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214)

경계를 벗어나 왕급에 이른 마수의 수가 50이 넘었을 때 내 손에 있던 모든 영약은 사라지고 없었다.

“예상이 틀렸네.”

공녀가 건넨 영약과 크림슨이 준 영약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공녀가 건넨 영약은 경계에 걸쳐 있던 마수를 100% 확률로 진화시켜 주었지만, 크림슨이 가져온 영약은 고작 10%의 확률로 마수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수들에게는 중복 복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마족의 경우 영약의 효과가 단 하나만 나타났지만, 마수는 두 개를 복용해도 효과가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수백이 넘던 영약을 모두 소모해 52마리의 마수를 왕급으로 만들 수 있었다.

“차이가 좀 심하긴 하네?”

왕급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최하급이라 그런지 조금 실망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일반 마수의 등급에 비해 그 차이가 그리 큰 수준은 아니었지만, 중급이라 예상되는 샤크만 나서도 저 중 서너 마리는 순식간에 쓸어버릴 정도는 되었기 때문이었다.

“야! 뒤에! 뒤에 조심하라고!”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현지의 목소리.

현지는 지금 천만 마리가 넘는 마수들의 투쟁을 구경 중이었다.

작게는 수만 마리에서 크게는 수십만 마리까지 뭉쳐서 투쟁을 벌이는 마수들.

그런 마수들 중 하나를 골라 응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땅이 넓어서 다행이네.

만약 이걸 지구에서 벌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최소로 쳐도 한국 전체가 대규모 혈투가 벌어지는 전장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이 새끼가!”

“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현지가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새끼들아! 치사하게 먹는데 공격하는 게 어딨어! 괜찮아. 넌 먹어.”

사라진 현지는 자신이 응원하던 마수의 곁에 나타나 식사를 방해하는 마수들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허!”

어이가 없었다.

응원하는 것을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저렇게까지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물론 현지가 조금 끼어든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기에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현지의 지금 행동은 마수들의 투쟁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자들까지도 끼어들게 할 여지가 충분했다.

“어머! 손이 미끄러졌네?”

이럴 줄 알았다.

현지가 끼어들자 기다렸다는 듯 화살을 날리며 자신이 응원하는 마수를 돕는 지안.

아니, 구경하는데 활은 왜 들고 있는 건데?

마력으로 화살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또 뭐고?

-5:1은 치사하지 않느냐? 네놈들은 내가 상대해 주마!

루시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응원하는 마수를 여러 마리의 마수가 둘러싸자 곧바로 움직여 4마리를 멀리 던져버렸고, 코넬리아와 라구스 역시 마찬가지로 응원하는 마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돕기 시작했다.

“뀨!”

“끼웅!”

심지어 하임과 미호까지도 마수들 중 하나를 선택해 응원을 보냄과 동시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고, 왕눈이는 아예 마수들을 가지고 체스를 두려는지 수십만 마리의 마수를 조종해 편을 나누고 대규모 전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어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크림슨이 영약을 챙겨오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 * *

천만이 넘는 마수를 갈아 넣은 지금 내 앞에는 약 3만 마리의 마수만이 남아 있었다.

3만이 넘는 최상급 마수가 탄생한 것.

그중 천이 넘는 수가 최상급과 왕급의 경계에 걸쳐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모자라는 수였다.

최소 10만은 탄생할 거라 예상했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 버린 상태였다.

12만 마리의 마수를 갈아 넣어 탄생한 2천이 넘는 최상급 마수.

확률로만 봐도 1%를 훌쩍 넘겨 2%에 근접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0.2%만이 최상급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하급에서 중급으로 진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중급 이상부터는 확실하게 갈리는 편이었기에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망하셨어요?”

“조금?”

“왕급 마수가 무려 300마리가 넘는데도요?”

“그게 가장 실망이야. 저놈들이 처먹은 영약이 무려 3천이라고. 3천! 그걸 다 처먹고도 고작 311마리라니!”

“에이~ 그래도 제가 점찍은 놈이 샤크와 같은 수준으로 진화했잖아요. 그걸 위안으로 삼으세요.”

현지가 응원하던 녀석.

놈은 특이하게도 경계를 넘어선 후 영약을 단 하나만 복용했음에도 왕급 중에서도 무려 중급에 도달했다.

지안이 응원하던 녀석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왕급에 올라선 231마리의 마수 중에 중급에 올라선 녀석은 그 둘 뿐이었으니까.

하급으로 보이는 녀석이 7마리였고, 나머지 모두가 최하급인 걸 보면 현지와 지안의 안목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안 거야?”

“뭘요?”

“니가 응원하던 놈 말이야. 그놈이 특별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몰랐는데요?”

“그럼 왜 도와준 건데?”

“그냥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현지의 눈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해 보였다.

그 엄청난 수의 마수들 중 현지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지안이 역시 비슷하겠지.

그나저나 왜 이리 안 와?

“크림슨.”

-네. 군주님.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

-오늘을 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 왕눈아!”

마수들을 정렬시키던 왕눈이가 내 부름에 나에게 다가왔다.

“너는 마수들을 이 주변에 배치해 놔. 후에 우리가 진입했을 때 탈출하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촘촘하게. 알았지?”

-긍정.

“움직여.”

왕눈이를 비롯한 마수들은 결계에 함께 진입하지 않을 것이다.

결계에 진입하는 것은 미르카엘들과 나 그리고 현지, 지안 크림슨, 라구스, 코넬리아, 루시안 이렇게 총 10명이었다.

