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족의 영역으로 진입한 마수들은 지금 난장판을 치고 있었다.
물론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결계를 찾기 위해 용족의 영역에 몰려든 천족과 수인족, 엘프 그리고 영역의 주인인 용족들 때문이지만.
내 지배를 받기 때문에 먼저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공격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마계에서 살아가는 종족에게 마수란 주적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기에 당연히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고, 그 결과 용족의 영역 전체가 지금 전란에 휩싸여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마수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신호를 보냈고, 그 덕에 나는 미호를 재촉하며 끊임없이 공간의 문을 통과해 결계의 위치를 찾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마수들의 피해보다 다른 종족들의 피해가 더욱 심한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
마수들의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다른 종족들의 피해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계속해서 마수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수들이 신호를 보내는 장소 대부분이 마수들의 영역이었고, 그곳에 도착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주변 마수들을 전부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결계를 찾기는커녕 마수들의 수만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끝없는 수색을 하며 하루, 이틀이 지나며 시간만 흐르고 있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정말 뜻밖의 장소에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로드의 거처.
마수의 신호를 받고 도착한 곳은 로드의 레어였다.
그 거대한 로드가 뒹굴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넓은 공간.
그 넓은 공간에 악의가 가득한 사념들이 넘실거리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레어 전체를 지배의 영역으로 감싸버렸고, 그 결과 로드의 레어 지하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신이란 존재가 대단하긴 한지 눈앞에 버젓이 존재하는 결계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만약 나에게 지배의 영역이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찾았다.’
‘네? 정말입니까?’
‘그래. 로드의 레어 지하에 결계가 존재하고 있었어.’
‘아!’
‘미르카엘들에게 연락할 수 있지? 이곳 위치 가르쳐 주고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래서 로드를 그렇게 만든 거였어?
어쩐지 조금 이상하다 했다.
처음 로드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 눈치챘어야 했건만.
그 엄청난 사념 덩어리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의문이었는데, 로드의 레어 지하에 결계가 있었다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그나저나 대공은 어떻게 이곳에 결계가 있다는 걸 안 거지?
로드와 친하다는 미르카엘조차 모르는 것으로 봐서는 로드에게 직접 들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미호야, 일단 좀 나가자.”
“끼웅-”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하는 사념들 덕분에 귀찮아진 나는 일단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모두 모여!
내 선과 연결된 모든 존재.
그 중 마수들에게 내가 있는 장소로 모이라는 지시를 내린 나는 미호가 열어둔 공간의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 * *
이제 겨우 1할이 모였음에도 그 끝이 어디인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마수들이 내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엄청나네요.”
“그러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현지였다.
미호의 분신을 데리고 다닌 덕에 가장 빨리 합류할 수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모두에게 미호의 분신을 붙여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공의 위치를 알았다고 급하게 나선 것이 실수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연락할 수단이 있다는 것일까?
“그런데 얘들 데리고 뭐 하시려고요?”
“별거 있겠냐? 성장시켜야지.”
“얘들 전부를요?”
“그래. 일단 최상급 빼고는 모조리 갈아 넣을 거야.”
“아까운데.”
“급하게 지배한 녀석들이라 대부분이 최하급과 하급이라고. 관리하기만 힘들 뿐이야.”
“그렇긴 하네요.”
수가 천만쯤 되면 관리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약한 마수들뿐이었기에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도 못할 거였다.
어차피 약한 것들 대부분을 갈아 넣어서라도 강한 개체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이 나았다.
혹시 아는가?
왕급 개체가 탄생할지?
천만이라면 한 마리 정도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겠지.
“근데 미호는요?”
“안 보이냐? 공간의 문 마구 열리는 거? 마수들 데려오는 중이야.”
미르카엘들이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일을 끝낼 필요를 느낀 나는 미호에게 이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순으로 마수들을 데려오라 지시했고, 저것이 그 결과였다.
분신 수백 마리가 동시에 공간을 넘나들며 마수들을 데려온 결과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1할이 모여들었고, 그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가까이 있던 녀석들은 알아서 합류한 거였지만.
이대로 두세 시간 정도만 지나면 천만이라는 엄청난 수가 이곳에 모일 거다.
“저 구경해도 되죠?”
“마음대로 해.”
“근데 도착하기 전에 끝날까요?”
“끝날걸? 미르카엘들 지금 다 각각의 영역에 있다고 했거든. 오는데 좀 걸릴 건가 봐.”
