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Bookmaker ( 5 )
사태를 파악한 지배인은 황급히 선언했다. 지배인은 어떻게든 이 자들을 저지해야만 했다.
"안 돼! 선지급은 거부한다!"
쏟아지는 야유. 당황한 지배인은 해서는 안 될 대응을 해 버렸다. 폭력으로 협박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돌돌 말려 있는 뱀 가죽 채찍을 꺼내, 바닥에 내려찍으며 소리 지른다.
"당장 닥쳐! 닥치지 않으면 채찍질을 해 줄 테다! 선, 선지급은, 어디 보자."
조용해지는 좌중. 그리고 주섬주섬 붉은 표지의 수첩을 꺼낸다. 거기에는 이런 부수기가 들어올 때를 대비한 비상 메뉴얼이 적혀 있었다. 북메이킹 방식의 배당. 그게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룰을 설계한 조디악 측에서도 인지하고 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 메뉴얼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래... 지급 및 배당에 관한 규정 124조! 여기에 따르면, 선지급은 책임자가 재량하에 거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거부한다!"
"그럼 지급 시점은요?"
"세 번의 검투극이 모두 끝났을 때! 그때에는 두말없이 지급하게 되어 있다. 이건 가미온께서 가호하시는 부분이야."
가미온의 이름을 꺼내자 수그러드는 좌중.
"그래, 그럼 이견 없나? 응? 남은 돈은 있고?"
지배인은 흥분이 가라앉자 여유가 생겨 다나를 보고 웃었다. 비열한 웃음이었다.
"개평을 뿌리려고 선지급을 요구해? 헛소리. 뭣도 모르고 처음에 돈을 다 때려 박아서 이제 새로 걸 돈도 없는 거겠지. 일단 지급하게 되어 있는 4만 루덴이야 뼈아프지만, 기다리라고. 저년을 갈기갈기 벗겨서 묶은 다음 5만 루덴을 받고 되팔아 줄 테니까!"
또 채찍을 바닥에 내려찍는다. 시퍼런 빛의 물뱀 가죽으로 덮인 채찍은 진짜 뱀처럼 꿈틀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과연, 썩어도 큰돈이 오가는 도박장의 지배인 역할을 맡을 수준은 되는 자였다. 그는 자신이 기세를 제압했다는 확신이 들자, 바로 베팅을 개시할 것을 선언했다.
"어이, 나는 저 아가씨한테 125루덴!"
"나는 어디보자, 68루덴 건다!"
눈치를 보는 가운데, 몇 명이 나섰다. 충분히 아이 쪽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몇몇의 도박꾼들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배인은 예상했다는 듯, 메뉴얼의 한 페이지를 펼쳐 소리친다.
"불가! 검투극은 세 번 치르는 것을 한 단위로 친다. 한 단위 안에서, 베팅의 액수는 매 판 다르게 할 수 있으나, 베팅의 대상은 처음에 택한 측으로 고정되어 있다! 여기를 봐라!"
확실히 그런 조항이 예비되어 있었다. 사문화되어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뿐, 자그마한 글씨로 적혀 있다. 혹시라도 이런 경우가 벌어질 경우, 부수기를 들어온 자 외의 베팅을 차단하기 위해 만든 조항인 듯했다.
"그리고 말이지, 이걸 보고도 저 쥐새끼 같은 계집한테 돈을 걸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나와라!"
지배인이 종을 두들기자, 저편의 감옥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걸어 나온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근육덩어리 상체를 가지고, 황소 뿔이 달린 황금 가면을 쓴 괴물.
"저 년의 다음 상대는 이거다! 미트라스!"
미트라스. 두냐의 1위계 암살자 중, 시험에 따라가지 못하고 버려진 자들을 모아 가면을 씌워 만든 생물이었다. 두냐는 짐승의 정령을 숭배한다. 그 위계마다 숭배하는 정령이 달라지며, 그 정령의 힘을 몸에 받아 마술을 부린다. 5위계는 불사조의 정령을 섬기고, 6위계는 호랑이의 정령을 섬기는 식이었다. 1위계의 암살자가 섬기는 정령은 황소.
