀로 지내는 자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우리 수인족 역시 마찬가지다. 무리를 짓는 종족도 있지만, 홀로 떠돌아다니는 종족 역시 존재하니까.
-하나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겠지.
대공이 만약 이모탈을 데리고 있다면 일이 정말 심각해질지도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심각하긴 했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내 전력이라면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마왕 정도의 괴물이 나타난다고 해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기에 심각하긴 했어도 어떻게든 될 거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믿음은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이모탈이라는 존재 때문에.
-이모탈이라? 가능성은 충분하겠네.
-무슨 말이지?
-지금껏 숨어 살고 있었다면 복수하기에는 이만한 기회가 없다는 소리다.
-뭐?
-신들께서 모두 자리를 비우지 않았나?
모든 것이 이모탈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리를 비운 신들과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대공.
그리고 복수를 원했지만, 지금껏 숨어 살 수밖에 없었던 이모탈.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얼마든지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다만, 바하무트가 부활하게 되면 자신들 역시 무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 텐데도 바하무트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거야 복수에 미쳐 버렸다면 설명이 되었다.
-잠깐만요.
-뭐지?
모두가 놀라던 그때 하이엘프는 걸리는 것이 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대공이 그렇게 멍청할까요? 바보같이 이용당할 만큼?
맞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하나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너와 달리 대공은 이모탈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테니까.
대공 역시 이모탈을 의심하고는 있겠지.
하지만, 이모탈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대공은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바하무트의 부활을 바라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설마 바하무트를 완전히 부활시키려 할까요? 아니, 그게 가능할까요?
-완전히 부활을 시키진 못하겠지. 그분들의 결계를 뚫을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바하무트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어떻게서든 바하무트의 힘을 조금이라도 더 끄집어내려 할 거야.
바하무트나 신들처럼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이상 홀로 모든 종족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마계 전 종족의 힘을 결집한다면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니까.
만, 십만은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겠지만, 수가 천만, 억을 넘어서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인류와 다르게 마계의 종족들은 대부분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모이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당연히 이모탈의 입장에서는 바하무트의 힘을 최대한 많이 끄집어낼 필요가 있겠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공자라는 놈을 꼭 만나야겠어. 사실확인을 위해서는 말이야.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크림슨을 호출했다.
-크림슨이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다. 그동안 이거나 확인해 주면 좋겠는데?
나는 하이엘프와 수왕에게도 영약을 건넸다.
앞으로는 시간이 없을지도 몰랐기에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 * *
결과적으로 보자면 미르카엘과 하이엘프, 수왕에게도 군주가 만들어 놓은 영약은 도움이 되었다.
마력이 늘어나긴 했으니까.
물론 만족할 만큼의 성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피엘은 달랐다.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란 예상을 반전시키며 완전한 지도자급의 힘을 얻게 된 것.
물론 이제 겨우 지도자급의 격을 갖췄을 뿐이지만,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지도자급의 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필사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었다.
잠재력 혹은 가능성.
지도자급의 격을 갖출 수 있는가는 개개인의 잠재력에서 판가름 난다.
2백의 최상급 마수를 갈아 넣어도 왕급 마수 하나를 만들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최상급 마수에게 왕급 마수의 정수를 먹여 왕급 마수를 만들 수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1%는 될까?
뚱이들이 왕급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잠재력이 대단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잠재력을 올려준 존재.
바로 수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2백의 최상급 마수를 갈아 넣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이건 비단 마수들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크림슨들 역시 마찬가지.
루시안과 코넬리아 역시 한계가 정해져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수아의 버프로 인해 잠재력을 상승시켰기에 왕급 마수의 정수로 지금의 강함을 쟁취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수아의 버프와 마찬가지로 한계를 강제로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군주가 만들어 둔 영약이었다.
군주의 영약과 수아의 버프.
이 두 개를 잘만 사용하면 왕급 마수를 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 * *
-그것이 정말인가?
-하나의 가정일 뿐이지만, 문제는 가능성이 크는 사실일세.
-공자를 만나 봐야 한다는 말이군.
크림슨은 미르카엘의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파악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 가정은 하나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어째서 그들이 대공에게 접근했냐는 것이다. 조용히 몸을 숨긴 채 사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에게도 위험 부담이 없을 텐데?
나 역시 이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미르카엘의 설명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권한 때문이겠지.
-뭐라?
-각 종족의 지도자들에게만 허락되는 결계의 출입 권한 말이다.
각 종족의 신들이 담당하던 결계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지도자들에게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이 있었다고?!
크림슨조차 알지 못했던 사실.
아니, 군주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시던 수호기사단의 단장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나를 비롯한 여기 수왕과 하이엘프 역시 결계의 출입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럼 대공이 지금 그곳에 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왜 그 사실을 지금에서야 말하는 것이냐!
-미안하다.