“왜요?”
“뭘 가지러 갔다고 하던데?”
“미호 보내면 금방 올 텐데요?”
“신기인가 뭔가를 가져와야 해서 이동 마수의 공간 이동은 사용하지 못한다던데?”
종족 멸망의 위기가 아니면 절대 꺼내지 않는다는 신기란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
다만 특이한 것은 마족에게만 그 신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군주는 대공에게 신기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이야기였다.
“와! 그런 게 있었대요?”
“어. 그렇다고 하더라고.”
“부럽다.”
“니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무기도 충분히 좋은 무기거든.”
“그래도 신기만 하려고요?”
“그건 그렇겠지?”
“당연하죠.”
현지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 저 멀리서 거대한 무언가가 모여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고.
“저거 설마 용족이야?”
“그런 것 같은데요?”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단 하나뿐인 개체였다면 발견하지 못했겠지만, 저 멀리 보이는 저것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백.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용족 수백 마리가 한 장소에 모여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수백 마리도 아니고 수백만 마리의 마수가 모여 있다는 것은 용족의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닐 테니까.
“골치 아프네.”
“제가 처리할까요?”
“어떻게? 재들 다 죽이게?”
“헤헤.”
“따라와.”
“네.”
마수들의 머리를 밟으며 이동한 나는 어느새 용족들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대표가 누구지?
-너는?
-나를 알아? 그때 그 장소에 있던 장로라는 자인가?
가장 앞쪽에 있던 용족은 다행히도 나를 알고 있는 듯 보였는데.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요동치며 거센 바람을 만들어 낼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로드의 크기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였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수백의 드래곤들에 비해서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그렇다.
잠식당한 로드를 상대로 함께 싸우던 용족들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물론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잘 알겠네. 이곳에 있는 마수들이 문제가 없다는 걸.
-아니. 모른다.
-그때 확인하지 않았나?
-그래도 믿을 수 없다.
의심을 지우지 않고 경계를 유지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로 묻는 녀석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소리쳤다.
-믿지 않으면?
-뭐, 뭐라고?
-너희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지?
최하급과 하급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백만을 가볍게 넘어가는 마수 중에는 최상급 역시 끼어 있었다.
그것도 천마리가 넘는 최상급 마수가.
거기다, 최상급을 넘어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마수들 역시 존재하고 있었기에 수백이 넘는 용족이 모였음에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그건…….
-그만! 돌아가라. 너희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마족 따위가 감히 장로님께!
-죽고 싶으냐!
내 외침에 장로는 침묵을 지켰고, 그 결과 그의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용족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용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 특히 자존심이 강했다.
그런 용족의 대표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내 말투는 충분히 그들의 화를 부추길만 했고, 당연하게도 용족들은 나를 향해 살기를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히!
쿠웅-
-크헉!
-끅!
-케엑!
나의 곁에는 현지가 있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수백의 용족을 한순간에 쓸어 버릴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현지가.
-미, 믿겠네. 그러니 그, 그만 멈춰 주시게!
장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도 현지가 찍어 누르는 힘에 납작하게 눌린 채로 멈춰달란 호소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길래 말로 할 때 좀 듣지.
-그만.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 전부를 찍어누르던 힘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압박이 풀린 후 나를 보는 용족 모두의 눈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어찌 마족이 이런 힘을?
아무래도 용족들은 나를 마족이라 생각하는 듯싶었다.
상관없나?
그들이 나를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그저 내 말에 따라 조용히 사라져주기만 하면 되니까.
-그만 사라져 줬으면 좋겠는데?
-아, 알겠다.
-아! 한 가지만 더. 아마 이 주변에 이쪽으로 향하는 마수들이 꽤 많을 거야. 그놈들 건드리지 마. 알았나?
-알았다.
장로는 대답과 함께 모여 있던 용족들 전부를 데리고 자리를 이탈했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뒤로 돌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비켜 이것들아!”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마수들에게 소리치자 천천히 길이 만들어졌고, 그 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던 나는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고는 자리에 멈춰 섰다.
잠깐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군주가 만들어 둔 영약.
지금 나에겐 그 영약이 엄청나게 많았다.
크림슨이 챙겨준 것도 있었지만, 공녀가 군주에게 직접 받았다는 그 영약들도 지금 나에게 있었다.
이걸 사용하면 왕급 마수를 마구 찍어 낼 수 있지 않나?
