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44화 (44/279)

9. 두 번째 동행 ( 4 )

칼날이 모닥불의 불빛을 받아 붉게 번뜩인다.

"왜, 왜 그래?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란 말이야."

비몽사몽 간에 중얼거리는 아이. 림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한 발자국, 누워서 자고 있는 다나에게 다가가면서.

'네가 봐왔던 인간이라는 생물을 떠올리거라, 어린 순례자야. 자기 입으로 스스로 선하다고 주장하던 인간 중, 정말 선한 사람은 얼마나 있었고 궁지에 몰려 있지 않은데 선한 사람은 또 얼마나 있었나?'

한 발자국. 림은 씹어뱉듯 선언했다.

'난 마술사의 말은 믿지 않는다.'

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림은 계속해서 한 무리의 말을 쏟아낸다.

'제국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치령민들을 위해 일부러 집행관도 없이 여기까지 봉사하러 왔다?'

'거짓말이다. 이 여자는 도태된 것일 테지.'

'이건 그저 의태다. 도태된 자는 의태한다. 모든 생물은... 궁지에 몰리면... 선량하고 가엾은 척, 흉내를 시작한다는 게야.'

또 한 발자국. 모든 것을 지켜보며 울분이 가득 쌓인 림의 뱃속에서는, 말의 행렬이 끊일 줄을 몰랐다.

'시험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배경이 없었을 것이다. 박해받는 지역 출신일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남들이 행하던 편법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또 한 발자국. 검날의 한 면에는 모닥불이, 한 면에는 뒤통수를 드러낸 채 자고 있는 다나의 분홍빛 머리칼이 비친다.

'어차피 편법도 사용할 수 없는 차에, 그럼 위기를 기회로 사용해보자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명서를 잔뜩 사서 무작정 들이받았을 것이다. 저 성명서 수백 장에 서명을 받아 귀환하면,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저들의 사제들은 엄청난 업적이라며 또 호들갑을 떨고 미담을 만들어 뿌려대겠지. 저 머리에 꽃 꽂은 여자들이 하는 짓이라곤 그것밖에 없으니 말이야. 그 미담은 이 여자의 앞길에 꽃길을 깔아줄 테지. 그래, 이 여자를 잡아끌어 고행에 나서게 만든 것의 정체. 이 검은 뱃속에 가득 찬 건 긍휼함이나 자비가 아니라 출세욕과 권력욕이다.'

'너한테는 설명해줄 수 없지만, 이 간악한 계집에게는 그런 자신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단다. 아마 그 벼멸구 같은 놈이 기른 정예 잔당이 아니었다면, 이 계집이 웬만한 파문 마술사 따위는 무찔렀겠지. 그런데 제 힘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까불다 죽을 위기에 처했고... 그렇게, 선한 척하기 좋은 무대가 전부 마련된 상황에서, 한 바보를 만난 것뿐이다. 속여서 부려 먹기 쉬운 바보 말이다.'

한 발자국.

"바보라니..."

'지금 네 행태를 보면, 이런 말 하긴 싫지만, 너는 바보가 맞다. 자신에게 향하는 웃음이 존경의 웃음인지 곡예에 취한 비웃음인지조차 구분 못 하는 광대 꼴이야.'

'어린 순례자야. 얼마 전까지 너와 동행하던 마술사를 생각해 보아라. 그 진홍색 법의를 입은 자를. 그자의 의지는 분명 순선했었지. 그렇다고 그가 바보 같아 보였나? 오히려 누구보다도 영민했지. 때론 질릴 정도로 잔혹하고, 위기 앞에서는 당당하며, 악인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마땅히 누려야 할 존중과 명예 대신 비난과 모멸을 받아도 스스로의 정신을 실천함에서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의심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지.'

'자신이 정말로 옳은가? 그른가.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우극(尤隙)의 향배. 그토록 지혜로움에도 그것만큼은 도저히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그는 말끝마다 주를 찾았다.'

'선행이란 그렇게 외로운 길이다.'

'값싼 미담이나 정치적 고려가 듬뿍 들어간 저급한 갈채 따위로는 달래줄 수조차 없는 외로운 길이란 말이다.'

'정말로 네가 정의를 집행하고 싶다면 너 역시 마땅히 그래야 할 게다.'

매 발자국마다 아이가 저항했으므로, 발자국은 일부러 눌러 찍은 듯 깊게 남았다. 또 하나의 발자국이 새겨지고, 떠나고, 검은 그림자만이 움푹히 패인 구멍에 남는다.

