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214)

“어디 아프세요?”

“걱정되셔서 그러세요?”

“조금 걱정이 되네.”

현지와 지안에게 걱정이 된다 말하긴 했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둘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었다.

결계에 다가갈수록 현 상황에 대한 걱정보다는 지금껏 애써 무시해 왔던 또 다른 내가 건넨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가 있는데 무슨 걱정을 그리하세요?”

“맞아요. 저와 현지가 있잖아요.”

둘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내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애써 표정을 풀려고도 해봤지만, 금방 다시 나를 잠식하는 불안감 덕에 내 표정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군주님,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크림슨과 미르카엘들은 일단 진입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앞장서는 미르카엘을 따라 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앞을 막아서는 반투명한 막을 발견했다.

-어때? 진입이 가능하겠나?

-잠깐 기다려라.

크림슨의 물음에 미르카엘이 결계에 손을 올렸고, 그와 동시에 미르카엘의 손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막에 작은 공간이 생겼고 이어서 공간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크윽!

-이런!

열린 공간을 통해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튀어나오는 사념 덩어리.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던 일반적인 사념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이곳에 있는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해야 정상이었지만, 보통의 사념이 아닌 듯 가장 앞에 있던 미르카엘에게 달라붙은 사념은 그의 정신을 흔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쉽게 사념에 잡아먹힐 미르카엘이 아니었지만, 사념 역시도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었다.

-흡!

미르카엘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그제야 사념이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고, 이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키아악!

괴상한 소리를 남기고.

하지만, 사념은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열린 구멍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념이 빠져나와 미르카엘을 비롯한 모두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는데, 이건 쉽게 넘길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상한데요?”

지안의 의문에 고개를 돌리며 묻자.

“뭐가?”

“제가 들어갔던 그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사념에 담긴 악의가 강해요.”

지안 역시도 결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건 크림슨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사실입니다. 이곳에 비하면 그곳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말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야?’

‘강행할 수는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바하무트의 사념에 잠식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크림슨의 말대로 이대로 물러날까도 생각해 봤지만, 현지와 지안을 보니 그럴 필요는 없을 듯 보였다.

미르카엘들과 달리 현지와 지안은 아무렇지 않게 사념을 소멸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떻게 할까?

일단 물러날까?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미르카엘이 결계를 닫으려는지 서둘러 결계에서 물러나려 했고, 그를 보던 나는 결심을 굳혔다.

-잠깐 기다려봐.

-그게 무슨…… 응?

순간 나에게서 뻗어 나간 지배의 영역은 순식간에 일행 전부를 뒤덮었고, 그와 동시에 악의를 가진 사념이 소멸하기 시작했다.

악의가 강하든 말든 지금의 나에겐 다 똑같은 사념일 뿐이었으니까.

-사념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막아줄 테니.

-지금 사념을 정화한 건가?

-그게 가능하다고?

-놀랍네요.

미르카엘들은 놀라운 모양이었지만, 그건 그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였다.

크림슨들은 내가 용마왕의 정수에 담긴 강력한 사념을 정화하는 모습을 봐 왔기에 당연하다는 듯 생각할 뿐이었다.

-놀라고 있을 시간이 있던가?

-그, 그렇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모두는 앞장서서 결계를 통과하는 크림슨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한참을 이동했지만, 대공을 비롯한 단장과 이모탈로 보이는 존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깊숙이 들어갈수록 사념에 담긴 악의가 강해질 뿐.

그나저나 대공은 어떻게 이곳을 통과한 거지?

입구와 달리 지금 이곳에서 느껴지는 사념의 악의는 배 이상일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미르카엘이라 할지라도 버티는 것이 겨우 일 정도로 거대한 악의.

예상했던 것보다 사념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다.

-대공이 이런 곳을 지나갔단 말인가?

-정상이 아니겠는데?

그들 역시도 악의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그들이 사념에 잠식되었다면, 계획대로 결계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으면 상대할 수단이 없겠네요.

하이엘프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이야 내가 사념을 막아주고 있긴 했지만,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착각하고 있었다.

내 힘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으니까.

