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9화 (9/279)

3. 에페 바체 ( 2 )

날아든 참격은, 길게 자란 풀을 베어내 흩날렸다.

저게 원래 잰슨이 쓰던 무기인 걸까. 연무장 구석의 검대에, 홀로 커다랗게 놓여 있어서 눈여겨본 일이 있다. 쇠몽둥이, 메이스 중에서도 플랜지드 메이스(Flanged mace)라고 불리는 물건으로, 갑옷을 후려쳐 부수고 살을 파내기 위해 날을 세우고 철침을 매단 메이스다.

당연히 무게가 상당한 물건인데, 잰슨의 것은 일반적인 플랜지드 메이스를 두 배로 부풀린 것처럼 커다랬다.

"ㅡㅡㅡㅡㅡ!"

뒤로 황급히 피한 아이. 잰슨은 괴성을 내지르고 다시 메이스를 두 손으로 붙잡아 마구 베어댄다. 봉도 전부 철로 이루어진 저 둔중한 둔기에 닿기만 해도, 아이는 끝장날 것이다. 그런 계산을 세우고 행동하는 것 같다. 어지럽게 자라 있던 풀이 메이스의 옆날에 잘려 바람에 흩날린다.

"이익!"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것 같으면서도 착실하게 아이를 사각으로 몰아넣는 잰슨. 어느새 나무에 가로막혀 참격을 피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몰렸다. 수직으로 높게 솟아오르는 메이스. 철봉의 검은 그림자가 아이의 희디 흰 얼굴에 드리운다.

"끝이다."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맹렬하게 떨어지는 메이스. 아이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갈가마귀를 집어들어 막으려 들었다. 그러나 S자로 휘어진 갈가마귀의 틈새를, 잰슨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깡!

인간의 두개골을 내려찍었다기보단 금속판을 내려찍은 것 같은 소리. 그 소리와 동시에, 이마를 제대로 얻어맞은 아이가 피를 흘리며 나무둥치로 쓰러진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쓰러진 아이는, 투구를 쓴 기사도 투구째로 부숴버릴 듯한 일격을 맞고도 피만 조금 흘릴 뿐 멀쩡했다. 아이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지프도 도움이 될 때가 있네."

머리를 약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최후에만은 고통 없이 보내주려 했던 걸까. 잰슨은 아이의 머리를 노렸지만, 아이의 머리는 이미 수백번 절개되고 구멍뚫리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면서, 엄청난 강도로 경질화되어 있었다. 메이스로 한 번 후려친다고 해서 깨질만한 강도가 아니었다.

주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처음으로 움찔하는 잰슨. 아이는 이마에서 한 줄기 피를 흘리면서도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품에 들려들어 바로 박치기를 날렸다. 잰슨의 턱을 노리고서였다.

"윽!"

하지만 잰슨은 노련했다. 아주 작은 틈새를 내줬을 뿐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뒤로 스텝을 밟아 피한다. 아이의 몸 전체를 날린 박치기는 그저 허공을 향한 점프가 되어버렸다. 볼썽사납게 비틀대는 아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잰슨은 뒤로 물러서 다시 메이스를 휘두를 자세를 잡는다. 자신에게 최적의 거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었다.

"안 돼!"

아이는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고서는 달려들었다. 지금 이 형세는 천 번을 반복해야 한 번은 찾아올까 싶은 형세였다. 거리가 벌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싸우게 되면, 또다시 궁지에 몰려서 한 번도 반격하지 못하다 죽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공격을 해야 해."

빠각! 메이스의 봉 부분이 아이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뼈가 부러진 듯 아팠지만, 무시하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아이. 손에는 갈가마귀를 쥐고 있다. 아이는 갈가마귀의 손잡이를 양 손으로 붙잡고 마치 칼을 휘두르듯 크게 휘둘렀다.

"윽!"

크게 허리힘을 이용해 때리는 과정에서 상체가 열렸다. 다시 한 번 메이스의 철추가 아이의 머리를 쿵 내려찍는다. 순간의 충격 때문에 검게 암전하는 시야. 상박의 근육이 풀리면서, 단단히 쥐어잡은 갈가마귀의 손잡이를 살짝 놓쳐버렸다.

