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31화 (31/279)

7. 첫 번째 동행 ( 2 )

"오빠, 동생을 구해 줘서 고맙습니다."

바닥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다가 쪼르르 달려와 환하게 웃으며 아이에게 인사하는 여자 꼬마. 아이도 마주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누군가가 그 꼬마의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박았다.

"응?"

"이 녀석, 무례하게! 죄송합니다, 딸아이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꼬마의 머리를 바닥에 박은 손의 주인은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 다음 그 자신도 쿵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머리를 박더니, 이렇게 소리친다.

"아, 아니, 무슨 불찰이요?"

"무슨 불찰을 저질렀는지는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조건 죄송합니다. 저희는 어떤 교단 세력과도 연관이 없습니다. 전, 전사님이 조디악을 건드린 것,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아, 그러니까, 알았으니까 일어나세요. 꼬마야, 일어나렴. 머리 아프겠다."

"일어나지 마!"

"왜, 왜 그러시는 거에요?"

정말로 당황해서 만류하는 아이. 하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더 거세게 머리를 바닥에 부딪을 뿐이었다. 그것을 멈춘 것은 아이의 다정한 손이 아니라 마레의 싸늘한 말이었다.

"머리를 들어라, 허섭스레기. 꼴같잖은 사죄는 그만두고."

남자의 머리가 멈췄다. 마레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경멸조가 거세게 배인 말투로 말한다.

"나는 아탕칼리의 랭 반도 교구에서, 이 땅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쓰레기 마술사들을 처리하라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마레 델피에로 심문관이라고 한다."

멍하니 마레를 올려다보는 남자. 마레는 발로 레버넌트의 시체를 걷어차며, 수레에 남은 재화를 어루만졌다.

"조디악, 그놈들은 주께서 금하는 말도 안 되는 고이율의 고리대금업을 자행함과 동시에 불법적인 추심 및 징수를 일삼아 주의 정원을 어지러뜨리기에, 4위계 이상의 고위 마술사가 그 놈들의 악행을 목도한다면 재량껏 집행에 나서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지. 그래서 놈들을 처단한 것뿐이다. 너희 같은 허섭스레기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 그럼, 이 분은..."

"내 호위다."

그 말을 듣자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이고 딸의 손을 붙잡아 뒤로 물러서는 남자. 마레는 그 등에 소리쳤다.

"그렇지만, 이 마을에 보관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물건에는 관심이 있지. 가서 촌장을 불러오너라."

"알겠습니다!"

다음 순간 남자는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마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조디악의 수레에 엉덩이를 올리고 걸터앉았다. 아이는 아까부터 돌아가는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뭐죠? 왜, 왜 저러시는 거에요?"

"시험인 줄 알았던 거야."

"예?"

후욱. 연기로 흰 도너츠를 만들고 대답하는 마레.

"일 년 내내, 여기는 카나기와 아지프의 대리전이 일어나는 전장이었으니까. 어느 날에는 아지프가 이 땅을 먹었겠고, 어느 날은 카나기가 이 땅을 먹었겠지. 주인이 바뀔 때마다 피바람이 몰아쳤을 거다. 상대측에 협력했나, 안 협력했나 알아내서 상대측에 협력했다면 무조건 목을 쳤겠지. 그걸 알아내기 위해, 친절한 척도 여러 번 했을 거야. 방금처럼."

"예? 저, 저는 친절한 척 같은거 아니었는데!"

"어떻게 증명할 건데? 주 이름에 걸고 맹세라도 하나?"

마레의 녹색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이는 말이 막혔다.

"넌 그냥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몸이 움직인 거겠지. 아마도. 그래서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건가? 아마 카나기도 아지프도, 방금 너 같은 흉내를 내고 접근해선, 카나기나 아지프에 대한 욕을 하게 유도했을 거다. 그리고 거기 홀랑 넘어가서 불평을 늘어놓으면 마을째로 주님 곁으로 보내줬겠지. 그런 거야. 대충 그런 거다. 강자들의 대리전, 그런 좆같은 전쟁에 휘말린 힘없는 지역은 다 그랬어."

"그런..."

"그러니 할 수 있는 제일 확실한 건, 선의를 만나든 악의를 만나든 머리 박고 비는 거지. 그게... 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다."

또다른 도너츠를 만들어 도너츠끼리 부딪히게 만드는 마레. 늘어진 담배 끝이 재로 녹아내린다.

"그 사람들은, 어쩌면 네가 저 레버넌트들보다 무서웠을걸. 정말로 착한 줄 알고 마음을 털어놨다가... 목숨을 잃은 자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을 테니. 저 꼬마 여자애가 너를 완전히 믿고 사소필렌 욕을 했더니, 어이쿠 나도 사소필렌의 일원인데~ 하고 네가 목을 뎅겅뎅겅 팔다리 쓱싹쓱싹 칼춤 한 사위 안 춘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 그래서 내가 멋대로 신분과 상황을 날조했다. 됐나?"

"칼춤이라니, 아, 아닌데. 절대 아닌데."

"그러니 차라리 작은 악의를 가장하는 게 나아. 정식으로 소속과 신분, 이런 목적의 이기성을 띄고 있다고 알려줘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거야. 대가 없는 순선한 선의보다 자그마한 악의가 더 안심인 사람들도 있는 거지."

"그렇군요. 알겠어요."

