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4화 (24/279)

1권 후일담 #2. 꽃(2)

"그래서, 부모님을 잃어버려서 헤매던 중에 우리 학교 안까지 흘러들었다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꼬질꼬질한 아이. 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일이 예전부터 왕왕 있어왔다. 그녀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부모를 찾아 주기 위해 학교를 나섰다.

"그래서? 부모님이 뭘 사러 다녀올 거라고 해놓고 사라졌다고?"

"응."

"저기서? 저 분수대 앞에서?"

"응. 근데 내가 찾으러 갔어."

전형적인 미아의 발생 패턴이었다.

"애초에 이 분수가 맞기는 한 거야? 확실해?"

"잘 모르겠어..."

이 근처에는 유사한 분수가 열 개는 있었다. 전부 동일한 모습이기에, 어린아이의 눈으로는 정확히 어떤 분수인지 착각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럼 모든 분수를 다 돌아다녀봐야겠네. 가자."

아이의 손을 잡아끌면서 다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안 기다리고 네가 움직인 거야? 그러면 나쁜 아이인데."

"그치만,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우뚝.

마구 움직이던 다나의 발이 멈췄다. 하나의 불길한 착상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다나는 조그맣게 물어봤다.

"얘, 너 혹시 몇번째 자식이니?"

"응? 무슨 소리야?"

"위에 형이나 누나가 몇 명 있어?"

"일곱 명."

"일곱 명... 일곱 명이라..."

다나는 어둡게 곱씹었다. 오늘 들었던 수업이 생각나서였다. 이 아이의 행색은, 어떻게 보아도 농촌의 아이가 할 법한 행색이었다. 농가의 존속유기 범죄 횟수는 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이유는 농가의 문화 때문이다. 농가의 입장에서 첫째는 상속자, 둘째는 첫째의 비서, 셋째는 머슴, 넷째 이하는, 가축이다.

비효율적인 가축.

이 아이는,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손을 붙잡고 있던 아이가 어딘가로 사라진 게 보였다. 미아인 와중에 또 미아가 되다니, 가히 미아의 천재라 할 수 있었다. 다나는 당황해서 그 아이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자, 자, 이제 사탕 나온다!"

"와아아아!"

이 녀석은 직접 손으로 사탕을 만드는 가게 아저씨의 손기술에 눈이 팔려 쪼르르 달려가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걸 보고 있었다. 다나는 황급하게 그 아이에게 달려가 손을 붙잡았다. 그 순간, 사탕가게 아저씨가 솜씨좋게 사탕 하나를 빙글빙글 말아서는, 꼬마에게 건네주었다.

"어?"

"자, 자, 20피오(*

100피오=1루덴)입니다."

"아니, 잠깐만! 산다고는 한 적 없는데요?"

"에이, 이렇게 착하고 예쁜 누나가 동생한테 사 줘요."

"됐어. 가져가세요."

넉살 좋게 웃는 남자. 아이는 그걸 들고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저씨한테 돌려주려고 들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시선이 쏟아진다. 누나가 되어서 뭐 저런 거 하나도 안 사주냐, 이런 의미의 시선이. 다나는 결국 동전지갑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이 나쁜 놈, 나도 돈 아끼려고 빵에 버터도 안발라서 먹고 있는데."

근처 가까운 분수대. 행복한 표정으로 사탕을 핥는 아이를 쥐어박는 다나. 아이는 그래도 좋은지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냐?"

"응. 이런 거 처음 먹어봐."

턱을 괴고, 옆으로 얼굴을 눕혀서 아이를 바라보는 다나. 아이는 사탕 끝을 핥다가, 갑자기 말했다.

"고마워, 누나."

누나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아려왔다. 아이가 뚫어져라 다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누나, 울어?"

"응?"

다나는 스스로도 놀라서 눈가를 훔쳤다. 눈물이 묻어나왔다. 지금 흘린 것은 아닌 듯 했다. 아까 연기를 할 때 남긴 눈물이 눈가에 고여 있다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나는 황급히 그 눈물을 훔쳐내면서 얼버무렸다.