'그런 값싼 미담에 홀려 그 기준조차 엄정하지 않은 정의를 줏대 없이 휘둘리며 행하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바보다. 진정으로 선하고 싶다면, 우선 무장해라. 교활한 악의에 속아 악업을 쌓는 선의도 결국 악이다. 네가 선하다는 것을 변명삼지 말거라.'

'거짓과 악의로 무장해라. 거짓에 맞설 수 있는 건 거짓밖에 없으니.'

어느새 둘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곤히 자고 있는 다나의 앞에 다다랐다. 림은 아이의 어깨를 짓눌러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 심장에, 칼을 꽂아넣기 쉽도록.

"이러지 마, 이건 아니야. 율사들은, 그래도, 그나마 착한 사람들이잖아..."

'만물 중 무엇의 시점을 빌려 바라보더라도 이게 맞단다, 어린 순례자야. 심지어 이 여자 자신의 시점으로도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할 순 없을 테다.'

'이 여자가 돌아가서, 너를 등쳐 벌어들인 성명서로 라달라리아의 고위직을 차지하게 된다고 치자. 너한테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을 게다. 아마 너와 헤어지며 지껄이겠지. 내가 이걸로 높은 자리에 올라 뭔가 바꿔보겠노라, 그걸로 값을 치르겠노라고 말이야. 어떻게?'

'같은 거악을 행하는 자가 달라지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같은 연극의 같은 역할에서 맡는 배우가 바뀐다고 비극이 희극으로 바뀌기라도 하느냐는 말이다. 라달라리아는, 그 제국이라는 이름의 연극에서 선역을 맡고 있을 뿐이다. 배역과 배우를 혼동하지 말거라.'

림은, 환도를 붙잡은 아이의 손을 그러쥐고 높이 쳐들었다. 언제든 단두대처럼 그 심장을 찌를 수 있도록.

'네가 일전에 만난 마술사는 언제나 위악을 껍질처럼 두르고 다녔지.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고독 속에 갇혀 있었다. 자신이 행한 선행에 대한 보상은 한 조각도 없었다. 왜 그가 그래야만 했나? 이런 것들 때문이다.'

'이것들이 그에게 돌아가야 할 존중과 명예를 훔쳐갔기 때문이다.'

'나쁜 마술사를 전부 죽이고, 그다음에 착한 마술사를 죽이겠다고 했지? 그럼 제일 먼저 죽여야 하는 자들은 정해져 있다. 바로 위선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훔쳐서는 안 되는 것을 훔치는 도둑이다. 덕업을 쌓는 자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존중과 명예마저도 훔쳐 자신의 검은 뱃속을 채우는데 써버리는 자들이란 말이다. 그 투도(偷盜) 때문에, 그 붉은 옷의 마술사 같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위악의 텅 빈 껍질에 갇혀 돌아다녀야 하는 게야.'

'이 검을 휘둘러 세상을 조금 더 깨끗하게 정화하자꾸나.'

'내려찍어라. 이 심장을 공양해라.'

마지막으로 선언하고 다나의 가슴팍에 칼을 꽂아넣으려는 림.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가 이를 악물고 거기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림은 엄하게 소리질렀다.

'그렇게까지 저항하는 것도 너답다만, 하나만 알려주마. 이 여자는 이미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뭐?"

뜻밖의 선언에 놀라 림을 바라보는 아이. 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건 결코 정당방위 따위가 아니었다. 이제 이 여자에 대한 환상이 좀 사라졌나?'

그리고 손에 힘이 풀린 틈을 타서, 빠르게 칼날을 꽂아넣으려 들었다. 푸욱! 칼날이 옷을 찢고, 살을 가르며 피를 튀게 만든다. 그러나, 림이 목적한 살점은 아니었다.

'아, 아니, 뭐하는 짓이냐?'

푸욱!

어설프게 빠져나오던 칼날이 다시 한 번 살을 찢었다. 검이 찢은 것은 아이의 배였다. 마지막에,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칼의 궤도를 비틀어 자신의 살을 찢게 만든 것이었다. 일종의 자해 시위였다. 림은 놀라서 두 손을 놓고 일어섰다.

'그만, 그만하거라.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빨리 상처를 치료해!'

쿨럭, 피를 토하며, 아이는 상처에서 칼날을 꺼내 바닥에 던진다. 비릿한 혈향이 천막 안을 가득 메운다. 아이는 림을 바라보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림, 기억해? 왜 내가 처음에 네게 서원하는 걸 꺼렸는지."

'기억한다.'

"같은 이유로, 지금 네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어."

