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6화 (26/279)

1권 후일담 #4. 세상의 모든 말

"이 개자식! 또 주방에서 먹을 걸 훔쳐 먹었냐!"

아니야.

난 그러지 않았어.

주방장이, 그 돼지같은 개새끼가 훔쳐 먹고서는 나한테 뒤집어 씌운 거야.

"야, 진짜 애 좀 잘 먹이고 다녀. 애를 자꾸 굶기니까 다른 사람 물건에 맨날 손을 대잖아."

"체벌은 어떻게 할까?"

"그냥 놔 줘. 채찍 같은거 때리다 몸 상하면 손님 못 받잖아."

"뭐?"

"얘도 나 닮아서 예쁘잖아. 조만간 쟤도 손님 받게 시키자."

"무, 무슨 소리야, 남자 애한테."

"그래서 뭐? 그래서 더 비싸게 팔릴 수도 있잖아. 열 살이면 자기 밥값은 자기가 벌어야지. 뭣하면 거세해버리던가."

"참, 자기 자식한테... 얘, 넌 저런 소리 듣고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는 거니? 모자가 쌍으로 기분 더럽게."

변명이라고 생각했어.

기뻤어.

저렇게 거짓말하지 않으면, 내가 채찍을 맞을 테고,

날 기를 수 없을 테니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거짓말이 아니었던 걸까.

"아이고, 이 쥐꼬리만한 새끼 또 약 훔치다 붙잡혔네? 몇 번을 쳐 말해야 알겠냐!"

"야, 야, 애 잡겠다."

"이딴 상처약 가져간다고 니 애미는 절대 안 낫는다고! 나병은 걸리는 순간 이미 뒈진 거라고 봐야 되는 거야! 살 사람은 살아야지, 왜 계속 그 애미랑 붙어다니면서 쥐새끼처럼 병균 옮기고 다니냐?"

"잠깐... 이 놈, 그 놈 아니야."

"그 130루덴짜리 창녀 자식이지? 네가 한 번이라도 따먹는게 소원이라던."

"야,야,야, 너 뭐 하냐? 미쳤냐?"

"닥쳐 임마. 이 정도로 여리여리하면 못 할 게 뭐 있냐? 착한 척 그만하고 너도 껴. 오늘 그 소원 절반은 이루겠네."

"좀 돌리다 질리면 창관에 팔아먹자."

"이 새끼, 존나 독한데. 하루 종일 당하면서 신음 하나 안 흘리고 울지도 않네."

"이거 죽은 거 아니야?"

"이렇게 확인해보면 되겠지."

"야, 입 벌려봐."

"끄아아아아아아악!"

"튄다! 잡아!"

알고 있었으니까.

너 같은 개새끼들 앞에서 울어봤자, 더 흥분하면서 좋아한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엄마, 죽지 마세요, 정신 차려야 돼요. 거의 다 왔어요."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있으면, 그 아저씨네 집이에요. 진짜에요. 엄마..."

그냥 버려.

뭘 그렇게 업고 질질 끌고 가는 거야?

그냥 내다 버려. 거기서 그냥 버리고 도망치란 말이야.

"장하다. 여기까지 엄마를 잘 지켜줬구나."

"옷도 갈아입으렴. 그 옷은 여기에서 입기엔 추울 거야. 아, 혹시 코코아라는 걸 먹어본 적이 있니? 너처럼 장한 아이한테 주는 상이란다."

"이름이 어떻게 되니? 성은? 아, 아직 성이 없었구나?"

"나는 쿠르누이 보르지아라고 한다. 그러니까, 네 이름은."

"이제부터 레고르 보르지아가 되겠구나."

닥쳐.

제발 닥쳐.

버릴 거면서 왜 친절하게 구는 거야?

그냥 닥쳐.

담배... 담배든, 술이든, 아무 거나 좀 줘...

