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첫 번째 동행 ( 1 )
다이너.
북서 자치령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이동식 노점이었다. 북서 자치령 일대의 개는, 웬만한 산양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대형견으로, 그 힘이 아주 좋은데 온순하며, 또 잡식이라 사료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고 스스로 먹이를 구할 줄도 안다.
그 개의 이름은 시커팩이었다. 시커팩 개가 끄는 수레에서, 달걀 프라이, 팬케잌, 저질 베이컨, 오트밀 등 간단한 식사를 파는 노점을 다이너라고 했다.
"와, 이렇게 커다란데, 너도 발은 말랑말랑하구나."
그 다이너의 끝자락에 앉아, 밥으로 나온 허리띠 가죽 같은 팬케잌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는, 시커팩의 발을 잡아 육구를 매만지는 아이. 분홍색 젤리의 촉감은 말랑말랑했다. 아이가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마레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지금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가야 해. 어떤, 값진 물건을 수탐하기 위해서 말이야."
마레가 얼굴에서 가장 자신 있어하는 부위는 턱과 코였다. 턱선과 코선이 잘 드러나도록, 살짝 우수에 찬 듯이 얼굴을 비스듬히 제끼곤, 다이너를 몰고 있는 젊은 여주인을 바라보는 마레. 귀에선 황금 귀걸이가 반짝인다.
이제 막 스물이나 되었을까? 생기 넘치는 갈색 머리를 어깨로 흘러내리도록 하나로 묶은 여주인은, 마레의 의중을 알지 못해서 당황하는 미소를 지으며 응대하고 있었다.
"아, 아. 그렇군요, 손님."
"물론 내 마음엔 한 점의 의혹도 미혹도 없으므로, 주님께선 나를 응원해주시겠지. 하지만, 주님의 응원만으로 견뎌 나가기에, 이 싸움은 너무 가혹해서 말이야. 그러니..."
마레는 살짝 환술을 걸었다. 마레가 손을 튕기자 어디선가 장미가 하나 솟아나더니 유리처럼 깨져 흩어져 사라졌다. 여주인이 어쩐 일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마레는 미리 소매 밑에 숨겨두었던 장미를 여주인의 귀 뒤에 올려놓았다.
"당신 같은 미녀가 날 좀 응원해줬으면 좋겠군. 다시 돌아올 땐, 그 꽃을 꺾어갈 수 있도록 말... 흐어억!"
갑자기 옆구리에 덮쳐오는 격통 때문에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마레. 그 역겨운 작업질을 보다 못한 아이가 박치기를 날린 것이었다.
"이 허섭스레기, 이게 뭐하는 짓이냐!"
"당신이야말로 무슨 헛소리에요? 무슨 놈의 수도사가 만나는 여자마다 그딴 소리나 하면서 꼬시려고 하는 거예요? 빨리 안 따라오면 목 베어버릴 겁니다!"
칼까지 뽑아들고 성을 내는 아이. 마레는 결국 돈을 지불하고 터덜터덜 아이를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젠장, 넘어오기 직전이었는데."
"그따위 짓거리를 한다고 여자가 넘어와요?"
"무슨 소리야, 내 고향에서는 인사처럼 해서 밥 먹듯 성공했는데."
"그딴 고향은 불타서 망해버려야 해요!"
검집째로 마레의 등을 쿡쿡 찌르며 강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아이. 두 사람은 지금 북서 자치령의 작은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의 촌장의 집에 흔히 보기 힘든 검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낮은 확률이지만, 그것이 블로어일 확률도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쯤, 하필 밥 때였고, 다이너가 있기에 들러 함께 요기를 했던 것이다.
"잠깐, 잠깐."
갑자기 우뚝 멈춰서는 마레. 아이도 멈춰 섰다. 마레는 널찍하게 펼쳐진 돌덩이 위에 털썩 주저앉더니 주섬주섬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한 대만 태우고 가자."
"일어서요! 당신 지금 시간 끌려고 그러는 거죠? 나는 2개월 안에 반드시, 단장님의 검을 찾을 거니까, 그딴 술수에 안 놀아나요!"
"무슨 소리야. 담배 하나 핀다고 못 찾을 검이면 애초에 못 찾는 거지."
치이익. 불을 붙이고 입으로 가져가는 마레. 가장 싫어하는 냄새인 담배 냄새를 맡은 아이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나는 남이 담배 피우는 걸 아주 싫어해요."
"그래. 나도 남이 담배 피우는 건 싫어한다."
"담배 피우는 골초는 다 인간쓰레기에, 멍청이에, 똥고집 강하고, 왕따에, 허무하게 죽는 바보예요."
