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두 번째 동행 ( 2 )
*
큰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
집성촌 몇 개가 서로 길을 트고 표지를 세워 한 마을로 합치어 이루어진 어떤 큰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두 사람과 한 마리의 개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다나와 아이, 그리고 레오였다. 다나는 팬케이크를 한입만 먹고 일어서려는 손님의 손을 붙잡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머,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건가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촉촉한 눈망울을 보고, 떨떠름하게 자리에 다시 앉는 손님. 아직 청년이고 짝이 없어 여자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었다. 다나는 연신 죄송하다며, 자기 머리에서 꽃을 뽑아 선물했다. 청년이 놀라 손사래를 친다.
"아니, 아니, 율사님. 이런 것까지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냥 배가 불러서 떠나려고 한 것뿐인데요."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모든 손님께 음식으로 행복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제가 요리 실력이 너무 미숙한 탓에..."
슬쩍 불자국이 있는 손을 보여주는 다나. 아, 내가 음식 맛 좀 없다고 이렇게 착한 사람한테 화를 내려고 들었구나. 꽃을 받아든 청년은 이제 자기가 뭔가 죄를 지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버렸다. 다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정 그러시다면, 이 땅에 있는 가난한 어린아이들을 위한 모금에 힘 써주시면 안 될까요? 이 땅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는, 1루덴이면 스무 명의 어린아이들이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답니다."
모금통을 꺼내 든 다나를 보고, 뒤적뒤적 지갑에서 1루덴 동전 세 개를 집어넣는 청년. 다나가 눈물을 거두고 활짝 웃었다. 청년도 덩달아 웃었다. 그는 다나의 머리에 꽂혀 있던 꽃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여기서 떠났다. 다나는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들어주다가, 갑자기 싹 안색을 굳히고 새 꽃을 꺼내 솜씨 좋게 머리에 끼웠다.
"흥. 옷을 보니 꽤 부자 같았는데. 5루덴도 안 나올 줄은 몰랐어요. 실망이야."
아이는 그 옆에서 그걸 뜨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저, 그래도 되는 거에요? 그거 함부로 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어머, 누가 무슨 규제라도 입안해놨나요? 저는 그런 거 모르는 데요. 열 송이에 1루덴도 안 하는 꽃을 머리에 꽂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송이 3루덴에 팔아먹을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여신님의 뜻이겠지요."
"그치만... 꿈이..."
"맞아요. 그 차이가 바로 꿈의 가격인 거랍니다. 꿈 하나 사실래요?"
다이너 속에 가득 들어찬 꽃 한 송이를 꺼내 아이의 볼을 꾹꾹 찌르며 말한다. 아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치만... 거짓말이잖아요. 가난한 어린아이들한테 쓸 거라고 그랬으면서."
"어머? 전 아직 17살인데요. 그리고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죠. 그러니 저도 이 땅의 가난한 어린아이겠죠? 그러니 저를 위해 써도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은 어떤 경우에는 사기가 아니랍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년으로 자라났구나...'
탄식하는 림. 이번만큼은 아이도 함께 탄식하고 싶었다.
*
장사는 성황이었다.
아이뿐만 아니라, 센디엘에 있는 뭇 남성들에게 여자 율사는 일종의 낭만적인 여성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율사가 와서 싼 가격에 웃음과 꽃과 음식을 팔고 있다는데, 옹기종기 모이지 않는 게 더 신기했다. 그 대부분의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한입만 먹고 바로 뱉어버렸지만.
어쨌든 다나는 그 모여든 손님들에게서 돈을 짜내는 갖가지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모금통(을 빙자한 돈통)에는 금세 돈이 가득 모였다. 모금통의 빈 공간이 사라지는 만큼, 아이의 소년심도 함께 사라졌다. 팬케잌 반죽과 계란 따위가 다 떨어졌을 때에는 벌써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미 아이에겐 다나에 관한 요만큼의 환상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요."
생선의 배를 가르듯 모금통을 갈라 돈을 챙기는 다나. 그런데, 절반은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놀라서 신음을 흘렸다.
"네?"
"같이 일했잖아요. 아이 씨도 열여섯인가, 그렇다고 했죠? 그럼 이 땅의 가난한 어린아이겠죠. 이걸 받을 자격은 충분해요."