손을 더듬어 환도의 손잡이를 찾는 아이. 그 손잡이를 꽉 붙잡는다.

"네 염려는 알겠어. 새겨들을게. 하지만 누굴 먼저 죽이고 누굴 나중에 죽이는지는, 내가 정해. 이건 네가 개입하게 두지 않을 거야."

"여기서 내가, 너의 판단으로 사람을 죽이게 내버려두면...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나는 따를 수밖에 없을 거야. 나보단 네가 훨씬 똑똑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거부할 수밖에 없어. 바보한테도 바보의 철학이 있단 말이야. 그러니 나는 이 사람을 지금 죽이지 않을 거야. 네가 나섰으니까. 이해해?"

또 환도를 집어 들었다. 마치, 이해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하면 또 자해하겠다는 것처럼. 림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날개를 펼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그래. 이것도 인간의 한 형태겠지.'

우선 아이가 다나를 완전히 성녀처럼 여기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 속을 공산도 줄어들겠지. 일단 림은 그것에 만족해서 선언했다. 그 선언에, 긴장이 풀린 아이는 칼을 내던지고 배를 붙잡고 쓰러졌다. 흥분 상태가 가시자 맹렬한 통증이 배에서 밀려들고 있었다. 그 귀에 엄한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하지만 이걸 뻔히 눈앞에 두고 이렇게 물러설 순 없단다, 어린 순례자야. 이 계집은 두말할 나위 없는 악인이야.'

"내가... 정한다니까..."

'그러니 조건을 걸겠다. 이 조건을 수용해주면, 나도 너를 시켜 억지로 이 계집의 심장을 부수는 것은 포기하겠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림의 입에서 나온 그 조건은, 비교적 합당한 것이었다.

'다음번에, 만약에 이 계집이 너를 배신하고 너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이 계집의 목을 치겠노라고 서약해라.'

'어떤 죽음보다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겠노라고.'

아이는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통증도 많이 잦아들었다. 재생력 때문에 어느새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게 다야? 알았어. 서약할게."

'그럼 됐다. 그럼 일단 한 시름 놓았군.'

림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날개를 펼치고 천막에서 빠져나간다. 아이는 찢어진 옷과 배를 움켜쥐고 다나의 옆에 앉았다. 다나는 몸을 뒤틀더니, 갑자기 잠꼬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아이의 무릎에 얼굴을 비볐다.

"헤헤...내 꺼다..."

방금 전 자기가 죽음의 문턱 코앞까지 갔다가 풀려났다는 걸 전혀 모르는 천진한 잠꼬대였다. 이불은 걷어차서 하얀 배와 배꼽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는 피식 웃으며, 조심스레 이불을 고쳐 덮어주곤 천막을 빠져나갔다.

*

다음 날 아침.

"칼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옷을 찢어먹었어요? 으이구,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 어린애구나?"

다나는 간밤의 사고 때문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아이의 옷을 꿰매며 눈을 흘겼다. 이빨로는 실을 끊으려 애쓰면서였다. 점수를 딸 수 있을 것 같아서 수선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이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웃옷을 벗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머릿속에는 어젯밤 림이 들려준 말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이미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건, 결코 정당방위 따위가 아니었다.

"익, 이거 왜 이렇게 안 끊어져?"

이빨로 실을 끊으려다가, 입을 크게 벌리는 바람에 입 한중간에 뻥 뚫린 구멍을 보여줘 버린 다나. 아이는 놀라서 말을 흘렸다.

"어?"

"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입을 가린다. 그리고 눈을 흘깃하며 말한다.

"봤어요?"

"뭐, 뭘요?"

"저, 이 하나 없는 거..."

아무래도 그걸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웃을 때도 일부러 한 쪽은 가리고 웃었는데, 이걸 보여주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다나는 떠듬떠듬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렸을 때 이를 다쳤는데, 치료받을 돈이 없어서... 그냥 뽑아버리는 게 낫겠다고 그래서. 이렇게 됐어요. 잊어 주세요."

측은함으로 눈썹이 구부러지는 아이. 정말로? 정말로 이 사람이 그런 짓을 했을까? 하지만 림의 말인 이상 거짓일 리는 없었다. 그저 수심에 잠긴 눈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나는 그다음부터는 묵묵히 옷을 꿰매주더니, 둥글게 말아 아이에게 던져주었다.

"자, 받아요!"

"엇!"

너무 높이 던지는 바람에 놓칠 뻔했다. 아이는 번개처럼 뛰어올라 옷을 잡고 제자리에 착지했다. 거의 나는 새를 사냥하는 고양잇과 짐승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다나는 그 동작이 신기해서 눈을 크게 떴다. 아이는 그 옷을 펼쳐서,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와, 엄청 깔끔하게 됐네."