그래서 저것은, 반신만이 육중한 황소의 것처럼 부풀어 저렇게 콧김을 뿜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 아이가 보았던, 그 검투사를 짓밟아버렸던 괴물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레버넌트보다는 훨씬 강력한 녀석이다. 절대로 여자 대상의 투기장에 나올 녀석은 아니었다. 다나는 깜짝 놀란 척 물었다.
"저런 게 나오는 건 규정 위반 아닙니까!"
"닥쳐! 반드시 준수해야만 하는 건 지급과 배당 관련 부분뿐이야! 나머지는 적발해서 강하게 항의하고, 그걸 가미온이 승인하시지 않는 한 처벌이 일어나지 않는단 말이지. 뭐, 규정상으로는 '약한 괴물'이라고 되어 있는데, 저게 약한 괴물이 아니라는 증거 있나? 응?"
비열하게 웃는 지배인. 그리고 사방을 돌아보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거기에 개인적인 지급 약속을 추가하겠다! 우리 도박장이 승리할 경우, 내 사재를 털어 여기 만장한 신사숙녀분들의 수수료를 내가 대납하겠다!"
주변의 인심을 얻기 위한 행위. 규정해석이 충돌할 경우, 즉석으로 도박장에 상주하는 자들의 여론에 따라 그 해석이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다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개인적인 지급 약속? 그런 걸 어떻게 믿나요!"
"지급에 관한 것은 절대적이다! 개인적인 약속이라 한들, 그것을 가미온이 관장하시는 유희에 걸고 맹세한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말이죠?"
"그래!"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측한 대로였다. 책임자로부터 이 확언을 받아낸 뒤, 다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비록 가미온을 섬기지 않습니다만, 유희의 학파의 이름에 걸고, 저에게 투자해주실 분을 모집합니다!"
"뭐?"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여자에게 돈을 걸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지요. 그리고 저는 권리는 있으나 돈은 없습니다. 그러면 투자를 받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가 돈을 걸 수 있도록 돈을 투자해주시면, 그 절반을 반드시 지급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 국면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설계를 했던 것이었다. 애초부터, 세 사람이 가진 종잣돈은, 아무리 애를 쓴다 하더라도, 도박장을 파산으로 몰아넣기에는 그 총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도박장에 상주하는 자들의 투자를 추가적으로 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 투자를 모집하려면, 가미온의 힘을 빌린 지급 보증 또한 필수적이었다. 도박장에 있는 자들이란 원래 서로를 의심하기 마련이었으므로. 그래서 어떻게든 항의하며 이런 형태의 언질을 얻어내려 애썼는데, 몸이 달아서 저쪽에서 알아서 확언해주었다.
다나의 당찬 말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걸어 볼까?"
"배당은 또 30대 1... 절반이면 15대 1인데."
"수수료 제한다고 해도 걸어볼 만 해."
"개소리 하지 마! 저런 여자가 미트라스를 어떻게 이겨? 건장한 용병 다섯이 달려들어야 겨우 제압 가능한 놈인데."
"아니, 하지만, 아까 봐. 아까 칼에서 빨간 기운이 나오지 않았어?"
"신기를 쓸 줄 아는 것 같은데."
웅성거림이 계속되었다. 가급적이면 첫 번째 검투극은 압도적으로 승리하라고 주문한 이유도, 이런 반응을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다나의 앞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다나는 기다렸다는 듯 종이를 꺼내 즉석에서 간이 어음 비슷한 것을 작성해 나눠주기 시작한다.
"그만! 시간은 끝났다! 그만!"
"자, 그럼 이만큼 베팅할게요. 2021루덴입니다."
