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2화 (212/214)

도대체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거지?

하루는 지난 것 같은데?

놈을 막아선 지 하루는 지난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다.

이제 겨우 5분이 지났을 뿐이니까.

‘대표님!’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겨우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지안에게 연락이 왔다.

‘준비는 끝났대?’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저 먼저 쏴요?’

‘그게 좋을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게 더 강할 것 같으니까.’

‘그런데 저걸 어떻게 맞추죠?’

어?

그러네? 저놈을 어떻게 맞추지?

나는 지금까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준비가 끝나기만 하면 놈에게 무조건 명중시킬 수 있을 거란 아주 큰 착각을.

‘자, 잠깐만!’

놈의 움직임을 무슨 수로 묶지?

아무리 생각해도 놈을 묶어 놓을 방법이 없었다.

수천, 수만의 잔상을 만들어내며 엄청난 속도로 현지를 공격 중인 녀석이었다.

그런 놈에게 저 거대한 에너지를 때려 박을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크림슨?’

‘네. 제가 놈을 묶어 놓겠습니다.’

‘어떻게?’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너 설마 몸으로 때우려는 것은 아니지?’

‘…….’

침묵.

크림슨의 침묵에 나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크림슨이 목숨을 걸려 한다는 사실을.

‘수호기사단의 부단장으로서 단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책임이라도 지려는 거야?’

‘미련은 없습니다. 군주님을 다시 뵐 수 있었으니까요.’

‘안 돼!’

‘하지만, 방법이 없잖습니까.’

‘네가 나선다고 저놈이 멈추리란 보장도 없잖아!’

‘저기요? 지금 뭔가 착각하시고 계신 거 같은데요?’

‘뭐가?’

‘어차피 하이엘프의 공격이 떨어지면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죽을걸요?’

어? 그러네?

지안의 말대로였다.

하이엘프의 일격이 저놈에게 명중하면 이곳에 있는 자들 역시 무사할 수 없었다.

뭐가 이리 복잡하지?

저놈을 묶어 두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대피까지 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

‘하임!’

‘뀨?’

‘너 일단 뒤로 빠져.’

‘뀨!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가장 방어력이 높은 것이 바로 하임이었다.

벽을 쌓아 압축을 반복한다면 지안의 일격을 막아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 하임이었으니까.

거기에 미호의 결계까지 펼쳐진다면?

충분히 힘을 격감시킬 수 있으리라.

그 이후는 이곳에 존재하는 마수들을 전부 갈아 넣어 버리고, 마지막으로 뚱이와 수왕이 최후의 방벽으로 남은 자들을 지킨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왕눈아! 일단 마수들을 좀 물려놔. 크림슨! 수왕하고 미르카엘에게 빠지라고 전해.’

일단 필요 없는 인원은 전부 뒤로 물려둘 필요가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

놈을 묶어 놓을 방법.

누군가 희생을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도 도박일 뿐이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희생이 되어 버릴 뿐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무기를 버리는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냥 지안에게 신기를 맡길 걸 그랬나?

그랬다면 놈에게 위기감을 심어주는 일도 없었을 테고, 계획대로 놈을 처리했을지도 몰랐다.

물론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미련은 남지 않았겠지.

놈을 처리할 방법이 있었다는 미련은.

에휴- 어쩔 수 없나?

‘현지 빼고 전부 물러나!’

방법이 없었다.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크림슨은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러나라고 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크림슨의 태도에 모두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물러나려던 움직임이 멈춘 것을 보니.

‘물러나!’

지배의 힘.

나에게 속한 자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발휘하는 힘.

나는 지금껏 직접적으로 이 힘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타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단장은 지금 하이엘프의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린 상태였고, 그 때문에 놈은 지금 발악을 하는 중이었다.

하이엘프를 처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어떻게든 이 장소를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녀석.

그 때문에 현지를 제외한 모두를 물린 것이었다.

‘미안.’

모두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작게 사과한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힘에 접촉하기 시작했다.

놈이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사실 언제든 꺼낼 수 있었다.

