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두 번째 동행 ( 3 )
풀벌레의 울음 위로 달빛이 하얗게 쏟아진다.
공기는 먼 바다의 물빛 같은 감청색이었다. 검푸른 색조 위로, 오래된 은화에 탄 때 같은 어두움이 알맞은 명도로 올라선 달밤. 아이는 밤이슬을 밟으며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엄청 다급해야 하는데 다급한 흔적은 아니야. 흔적이 안 남으니까 찾기 쉬우라고 풀도 일부러 꺾어 놨잖아. 뭔가 일부러 남긴 거 같기도 한데."
"컹! 컹!"
갸웃하는 아이. 그렇게 잠깐 멈춰 있으니, 아이의 뒤를 쫓아오던 레오가 짖어댔다. 채근을 하는 듯 했다. 연녹색의 옷자락을 붙잡고 끌어대며 낑낑댄다.
"알았어, 알았어, 그냥 쫓아갈게."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수색을 개시하는 아이. 그렇게, 흔적의 끝에 다다랐다. 우거진 수풀이 벽처럼 사방을 휘감고 있는 어느 연못 앞이었다. 연못 근처에 다다르니, 물가 특유의 시원한 공기가 앞머리를 간질였다.
"여기인가?"
슥, 앞을 가리는 잎 많은 가지를 치우는 아이. 그리고 얼어붙었다.
"어?"
다나는 멱을 감고 있었다. 상아 같은 흰 달그림자가 어린 연못에서, 그보다 더 새하얀 나신을 드러내고 무방비하게. 머리카락이 저렇게 길었었나? 땋아서 벼 이삭처럼 묶은 상태일 때에는 알지 못했는데. 그 매듭이 전부 풀려 물기를 머금고 길게 늘어진 것을 보니 거의 허리께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솔 향을 머금은 소슬한 바람이 둘 사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풀숲에 움츠려 이것을 바라보는 아이와, 연못의 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다나의 사이를. 그 머리카락은,
"엄청 예쁜 분홍색이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들키고 말았다. 다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쪽을 돌아보고, 어딘가 연극적인 느낌이 드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 지금 나 몰래 이걸 엿본 게 되는 건가? 아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
자정. 모닥불을 둘러싸고, 때아닌 재판이 열렸다.
"지금부터 아이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하겠습니다. 검사, 다나 아니스 출석. 재판장, 다나 아니스 출석. 후안무치한 피고인도 출석. 에츄!"
반쯤 새빨개진 얼굴로 모닥불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읊조리는 다나. 아이는 정말로 대역죄를 저지른 죄인이라도 이럴까 싶을 정도로 축 늘어져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피고인은 본인에게 걸린 혐의가 뭔지 알고 있습니까? 피고인은 본인의 사춘기 소년다운 끓어오르는 음욕을 채우기 위하여, 피해자의 한번도 외간 남자에게 보여준 적 없는 아주 순결하고 깨끗한 피륙을 탐하고 또 탐하여 그녀가 스스로의 몸을 정갈히 하는 틈을 틈타 마치 물뱀처럼 몰래 스며들어 훔쳐보았다는 검사 측의 주장을 인정합니까? 에취!"
"인정합니다..."
아이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림은 답답해서 가슴을 치면서 소리 질렀다.
'인정하지 마라! 이 쓰레기 같은 마술사는 누가 봐도 일부러 너를 유인한 거잖느냐!'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기침을 하는 것만 봐도 명백하겠지! 이 달밤에 저 차가운 물에 들어가서 알몸인 채로 한 시간을 계속 씻고 있다가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자기 피부를 박피하려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한 시간을 씻는단 말이냐. 일부러 남긴 흔적도 그렇고 너를 끌어들여서 약점을 잡으려는 거잖나!'
"그냥 오래 씻는 성격일 수도 있잖아. 그런 거로 의심하면 안 돼. 그러면 안 된다고 단장님이 그랬어."
'후우우우...'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림은 옆에서 답답해 죽겠다는 듯 나무둥치를 붙잡고 머리를 들이박는다. 다나는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검지를 곧추세우고 선언한다.