다음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연보랏빛으로 아스라히 빛나는 하늘에선, 소금처럼 흰 눈이 온 세상에 가득 쏟아지고 있다. 그 아래 펼쳐진 것은 설원. 어딜 보아도 무채색의 눈밭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차가운 사막.

그 끝없이 펼쳐진 설원 한 가운데, 한 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멍하니 웃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이럴 때 정도는, 울어도 괜찮단다."

"인간이 괴물보다 나은 건, 울 줄 안다는 것 정도밖엔 없으니까."

그 남자가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이런 말이었나?

표정은 또 왜 이렇게 슬퍼보이는 표정이었나.

담배로, 술로, 여자로 기억을 거세게 문질러 지우면서, 이 날의 기억만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그 얼굴에 악의를 검은 색으로 덧그려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서글픈 표정으로 아이의 얼굴을 힘있게 쓰다듬더니, 곧 개썰매에서 무언가를 잔뜩 꺼내 아이의 앞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침낭, 페미컨, 설피, 방한복. 조난장비였다. 일주일은 족히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은 조난장비. 아이의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물건들.

하지만 아이는 계속 멍하니 웃고만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위선이야. 식사 전에 하는 기도와 같은, 죄를 덜어내기 위한 위선이다. 노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주인의 것과 같은 위선이야. 인간의 마음에, 선의는 없다. 그렇게 자비로우면 왜 당장 풀어주지 않는 건데?

"받지 않으려는 거니? 받으면, 네 엄마가 널 버렸다는 증거가 되니까."

"참... 강한 아이구나."

그는 돌아서서 다시 썰매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대사냥 때문에 온 용병들이 있다던데. 지금쯤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겠지. 운이 좋으면, 괴물 대신 아이를 하나 주울 수도 있겠군."

그리고는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 그 검은 머리의 아이는 계속 웃고만 있었다. 앞으로 그 얼굴에 평생 가면처럼 달라붙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미소를 지은 채. 멍하니 남자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흰 지평 너머로 썰매가 사라지고, 세차게 쏟아지는 희뿌연 눈싸라기. 세상에, 정말로 혼자만 남았을 때.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 굳게 얼어있던 눈시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거짓말이야아..."

"엄마, 거짓말이죠? 거짓말일 거야. 엄마아아아..."

처음으로 어린아이답게. 마지막으로, 인간인 것처럼.

레고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울거라, 어린 순례자야.'

'그렇게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때에는,'

'세상의 모든 말을 다 지껄여보거라.'

'모든 진실도, 모든 거짓도 한 혓바닥 위에 품을 수 있나니.'

부드러운 여인의 음성. 뒤통수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어떤 여인이 레고르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넌... 넌, 뭐야?"

그것은 이어 속삭였다.

'내 이름은 에단. 금기의 에단.'

'어느 미치광이 신에게 목을 잘리고, 복수의 날만을 기다리던 여신이다.'

'나는 이 곳에 서서, 네 과거를 모두 들여다보았단다.'

'네 삶은 끔찍할 정도로 고독으로 완성되어 있구나. 나는 그런 자를 내 사도로 원한다.'

'서원해라. 이 세상의 금기를 모두 짓밟을 것을.'

벌떡.

레고르는 눈을 떴다. 또 그 꿈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굽슬대는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의 망령이 자신의 뺨에 볼을 마구 비벼대고 있는 게 보였다. 놔두니까 귓불을 씹으려고 든다. 그 혓바닥은, 먹물이라도 칠한 것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다.

레고르는 더듬더듬 자신을 이 곳에 연금한 카나기의 마술사가 두고 간 장죽을 집어, 한 모금 길게 들이키고는, 장죽으로 그 여자를 후려쳤다.

"꺼져라, 망령."

헤카톤 케이레스의 부러진 뿔에 들어 있던 레고르는, 그 속에 숨어 있던 에단에게 가호를 받아 살아난 뒤, 이렇게 재판의 증거물로 보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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