그때의 그 모든 것들은 이미 나와 동화되어 버린 상태였으니까.

단지 그 힘을 놈이 감당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 꺼내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나를 집어 삼켜버릴 힘.

후회는 없었다.

그나저나 현지하고 지안이한테 정말 미안하네.

크림슨들은 어쩌면 더욱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이 힘이 나를 잠식하는 순간 진짜 군주가 나타날 테니까.

거기다, 하이엘프 역시 신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기뻐하겠지.

어? 저놈?

힘을 꺼내려던 그때 내 눈에 특이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핏줄이 전부 터져버린 듯한 시뻘건 얼굴과 몸에 존재하는 구멍이란 구멍 전부에서 피를 흘리는 이상한 모습을 한 존재.

대공이었다.

어째서 저런 모습이 된 거지?

놈의 존재는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자리를 피하기에 도망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저런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뭐지? 왜 저런 모습이 된 거지?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념에 잠식당했어?

그랬다.

지금 대공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단장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는데.

사념을 흡수했다고? 그 짧은 시간에?

망했네.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은 더는 선택을 미루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고,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꺼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놈!

콰앙-

-네, 네놈은?

어? 저놈 지금 뭐 하는 거야?

단장을 향해 육탄돌격을 시도하는 대공을 본 모두의 입이 더는 벌어질 수 없을 만큼 벌어졌고, 이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건 단장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어이없게도 놈은 현지를 피하려다 대공에게 잡혀 그대로 멈춰 버렸다.

온몸을 이용해 단장을 속박하고 있는 대공.

-네놈이 남겨둔 것을 모조리 먹어 치웠지. 네놈을 끝내기 위해서 말이다!

저게 무슨 말이지?

남겨둔 거라니?

-서, 설마 네놈?

-그래. 마수 수백만 마리의 정수를 모아놓아 그런지 꽤 괜찮더구나.

-미, 미친놈!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구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어떻게 가느냐는 내가 선택할 문제지!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대공의 마력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흉흉함을 내뿜고 있었는데, 대공이 뿜어내는 마력에 담긴 의지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파멸의 의지뿐이었다.

‘현지야, 위험하니까 일단 빠져서 상황을 지켜보자.’

‘네? 네!’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를 폭탄의 주변에 있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그대로 쓸려 나가버릴지도 몰랐다.

-뭐? 네놈 설마? 놔라! 노란 말이다!

단장은 대공의 생각을 읽었는지 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발악하기 시작했지만, 대공의 힘을 벗어나기에는 대공이 너무 강해져 있었다.

-그럴 수야 없지! 크림슨! 뭐하나! 이놈을 당장 끝내지 않고!

-고맙소!

대공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크림슨이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지안에게 신호를 보냈고, 동시에 저 멀리서 파괴의 기운이 터져 나오며 빠르게 단장을 향해 한 줄기의 선이 그어졌다.

-항상 너의 일 처리에 불만을 품었지만, 끝은 나쁘지 않구나.

-뭐?

이제 곧 떠나게 될 대공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나는 군주를 연기하며 그에게 의념을 보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참으로 대견하구나!

-서, 설마? 당신은?!

-이제야 알아보는 것이냐?

-크하하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구나! 틀리지 않았어!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나의 주군이시여!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이것을 놓으란 말이다!

찰나의 순간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마지막은 단장의 발악으로 장식되었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공의 표정에는 조금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콰아앙- 쿠구구구궁-

밀려오는 마력의 파도를 보며 잠시 여운에 잠겨있던 나는 급히 소리쳤다.

-준비해!

그와 동시에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고, 세상이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임의 견고한 성벽과 그 위를 덮는 미호의 결계는 빛의 파도가 순식간에 허물어버렸고, 이어서 마수들을 덮치려던 그때 현지가 나서서 빛의 파도를 베어버렸지만, 그마저도 찰나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수백의 왕급 마수가 동시에 힘을 뿜어내었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지워 버리는 엄청난 위력.

허! 이거 생각보다 위력이 무시무시한데?

