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3화 (23/279)

1권 후일담 #2. 꽃(1)

#2. 꽃

칠판을 두드리는 분필.

"따라서, 양형을 고려할 때에는 피고의 경제적 사정과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결하여야 가능한 최선의 정의를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알았나?"

"존속유기 그리고 영아유기의 경우, 도시 노동자에 비해 농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 이유는, 농가의 문화 때문이다. 농가의 상식으로는 첫째는 상속자, 둘째는 첫째의 비서, 셋째는 머슴, 넷째부터는 효율 나쁜 가축이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가 배태된 까닭은, 토지는 균분 상속될 경우 그 집약적 효율을 잃어버리기에...거기! 다나 아니스 양!"

"흡, 네? 네!"

"수업시간에 누가 졸라고 했나!"

"죄, 죄송합니다."

일어나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분홍 머리의 여자. 비웃는 웃음이 강당 전체에 퍼져나간다. 부끄러운 듯 법전으로 얼굴을 가리는 다나. 그 법전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물려받은 듯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시험만 잘 보면 내 강의 따위는 듣지 않아도 좋다는 건가? 응?"

"죄, 죄송합니다, 어제 가정교사로 맡은 아이가,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밤새워 도와주느라..."

"그건 자네의 사정 아닌가!"

수염을 떨며 빽 소리를 지르는 대머리의 교수. 다나라고 불린 여자는, 주변에 비해 어딘가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 곳은 라달라리아의 학당. 라달라리아의 율법을 집행하는 마술사인, 율사가 되기 위해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 이 다나라는 여자는 명백히 이질적이었다. 옷, 행색, 머리, 교재, 모든 면에서 형편이 궁색함이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경제 사정 때문에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죄, 죄송, 죄송합니다..."

눈물을 참지 못하고 훌쩍이는 다나. 주변에선 비웃음과 멸시가 터졌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계속 꼬박꼬박 수석을 따내는 그녀는, 질식할 것 같은 질투와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교수는 크게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분필을 붙잡았다.

"죄송하면 됐네. 앉아."

*

점심시간, 버려진 안뜰.

다나는 자그마한 도시락 하나를 들고 조용히 좌우를 살피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안뜰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주섬주섬 보자기를 풀고, 맨밥과 검은 콩조림밖에 없는 도시락을 깨작깨작 먹기 시작했다.

"또 콩조림. 너무 싫지만, 책을 사느라 앞으로 일주일은 이걸로 버텨야 해요. 그래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안뜰에서, 이끼가 덮인 라달라리아의 동상을 말벗 삼아 큰 소리로 떠들면서.

"아니, 다나 양. 여기서 뭐 하나?"

그렇게 식전기도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놀란, 그리고 안쓰럽다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 학교의 교장인 여자 율사였다. 라달라리아의 4위계의 마술사인 그녀는, 성큼성큼 안뜰로 걸어들어왔다.

다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황급히 초라한 도시락을 감추고 있었다. 친구가 없어 혼자 밥을 먹는게 부끄러워서, 또 도시락의 내용물도 부끄러워서 그런 것 같았다.

"그냥, 명상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새빨개진 얼굴과 흐트러진 도시락 보를 숨길 수는 없었다. 교장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나를 꽉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도 고학생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독학으로 여기에 올라왔기 때문에 자네가 힘든 건 알고 있어요. 조금만 더 참게. 내가 꼭 추천을 해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다나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더니, 교장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렇게 약속한 교장이 떠나고서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던 그녀.

힐끔.

손바닥의 틈 사이로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를 확인한다.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도시락을 내던지고 다리를 쩍 벌려 의자에 앉았다. 정면에서 보면 속옷이 보일 정도로 쩍.

"아, 거, 이거 성공하기 좆같이 힘들었네. 그래도 이제 추천장 준다고 약속 받았으니까 괜찮겠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가져가는 다나.

그녀의 이름은 다나 아니스. 옛날에 아지프의 마탑에서는 실험체 17호라고 불렸던 여자였다. 치이익, 마술로 불을 붙이고, 라달라리아 동상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이 동상은 학교 내 서열 최하위에 가까운 다나에게 있어 유일한 화풀이 대상이었다.