"피고인! 왜 혼잣말입니까! 자신을 스스로 변호할 말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최종 판결입니다! 피고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여 노력하십시오! 이상!"
"무슨 뜻인가요?"
"앞으로 두 달만 말이죠..."
갑자기 말투를 바꿔 은근하게 아이에게 달라붙는 다나. 그 머리카락에는 물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막 씻고 나온 여자는 평소보다 세 배는 예뻐 보이기 마련이다. 어슴푸레한 달빛이라는 배경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다나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부러 자신의 가슴팍을 아이의 상박에 들이대며, 약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제 집행관으로 일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의 시선으로 볼 때는 하얀 쇄골이 정면으로 보이는 각도였다. 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주전자처럼 쿡 찌르면 하얀 김이 쏟아질 것 같았다. 됐다. 다 먹었다. 그 순간, 뒤에서 림이 노호를 내질렀다.
'그냥 이 계집을 빨리 쳐 죽여라! 그, 그 심장을 공양해라!'
아이는 그러나 그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됩니다. 거부합니다."
"네?"
"피해를 입힌 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런 막연한 이유로 당신과 어울려 다닐 수는 없어요. 피해는 제가 일을 해서 돈으로 갚던가, 음, 안되면 손가락이라도 자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안 돼요."
명확한 거절이었다. 이런 사람이 이렇게까지 거절하는 이유는, 대개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 다나는 눈썹을 살짝 늘어뜨리고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제가 싫은 건가요?"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말이죠. 마술사를 아주 싫어합니다."
"예?"
"그래서 마술사를 많이 죽였고, 죽이고 있고, 죽일 겁니다. 나쁜 마술사부터 다 죽인 다음에... 착한 마술사를 죽일 거에요. 당신은 착한 쪽에 속하는 거 같으니까, 일단은 건드리지 않고 있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적도 위험도 많아요. 어쩌면 당신을 죽이게 될 수도 있어요. 엿본 건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위험에 당신을 말려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는 진지하게 더듬더듬 말을 늘어놓았다. 다나는 그 말을 경청하고 있다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북서 자치령의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요?"
"네?"
"이 땅은, 지금 센디엘 어디보다도 마술사 때문에 고통받고 있잖아요."
스윽, 아이의 상박에 들이대고 있던 상반신을 뒤로 빼서 앉는 다나.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고 하늘을 바라본다. 달 밝은 밤이라 별은 흐렸다.
"그게 이유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은 있습니다."
"그럼 같네요."
"네?"
"사실 저도 원래 이런 걸 하는 성격이 아닌데, 이 땅의 참혹한 현실을 듣고 어울리지도 않는 고행에 나선 거거든요."
지금까지의, 여성적인 가식이 묻어나던 목소리와는 다른 진한 목소리였다. 아이는 눈을 끔뻑거리며 갑자기 변모한 다나를 바라보았다.
"왜 여기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받는지 아세요?"
"음, 힘이 없어서?"
"반만 정답이에요."
"그럼 정답은요?"
"힘도 없고, 법도 없어서입니다."
다나는 갑자기 움직여, 자신의 가방을 뒤져 종이뭉치를 꺼내왔다. 거의 한 권의 책이 될 법한 양의 종이뭉치였다. 그걸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고 말을 계속한다.
"제국에도 물론 힘없는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 북서 자치령에서처럼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죽어가진 않습니다. 마술사가, 강자가 그 사람들을 핍박하면, 치안관과 율사가 들이닥치고 그들을 포승으로 묶어 재판에 회부하기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그런 최종적인 집행, 그리고 폭력이 법이 지나가는 발자국마다 남습니다. 하지만 그게 백 년 그리고 또 백 년이 쌓이면, 그건 인간의 정신의 일부를 이루는 관습과 전통이 되어, 마침내 힘 있는 사람도 힘없는 사람을 함부로 겁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내지요. 법을 준수하는 게 정신의 일부가 되니까요."
