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Bookmaker ( 3 )
그 팔이 잘리게 된 내기 도박에 걸린 것은, 모두의 운명이었다.
"그런가? 음, 누추한 곳에 귀한, 딸꾹, 술이 있어서 다행이군."
술에 취해서 말하는 중간에 자기가 하려는 말도 기억 못 하고 웅얼거리는 뢰프. 꼴꼴꼴 투명한 독주를 따라 집어삼킨다. 화학 약품 같은 알싸한 향이 나는 술이었다. 오직 취하기 위한 술. 이리나는 그 옆에 답답하다는 듯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래, 고발을 하려면 자료, 딸꾹, 필요하다고? 그럼, 딸꾹, 줘야지."
"뭘요?"
"돈."
입을 떡 벌리는 다나. 그녀는 뢰프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두 사람에게는, 다나가 벌어들인 돈에 카나기의 성에서 빼앗아온 돈까지, 꽤 자금의 여유가 있었다. 다나가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취재비를 건네주려 하자 이리나가 성난 목소리로 그걸 가로막았다.
"잠깐!"
덥썩, 손을 붙잡는다. 그리고 꺼지라는 듯 뢰프에게 손사래를 쳐 옆으로 치운다.
"저 영감탱이한테 줘봤자 어차피 술이나 쳐먹을 거야. 술만 쳐먹으면 다행이게, 다 쳐먹고 또 더 쳐먹고 싶어서 돈까지 더 빌려다 쳐먹겠지. 그러니까 지금 저거한테 적선하는 건 빚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나한테 내놔."
"딸꾹, 어이구, 누구 딸인지 말은 참 잘하는구나."
"꺼져!"
뻥 뢰프를 걷어차고 자리에 앉는 이리나. 뢰프는 술병을 끌어안고 바닥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리나는 손에 잡힐 듯 짙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빠, 아니 아버지는... 소작농 조합원들의 대표였어."
평소 순박하고 온후한 성품 때문에 인망이 있었던 뢰프는, 쟁의를 위한 조직이 결성되자 자연스레 그 수장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투쟁이 내분으로 와해되었을 때, 그 때문에 누구보다 괴로워했다. 그는 마침내 최후의 수단을 택했다. 단식이었다.
"소작료 5할까지는 받아들일 테니까, 거기까지 낮추지 않으면 단식할 거라고... 돗자리를 펴고 도박장 앞에서 단식을 했는데.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앙상하게 말라가는 아빠 때문에 사람들이 술렁이니까 끌어들이더라고. 그리고 억지로 도박을 시켰어."
"파계 율사를 동원한 도박을."
"파계 율사?"
아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게 뭔지 모르는 기색이었다. 이리나는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쯧, 혀를 차곤 말했다.
"이 언니처럼 라달라리아의 율사를 하다가 가미온한테로 옮겨탄 인간 말이야. 그렇게 옮겨탄 사람은 법에 관한 언령을 잃어버리는 대신, 그게 이상하게 바뀐 언령을 부릴 수 있게 되잖아. 몰랐어? 나는 촌부라도 알고 있는 건데."
"어떻게 바뀌는데요?"
대답한 것은 다나였다.
"유희. 바둑이나, 카드놀이나, 룰렛이나, 아니면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이라도, 그것이 게임으로서 성립되어 있다면 반드시 그 룰을 준수하게 만들 수 있어요. 또 만약 그게 서로 담보를 걸고 하는 내기라면, 반드시 그 약속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죠."
"약속을 어기면요? 예를 들어서, 이 카드놀이에서 지면 일만 루덴을 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안 주거나 하면..."
"그 순간 심장이 터져 죽습니다. 맹세한 자와 보증한 자 전부가요. 그러니 절대적으로 준수해야만 하죠. 이건 절대적이에요. 만일 희생양을 앞세워 편법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럼 그 의지를 파악해서 신벌이 떨어져요. 희생양 대신 희생양을 내세운 자가 죽습니다."
질린 표정을 짓는 아이. 다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원래 우리의 언령은 게임 규칙 따위를 지키게 만들려고 존재하는 게 아닌데 말이죠. 무슨 생각으로 그들에게 귀의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딱 한 가지 이유 빼고는."
"뭔데요?"
"권력. 그렇게 강제력 있는 계약을 행사할 수 있으니, 떳떳지 못한 내기나 정치적 거래를 할 필요가 있는 뒤 구린 사람들이 옆에 비서처럼 그자들을 데리고 다니거든요."
"바로 맞췄어. 우리 아버지와 그 여자, 소니아 아바키렌과의 내기를 주선한 파계 율사도 그런 비서였어. 이름이 뭐랬더라, 드미트리 어쩌구랬는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리나.