제한시간이 끝나고, 다나 앞에 쌓인 돈은 무려 2021루덴이었다. 평소부터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있는 이들이, 반쯤 확신을 하고 돈을 쌓아놓았기에 모을 수 있는 거액이었다.
지배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여기서 또 패배하게 되면 도박장이 지급해야 하는 돈은 6만 루덴. 수수료를 제해도 5만 루덴 가까이다. 아까와 합치면, 물경 10만 루덴을 한 번의 검투극으로 잃는 셈이었다.
"으그극... 시작!"
질 리가 없지. 미트라스가 고작 저런 여자한테 질 리가 없어. 지배인은 그렇게 확신하며 시작의 뿔나팔을 불게 시켰다. 뿌우우! 큰 소리와 함께, 미트라스가 아이에게 달려들고, 그리고 죽었다.
"우와아아아!"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원래 버티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시계, 그 시계에 기록된 시간은 38초. 단 38초만에, 미트라스는 그 자랑하는 근육을 써보지도 못하고 환도에 가슴을 찔려 죽고 말았다. 아이는 치맛자락에 피가 묻지 않도록 조심해서 피를 털고는, 매서운 눈으로 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 수수료를 제하고 50,929루덴하고 20피오. 지급 목록에 걸어주시지요?"
다나는 얼이 빠진 지배인에게 손을 내밀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다나에게 돈을 투자한 도박꾼들을 중심으로 열화와 같은 성원이 터져 나왔다. 지배인은 텅 빈 눈으로, 입을 떡 벌린 채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 도박장의 여유 자금은 12만 루덴인데. 이게 없으면, 기한이 도래하는 어음을 못 막아서, 파, 파산이다. 어, 어디 보자, 벌써 그러니까...'
9만 루덴. 수수료를 제한다 하더라도 9만 루덴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지배인은 머리를 감싸쥐고 고통스러워했다.
"어머? 혹시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신 건가요? 왜 그렇게 똥 마려운 개새끼마냥 몸을 비틀고 계세요?"
도박꾼들의 헹가래를 받다 말고 내려와 비꼬는 다나. 그리고 제멋대로 다음 과정을 시작하려 들었다.
"자, 그럼 이제 세 번째 검투극이 남은 거죠? 베팅을 시작해 주실까요?"
눈을 부릅뜨는 지배인. 원래 북메이킹 방식의 검투극이 반드시 세 번을 하도록 지정해놓은 것은 저지선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메뉴얼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혹시라도 이런 경우가 생길 때 세 번째에는 아주 강한 대전사를 내세워서, 약한 척 투기장에 숨어든 검투사를 징벌하기 위해서.
'그래서 준비되어 있는 대전사는, 알파 미트라스. 미트라스 중에선, 가장 강한 놈이긴 한데...'
3위계의 마술사까지는 상대해봄 직한 강한 괴물, 알파 미트라스. 미트라스 중에서도 가면과 적성이 맞아 아주 강하게 변이된 괴물이었다. 이 지하에는 그 알파 미트라스가 마법적으로 구속된 채 사육되고 있다. 메뉴얼에는 그 알파 미트라스를 해방시켜 검투장에 꺼낼 수 있는 암호문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일반 미트라스가 1분도 아니고 38초만에 퇴장당하는데, 알파 미트라스라고 한들 저 여자를 제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이 악마들을 멈출 수 있지, 왜 내가 이렇게 성실하게 번 돈을 가져가려는 거야, 지배인은 엄지손가락을 깨물고 덜덜 떨면서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배인이 한참이나 그렇게 유아퇴행한 듯 아무런 짓도 하고 있지 않자, 다나는 콧김을 흥 내뱉고는 제멋대로 순서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세 번째 검투극의 베팅을 위한 투자를 받겠습니다! 이번에는 7대 3입니다! 제가 7, 여러분이 3!"
"어? 왜!"
"어머? 아까 보셨잖아요. 제 친구는 아주 강하답니다. 이제 그걸 충분히 증명했으니 배당률을 바꿔야곘죠?"