"아니에요. 됐어요. 사기 친 돈을 받을 만큼 가난하진 않아요."
"사기라니..."
갑자기 울상을 짓는 다나. 정말로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아이도 뭔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표정이다. 고개를 푹 숙이더니, 갑자기 모금통에 돈을 전부 집어넣는다.
"그럼 이 돈은 아이 씨 말대로 전부 기부할게요."
"네?"
"저 너무 못됐죠? 실망하게 해서 미안해요. 이런 게 몸에 배어버렸나 봐요. 어려서부터 부모님 없이 가난한 형편에서 자라서... 이런 식으로 학비를 모아서, 간신히 졸업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기쁨을 줘서 받은 돈은 써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어, 어, 어?"
"실망스러운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저 정말 나쁜 년이었나 봐요."
"아니에요! 그, 그런 건 아니고...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훌쩍, 눈물을 살짝 닦고 갑자기 뒷정리를 시작하는 다나. 커다란 반죽통을 들어 올려 치우려다가, 힘이 없어서인지 갑자기 휘청한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다나를 감싸 안듯이 그 반죽통을 잡아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깜짝 놀란 아이는, 현기증이라도 난 듯이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다나에게 다급히 물었다.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아, 네. 제가 원체 못 먹고 자라서... 몸이 약해서, 가끔씩 이런 거 옮기다가 사고가 날 때가 좀 있어요."
어지러운 듯 귀밑머리를 살짝 만지며 아이의 품에 안겨서 벗어날 생각을 안 하는 다나. 마치 빈혈이라도 일어난 듯 보였다. 아이는 어서 그 반죽통을 치우고, 자신의 무릎에 다나를 눕혔다.
"그럼 그렇게 몸도 약한 사람이 왜 이 힘든 일을 하겠다고 나왔어요?"
"그렇지만, 저보다 더 힘든 사람도 어려운 사람도 이 땅엔 많으니까요."
가련하게 슬픈 미소를 지으며, 측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의 뺨을 매만지는 다나.
"그런데, 그 목적이 올바르니까 그 중간 중간에 작은 사기 정도는 쳐도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아이 씨의 꾸짖음을 듣고 깨달았어요. 저는, 정말 나쁜 년이에요."
"아니에요! 음, 다나 씨는 착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정말요?"
"네!"
림은 그 옆에서 나무에 머리를 박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 묵묵히... 인간은 그런 거니까...'
다나에게는 그 부딪음이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며 조심 조심히 목소리를 골라 말을 이어갔다.
"아이 씨,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저를 웨스벤까지 호위해서 도착하게 도와주신 다음 자기 길을 가실 거라고 했죠..."
"예."
"그 대신, 조금 위험한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뭔데요?"
"제가 이 북서 자치령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영민들에게 여신님의 뜻을 선물할 수 있도록, 제 집행관이 되어주시겠어요?"
집행관. 율사와 동행하며 즉석에서 체포, 처형과 같은 일을 하여 호위하는 자. 마레와 함께 웨스벤의 그 여관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다나는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부끄럽다는 듯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는 다나. 나무에 머리를 박던 림은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그의 사도라면, 여기서는 무조건 멍청하게 웃으면서 그러마고 대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예상과는 반대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어..."
이건 다나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입을 벌리고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사의 뒷정리를 시작하며 말을 끝맺었다.
"저랑 같이 있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거든요."
그 말에는 비집을 틈이 없어 보였다. 다나는 자그마하게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죠, 하고 대답하곤 아이를 도와 장사의 뒷정리를 시작했다. 힐끔, 힐끔, 아이의 뒷덜미를 쳐다보면서였다. 그 눈은 전혀 단념한 눈이 아니었다. 그 눈은, 또 뭔가를 꾸미는 눈이었다.
*
야숙을 위해선 불침번이 필수적이었다.
큰 돌을 그러모아 피운 모닥불. 그 모닥불을 등지고, 아이는 네 시간째 불침번을 자청하고 있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간을 유의미하게 보내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덩그러니 앉아 있는 동안, 아이는 어떻게 검을 휘두를까를 생각하고, 또 지나온 혈전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싸울 수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가끔은 림의 환상을 빌려 자신의 생각이 실전에서 통할지 실험해보기도 했다.
