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214)

“어? 아무렇지도 않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지안이었다.

“도련님이 너 죽였다가 살려서 그래.”

“뭐어?”

현지야 그걸 꼭 말해야겠니?

모두가 놀라자빠질 만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현지를 보며 한숨을 내쉰 나는 모두가 깨어나길 조용히 기다렸다.

“야! 너 그거 알아? 내가 신이래!”

“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신은 무슨 신! 네가 신이면 나도 신이게?”

“어? 어떻게 알았어? 너도 신이래.”

“이게 진짜!”

“맞다니까? 나는 저기 있는 엘프들의 신이고 너는 저기 있는 천족의 신이래. 도련님이 그랬어.”

“정말로?”

“그렇다니까?”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제 숨길 생각은 없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둘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그때였다.

현지가 정신을 차린 하이엘프의 앞으로 이동해 입을 연 것은.

-모, 몸이?

-야! 너 그거 알아?

자신의 몸이 정상이라는 사실에 놀란 하이엘프는 현지의 이어지는 말에 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 뭘 말이죠?

-내가 너희들의 신이래.

-네?

-그러니까 내가 엘프의 신이라고.

-신? 당신이요?

-그렇다니까? 놀랍지?

-풉!

물론 하이엘프의 비웃음은 덤이었다.

다만, 현지뿐만 아니라 지안이 역시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닌 모양인지 미르카엘을 향해 쭈뼛거리며 다가가기 시작했고.

-저기요.

-뭐지?

-저는 천족의 신이에요. 반가워요.

현지와 하이엘프의 대화를 듣던 미르카엘은 지안이 다가와 이상한 소리를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진짜라니까? 도련님이 그랬다고! 도련님! 제가 얘들 신 맞죠?

현지는 자신이 신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신이라니까 그저 기쁜 모양이었다.

-맞다. 현지가 너희 엘프들의 신이지. 지안이는 천족들의 신이고.

-봐! 맞지?

-저, 정말입니까?

놀라움을 표시한 것은 하이엘프와 미르카엘이 아니었다.

바로 크림슨과 라구스들이었지.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그게 무슨?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설마 그럼 당신이 정말 지배의 군주님이시란 말씀입니까?

-보면 알잖아? 저놈이 왜 저 꼴이겠어?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단장에게로 돌아갔다.

마계를 구성하는 법칙이 절로 움직이며 단장을 찍어누르고 회복시키길 반복하는 모습.

-헉? 정말로 당신께서?

-말도 안 돼! 이건 인정할 수 없어!

지안을 보며 놀라는 미르카엘과 달리 하이엘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왜?

-조화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차분한 성격을 가지셨던 분이 어떻게 이런?

‘어? 그러네?’

그러고 보니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엘프의 신은 지금 현지와는 반대라고 해도 좋을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현지의 성격은 오히려 천족의 신이었던 지안과 어울렸다.

‘그러고 보니 무기도 반대네?’

엘프의 신인 현지는 원래대로라면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를 상징하는 무기가 바로 활이었다.

천족의 신인 지안을 상징하는 것은 특이하게도 한 쌍의 단검이었는데, 천족들은 자신들의 신인 지안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만큼 막무가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둘은 서로의 성격을 부러워했던 건가?

지나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둘은 모순적으로 서로의 성격을 부러워했던 모양이었다.

-저, 저기…….

-응? 왜?

-혹 저희의 신께서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수인족의 신?

-네!

-저기 있잖아! 저 돼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현지가 뚱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 저 마수요?

-어. 쟤가 수인족의 신이래.

-그, 그럴 리가요. 저런 말도 못 하는 마수가 어떻게 저희의 신이란 말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뚱이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말을 할 수 있었지만, 나를 너무 귀찮게 굴어 내가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었다.

-나 말할 수 있다. 근데 너무 배고프다.

-아아!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 수왕을 보자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놈은 왜 하필 돼지의 모습으로 태어난 거래?

좀 제대로 된 모습도 있었을 텐데.

-난 난쟁이족의 신이다! 근데 아무도 없다!

그럴 줄 알았다.

하임은 예전에 이미 자신이 난쟁이족의 신이란 것을 깨달았을 거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하임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그 자유의지.