"그 실눈 새끼는 무슨 천사 같은 얼굴로 우리 아빠한테 접근해서는 고혹적으로 꼬드겼어. 자기가 착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정말로 굶어서 죽을 거냐, 그건 아무도 바라지 않으니 모두의 운명을 걸고 공정한 내기를 하라고."
"무슨 내기였죠?"
"쟁의권을 둔 내기. 아빠,아니 아버지가 이기면 소작료를 원래대로 3할로 만들어줄 테니, 대신 실패하면 모두의 쟁의권을 내놔라. 이런 내기였지."
"그런 막연한 것도 내기의 대가로 걸 수 있는 건가요?"
"응. 모두의 동의를 받아서 그렇게 했어. 만약 여기서 졌는데 쟁의를 하게 되면 모두의 심장이 터져 죽는 형식으로 이뤄진다고 그랬어. 그 대가를 감수하고... 마지막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아빠한테 내기에 나서게 시켰어. 내기의 종목은 바둑이었다."
그 말에 반응한 건 다나였다. 다나는 안타깝다는 듯 소리질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종목을 골라서 덤볐어야죠!"
"언니는 알고 있었구나? 우리는 바둑인지 뭔지 그따위 놀이는 아무도 몰라서, 그 여자가 그쪽으로 그렇게 유명한 인간인지 몰랐지 뭐야. 그래서 병신같이 당했지."
소니아 아바키렌, 그녀는 바둑에 있어 굉장한 명수로 소문이 나 있었다. 다나의 귀에도 어렴풋이 그게 들어올 정도니 말 다했다. 룰도 제대로 모르는 시골 농부가 그녀와 다투어 이길 수 있을리가 없다.
"아빠는 처참한 차이로 졌고... 그리고, 모두의 쟁의권을 걸고 그렇게 지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사기를 쳤어."
"집계산을 할때 슬쩍 돌을 떨어뜨려서 다시 쓰려고 들었대. 그리고 그걸 들켜서, 뭇매를, 맞고, 팔을... 잘렸어."
고개를 푹 숙이는 이리나. 그 입술은 처참하게 떨리고 있었다. 딸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뢰프는 술병을 끌어안고 태평하게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쟁의권을 빼앗기게 되어버렸고, 소작료는 9할이 되어버렸고, 돌이킬 수도 없게 됐어. 아빠는 폐인이 되서 그 날부터 도박장을 다니고 술을 먹기 시작했고. 자기가 우리 모두의 운명을 날려버렸다고 자책하다가 술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거야. 그래서 저 꼴이 된 거지."
"그러니까 저건 지금 내 아빠가 아니야. 그냥, 그냥 망령이지. 빨리 끌려가서 저 괴물딱지나 되었으면 좋겠다."
"아버지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돼요!"
"닥쳐!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는데? 우리 아빠는, 원래, 훨씬 멋있는 사람이었단 말야!"
괴성을 내지르는 이리나.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다가, 정신을 수습하고 말을 이어간다. 화난 목소리로 따지듯이 쏟아냈다.
"언니, 나는 무식해서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이런 짓거리가 다 법으로 용서되는 거야? 이렇게 우리 땅을 다 망치고 저딴 거나 세워놓는 게 말이 되는 거냐고! 저놈들은 제국 안에 본사가 있어서 자치령이라 하더라도 제국법을 지켜야 된다면서. 하나도 안 지키잖아! 다, 다 사기나 다름없잖아! 근데 왜 아무도 안 혼내주는 거야?"
입술을 곱씹는 다나. 찬찬히 법리를 검토해보았다. 적법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변호사를 써서 우기면 충분히 적법해질 수 있는 수준까진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파계 율사를 시켜서 꾐에 빠뜨려 도박에 나서게 만든 게 특히 주효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내기에 나섰겠지만, 내기에 나섰고 또 동의해버린 탓에 책임이 희석되어버렸다. 그것은 추궁하려면 훨씬 더 많은 법리적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의미했다. 한참을 그렇게 머릿속으로 검토하던 다나는 어둡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식으로 어떻게 할 수준은 아닙니다. 이걸 뒤집어엎으려면, 아예 수사 전담팀을 꾸려야겠지요. 그리고 수사 전담팀을 꾸릴 만한, 동기는, 없어 보이네요. 아마 법은 여기에 임하지 않을 겁니다."
"그딴게 무슨 질서인데!"
쾅, 테이블을 내려찍는 이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뒤돌아섰다.
"됐어. 그럼 역시 내 방식이 나은 거야. 정말로 언니랑 오빠가 날 돕고 싶으면, 그냥 군자금이나 내놔."
"무슨 방식인데요?"