단장의 기운과 대공의 기운, 그리고 지안과 하이엘프가 쏘아낸 화살에 실린 힘.

총 넷의 기운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파괴력은 이 주변뿐 아니라 용족의 영역 전체를 날려 버릴 만큼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큰일이었다.

잘못했다가는 용족이 멸망할지도 몰랐으니까.

만약 이 힘이 지구에서 폭발했다면 지구가 반 토막이 났을지도 모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했는데.

-어떻게 좀 해봐!

수호의 의지를 담은 지배의 영역이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을 보며 소리쳤지만,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미호의 공간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지와 단장의 충돌로 공간이 박살이 났을 뿐 아니라 차원 자체가 갈라지며 불안정해졌기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이대로 모두 함께 나란히 저세상으로 떠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았는데.

어휴- 그럼 그렇지.

밀려오는 빛의 파도를 보며 결국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하압!

그때.

수왕이 앞으로 나서며 기합을 내질렀고, 그와 동시에 그가 착용한 신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 설마 막아내는 거야?

신기의 빛이 점차 빛의 파도를 밀어내는 모습을 보며 기쁨에 잠겼던 것도 잠시 점차 신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했던가?

뚱이가 수왕의 앞으로 나서더니 빛의 파도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수왕이 더는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오자 뚱이가 흡수한 힘을 그대로 토해내면서 또다시 밀고 밀리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막아내야 하는 거야?

며칠이 지난 것처럼 긴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지만, 아쉽게도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길어야 1초?

찰나의 순간을 수천수만 개로 쪼갰을 뿐 흘러간 시간은 1초도 되지 않았다.

모두가 폭발의 여파를 막아내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상황은 최악일 뿐이었다.

크림슨과 라구스, 루시안, 코넬리아가 공간을 베며 어떻게든 막아내려 했지만, 차원 자체를 부수며 전진하는 파괴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고, 수왕의 신기가 조각나 너덜너덜해졌으며 뚱이의 육체 역시 수왕의 신기와 다르지 않았다.

지안과 현지 역시도 계속해서 힘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니안의 브레스와 왕눈이의 레이저 그리고 펜릴의 뇌전 역시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임과 미호가 계속해서 결계와 벽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채 모습이 드러나기도 전에 박살이 나고 있었다.

왕급 마수들 역시 벌써 반 이상이 갈려 나간 상태였고, 최상급 마수들은 아무런 도움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이 사태를 만들어낸 하이엘프는 초주검이 되어 정신을 잃은 상태.

결국,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왔고, 그에 미련을 버리려던 그때.

우릴 쓸어버리려던 힘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

-살았……

-크헉!

풀썩- 풀썩-

무언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제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모두가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는데,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이 막아내었다는 기쁨과 함께 끊어져 버린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만 아무것도 안 했네?

처음 지배의 영역에 수호의 의지를 담았던 것을 제외하면 나는 선택이라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뭐 어때? 모두 무사하면 되었지.

왕급 마수의 반이 사라졌지만, 특이하게도 최상급 마수들의 수는 거의 줄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뒤쪽으로 치워 버린 것 덕분에 어이없게도 놈들과 나만 멀쩡한 상태였다.

이걸 막아내었단 말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이와 넓이의 크레이터는 물론 차원의 갈라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졌던 소멸의 폭풍은 그렇게 끝을 고했다.

“그나저나 저거 괜찮은 거 맞겠지?”

모두가 기절한 상태임에도 혼잣말을 내뱉을 정도로 위험해 보이는 것이 내 시야에 담겨 있었다.

바하무트를 봉인한 결계와 그 안에 보이는 거대한 파충류의 눈동자.

그 무시무시한 폭발을 견뎌낸 것처럼 보이는 결계였지만,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계 전체에 걸쳐 날카로운 흔적들이 남아있었고, 그 흔적들 속에서 엄청난 양의 사념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몰라!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일단 좀 쉬어야지.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벌러덩 누웠고, 이어서 눈을 감으려 했지만, 그 생각은 생각으로만 끝내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하늘 위에 떠 있는 단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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