하도 장난을 심하게 치길래 지배의 힘을 사용해 제제를 걸었음에도 하임은 금방 그것을 풀어버리고는 계속해서 장난을 쳤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당시의 나는 몰랐지만.

-나는 바하무트다!

순간 왕눈이가 외쳤고, 그와 동시에 모두가 기겁하며 왕눈이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 도망가지? 나도 신이다! 마수들의 신!

-정말?

-그렇다.

지안이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왕눈이 역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껏 티를 내지 않았을 뿐.

-너는 용족의 신이야.

니안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었지만, 고개를 갸웃할 뿐인 니안이었다.

“키릭?”

이상하네? 이놈은 왜 이러지?

니안이 역시 전과는 반대되는 성격을 원했나 보다.

뭔가 좀 어긋난 것 같긴 했지만.

그나저나 이제 끝낼까?

극심한 고통에 온몸을 뒤틀며 그것을 표현하는 단장에게 고개를 돌린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우냐?

-주, 죽여주십시오!

내 말이 끝나는 순간 그에게 가해지던 모든 행위가 멈췄고, 그와 동시에 단장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는 없다. 네 죄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제, 제발…….

버틸 수 있겠지? 버텨야 하는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놈에게 다가가 놈의 머리에 손을 올렸고, 이어서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도서관을 놈에게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미래의 내가 하나둘 지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뭐야?

대부분의 미래가 지워지고 있었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미래들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설마 모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건가?

-버텨라! 어떻게든 버티란 말이다! 네놈이 저지른 일이다! 수습 역시도 네놈이 해야 하지 않겠느냐!

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들임으로써 정신이 무한히 확장한 녀석이었다.

-크아악!

-버텨! 버티지 못한다면 네놈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찾아낸 방법은 나에게 동화되어가는 기억을 이놈에게 전부 때려 박는 것이었다.

유희를 위해 모든 것을 봉인했을 때, 나는 이 기억이란 것이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봉인되었던 힘이 순식간에 풀려 버릴 정도로 기억의 힘은 강력했다.

또 다른 나라고 생각했던 그놈은 황당하게도 내가 아니었다.

그저 기억에서 태어난 자아였을 뿐이었고, 그런 자아조차도 기억의 힘을 견디지 못해 매 순간을 지옥 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만큼 기억이란 것은 위험했다.

놈이 나를 도왔던 이유.

내가 회귀했던 이유가 바로 이놈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나에게 기억을 떠넘기기 위해 미래를 보여준 것 역시 놈이었고, 본래는 계속해서 윤회를 거듭해야 하는 나를 억지로 이 상황까지 몰아넣은 것 역시 이놈이었다.

놈이 말한 ‘때’라는 것은 기억의 파도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의미했던 것이었다.

내가 느끼고 봐야 할 모든 것을 놈이 감당하고 있었으니까.

이 기억은 나에게 저주였다.

나란 존재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저주.

이것만 아니라면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었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X발! 그때 똑같이 나눌 걸 그랬어!

나를 제외한 여섯은 이런 저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 세상을 유지하는 힘.

그것이 나에게 달라붙어 있는 이상 나는 영원히 마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희의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이 마계와 함께 소멸을 택했을지도 몰랐다.

마계의 끝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비단 마계의 종족들만이 아니었다.

내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신들에게도 끝은 존재했으니까.

나를 제외한 모두의 끝.

그래서 외면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었지만, 끝을 알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제발 버텨! 제발!’

기억을 이놈에게 옮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내가 느껴야 하고 존재해야 할 미래 전부를 이놈이 감당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컴퓨터.

그래. 나는 컴퓨터의 사용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 외의 것들은 전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감당하는 것처럼 이놈을 이용해야만 했다.

나는 사용자가 되고 싶었다.

그저 사용하는 것만 하고 싶었다.

그 외의 것들은 조금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소리였다.

마침 좋은 제물이 눈앞에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 * *

“아빠!”

나에게 안겨드는 수아.

내 딸이자 정령들의 신이라 불리던 존재.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요?”

수아의 얼굴에는 밝음만이 존재했다.

어두움 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히히히. 정령들이랑 놀아써요!”

“재밌었니?”

“네!”

나의 마지막 기억은 내가 선택을 위해 눈을 감았던 그때까지였다.

그 후의 기억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덕에 나는 현지와 지안에게서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자신들이 신이라는 소리.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개소린가 했다.