의지의 확장으로 인해 의지가 폭발적으로 강해진 나에게 사념을 정화하는 것은 숨 쉬는 것과 그리 차이가 없을 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어? 저거!”

내 뒤를 조용히 따라오던 지안은 놀람과 함께 한 방향을 가리켰고, 그와 동시에 모두의 고개가 그곳으로 돌아갔다.

사념의 폭풍이라고 해야 할까?

피처럼 붉은 폭풍이 주변의 사념을 모조리 끌어들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어디서도 대공과 단장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의념.

-누구냐!

미르카엘의 외침과 동시에 사념을 빨아들이며 휘몰아치던 폭풍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게 뭐지?

천족의 날개를 가진 도마뱀?

-네, 네놈은?

딱 봐도 천족과 용족의 혼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생김새였다.

근데 조금 그러네?

차라리 용족의 날개를 가진 천족의 모습이었으면 봐줄 만했을 텐데.

-미르카엘. 오랜만이구나. 킥킥킥.

-어, 어떻게? 네, 네놈들은 분명 그때 쫓겨났을 텐데?

뭔가 이상한데?

우리의 예상대로라면 저놈은 이모탈이 사라진 후 새롭게 태어난 존재여야 했다.

하지만, 미르카엘의 반응은 그것이 아니었다.

저 앞에서 이죽거리는 놈을 알고 있는 듯했는데.

-돌아왔지. 우리가 겪은 절망을 네놈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말이야!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우리도 놀랐다. 설마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럴 리 없다!

살아 있었던 거야?

그 오랜 세월을?

내 예상대로 그들은 게이트와 연결된 그곳에서 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게이트가 열리면서 그곳과 마계가 연결된 것을 알게 된 이모탈들이 모두 마계로 넘어왔다는 말이었다.

나처럼.

-내가 버젓이 이곳에 존재하는데도?

-설마?

-그래. 나뿐만이 아니다. 살아남은 이모탈 전부가 돌아왔지.

한둘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다만, 조금 의아한 것들이 있었다.

-이봐.

-응? 너는…… 오호라? 그 인간이라는 놈들이구나!

-인간을 알아?

-당연하지 않으냐? 네놈들의 세상과 우리가 살던 세상이 연결되었는데 그것을 모를 리가.

녀석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놈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었다.

-왜 이곳으로 넘어온 거지? 그곳에서도 충분히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이 바로 내 의문이었다.

신들은 저들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끼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보내준 것이니까.

-맞다. 우리는 그곳에서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아왔다. 아니, 우리를 신으로 떠받드는 미개한 녀석들을 거느리며 아주 만족할 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원래 그곳에서 살아가던 주민.

그들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지며 살았다는 소리였다.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던 나에게는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그들을 몰살시켰다.

이유는 모르지만.

-하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더군. 사냥당하던 그 순간의 기억이 영원히 남아 우리에게 치욕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음에도 그 기억은 영원히 남아 우리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지.

-복수심이라고?

-아니, 복수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찾으려는 것뿐이니까! 도태된 종족을 지워버리고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종족은 다시 번성할 수 있다. 그분들께서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이게 무슨 개소리야?

치욕적인 기억이라며? 근데 왜 갑자기 저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그러니까 마계의 종족들 대신 그 자리를 너희들이 차지하겠다는 거야?

-그렇다.

-왜?

-당연하지 않은가! 이곳은 우리의 고향이다. 침략자는 저들이란 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난 종족이다. 저들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자들이고! 이곳의 권리는 우리에게 있고, 이곳의 신을 모실 권리 역시 우리에게 있다!

이놈 이거 아무래도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모양인데?

놈은 사념에 잠식되어 점차 자아를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신이 떠났다는 것을 너희들도 알고 있을 텐데?

-그분들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중이다! 우리가 저놈들을 모두 몰아낸다면 다시 돌아오시겠지!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걸 알아낼 필요가 있는 건가? 당연한 건데? 아닌가? 알아내야 하는 건가?

딱 봐도 정신이 마모되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떠들고 있을 뿐인 녀석.

“현지야.”

“네!”

“처리해.”