미르카엘을 비롯한 수왕과 하이엘프는 그곳에 대한 출입 권한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단 한 번도 그곳에 출입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자신들의 신에게 그곳에 대한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기에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디냐? 그곳이 어디냐고!
-모른다.
-뭐라고?
-모든 결계의 출입 권한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천족의 영토가 아닌 다른 종족의 땅에 존재하는 결계의 위치는 모른다는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요.
수왕과 하이엘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영토에 존재하는 결계만 알고 있을 뿐 타 종족의 영토에 존재하는 결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결계의 출입 권한조차 잊고 있던 자들이 타 영토에 존재하는 결계의 위치를 알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결국, 공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소리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연결된 선을 통해 크림슨을 불렀다.
‘그가 만나려 할까?’
‘강제로라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현지에게 말해 둘게.’
지금까지 쳐들어가지 못했던 이유는 놈의 곁에 항상 이동형 마수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챈 순간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지도 몰랐기에 참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현지의 존재를 들키게 되더라도 무력을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와라!
문을 열고 나서는 크림슨을 조용히 뒤따르며 현지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동형 마수 죽이고 놈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막아.’
‘네!’
역시 크림슨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자 크림슨을 감시하던 기척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첫째 공자가 심어놓은 자들인 듯싶었는데.
-부단장님?
-어딜 가십니까?
-강제로라도 공자를 만나야겠다. 길을 열어라!
-충!
궁전에 넓게 퍼져있던 수호기사단원들은 크림슨이 피워내는 살기에 반응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이어서 크림슨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앞을 막아서는 모든 존재를 치워버리기 시작했다.
-이놈들! 이곳은 대공의 성이다. 수호기사단이 함부로 들락날락할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란 말이다.
성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수호기사단을 막아서는 대공의 기사단.
하지만, 그들은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크악!
-컥!
크림슨의 명을 따르며 그 흔한 기합 소리 한번 내지 않는 수호기사단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걸음이 늦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키라 하지 않았느냐!
쿵-
크림슨이 일갈하며 기운을 내뿜자 길을 막아서던 모두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아무리 부단장이라지만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콰앙-
길이 열린 직후 누군가 난입하며 크림슨의 기운을 찍어 눌렀다.
놀라운 모습이었다.
아무리 크림슨이 힘을 반도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크림슨의 압박을 풀어버리다니?
-공녀?
-그래요. 오랜만이네요.
공녀라면 대공의 딸이라던?
공작급이라더니 생각보다 강하잖아?
-비키시오! 공녀랑은 할 말이 없으니까.
-싫은데요?
‘뭐해?’
‘그, 그것이?’
‘뚫어!’
‘알겠습니다.’
공녀가 앞을 막아선 이후 크림슨의 행동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어 물었지만, 크림슨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비키지 않는다면 힘을 쓸 수밖에 없소.
-예전처럼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칠 거예요.
공녀를 말에 크림슨이 힘을 폭발시키자 공녀 역시도 자신의 힘을 드러내며 크림슨과 맞서기 시작했다.
-가겠소.
크림슨이 자리에서 사라지는 순간 공녀 역시도 자리에서 사라졌고, 이어서 격돌했다.
하지만.
콰앙-
공녀가 벽에 처박힌 채 피를 토하며 상황이 종료되어버렸다.
-쿨럭!
-뭐 하느냐! 길을 열어라!
크림슨의 힘에 놀랄 만도 했지만, 그건 수호기사단원들에게나 놀라운 일이었다.
공작급을 넘어선 듯 보이긴 했지만, 지도자급의 격에는 오르지 못한 공녀가 크림슨을 막아서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충!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대공의 기사단 따위는 수호기사단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금방 원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거대한 대전의 문이 열리자 보이는 장면은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대공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자들 모두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굳어 있었고, 첫째 공자라는 자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공포에 질린 상태로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어떻게?
수호기사단 전원이 지금껏 지키던 침묵을 깨트리며 입을 열었고, 지금껏 조용히 뒤따르던 미르카엘과 하이엘프, 수왕 역시 움찔하며 당황을 드러냈다.
대전을 감싸고 있던 현지의 살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고생했어.’
‘저놈, 강하긴 한데 너무 곱게 커서 그런지 겁이 엄청 많아요. 아마 조금만 겁을 줘도 술술 불 거예요.’
공포에 절어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지금껏 저놈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감이 왔다.
‘그래? 잘됐네. 들었지?’
‘네.’
대전의 문을 열고 들어선 크림슨은 잠시 멈춰 서서 놈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현지의 말대로 녀석을 겁주기 위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오. 대공자.
-부, 부단장. 네놈이 감히!
현지가 가하던 압력이 사라지자 크림슨을 향해 악을 쓰듯 소리치는 대공자.
하지만, 크림슨은 그의 말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허리춤에 걸려있던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