마레 옆에 걸터앉아 그의 말을 경청하는 아이. 확실히 마을 사람들은 혹시라도 흠을 잡히지 않기 위해 조디악의 수레에서 멀찍이 떨어져 머리를 조아리고만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나도 많이 힘들었었는데, 그때마다 누가 도와줬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이 사람들은 이제 도움을 주려는 손도 함부로 붙잡지 못하게 된 걸까. 아이는 다른 무엇보다 그렇게 볼품없이 고개 숙인 뒤통수가 제일 마음아팠다. 마레는 조용히 그 말을 들으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응?"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가 지팡이 하나를 쥐고 쩔뚝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그자가 이 마을의 촌장인 듯싶었다. 그는 마레의 진홍색 법의를 보자마자 더 없이 당황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미, 미천한, 마을의 촌장을 맡고 있는, 슐이라고 하옵니다. 무슨 일이신지..."

"됐어. 편하게 말해라. 앉아."

날카롭게 말하는 마레. 촌장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 앉는다. 마레는 아이 대신 먼저 앞으로 나서 교섭을 시작했다.

"이 마을에 진귀한 검이 하나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검의 정당한 주인이, 내 호위일 수도 있어서 말이야. 만약 그 검이 우리가 찾는 검이 맞다면, 음."

조디악의 수레를 돌아보는 마레. 그 수레에는 다른 마을에서도 징수한 듯, 여러 재화와 곡식 따위가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마레는 그중 마른 과일이 보관된 봉지를 찢어, 건포도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내가 방금 조디악에게서 압류한 이 수레 전부를 지불하고 그 검을 사고 싶다."

"빼, 빼앗는게 아니라 말입니까?"

"그랬다가 자네들이 그 검을 숨기고 이상한 것만 보여주려고 하면 어떡하나. 내가 뭐 십자가에 자네의 그 못생긴 몸을 매달고 한바탕 못질쇼라도 할까? 피곤해, 피곤해. 뭐, 아주 아리따운 미녀가 여기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만."

"아, 아닙니다!"

"마음 바뀌기 전에 승낙인지 거절인지 그것만 정해라. 어때,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아닌가?"

촌장,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 마레가 걸터 앉아 있는 수레를 바라본다. 거기에 쌓인 재화를 거둘 수 있다면, 기근으로 굶주리는 마을이 당장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음은 물론, 그 재화를 써서 고급 농기구를 사든 방직 기계를 사든 생산 수단을 마련해서 장기적인 빈곤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설렘이었다. 촌장은 머리를 바닥에 비벼 박고, 제안을 승낙했다.

"아탕칼리의 사도께서 자비를 내려주어 감읍할 따름입니다."

"됐다니까. 빨리 안내나 하게."

"이, 이쪽으로 오십시오. 검은 여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일은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이가 나설 틈도 없었다. 법의 소맷자락을 흩날리며 휘적휘적 걸어가는 마레의 뒤를, 아이는 멍하니 쫓아갈 뿐이었다. 살짝 속삭였다.

"그냥 주면 안 되는 건가요?"

"이 사람들이 받으려고 하겠나? 아까 그 꼴을 보고도 모르겠어?"

"하긴, 그렇네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은 허름한 창고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어울리지 않게 매달려 있는 액자를 떼어내고 액자 뒤의 판자 몇 개를 떼어낸다. 그 뒤에는 검을 하나 보관할 수 있도록 나무를 깎아 특별히 만든 공간이 자리해 있었다. 촌장은 엄숙한 몸짓으로 그 안에서 검을 꺼내더니, 왕에게 진상하듯 무릎을 꿇어 내밀었다.

"이겁니다. 이게, 우리가 대대로 보관하던 검입니다."

"어."

대대로, 라는 말에서 이미 탈락했다.

검면에 검은 빛으로 용이 음각된 카나기의 것에 가까운 칼이었다. 손잡이의 한중간에는 붉은 술이 매달린 둥근 고리. 환도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확실히, 나름대로 진귀해 보이는 검이기는 했다. 촌장은 침을 삼키고 아이의 반응을 살피며, 검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건, 이 근처에서 있는 전설인, 종말의 용 전설과 관련된 검입니다. 북서 자치령 남쪽에 있는 평원에서는, 세상이 정말로 혼란해서 종말이 다가오면, 용 한 마리가 호수에서 몸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그 용의 목을 끊기 위해서는 이런 고리 달린 검이 필요하다는 전설이... 있었..."

아이의 서글픈 표정을 보고 목소리가 점점 더 줄어드는 촌장. 어쩐다. 이게 블로어였으면, 나도, 이 사람들도 좋았을 텐데. 이 검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마레가 환도를 낚아챘다.

"이거다, 호위. 그렇지? 네가 찾던 검은 이거잖나."

"네? 아."

마레의 의중을 눈치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맞습니다."

"그럼 앞으로 소중히 다루라고. 또 깨뜨려먹지 말고."

아이의 이마를 톡톡 손가락으로 치고는 허리에 환도를 걸어주는 마레. 뒤돌아서며 선언한다.

"됐다. 저 수레는 이제 너희의 것이다."

"정, 정말입니까?"

"그래. 그것도 다... 주님의 뜻이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휘적휘적 걸어 나간다. 마레와 아이가 문을 나서자마자, 방 안에서는 거대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 방에서 벗어나, 마을 어귀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누군가가 달려왔다. 아까 아이에게 달려들었던 그 꼬마 여자아이였다. 그 녀석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감사를 표하더니, 오늘 저 수레의 물건들로 잔치를 한 번 치를 생각인데 두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이는 생긋 웃으며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자아이가 종종걸음으로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린다.

"당신은 악의를 가장하는 게 참 익숙하군요."

"그것도 주의 뜻이다."

"그거 말곤 할 줄 아는 말이 없는 겁니까?"

피식 웃는 마레.

"그것도 주의 뜻이겠지."

마을에선 축제의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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