이 자신만만한 선언이 도박꾼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도박꾼들이 황급히 짐을 챙겨둔 곳으로 달려가, 모든 루덴이란 루덴은 다 털어 다나 앞에 쌓아놓으려 들었다.
"자, 그럼 가미온에 맹세코..."
다나가 그것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려는 순간. 턱, 그 흰 손을 붙잡는 앙상한 손이 있었다.
"뭘 멋대로 가미온의 이름을 파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만두시죠."
하늘의 빛을 닮은 시원한 물색의 머리카락을 한 소년. 나이는 16, 17쯤 되었을까? 어린아이티를 벗지 않은 실눈의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그 손을 붙잡았다. 그는 라달라리아의 율사가 입는 법복을 새까맣게 물들인 듯한 디자인의 법복을 입고 있었다.
"드, 드미트리 총지배인님! 살려주십시오, 이, 이 메뉴얼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를 알아본 지배인은 불구덩이에서 탈출구를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달려들어 드미트리의 로브를 붙잡았다. 드미트리? 그 말에 다나의 눈이 커졌다. 자신보다도 어려 보이는 이 소년이, 그 유명한 5위계의 파계 율사라니.
그는 다나의 손을 내리게 시켜 사방을 진정시키고는 도박꾼들 곁을 걸어다니며 중얼거린다.
"이거 잠시 시원한 사과주나 마실까 하고 이 마을에 들리지 않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군요. 상당히 영리한 두뇌와 강인한 힘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야비한 심계로 우리의 터전을 노리고 습격한 걸 그냥 놓칠 뻔했어요. 안 그렇습니까, 아가씨?"
다나에게 빙긋이 웃으며 말하는 드미트리. 그 웃음에는 어쩐지 살기가 묻어 있는 듯 했다. 그는 다나에게 맡길 생각으로 쌓여 있는 금화 중 하나를 집어 들곤 말했다.
"지급에 관한 규정 제 131조를 살펴보면, 분명히 투기라는 행위에 있어 한 단위가 끝날 때까지는 베팅의 대상을 정할 권리가 제한된다고 되어 있을 텐데요. 이 사람들은 전부, 처음에는 저 여자가 아니라 우리 도박장이 승리할 거라고 베팅한 사람들이죠. 그럼 이들에게는 베팅의 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대행하기로..."
"아니요. 그건 사실상 우회적 행사지요. 뭐, 당신이 만약 가미온의 가호로 그 지급 보증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 힘을 빌린다면 이건 명백한 우회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회를 통해 제한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내 규정 해석으로는 불가합니다. 반론 있습니까?"
정연한 드미트리의 논변. 유희의 학파, 가미온은 자신의 독실한 신도를 만들지 않는다. 다른 신의 신도를 꾀어 자신의 신도로 만들고, 유희의 용도로 기괴하게 변형된 능력을 선물할 뿐이다. 그리고 그 위계는 개종할 때의 위계로 고정된다. 즉 이 자는 원래 5위계의 율사였다는 뜻이다.
"바, 반론합니다!"
"오, 해보시지요."
가진 지식과 논리력을 총동원해 그에 맞서는 다나. 하지만 5위계의 율사 자리에 올랐던 관록은 헛것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든 그 헛점을 들켜 논박당하고, 설전에서 패배하고 마는 다나. 드미트리는 마지막으로 또 빙긋이 웃으며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다.
"자, 그럼 이제 저 도박꾼들은 당신에게 돈을 대줄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합니까?"
"동의... 합니다."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나. 드미트리는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으며, 뒤돌아서서 얘기를 계속했다.
"뭐, 소급 적용까진 못 할 테니 두 번째까지 딴 돈은, 저희 시스템의 허점을 알려준 대가로 그냥 드리지요. 다음에 규칙을 개정할 때에는 베팅의 최대 한도를 설정해야겠어요. 하지만 세 번째는 안 됩니다. 이제 걸 돈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있다!"