"ㅡㅡㅡㅡ!!!"

다시 한 번, 파공음과 함께 메이스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또다시 메이스를 내려찍기 위해 그것을 들어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공세, 공세를 취해야 해. 어두운 시야 속에서도, 아이는 손을 더듬어 갈가마귀를 움켜쥐려 애썼다.

'응?'

그러던 중 이상한 구멍에 손이 닿았다. S자로 만들어진 갈가마귀는 두 날을 한 결합부로 이어붙인 구조다. 그 결합부에 있는 둥근 홈통이 손을 넣기 딱 알맞게 되어 있던 것이다. 거기에는 부리 모양이 음각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장식용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손잡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챘다.

아이는 그 손잡이를 붙잡고, 몸이 이끄는 대로 갈가마귀를 붙잡은 채로, 세로로 풍차처럼 팔을 돌렸다.

퍽!

메이스가 날아든 건 그와 동시였다. 아이가 몸을 앞으로 뺐기 때문에, 원래 목표인 정수리에서 벗어나 아이의 오른 어깨를 후려치는 메이스. 큰 충격이 온 몸에 가해지며 힘이 풀려 방패를 놓아버릴 뻔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를 꽉물고 회전을 멈추지 않았다.

팍! 날처럼 예리한 갈가마귀의 아랫편이 무언가를 강하게 후려친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아이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무아지경이 되어서 그 회전을 반복했다. 세 번쯤 반복했을까, 혼탁하게 암전됐던 시야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허어억...허어억..."

싸늘한 밤공기와 만나 하얗게 결정화되어 스러지는 입김. 부옇게 떠오르는 입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턱과 가슴께를 완전히 도려내져 바닥에 쓰러진 잰슨의 모습이었다.

"방금... 내가... 뭘 한 거지?"

아이는 떨려오는 손 끝을 붙잡고,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었던 갈가마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붙잡은 결합부를 본다. 바닥에는 그 단단해보였던 플랜지드 메이스가 두 조각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아."

그 모습을 보자 깨닫을 수 있었다. 이 방패가 왜 이렇게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지금까지 자신은, 잰슨과 싸우면서 처음부터 공격을 포기하고 방어에만 집중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던 것이다. 갈가마귀는 방패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무기를 부수는 병기, 웨폰 브레이커였다.

부러진 메이스의 형태를 살펴본 아이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손잡이를 붙잡아 회전하면서, 이 구부러진 날이 그 틈새로 메이스를 붙잡아 부러뜨렸던 게 틀림없었다.

"이런 모양인 이유가 그거구나."

방어만을 위해서라면, 이 형태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적인 방법만으로 싸웠으니 도저히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무기의 진가는 공격용으로 쓰였을 때 드러나는 것이다. 방금처럼.

무기를 잃어버렸을 때, 방패를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예비용의 손잡이가 앞면에 달려 있던 것이고. 방패에 어울리지 않는 만곡한 날을 가진 이유는, 예리한 칼날의 공격을 흘려내고 붙잡아 부러뜨리기 위해서였다.

"혼낸 게 아니라, 도움을 주려고 했던 거였어."

그제서야 방패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란페이의 말이 떠오른 아이. 방패를 자꾸 팔에 비유했었지. 무기를 잃으면 방패로 싸워야 된다고도 했어. 깨달았다. 그건 힌트를 주려는 행동이었다.

한참을 헐떡이던 아이는 눈가를 적시는 피를 훔쳐내고, 쓰러진 잰슨에게 다가갔다. 잰슨의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고여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조심히 무릎을 굽히고 그 눈을 감겨주려고 했다.

"미안해요. 아저씨 친구... 칼슨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읊조리며 눈을 감겨주려던 찰나,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망막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가 평소와 다르게 보인 것이다. 흠칫 떠는 아이. 바닥을 바라보자, 고여 있는 피웅덩이가 달빛을 받아 자신의 얼굴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거기에 비친 눈의 흰자위는, 검은색이었다. 림의 그것처럼.