하지만, 미르카엘과 하이엘프의 태도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이 현지와 지안을 자신들의 신으로 모시는 것을 직접 본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 주위에 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니, 나도 신이지?

무슨 신이 이렇게 흔해?

뚱이도 신이고, 하임도 신이고, 니안도 신이고, 나도 신이고?

신이 원래 이렇게 흔한 존재였나?

설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신인 건 아니겠지?

“근데 말이야. 너희들은 왜 이곳에 있는 거야? 신이라며?”

“제가 어딜 가요? 도련님을 내버려 두고?”

“맞아요! 대표님이 여기 계시는데 어딜 가요?”

“우와! 언니들이 신이야?”

수아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좀 쫓아내려 했던 일이 점차 커지는 것 같았다.

“그래. 언니는 천사들의 신이란다.”

“나는 엘프들의 신이지.”

“정말?”

“그렇단다. 대신 이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해. 사람들이 알면 놀라거든.”

“알았어! 신 언니!”

신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알고 있기로 했다.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었으니까.

* * *

“전부 배치 끝났습니다.”

“확실해?”

“네! 그 누구도 허락을 받지 않고는 그곳을 통과하지 못할 겁니다.”

지구와 마계의 경계는 철저히 지킬 예정이었다.

이미 인류는 마나라는 에너지 없이는 살지 못할 정도로 마나에 의존해 살고 있었기에 연결을 끊어버릴 수는 없었다.

다만, 최소한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 만큼은 막고 싶었기에 나는 수백의 왕급 마수와 수만의 최상급 마수를 경계 양측에 배치해 둠으로써 허락을 받지 않은 자는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하는 마수의 벽을 세웠고, 그것을 지금 김 실장에게 보고 받는 중이었다.

“문제는?”

“없습니다.”

“조절 잘해. 사고 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인류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죽음의 땅에서 많은 정수가 나오자 주제도 모르는 자들이 죽음의 땅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죽음의 땅에서 머물던 마수들이 도주하는 각성자들을 따라 유명시 주변까지 다가오는 사태가 발생했으니까.

나에게 마수는 이제 몬스터와 큰 차이가 없는 존재였지만, 유명시 주변에서 사냥하는 각성자에게 마수는 지옥에서 올라온 괴수나 마찬가지였다.

마수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의 삶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죽음의 땅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지배해야만 했다.

그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은 김 실장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지금은 그에 대한 보고를 받는 상태였는데, 관리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은 마수가 자신들을 살려두자 두려움이란 것을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계속해서 마수를 공격했고, 어이없게도 마수의 사냥에 성공해 버린 것이다.

그 이후 나는 김 실장을 불러 할당량을 정해 두었다.

사냥당할 마수의 할당량을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내가 할당량을 정하지 않고 마수들에게 인간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그 결과 죽음의 땅에 존재하는 마수들의 씨가 말라버릴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쉴 수 있을까?”

“저에 비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냐?”

김 실장의 말대로 내 휴식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다.

그런데 왜 쉬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은 걸까?

“도련님!”

“대표님!”

아무래도 그 이유는 저 둘 때문인 것 같았다.

매일 내 방에 눌러앉아 조잘거리는 저 둘의 입 때문에.

* * *

10년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즈음 나는 깨달아야만 했다.

나에게 휴식이란 사치라는 것을 말이다.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저 둘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라는 수아와 레이는 안 오고 저 둘만이 나를 찾았는데.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데?

수아와 레이는 이제 나를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만을 찾던 수아와 레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사춘기라는 무시무시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수아는 이제 나에게 안겨 오지도 않았고, 나를 향해 웃어주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레이가 수아를 따라 한다는 것이었다.

수아와 레이가 나를 향해 웃어주는 순간은 이제 단 하나의 경우밖에 없었는데.

바로 내 카드를 노리는 순간이었다.

저택 하나를 통째로 드레스룸으로 사용함에도 입을 옷이 없다는 수아와 레이.

어이가 없었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실평수가 3,000평이 넘는 저택에 옷을 꽉 채웠음에도 입을 옷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내 카드를 가져간 날은 내 스마트폰의 진동이 멈추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수아와 레이는 엄청난 돈을 사용했다.