감쪽같은 수선이었다. 다나는 가슴을 펴고 으스댄다.

"이래 봬도 옷 수선에는 일가견이 있다구요. 이 법복이 얼마짜린지 알아요? 꼭 입어야 하는 건데, 이거 다른 학우들은 다섯 벌씩 갈아서 입는데... 나는 이거밖에 없어서. 맨날 기워서 입었어요. 그러면서 바느질 실력을 많이 쌓았답니다."

금색 선으로 치장된 흰 사제복 같은 법복. 그 치맛자락을 붙잡고, 빙그르 돌며 말한다. 바람에 치맛자락이 나풀대며 아름다운 흰 선을 그렸다. 여러번 기웠다는 데도, 확실히 그 법복엔 꿰맨 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옷을 입으며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내 꺼한테 잘 해주는데 내가 왜 감사를 받아야 해요?"

"내 것?"

"당신 어제부터 내 꺼잖아요. 나도 당신 꺼구요. 아닌가요?"

때를 놓치지 않고 달라붙는 다나. 그리고 어제와 완벽히 똑같은 각도로 아이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아이는 어제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지는 않았다. 가만히,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재미없게. 다나는 아이의 반응을 살피다, 흥미를 잃었다는 듯 토라진 듯 픽 가슴팍을 밀치고 물러섰다.

"사실 농담이에요. 그러기에 아이 씨는 많이 부족하거든요. 부족하고, 안 어울려요."

"그런가요."

검집을 끌어안고 자리에 앉는 아이. 무언가 깊게 생각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하루 만에 갑자기 사람이 왜 이렇게 달라진 것 같지? 다나는 당황하다가, 레오를 불러 짐을 꾸렸다. 목표로 정한 마을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레오가 끄는 수레에 올라타, 바람에 분홍빛 머릿결을 흩날리는 다나. 그 순진해 보이는 가슴 속에 품은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2개월 안에 성명서 400장을 전부 채워 돌아가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호구같은 놈을 어떻게든 꼬셔서 제도(帝都)로 데려가는 것!'

그녀의 눈으로 봤을 때 아이는 거의 땅바닥에 떨어진 다이아몬드였다. 아이가 활약해서 카나기의 마술사 수십을 썰어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아탕칼리의 4위계 심문관인 마레를 막 대하고, 마레가 한 수 접어주는 것을 보고 그게 사실임을 확신했다.

마술사도 아닌 열여섯 살이 4위계보다 강하다, 그럼 그 천장이 어디까지일지 모를 유망주였다. 어쩌면 센디엘에서, 마술사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여덟 명 사이에 끼게 될지도 몰랐다.

'이 사람한테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 제국 국적도 없는 사람 같은데. 용병 같은 것보다는, 라달라리아 판관 나으리의 전속 집행관이 더 살기에 좋을 거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다나.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고위 율사의 전속 집행관이라면, 일곱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무부가 올라설 수 있는 직위 중에서는 거의 최고의 직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거의 마술사와 같은 대우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고행의 순례를 마치고 나면, 그녀는 3년동안 판관 임용을 두고 또 피 튀기는 혈전을 벌여야 했다. 그 전장은 금력과 인맥 그리고 상납이 판치는 음습한 전장이었다. 그녀마저 질려버릴 정도로 비틀린 전장.

다나조차도 이 전장을 이겨내고 판관에 임용될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진하고, 순진한 만큼 강한 사나이가 자기 옆에 있어 준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유는 하나 더 있지만.'

다나는 녹색 눈으로 물끄러미 자신의 수레 옆을 따라 걷는 아이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눈토끼, 또는 실험쥐를 떠올리게 만드는 하얀 머리카락과 심홍색 눈. 여인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짙은 눈썹과 오똑한 코가 어딘가 남성적인 인상을 주는 예쁘고 늠름한 얼굴.

어떻게 보아도 누군가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보면 하나의 죄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어쩌면.

다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놀랐는지,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왜 갑자기 머리를 막 흔들고 그래요? 아파요?"

"네..."

다나는 짐짓 훌쩍이며 눈을 크게 뜨고 아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에 잡티가 들어가서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후 불어주실래요?"

"어, 어..."

아이는 다나의 얼굴을 붙잡고 후 불어주었다. 다나는 잠시 그 따뜻한 입김을 맞고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배시시 웃었다.

"이제 다 나은 것 같아요."

뒤에서는 림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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