"그렇구나..."
"그리고 제국 내에서 불완전하나마 그 법의 준수를 가능케 하는 건, 라달라리아의 가호입니다. 그 가호 안에서, 율사들은 법을 어기고 있는 상대를 만나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에게도 맞서 싸울 수 있지요. 알고 계셨나요?"
"들어는 봤어요."
"그래서 저는 이 북서 자치령에 법을 주고 싶었어요. 다른 곳에서 온 율사들은, 그냥 이 행사를 요식행사라고만 생각해서, 참고자료로 제출할 두 세 장의 라달라리아 입교 성명서밖에 가져오지 않았지만... 저는 가진 돈을 전부 털어서, 이걸 사백 장 받아왔습니다."
자랑스럽게 성명서를 보여주는 다나. 아이는 입을 쩍 벌렸다.
"왜요?"
"이렇게나 성명을 받은 사람이 많으면, 신도가 죽어가는 걸 본단에서도 묵과할 수 없겠다,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4위계 이상의 율사는, 비록 그 땅이 제국의 바깥이라 하더라도, 그 일대를 라달라리아의 영토와 비슷한 영역으로 바꾸는 징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성명서를 받은 곳을 시작으로, 그 징표를 심어서 차츰차츰 법의 강역을 넓혀 나가면... 이 땅에도 언젠가 법치와 질서가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그림을 그리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겠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성명서들을 보여주었다. 그 성명서는 그러나 한 명의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희게 텅 비어있었다.
"그런데...왜 하나도 못 받았어요?"
"돈이 없어서요."
"예?"
다나는 아프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더라구요. 신념도, 종교도, 다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이었어요. 다른 율사들이나, 비슷한 이유로 이 땅에 들리는 다른 종파의 사람들이나... 전부, 그냥 돈을 주고 성명서에 성명을 받았거든요. 한 명의 사람이 이런 입교 서류에 성명할 수 있는 건 단 한 번이지요. 그러니까 제 말을 듣고 이 성명서에 서명을 해 버리면, 그들에게 돈을 받고 자신의 신앙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니 너도 돈을 내놔라, 말은 안 하지만 그런 기대가 섞인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난 돈 없는데."
"그런..."
"음식 맛이 이상했죠? 죄송해요. 그런데, 이상한 버릇이 들어서 그래요. 어려서부터 밥이라고는 맨날 맨밥이랑 벽돌 빵, 식빵 귀퉁이랑 콩 부스러기 같은 것만 간 없이 먹다보니까... 입맛이 이상해져서, 도저히 간을 못 맞추겠더라구요. 내 입에는 다 맛있는데."
다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그 사이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낮의 모금통의 일이 떠오른다. 그것 때문에 그렇게 돈을 모으려고 한 건가? 아이는 갑자기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런 사람한테 나는 사기꾼이라고 했단 말이야? 그런 죄책감이 주는 고통이었다.
"미안해요... 낮에 그랬던 거,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는 사기나 치는 더러운 년이 맞는 데요, 뭐."
눈가에 이슬처럼 맺힌 눈물을 살짝 닦아내고 웃는 다나. 아이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자신의 옷을 그 위에 덮어주었다. 다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좀 다른 방식을 택해보기로 했어요. 북서 자치령에서 제일 안전한 웨스벤 일대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아예 율사든 누구든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깊은 땅까지 가보자. 거기에서는 딱히 서명을 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레오만 믿고 깊게 들어갔다가... 카나기의 잔당한테 붙들렸던 거에요."
"그랬구나, 그랬구나..."
"이미 아이 씨는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려다 죽으려는 저를 한 번 구해주셨는데, 물에 빠진 사람이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마음으로 더 의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 씨는 제가, 이 북서 자치령뿐만 아니라 살면서 봤던 모든 사람 중 두 번째로 착하고 선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의존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꾸벅 사죄를 하는 다나.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사래를 쳤다. 다나는 눈물이 한 방울 흐르는 눈가를 계속 훔치면서 선언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럼, 내일은 작별이네요."