"그, 그렇게까지? 이봐, 흡연권 정도는 보장해달라고."
격렬한 반응에 당황하는 마레. 아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와 마레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으려 들었다. 마레는 훌쩍 몸을 뒤로 피하곤 금발을 긁적긁적 긁으며 말한다.
"아, 그래, 그래, 흡연권이 무리면 식후땡 정도는 보장해달라구. 주도 그러셨다. 천부 인권은 생존권, 자유권, 그리고 식후땡할 권리라고."
"그런 적 없어요! 당신은 아주 숨 쉬듯이 당신의 주를 팔아먹는군요."
"자, 자, 도너츠다."
"어?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에요?"
"뭐야, 담배는 싫다며. 이런 것도 몰랐던 거냐? 다시 한 번 보여주마."
"우와... 아니, 담배 꺼요!"
피식 웃으며 담배를 비벼 끄는 마레. 아주 잠깐만 경계를 늦추면 이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버렸다. 아이는 계속 이 종잡을 수 없는, 신앙심 없어 보이는 심문관한테서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어느새 마레의 자료에 있던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앞장서는 아이. 그런데 그 눈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어? 저게 뭐야."
철로 이루어진 말을 닮은 생물. 운송용의 골렘인가? 그것이 끄는 거대한 수레 위에,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밀 포대, 가재도구, 농기구, 그리고 마대자루들. 재산이 될 만한 거의 모든 것들이었다. 그것을 옮기고 있는 건 얼굴에 황금색 가면을 쓰고 팔이 비정상적으로 길쭉한 사람들이었다. 그 피부는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빛이다.
"당신은 저게 뭔지 알..."
마레에게 말을 걸려던 아이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던 마레가, 갑자기 살기 넘치는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법의에 흙이 묻는 것도 아랑곳 앉고 빠르게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보다 빨리.
"잠깐! 같이 가요!"
그 수레 근처에 다다를 때쯤, 그 황금 가면의 사람들은 이제 색다른 것을 마차에 실으려 하고 있었다. 그건 인간이었다.
"안 돼! 안 돼! 우리 동생 데려가지 마!"
어린아이를 척 집어, 목에 사슬 목걸이를 채우고는, 마차 위에 내던지는 황금 가면의 사내. 무릎께에나 간신히 올 법한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울면서 그런 사내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남자는 매정하게 그것을 걷어차고 어린아이를 올려놓을 뿐이었다.
그 어린아이의 누나인 걸까, 그 여자아이는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왔을까 궁금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벌떡 일어나더니, 마차 앞에 털썩 드러누웠다.
"못 가! 갈 거면 밟고 가!"
이러면 설마 못 밟고 지나갈 거라는 확신이었겠지? 하지만, 그 확신은 무참히 배신당했다. 마부석에 올라탄 황금 가면의 남자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골렘말의 등에 채찍을 후려쳤다. 그 둔중한 말발굽이 어린 여자아이의 내장을 밟아 터뜨리려는 순간.
바웅ㅡ
"피해!"
거대한 참격이 그 골렘말을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레바테인이었다. 상태가 위급한 걸 발견한 아이가, 언덕에서부터 뛰어내리듯이 점프해 칼을 휘두른 것이었다. 곡식이 들어있던 마대자루 일부가 베여서 곡식이 흘러내린다.
아이는 레바테인을 붙잡고 어린아이의 앞을 막아서듯 간격을 벌려 서곤, 황금 가면의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수는 네 명. 그 몸에서는 아이에겐 절대 숨길 수 없는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마술의 기운이.
"빨,빨리 나오렴!"
그 여자아이의 부모일까? 두 사람의 어른이 튀어나와 여자아이와, 어린아이를 들고 달아났다. 흘긋, 눈길로 그걸 확인한 아이는 레바테인을 곧추세웠다. 가면의 사내들은 품에서 황금빛의 쇠스랑을 꺼내 아이를 포위하듯 둘러쌌다.
사면을 전부 포위한 순간, 그들은 마치 머릿속으로 대화라도 나눈 듯 일제히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아이는 그에 맞서 레바테인을 거대하게 한 번 회전시켰다.
'어린 순례자야, 가면 갈수록 솜씨가 일취월장하는구나.'
"이런 것들 잡았다고 그런 말 들을 이유는 없는 것 같아."