여기서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의 말대로 이모탈이 하나가 아니라면 분명 진짜가 안쪽에서 힘을 키우고 있을 테니까.

-감히!

자신에게 살기를 드러내는 현지의 기운을 느낀 녀석이 강대한 기운을 내뿜으며 현지를 위협했지만, 놈은 현지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거다.

놈은 용마왕에 비해서도 처지는 수준이었으니까.

쾅- 콰과과광-

놈과 현지의 격돌로 폭음이 터져 나오며 주변을 뒤흔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놈은 팔과 다리뿐 아니라 날개까지도 그대로 찢겨 나가며 몸통만 남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 이럴 수가!

순식간에 수족을 전부 잃은 녀석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심과 비슷한 수준인 레이에게 실전을 가르쳐주며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용마왕의 정수를 사용해 만들어준 한 쌍의 단검 덕분에 현지는 폭발적으로 강해져 있었다.

저런 놈 서넛이 한꺼번에 덤벼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어딜 넘봐! 이 땅은 이제 우리 도련님 차지라고!

-뭐, 뭐라고?

-팍 씨!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현지였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현지의 기운이 남아 놈의 재생을 방해하고 있긴 했지만, 놈의 팔다리가 천천히 재생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하고 끝내.”

“네!”

푸욱-

-쿠엑!

미소와 함께 놈의 머리에 단검을 박아 넣은 현지가 단검을 뽑아버리자 붉은 기운이 단검에 딸려 올라오며 녀석의 숨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키에엑!

압축된 채로 녀석의 머릿속에 머물던 거대한 사념을 보던 나는 손을 휘저었고, 그와 동시에 사념이 그대로 흩어져 버리기 시작했다.

-뭐해? 대공 안 찾을 거야?

-그, 그렇지. 대공을 찾아야지!

경악한 표정으로 현지와 나를 번갈아 보던 미르카엘들은 표정을 반전시킨 후 크림슨에게 고개를 돌렸다.

빨리 출발하라 재촉하는 표정을 지으며.

-저기요.

-응? 뭐지?

천천히 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하이엘프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

-왜 저자가 당신의 말을 따르는 거죠? 아무리 봐도 당신이 훨씬 약한 것 같은데?

-그건.

하이엘프의 물음에 할 말을 찾지 못한 내가 잠시 멈칫했을 때였다.

-아닌데. 도련님이 나보다 백배는 강한데?

-네?

-도련님이 나보다 강하다고.

어휴- 저걸 어떻게 하지?

나를 잠식하고 있는 불안감이 잠시 사라졌을 정도로 현지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반박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현지 정도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거기다 그때 느꼈던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현지 말대로 백배는 강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냥 대충 넘기면 될 질문에 저런 대답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다.

-백 배라고요?

-아니! 천 배? 만 배? 천만 배?

-그게 말이 되나요?

다행히 현지의 순진한 대답에 하이엘프는 현지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현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왜 안 돼?

-저분이 정말 당신 말대로 천만 배나 강하다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정도면 바하무트를 그냥 소멸시키는 것이 편할 테니까요.

-어? 그러네? 도련님. 왜 바하무트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예요?

현지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수틀리면 그냥 없애버릴 생각이야. 그러니 좀 조용히 좀 해 줄래?

현지의 입을 다물기 위해 대충 아무렇게나 대답해준 나는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저, 정말이었어요?

-거봐! 내 말이 맞지!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지금껏 조용히 있던 크림슨들이었다.

-암! 당연하지.

-바하무트 따위가 감히 어딜!

-아! 빨리 돌아가서 드라마 보고 싶다!

-이번에 재밌는 영화 개봉했다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크림슨과 그에 동조하는 라구스와 코넬리아, 루시안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내 말에 그들의 긴장감이 풀려버린 모양이었다.

거기다, 크림슨들 역시 알고 있었다.

내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그것을 토대로 내가 지배의 군주로서의 격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저,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고?

현지의 말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지만, 크림슨은 달랐기 때문일까?

미르카엘을 비롯한 하이엘프와 수왕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고, 그들의 눈에 호기심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란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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