"아니, 그냥 엄청 오랜만에 들어봐서."

"누나도 동생이 있어?"

"응. 있었어."

"지금은?"

"지금은... 없네."

억지로 웃는 척하는 다나.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하면 무슨 불운한 사고로 동생을 잃고 애달파하는 누나로 보이겠지. 실상은 내가 그냥 배신해서 사지에 몰아넣고 도망친 건데. 그 착한 녀석을.

갑자기 스스로에 대한 강한 환멸이 찾아왔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이런 행동에도, 어떻게 하면 가장 영악하게 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기하는 의태가 생활화되어버린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이런 게 아예 성격이 되어버린 걸까? 언제부터?

그런 상념에 젖어들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먹다 만 사탕을 내밀었다.

"자. 남은 거 누나가 먹어."

다나는 엉겁결에 그 사탕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뭐야, 네 사탕 못 뺏어먹어서 운 건 줄 알아? 그냥 가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아이. 그리고 분수대에 걸터앉은 채로 다리를 흔든다. 그 눈망울은 매우 순수해보였다. 그러기를 몇 분이나 있었을까, 아이가 불쑥 중얼거렸다.

"엄마, 언제 오려나."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마 안 올 텐데. 안 오면 어쩌지? 음, 어떻게 설계를 한 번 또 해 볼까, 학당에 착한 척 하려는 얼간이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떻게 잘 설계하면 고아 하나 사환으로 떠맡게 하는 것 정도는...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도빈! 이 자식, 그 자리에 가만 있으라니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채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허름한 행색의 농부 부부였다. 등에는 날카로운 농기구가 잔뜩 매달려 있다. 아무래도 농기구를 사러 가려고 했는데, 농기구를 옮기다 그 날에 다칠까봐 아이를 따라오지 말고 기다리게 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아아, 라달라리아의 율사님께서 저희 아이를 돌봐주셨군요. 이 녀석, 감사하다고 해!"

성호를 그으며 꾸벅 고개를 숙이는 부부. 단번에 그 신분을 알아챈 이유는 간단했다. 라달라리아의 모든 여신도는, 라달라리아의 모습을 본따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와 같은 머리모양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벼이삭처럼 아리땁게 땋아올린 머리에 한 송이의 꽃봉오리를 핀처럼 꽂는 형태의 머리. 다나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아직 학생이에요. 학생이니까 그런 인사는 부담스럽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좋은 율사가 되실 겁니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도빈이라고 불린 아이의 손을 잡아채는 부모. 그 아이는 부모의 손에 붙잡혀 끌려가듯이 움직이면서도,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누나, 그럼 잘 있어."

"얘, 잠깐."

다나는 그 아이를 불러세우고 머리에 꽂혀 있는 꽃봉오리를 뽑았다. 놀라울 정도로 꽉 조여있던 머리가 풀리며, 긴 생머리로 돌아간다. 라달라리아의 율사가 그 머리에 꽂혀 있는 꽃을 선물하고, 그 꽃이 꽃피면, 행복과 행운이 찾아온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래서 율사들은 진정으로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

"가져가...렴..."

갑자기 손부끄러워진 다나는 말을 멈췄다. 이럴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문에서 파는 꽃 중 제일 시들시들하고 값이 쌌던 흰 꽃봉오리를 사서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반쯤 시든 꽃을 무슨 낯으로 선물하려고 한 거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고마워, 예쁜 누나."

그러나 그 아이는 활짝 웃으며 그 꽃을 받았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져갔다. 다나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손을 흔들어주다가, 뒤돌아섰다.  손에는 여전히 사탕이 들려 있었다. 그걸 입에 넣었다가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내던졌다.

입안 가득 묻어 있던 담뱃진 때문에 사탕의 맛이 쓰게 느껴졌던 것이다.

"역시 이딴 건 나한테 안 어울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다나. 그녀의 눈에, 분수 한 가운데 서 있는 라달라리아의 입상이 들어왔다. 한 모금 연기를 내뿜으며, 아주 오랜만에 그녀는 그 동상에 기도를 올렸다.

피기를,

꽃이 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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