한 번의 참격, 네 개의 시체. 아이의 레바테인은 거대한 풍압을 일으키며, 한 번의 회전만으로 네 명의 가면의 남자를 전부 바닥에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아이는 레바테인을 집어넣고 자신이 쓰러뜨린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것을 베어 넘길 때, 분명히 마술을 깨뜨리는 느낌이 손 끝에 있었다. 대체 이것들의 정체가 뭐지?
"무슨 표식 같은 게 있으려나..."
황금 가면의 사내 중 하나의 시체를 붙잡고 뒤적거리던 아이는, 곧 그 배에 적힌 한 줄의 문장을 발견했다.
"돈은... 생의.... 양도된, 본질이다?"
"역시, 조디악이군. 징수를 행하고 있었나."
영문을 모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레였다. 그는 뒤돌아선 아이를 무시하고, 시신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조디악. 사소필렌의 13대 콘체른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놈들이지. 이건 그놈들의 표어야."
"콘체른? 그게 뭔데요?"
"뭐야, 어떻게 그걸 모르나? 독점적 금융 자본이나 지주 회사를 그 중심으로 삼아서, 그 아래 여러 법률적으로만 분리된 기업을... 아니, 됐다. 그냥 돈이 엄청나게 많은 녀석들의 족벌 집단이라고 보면 된다."
조디악.
그것은 좋은 소문이 들려오는 일이 드문 사소필렌의 콘체른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이라 일부 지역에선 영업 금지 및 재산권 행사 금지를 당했을 정도로 독보적인 부류였다.
다른 사소필렌의 콘체른들이, 그래도 사회와 상생하는 합법적인 부로 기능하는 척이라도 하는 반면, 이것들은 대놓고 상인의 직업윤리를 모독하고 무시했다. 어떤 방법으로 벌든, 이윤만 극대화하면 된다는 듯이.
도박, 매춘, 인신매매, 용병, 무기상 등등, 불법이거나 불법으로 가는 선에 걸쳐 있는 모든 산업에 달려들어 돈을 빨아먹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은, 제국에서는 몇 가지 사업에 손을 대는 게 금지되어 있는데 말이야. 금지된 것들 중 하나가 제약이지. 왠지 알아?"
"왜, 왜인데요?"
"아직도 회자되는 사건 하나 때문이지. 이놈들은 내장약을 만들어 팔아먹으면서, 발매 직전에 그 내장약이 특정한 소질의 사람들과 접하면 죽음에 이르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걸 깨닫게 됐는데도, 그걸 그냥 출시해버린 전적이 있어."
"네? 왜요?"
"그거야, 주판을 두드려보니 사망 보상금이 회수 비용보다 쌌으니까."
입이 떡 벌어지는 아이. 마레는 심각한 얼굴로 계속 중얼거리며, 시체의 가면을 벗겼다. 그 밑에는 인간의 얼굴이 있었다. 평온하게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는 인간의 얼굴이.
"이놈들의 심장을 이루는 사업은, 고리대금업인데 말이야. 이놈들은 채무자가 채무를 진 채 파산하는 걸 절대로 두고 보지 않지. 주조차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채무를 징수한단 말이야."
"어, 어떻게요?"
"이렇게."
쓰러진 남자의 시체를 쿡쿡 가리키는 마레. 아이는 잠시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가, 곧 그 뜻을 알아듣고 동공을 크게 확장했다.
"그래. 이놈들은 채무자가 빚을 지고 제때 갚지 못하면, 마술을 이용해 이 가면을 얼굴에 씌우고, 이 꼬라지로 만들어서 영영 자신의 노예로 부려먹는다. 이건 이미 죽은거나 다름없는 망령이야. 그래서... 이 놈들은, 레버넌트라고 불리지."
조디악을 지배하고 있는 일족, 권벌 아바키렌. 그 당주인 소니아 아바키렌은, 사소필렌의 5위계 마도사였다. 그녀는 인간을 반쯤 골렘인 노예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연구해 깨우쳤다. 그녀의 마법에 희생된 채무자를 레버넌트라고 불렀다.
레버넌트가 된 자는, 자신의 의식도 의지도 잃어버린 채, 온 몸이 마력으로 시꺼멓게 물든 상태로 노예처럼 임무만을 수행하게 된다고 한다. 마차로 어린아이를 그냥 밟고 지나가려 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이 마을은 조디악에게서 돈을 빌려 기근을 이겨내려고 했던 모양이군. 그리고 그걸 갚지 못해 모든 것을 징수당했고."
"그럼, 그럼, 이 아이는..."
어느새 쪼르르 달려와 감사 인사를 표하는 꼬마를 쓰다듬는 아이. 마레는 단언했다.
"네가 조금만 늦었으면, 이 녀석과 같은 꼴이 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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