8호를 팔아넘기고, 할머니의 재산을 가지고 달아난 17호는, 자신이 흡혈귀의 피를 받은 한 든든한 신분 없이는 언제든 또 마탑에 끌려가거나 아탕칼리에게 종교재판을 당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래서 든든한 신분을 얻기 위해 신앙을 얻기로 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호적도 없고, 신분도 없는 그녀가 고를 수 있는 신앙은 두 가지 뿐이었다. 라달라리아, 그리고 사소필렌. 사소필렌은 돈이 없으면 천대받을 뿐더러 사실상 신도를 자유방임하기 때문에 뒷배가 되어주지 못하니, 가진 선택권은 하나뿐이었다.

라달라리아의 율사라는 마술사들은 다른 마술사들과 상당히 속성이 틀린 마술을 사용했다. 언령. 법을 어기고 있는 자를 발견했을 때, 그 자를 즉석으로 라달라리아에게 기소하고 판결을 요청해 구속, 마력 역류, 실명 등의 신벌을 내리는 마술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특별히 다른 마술사와 다르게 율사(律士)라고 불렸다.

제국이 개성적이고 늘 충돌할 소지를 가진 일곱 개의 학파의 마술사로 가득한데도, 그들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라달라리아가 있었다. 그들은 제국의 영토 안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마술사 상대로는 자신의 위계보다 2위계 높은 사람을 상대로도 언령을 사용해 이길 수 있었다.

이건 마술을 시전하는 자가 얼마만큼의 신기를 가지고 있느냐, 신에게 총애를 받느냐도 중요하지만, 법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 얼마나 즉석에서 정교한 기소를 해낼 수 있느냐도 중요했다. 그래서 라달라리아는 법을 폭넓게 공부한 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신도로 받아들였다.

17호는 그것을 노리고 라달라리아의 율사가 되기로 했다. 역발상이었다. 적발되면 바로 화형대에 올라가는 흡혈귀가, 감히 제도에서 생활하는 율사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송곳니를 직접 망치로 깨서 잡아뽑고, 할머니에게서 훔친 돈으로 '다나 아니스'라는 이름의 호적을 산 다음, 남은 잔금으로 학비를 대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이었다.

붉은 머리색은 흡혈귀의 징표였다. 송곳니를 주기적으로 잡아뽑으며, 흡혈과 그 흡혈에 따라붙는 권능을 포기하자 그 머리색은 옅어졌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새빨갰던 머리카락은 그 색이 옅어져 연분홍빛이 되었고, 그 겉모습은 상당한 미인형으로 자라났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가. 예전의 그 악동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책이 어울리는 여자의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17호로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본다 하더라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여기 학교 할머니는 자기가 가난한 사람 출신이어서 말이야, 학교장 추천을 거의 무조건 고학생한테 준다고 들었단 말이지."

그래서 일부러 시나리오를 짜고, 그녀가 동정심으로 확실하게 언질을 줄 수 있도록 그 주위를 알짱거리며 가난하다는 사실을 어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반복된 시도는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그녀는 도시락보를 치우고, 주섬주섬 가방을 꺼냈다. 거기에 넣어둔 빵을 꺼내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가방에 손을 댔을 때, 그녀는 손 끝에 느껴지는 화끈한 느낌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아얏!"

누가 가방 손잡이에 압정을 붙여놓았다. 다나가 흔히 당하는 따돌림이었다. 그녀는 피가 흘러나오는 손가락을 빨면서,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자칭 질서의 여신님! 댁 따르는 미친 씨발년들이 요즘 자꾸 나한테 맨날 이 지랄하는데 이거 좀 어떻게좀 해 봐요 진짜! 이딴 짓이나 하는 년들이 무슨 정의를 집행해요!"

이끼낀 라달라리아의 동상의 뺨을 담배로 마구 지지는 다나. 화가 나서 라달라리아 동상을 퍽퍽 때린다.

"어."

그러던 와중 어떤 시선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릎께에서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꼬질꼬질한 때를 온 몸에 바른 아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다나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라서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봤니?"

끄덕.

"어디부터 봤니?"

그러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는 흉내를 내는 아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봤다는 뜻이었다. 다나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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