생각과 동시에 훌쩍 뛰어오른 나는 마수들의 머리를 밟고 빠르게 이동해 원래 있던 장소에 도착해 크게 소리쳤다.
-최상급들 모두 집합!
그와 동시에 마수들 사이 이곳저곳에서 커다란 움직임이 만들어지며 혼란이 발생했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앞을 가득 메우는 마수들을 뚫고 최상급 개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 하시려고요?”
“보면 알아.”
이곳에 있는 최상급들 대부분이 모인 것을 확인한 나는 놈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넌 빠져. 너도 빠지고. 넌 남아.”
그렇게 하나하나 살피며 선별을 한 끝에 30여 마리의 마수들이 남았다.
“거기 너! 너 나와봐.”
일단 소형종을 상대로 실험해 보기로 한 나는 눈앞에 정렬한 마수들 중 가장 작은 녀석을 불렀다.
“우?”
내 부름에 마수들 틈에서 나와 나에게 다가오는 녀석.
온몸에 가시를 잔뜩 달고 있는 녀석은 고슴도치를 닮긴 했지만, 얼굴만큼은 아니었다.
아귀를 닮은 얼굴을 가진 고슴도치라고 하면 되려나?
“이거 먹어봐.”
수많은 영약 중 공녀가 준 영약을 선택한 나는 녀석의 입을 향해 영약을 던졌고, 놈은 그것을 바로 받아먹었다.
그리고.
“우우우우우~”
놈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모습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는데, 온몸을 감싸고 있던 가시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그 자리에 얇은 털이 자라났고, 근육이 압축되며 5m에 달하던 덩치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쿠와앙!”
“시끄러!”
“끼잉~”
1m 정도까지 줄어든 녀석이 포효를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 했지만, 시끄럽다는 이유로 놈의 입을 틀어 막아버렸다.
“어때?”
“확실히 경계를 넘어서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약한데요?”
왕급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는 되어 보였지만, 뚱이들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수준이었다.
내가 처음 마주쳤던 까마귀를 닮은 왕급 마수보다도 약해 보였는데, 최소 이놈 정도 되는 마수가 몇은 더 있어야 그놈과 비슷할 것 같았다.
그럼 그때 그놈이 진화를 끝낸 왕급 마수였다는 말이야?
왕급 마수에 등급을 매긴다면 뚱이들이 최상급 정도였고, 그 까마귀는 하급 정도, 이놈은 최하급이었다.
뚱이들 중에서도 그 강함의 차이는 분명했는데,
뚱이와 왕눈이, 하임, 니안이 가장 강했고, 다음이 미호와 펜릴. 마지막으로 샤크가 가장 약했다.
물론 샤크조차도 까마귀를 닮은 왕급 마수에 비하면 엄청난 강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넌 할 수 있는 게 뭐냐?”
“우? 우!”
내 물음에 털을 빳빳이 세운 녀석은 이내 그 털을 비수처럼 쏘아내기 시작했고, 엄청난 수의 털이 뒤쪽에서 이쪽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던 마수들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당황한 마수들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방어를 하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슈슈슉-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마수들을 뚫고 지나가는 가느다란 털들.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녀석들이라 할지라도 의지가 실려 있는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만, 마수들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공격이었기에 회복을 더디게 할 뿐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물론 저 털들이 단 한 마리의 마수만을 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게 다야?”
“우!”
내 표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걸 확인한 녀석은 건방지게도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공처럼 말아 버렸다.
성게?
얇은 털을 빳빳하게 세운 채 몸을 동그랗게 말은 녀석을 보니 성게가 떠올랐는데.
꽝-
순간 녀석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엄청난 후폭풍을 남기고서.
꽝- 꽝- 꽝- 꽝-
공중으로 치솟은 녀석이 마력을 폭발시켜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데요?”
“음- 각성 전의 크림슨 정도는 되나?”
“아뇨. 그 수준은 확실히 넘어섰어요. 공격방식이 조금 특이해서 같은 수준이라면 막아내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아까 그 용족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순식간에 쓸어버릴 정도는 되겠는데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일단 저것들 전부 바꿔버려야겠네. 야! 시끄러우니까 그만 내려와!”
쾅-
“우!”
폭음과 함께 땅을 뚫고 들어간 녀석이 못생긴 얼굴을 슬쩍 내밀며 나를 보는 모습에 미소를 지은 나는 선별해 놓은 마수들에게 영약을 먹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