'한 일곱 번쯤은 죽고 되살리기를 되풀이해야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시도만에 성공하다니. 대단하구나.'

그와 동시에 림의 음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호수처럼 넓게 벌어진 피웅덩이 속에서, 시뻘건 얼굴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림이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주변의 모든 숲과 환경이 아지랭이처럼 일렁이더니,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어딘가로 빨려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뭐, 뭐야?"

어느새 아이는 숲으로 돌아와 있었다. 혼자서 훈련을 하던 그 숲에서, 림의 눈을 마주보던 그 위치 그대로였다. 잰슨의 시체도, 잘려나간 풀과 나무둥치 따위도 전부 멀쩡하게 돌아와 있다. 땀을 흘리며 눈을 껌뻑이는 아이의 옆에서, 림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강해지고 싶다고 하길래, 네 정신에 비집고 들어가 환상을 보여주었다. 어때, 나도 강아지보다는 좀 재주가 있지 않나?'

"이,이,이 나쁜 놈아!"

방금 전까지 온 몸을 죄여오던 죽음의 긴장이 탁 풀린 아이는, 허우적대며 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이의 몸은 연기처럼 림을 통과할 뿐이었다. 풀석 바닥에 쓰러지는 아이의 뒤에 서서 킬킬 웃어제끼는 림.

'왜 그러나. 부탁을 들어주고도 원망을 받기는 처음이군. 확실히, 뭔가 성과가 있지 않았나?'

"그건... 그렇지만."

림의 말을 들은 아이는 갈가마귀를 집어들고, 아까처럼 무기를 받아치는 동작을 해보려고 했다. 뭔가 깨달음의 가닥을 붙잡은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분 하기도 전에 몸이 지쳐서, 헥헥 숨을 토하며 허리를 굽힌다.

'지금은 쉬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방금 만든 환상 속에서 싸우면서, 몸은 다치지 않았어도 정신을 많이 다쳤을 테니 말이야.'

그 말대로였다. 아지프의 실험실에서 아주 기분나쁜 실험을 당했을 때처럼, 구토감이 계속 밀려왔다.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말한다.

"아니야... 괜찮아... 림, 그거 다시 한 번 시켜줄 수 있어?"

'뭐?'

의외라는 듯 턱을 긁는 림. 그리고 만류하듯 말한다.

'간덩이가 부었군. 이건 원래 아탕칼리의 재주다. 그 놈들이 누군가를 심문할 때 쓰는 기술을, 내가 멋대로 바꾸어서 훈련용으로 개조한 거란 말이야. 본래 용도는 고문용이야. 환상이라고는 하지만 고통도, 감각도 모두 그대로고, 그 안에서 죽으면 심할 경우 정말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 걸 나한테 말도 없이 시킨 거였어?"

'이 건방진 아이한테 조금 쓴맛을 보여줄 생각이었으니까 말이지. 한 일곱 번 정도 죽은 다음 울면서 내 이름을 부르면 꺼내줄 생각이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 바로 목을 따버릴 줄은 몰랐어.'

볼을 부풀리는 아이. 메이스가 자신의 머리를 내려찍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자, 등골에 소름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보다 다른 것이 더 무서웠다.

"아니야. 내일도 추태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내일은 축하를 받고 싶어. 한번 더 시켜줘. 한번만 더 하면, 뭔가 확실하게 방법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아."

의지가 결연한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림.

'그럼,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게 끝나면 얌전히 자러 돌아가거라.'

그 이후, 림은 세 번 더 환상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

"우웨에에엑..."

돌아가는 길, 아이는 결국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벽을 붙잡고 속에 든 것을 전부 게워내고 말았다. 그 옆을 낮게 비행하는 림은, 한심하다고 해야하나, 대견하다고 해야하나를 고민하며 뼈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고르고 고른 끝에 나온 말은 이거였다.

'넌 참 바보로군.'

"나도 알고 있어. 나 좀 멍청한 것 같아..."

'아니, 멍청한 것과는 좀 다른데... 됐어.'