방금 되새기던 싸움은, 카나기 잔당의 성에서 겪은 싸움이었다. 마레의 라그엘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해자 바닥에서 박살이 났을 수도 있었던 그 싸움. 림이 보여준 환상 속에서, 그 삿된 존재와 다시 싸워 간신히 이기고 환상에서 막 벗어난 아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문제점을 알았어."
'무엇인지 말해보거라, 내 어린 사도야.'
"이거, 이 칼 말인데, 카나기 마술사를 잡는 데에는 좋은데, 카나기가 부리는 괴물한테는 레바테인보다도 쓸모가 없어."
유혼을 툭툭 치며 그렇게 말하는 아이. 타당한 지적이었다. 괴물 상대로는, 오히려 타격 면적이 훨씬 커서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레바테인이 더 나았다. 그런데 카나기 상대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유혼을 쓰는 걸 고집했던 게 한 번 수세에 몰렸던 이유 같았다.
"카나기의 괴물을 잡는 검 같은 건 없는 거야?"
'선주가 만든 검 중에, 그런 검은 없다.'
"그럼, 내가 그런 검을 만들 수는 없을까?"
눈을 반짝이며 묻는 아이. 아이는 품에서 환도를 꺼내 보여주었다. 시원한 검은 빛으로 옻칠한 칼집에, 오색 영롱한 매화 형상의 꽃이 자개로 새겨진 검. 마레와 함께 구한 마을에서 받은 환도였다.
"대태도보다는, 이런 형식으로, 음, 카나기 괴물한테 먹히는 그런 어떤 힘을 가진 검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가 새 검을 만드는 것도 가능은 하다. 어디 보자, 세 개 정도는 더 저장할 공간이 내 뱃속에 남았군.'
"진짜? 그럼 만들어 줘!"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아이에게, 림은 피식 웃으며 쓰린 답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함부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야.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강한 사념이 필요하다. 보통 그런 사념은 이야기라는 형상을 이루고, 그것에 더께가 쌓이면 전설이 되지.'
"무슨 소리야?"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그 유혼은, 스스로 괴물을 자처하며 셀 수도 없는 사람의 수급을 취한 6위계의 무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설화와 전설을 그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그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도, 그를 토벌하려다 혼자만 살아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그들의 비명이 메아리치며 사방에 공포와 원념을 만들어내고 있었지. 나는 그것을 전부 빨아들여 검이라는 모습으로 벼려낸 것이다. 내가 마술사 살해의 신이 되기를 결정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것도, 이것도 뭔가 전설 있다고 그랬잖아. 무슨 종말의 용이 호수에서 나오면 이 검이 그 용을 베어 죽인다고..."
'그건 전설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그냥 동화지. 실제로 있었던 일도 아니고, 그 누군가가 용을 죽여야만 하는 자세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세상에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이름없는 영웅이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선하기 때문에 그 위기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어린아이의 어리광 같은 망상이지.'
"망상이라고 할 것 까진... 없잖아..."
'그래도 그게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로 검을 만들 수는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환도를 살짝 뽑아 바라보는 아이. 그 검날에는, 검은 용이 맵시 있게 음각되어 있었다. 상당한 명검인 듯, 성의 돌벽을 꿰뚫었는데도 날 하나 상한 것 없이 멀쩡하다. 불에 비쳐 반짝이는 그 아름다운 검면을 감상하던 아이는, 어느새 시간이 되었음을 깨닫고 검을 다시 납도했다.
"그럼 이제 다나 씨가 불침번 설 시간이네."
다나를 깨우기 위해 조심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 그리고, 침낭을 흔들어 다나를 깨우려 했다.
"다나 씨, 다나 씨, 일어나세요...어?""
그 침낭은 텅 비어 있었다.
"뭐지? 림, 이 사람 어디 갔어?"
혹시 아까 림과 함께 환상 속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자는 다나를 잡아가거나 한 걸까? 레오도 잠에서 깨어나 컹컹대며 짖어댄다. 아이는 심각한 얼굴로, 특등 수색자의 자질을 발휘해 사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곧 흔적은 찾을 수 있었다.
"이거다! 뭔가 사람을 끌고 간 것 같은 흔적이 있어!"
아이는 환도를 그러쥐고, 그 흔적을 따라 추적을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