나머지 마수들은 모두 이곳에 진을 치고 놈들을 기다릴 것이다.

이쪽이 쫓겨 나오던가 그쪽이 쫓겨 나오던가 둘 중 하나인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만약 이쪽이 밀리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당연히 놈들을 유인할 테고, 반대로 놈들이 밀리는 상황이 와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다.

물론 높은 확률로 전자의 상황이 펼쳐지게 되겠지만.

결계 안쪽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사념의 악의가 너무 강했기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쪽의 인원이 사념에 잠식당하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분은 내가 최대한 차단을 하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기에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괜찮겠지?

전력만 봐도 충분히 그쪽을 압도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이모탈이란 존재가 큰 변수였다.

하나 혹은 둘 정도라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었지만, 만약 그 수가 열을 넘게 된다면 이쪽 역시도 각오를 해야만 했다.

사상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 * *

“나 잠깐 쉬고 있을 테니까. 다 오면 불러.”

-네.

마수들의 배치를 확인한 후 잠시 산책이라도 하며 괜한 불안감을 떨쳐 보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곧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멀리서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르카엘과 수왕, 하이엘프가 도착한 것.

‘알았어. 바로 갈게.’

로드의 레어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 미르카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었단 말이지?

-로드를 처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네.

-홀로 지내는 로드를 처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테니까요.

도착한 미르카엘과 수왕, 하이엘프가 차례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저게 신기라는 건가?

미르카엘의 허리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두 개의 검집이 있었다.

단검이 들어갈 만한 크기를 가진 검집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신기라 생각될 만한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 역시 마찬가지.

티 한 점 없이 새하얀 것만 빼면 별달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이엘프와는 달리 말이다.

하이엘프의 목에는 화살 모양의 목걸이가 하나 걸려 있었다.

그 작은 목걸이에서 느껴지는 힘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미르카엘의 단검과는 달랐다.

도저히 목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온전한 용마왕의 정수조차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왕.

그는 놀랍게도 갑옷을 입고 있었다.

푸른 빛이 감도는 흑색의 전신 갑옷이었는데, 미르카엘의 단검처럼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

-그것들이 신기라는 것들인가?

-그렇다. 나의 신께서 당신의 혼의 파편을 담아 만들어 주신 고귀한 보물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것을 사용할 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일회용이거든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는 미르카엘과 수왕이었지만, 하이엘프의 표정은 조금 달랐다.

가져온 것만으로도 불안한지 한 손으로 꽉 붙잡고 슬픈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주변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미르카엘이 주변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마수들을 파악하고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크림슨을 보며 물었다.

-마수들이다.

-저것들이 전부 마수란 말이냐?

-그렇다. 미호!

크림슨이 미호를 부른 순간 미호의 결계가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지금껏 숨겨져 있던 힘이 드러났다.

지금껏 숨기고 있던 힘이 완전히 드러나는 순간 미르카엘과 수왕, 하이엘프의 얼굴에 경악이 서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 중 수백에 해당하는 개체가 왕급 마수의 기운이었으니까.

거기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수만에 이르는 최상급 마수의 존재감.

이 정도면 마계의 한 종족을 순식간에 멸망으로 이끌 만큼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아니, 이 정도 전력이라면 모든 종족이 멸망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저것들 모두가 이쪽의 전력이니까.

-말도 안 돼!

-왕급 마수가?

-수백?

이들에게 숨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전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놈들을 결계 밖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미르카엘들은 최후의 방법으로 자폭을 생각하고 있었다.

놈들을 결계 밖으로 꺼내느니 그곳에서 모두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마계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설마 마수대란을 일으킨 것이 너희들이었나?

-마수대란?

-용족의 영역에 몰린 엄청난 수의 마수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거라면 이쪽이 맞다. 결계를 찾기 위해 마수들을 불러들였으니까.

무려 천만이 넘는 마수들이 동시에 용족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마수들을 조종한 거죠?

-설명했을 텐데?

-설마 저희가 그 말을 믿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물론 그때의 설명을 믿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급했고, 일단 한 편이라 생각했기에 넘어간 것이겠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건가?

-네.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저 믿어 달라는 말로는 부족한가 보군.

-당연하죠. 마수를 조종할 수 있는 건 바하무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요. 확실하게 해명을 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하이엘프였지만, 이미 답은 준비해 두었다.

-확실한가? 바하무트 말고는 마수들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거?

-그게 무슨 말이죠?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는 존재는 바하무트 하나가 아니라는 거지.

-설마?

크림슨의 말에 놀란 건 하이엘프가 아닌 미르카엘 이었다.

-눈치가 빠르군.

-사실인가? 진정 그분이…….

-자세히는 설명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저것들 모두가 그분과 연관되어 있지.

-그분이라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르카엘과 크림슨의 대화를 들은 하이엘프와 수왕은 지금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오신 건가?

-말해줄 수 없다.

미르카엘의 직접적인 질문에 크림슨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그분이라뇨?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는 건 바하무트만이 아니다.

-그럼 누가?

-마족들이 지배의 군주라 부르는 분 역시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 그 말은?

미르카엘의 말에 하이엘프와 수왕의 고개가 크림슨에게 돌아갔다.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크림슨은 그 말을 끝으로 더는 해명을 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죠.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이제 계획을 이야기해주도록 하지.

그 이후 크림슨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고.

그에 미르카엘과 하이엘프, 수왕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반박을 하며 계획을 완성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계획을 설명한 후 우리는 로드의 레어 지하에 위치한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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