"어, 어, 그럼 또 북서 자치령 깊은 곳까지 갈 거에요? 혼자서?"
"그래야지요. 일단 하기로 한 일에는 최선을 다 하라는 게 여신님의 뜻이니까요."
그리고 침낭으로 들어서려고 한다. 축 늘어진 어깨. 레오가 그 뒤를 따랐다. 아이는 다급해서 소리를 질렀다.
"잠깐! 잠깐만, 조금만 더 이야기해요."
그때 림은 보았다. 림만은 볼 수 있는 각도였다. 꽃이 피듯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 다나의 얼굴을.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비루먹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표정을 바꿔 돌아선다. 아이는 자신의 옆에 기대듯 앉은 다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몸을 깎아서라도 이 땅을 구하려고 하는 거예요? 혹시..."
아이는 자신이 마레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땅 출신인가요?"
고개를 젓는 다나.
"그럼 부모님이 이 땅 출신인가요?"
또 고개를 젓는다. 아이는 의혹이 살짝 어린 표정으로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럼 사랑하는 사람이 이 땅 출신인가요?"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나는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사랑하는 사람, 이라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 동생과 몇 달 정도 이곳에서 살았어요."
"동생이요? 음, 그 동생분은 뭐하고 계시나요."
"이젠 없어요."
"예?"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저 때문에."
"당신 때문이라니..."
"저 때문에 죽었어요."
마치, 사실 불가항력이고 실제로는 책임도 없지만 죄책감을 아주 크게 느끼는 듯한 연출이었다. 그 때문에 신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던 어떤 존재의 분노가 터졌다.
'이 계집을 쳐 죽여라!!!'
림이 빽 노호를 내질렀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그 무형의 기운이 파동을 만들어 숲을 떨쳐울리는 바람을 자아냈다.
하지만 다나는 아이가 걸쳐준 옷을 여미고 아이에게 달라붙을 뿐이었다. 아이도 손가락을 들어, 쉿 하고 림을 조용히 시켰다.
"그래서, 이 땅이 전쟁에 의해서, 그리고 라달라리아의 억지 법률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있다고 했을 때, 동생이 눈에 밟혀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그 녀석은 죽지 않고 살아서...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그럴 리가 없겠죠. 그건 그냥 제 죄를 덜고 싶어하는 추한 망상일 뿐일 거에요. 그래도, 눈에 밟혀서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원래 이런 걸 하는 성격이 아닌데."
더듬더듬 말을 늘어놓는 다나. 아이는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말에 한해서는, 지금까지 다나가 했던 말에 전부 있던 미약한 가식의 기운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악의에 굉장히 예민한 아이에게는 그게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아이는 그 뺨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선언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두 달뿐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예?"
"당신을 도와서, 이 땅의 악을 징치하는 집행관이 될게요."
다나는 녹색 호수 같은 눈 가득 눈물을 맺었다. 그리고 아이의 가슴팍에 달려들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뭐 그런 말을 주워섬기면서. 림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까드득 깨물었다.
다나 본인은 몰랐지만, 그녀는 생애 최대의 기회와 동시에 생애 최대의 위협 또한 맞이한 상태였다.
*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든 다나를, 공주님처럼 안아 침낭에 들여보내고 불침번을 서고 있던 아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어두운 음성이 울렸다.
'일어나거라, 내 어린 사도야.'
어두우나 단호하다. 그런 림의 음성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이 무엇에 잡아채여진 것처럼 억지로 일어서는 걸 느꼈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림이 자신의 몸을 붙잡고, 억지로 움직이게 하려 하고 있었다.
'선주의 일이 있어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려 했다만, 내 사도가 교활한 승냥이의 아가리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미는 걸 신 된 도리로서 더는 보지 못하겠다.'
'검을 뽑아라.'
스릉, 환도가 칼집에서 뽑혀나온다. 아이는 아직까지도 영문을 몰라 눈을 끔뻑이며 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림은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 검으로, 저 교활한 마술사 계집의 심장을 공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