비틀거리며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 마치 도수 높은 술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온 세상이 구불거리고 흔들린다. 뱀의 내장 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간신히 계단을 올라, 구석에 있는 방에 도착한 아이. 흰 침대보가 마치 태평양처럼 보인다.

아이는 흙먼지 투성이인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바로 그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

또 그 악몽이다.

"미안, 미안해."

심신이 죽도록 피곤할 때면 항상 이 악몽이 아이를 괴롭혔다. 검게 말라죽어, 잿빛 모래와 먼지로 덮인 사막. 그 사막 위를 헤매다, 벽에 부딪히고, 말라죽어가다, 누군가에게 끝없는 사과를 듣는 꿈.

얼굴을 돌려 대체 누가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것인지 알아채려고 하면, 꿈이 끝나버렸으므로, 아이는 계속해서 그 연유를 알 수 없는 사죄를 듣고만 있었다.

언제 이 악몽이 끝나는 걸까. 내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끝나는 걸까?

"미안..."

"누나야?"

아이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자 쉼없이 울리던 사과의 말이 멈췄다. 아이는 조용히 계속 읊조렸다.

"누나, 나는 잘 있어. 여기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었어. 나쁜 건, 나랑 누나였던 것 같아."

조용한 가운데서 아이는 계속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지레 짐작해서, 칼슨 아저씨를 죽이지 않았어도, 이 사람들한테 사정을 잘 설명했으면, 우리를 어떻게든 지켜줬을 지도 몰라. 아니, 그랬을 거야. 그런데, 먼저 절망해버려서... 먼저 칼을 휘둘러 버려서... 이렇게 됐어."

"누나가 사과해야되는 건 내가 아니야. 잰슨이라는 아저씨야."

"그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용서할 수가 없나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 자신의 배를 감싸안은 손길이 조금 느슨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그 손을 붙잡고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나한테 사과는 그만 해."

그러나, 그 말과 동시에 들려온 것은, 또 끝없는 염불과도 같은 사과의 말이었다. 그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채 아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

누군가가 자신의 옷을 들추고 있다.

흐릿하게 눈을 뜬 아이는, 자신의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꼈다. 분명히 옷을 전부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웠을 텐데, 어째서인지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혀진 상태였다. 허리께에서 축축한 기운이 느껴졌다. 보드라운 촉감의 천. 수건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이 새벽까지 어디서 그렇게 훈련을 하고 온 건지..."

여성의 음성. 누구의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레이븐사이드 안에, 여자라고는 한 명밖에 없었으므로. 란페이였다. 아이는 그걸 알아채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아직 잠들어 있는 척을 했다.

란페이는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서는, 수건을 적셔 쭉 짜고, 아이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한 켠에는 약초를 달여 만든 연고가 놓여 있다.

"어디, 아침에 얻어맞은 데가 여기쯤이었나?"

잰슨에게 맞은 부위를 찾는 란페이. 그리고 곧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미 재생력에 의해 상처가 완전히 회복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참 신기해. 무슨 요정이기라도 한 건가? 요정한테는 상처를 입어도 낫는 힘이 있다던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고 그 부위에 연고를 발라주는 란페이. 아이는 눈을 꽉 감은 채로 그 손길을 그저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계속,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마다, 밤중에 몰래 찾아와서 이렇게 상처를 돌봐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너는 정말로 만년빙의 아이일지도 모르겠구나."

마지막으로, 다시 윗옷을 입히고, 두 손으로 아이를 받쳐들어 침대에 눕히는 란페이. 이불보를 덮어 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내일은 저 아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짧게 성호를 긋는 란페이. 신이라는 말을 듣자, 림이 생각난 아이는 조금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혹여나 아이가 깨어날까 두려워진 란페이는, 황급히 등롱을 들고 문을 나섰다.

불이 사라지자, 어둠만이 방에 남았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아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림. 있지?"

'왜 그러느냐.'

"한 번 더 시켜줘. 나, 내일은 진짜로, 이기고 싶어."

'그만 좀 해라. 조금 있으면 아침이야.'

정말로 진심으로 질색한 목소리의 림. 아이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