"내가 도박장에 들어가서, 저놈들을 상대로 한 도박에서 돈을 전부, 몽땅 따 버려서... 파산시킬 거야. 그렇게 돈을 전부 빼앗아버리면 알아서 꺼지겠지. 안 그래?"
그런 이유로 이 꼬마는 강한 척을 하며 타짜 흉내를 내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리나의 과거의 모습을 알고 있는 다나에게는 그 심정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그 순간, 갑자기 옆에서 뭔가 깨달은 듯한 소리가 울렸다.
"어!"
아이였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이리나를 의자에 억지로 앉히곤, 말을 이어갔다.
"방금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었어요!"
"뭐가?"
"돈을 전부 다 따 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눈을 끔뻑이는 이리나. 본인의 입으로 말했지만, 사실 본인도 그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향을 버리고 피난을 가지 않는 노인의 심정으로 지껄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이 남자는 진심으로 그걸 실현할 생각인 듯 했다.
"뭐냐면..."
그 입에서 기초적인 계획이 나왔다. 다나와 이리나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이리나는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서라, 아서. 고작 1위계랑 그거 쫓아다니는 강아지 주제에 그걸 어떻게 하는데? 그냥 중간에 죽어 나자빠지겠지."
"아니에요!"
하지만 다나는 적극적이었다. 다나는 아이가 얼마나 강한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뺨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 열의를 본 이리나도 곧 생각을 바꾸어, 의론에 동참했다. 밤새도록 세 사람은 하나의 계획을 만들기 위해 떠들었다.
아이의 단순한 착상과 계획에 두 사람이 구체적인 살을 얹으며, 하나의 계획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그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벌써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그럼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이거네!"
이리나는 기운차게 일어나서 쪼르르 방으로 달려가 화려한 옷을 꺼내왔다. 키가 큰 성인 여성이 입을 법한 옷이었다.
"오빠, 이걸로 갈아입어."
*
도박장에 요정이 찾아왔다.
순진해 보이는 깊고 그윽한 붉은 눈망울에, 시리도록 아름다운 흰빛으로 빛나는 장발. 거기에 촌사람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도박장에 들어섰다. 그 순간, 도박장 안이 잠깐이나마 정지했다. 다들 정신없이 그 요정 같은 여자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허리에는 검이라기보다는 장신구인 것처럼 아름다운 한 자루의 칼이 들려 있었다. 자개 장식이라고 하던가? 그런 고급 기법으로 치장된 환도였다. 길을 잘못 든 것처럼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를 잡아끈 것은, 적금발 머리의 소녀였다.
"어이, 거기 언니! 뭘 해야 될 지 몰라서 헤매고 있어? 이리 와! 잘 해줄게!"
씨익 웃으며 카드놀이 테이블에서 손짓하는 적금발의 여자, 이리나. 벌떡 일어나서 여자의 손을 잡아끌고 자리에 털썩 앉힌다.
"사람이 없어서 시작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잘 됐지, 그치?"
그리고 주변에 눈짓을 준다. 그 여자가 앉은 자리는 호구를 위한 자리였다. 어느 쪽에서 패를 돌리던, 목표한 패를 건네줄 수 있는 자리. 이리나는 그 여자를 호구 삼아 벗겨 먹자고 한 거나 다름없었다.
'호객할때 개싸가지없게 굴던 이 년이 무슨 일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타짜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상주하는 타짜들은 테이블별로 팀을 짜기 마련인데, 그 팀원중 하나인 이리나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구를 꼬시는 걸 본 적이 없어서였다.
거기다 여자도 뭔가 의심스러웠다. 여자치곤 키가 굉장히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의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 녹듯 사라졌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높은 패였는데..."
"헤헹, 그럼 이건 내가 가져간다."
울상이 되는 여자. 이리나가 칩을 수북하게 가져가고 개평을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모두의 입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 여자는 호구였다. 세 번이나 연속 밑장빼기 작업을 당해서, 단 한 끗 차이로 족보에 밀려 패배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연기인 건 말이 안 돼. 호구로 살아온 관록이 십 년은 넘어야 할 수 있는 호구 짓거리야. 어디 가출한 귀족 아가씨가 멋도 모르고 들어온 모양인데?'
의심하던 타짜는 의심을 거둬들이고, 어떻게 해야 그 호구의 돈을 빨아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 테이블의 뒤에서, 후드를 뒤집어써서 분홍빛의 머리가 보이지 않게 가리고 유심히 그들을 노려보는 여자가 있었다. 그건 다나였다.
그리고 호구는 물론, 여장한 아이였다.
그들은 이 도박장의 돈을 전부 빼앗아갈 원대한 계획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
69화 - 서쪽 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