매달 명세서에 찍힌 금액을 볼 때마다 내 입에서는 한숨이 멈추질 않았다.

작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까지.

이럴 줄 알았으면 백화점을 통째로 사줄 걸 그랬다.

그게 오히려 싸게 먹힐 것 같았으니까.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수아와 레이가 원하면 모든 걸 사주려는 아버지 덕분에 둘에게는 돈 개념이란 것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놓고 지금 어머니와 사이좋게 마계로 여행을 떠나 1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시지 않고 계시는 아버지는 불편한 건 또 싫으신지 미호를 데려간 상태였다.

“어휴-”

물론 돈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돈은 썩어날 정도로 많았지만, 문제는 둘의 평판이었다.

돈을 숨 쉬듯이 써대는 둘 때문에 언론이 둘을 주목하는 것은 물론 그 모든 사항에 대한 보고가 나에게로 올라왔고, 그를 막기 위해 난 직접 움직여야만 했다.

처음에는 형이 막아 주었지만, 형도 더는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는지 나에게 직접 둘을 단속하라 했고, 그에 나는 둘에게 미움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용돈을 제한했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카드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레이와 수아의 강함 때문이었다.

내가 돈을 주지 않자 레이와 수아는 죽음의 땅으로 향했고, 죽음의 땅을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돈을 직접 벌어 사용하겠다는 의지는 알겠는데, 하마터면 경계가 허물어질 정도로 마수들을 사냥하는 바람에 결국 나는 둘과 협상을 해야만 했다.

1개월에 한 번 카드를 빌려주겠다는 조항을 넣어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둘이 삐뚤어졌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휴-”

“왜 계속 한숨을 쉬세요?”

“무슨 걱정 있으세요?”

“너희는 친구 없냐? 왜 맨날 여기에서 죽치고 있는 거야?”

“있어요.”

“저도요.”

당연하다는 듯 친구가 있다 대답하는 둘.

“그럼 그 친구 좀 만나고 그래. 맨날 여기 와서 죽치고 있지 말고!”

“지금 만나고 있잖아요.”

“맞아.”

“너희 둘 말고! 다른 친구!”

“있어요.”

“하임이도 있고, 뚱이도 있고, 왕눈이도 있죠.”

“맞아.”

어째 대화를 이어가면 갈수록 한숨만 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부탁인데 나 좀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되냐?”

“정말 그걸 원하세요?”

“어.”

“오늘은 바빠서 안 되고 내일부터 시간을 드릴게요.”

“그게 좋겠다.”

뻔했다.

이래놓고 내일이 되면 잊어버렸다는 듯이 다시 찾아올 거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 맘대로 해라! 맘대로!”

“그런데 도련님. 요즘 하임이 관리 안 하세요? 걔 사고 칠 거 같던데?”

“뭐?”

“맞다! 걔 아까 남산 간다고 하던데?”

“그걸 왜 지금 말해!”

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였다.

쾅-

“도련님!”

다급한 표정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온 김 실장의 얼굴이 보인 것은.

늦었네.

“이것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태블릿을 건네받은 후 곧장 화면에 집중한 나는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을 하나 발견했다.

“이게…… 뭐야?”

“그, 그것이…… 남산입니다.”

“이게 남산이라고? 이 구름을 뚫고 올라간 이것이?”

“추정 높이가 1만8천M라 합니다.”

“뭐?”

“그리고…… 위성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남산의 부지가 서울과 경기도를 합친 크기보다 넓어졌다고……”

“아!”

하임에게는 땅을 늘리는 이상한 능력이 있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땅을 순식간에 수만 평으로 만드는 이상한 능력.

물론 그 반대도 가능했지만, 설마 그것을 이용해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공간을 늘리고 줄이는 그 이상한 능력을 설마 이런 일에 사용할 줄이야.

남산은 이제 하임이 다시 공간을 줄이지 않는 이상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게 될 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하임이란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겠지.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요즘 내 생활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좀 쉬어볼까 하면 수아와 레이가 사고를 치거나 내 소환수들이 사고를 쳤고, 그것을 수습하는 것은 항상 나였다.

난 도대체 언제쯤 쉴 수 있을까?

그냥 확 윤회를 해버려?

그럼 쉴 수 있나?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곳에 내 전부가 있었으니까.

하임만 빼고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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