드미트리의 말을 되받는 비명 같은 외침. 사춘기 정도 여자아이의 외침이었다. 이리나였다. 그 뒤에는 꾀죄죄한 몰골을 한 농부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작은 피오 동전부터, 패물처럼 숨겨둔 루덴 동전까지. 잔뜩 그러쥐고는 이리나를 필두로 모여 있었다.
"뭡니까?"
"우리가 언니한테 돈을 댈 거야! 우리는 저 도박에 아까 참가 안 했으니까, 언니한테 돈 맡기는 건 가능한 거 맞지?"
소리 지르는 이리나. 혹시라도 도박꾼들에게 투자를 받지 못할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검투극이 시작되자마자, 이리나는 이렇게 도박장을 뛰쳐나가 마을을 돌며 추가적으로 자금을 모아줄 농민들을 모아오기로 했던 것이다.
드미트리는 이 예상하지 못한 사태 때문에 처음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 눈은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금색이었다. 잠시 그 금안을 드러내고, 다시 감기는 실눈. 그는 또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이들을 공박할 논리를 찾아낸 듯했다.
"음, 어디서 본 적이 있다 했더니, 그 사기꾼의 따님이셨군요. 아닌가요?"
"아, 아빠를 사기꾼이라고 부르지 마! 이 개자식아!"
"사기꾼 맞지 않습니까. 그리고 부전여전이라고 할까, 당신도 사기를 치고 있군요. 왜 이미 없는 권리를 행사하려고 모인 겁니까?"
"뭐?"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마지막까지 사과 소작료 인상에 저항하던 자들 아닙니까. 당신의 비열한 사기꾼 아버지에게 쟁의권을 양여한 이들이지요."
드미트리는 박수를 치며 말한다. 마치 법봉을 두드리는걸 대신하려는 듯한 행위였다.
"그리고 그 쟁의권은 분명 제가 징수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의 이 행위는, 실질적으로 쟁의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심장이 터져 죽기 싫으면 돌아가시지요."
"닥쳐! 억지 쓰지 마! 우리는, 우리는 언니한테 돈을 맡길 거야!"
"정말로요? 뒤를 한 번 보시지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뒤를 돌아보는 이리나. 그리고 그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자신들이 모아온 농민들의 기운이 바뀌었다는 게 선하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터져 죽을 수 있다, 그 공포는 이 저항의 단결을 짓누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드미트리는 미소를 지으며, 이리나의 뺨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이 떠지고, 그 요사스러운 황금의 눈이 나타난다.
"징수된 쟁의권을 행사한 죄로, 신벌이 내려온다면, 제일 먼저 죽는 건 그 대표였던 당신의 사기꾼 아버지일 것입니다. 당신이 아니지요. 당신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당신을 걱정해서 당신의 이름만은 그 보증인 명단에서 제외했단 말입니다. 자, 5분만 더 이러고 있으면 신벌이 발동해 아버지의 심장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계속하시겠습니까?"
부들부들 떨리는 이리나의 입. 그 입술은 물결치듯 움직이다, 곧 절망적으로 펴졌다. 돌아서겠노라고 선언하려는 듯했다.
"그래도 계속해라!"
그런 우직한 선언이 울렸다. 이리나의 입에서 나온 선언이 아니었다. 또 한 무리의 농민들, 이리나가 모아온 농민들보다도 훨씬 많은 농민들이, 각자 집에서 털어온 돈 될 만한 물건을 잔뜩 그러모아 도박장에 물 밀듯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선 것은, 팔 한 쪽이 없는 농부. 뢰프였다.
"아, 아빠..."
"그 날, 난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왜 그때 그냥 죽여주지 않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술만 쳐먹고 살았어."
부축을 받아 절뚝이며 걸어오는 뢰프. 하지만 그 목소리는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 너희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나를 죽이지 않으신 건 주의 뜻이 있어서라는 걸 알았다. 쟁의권? 웃기지 말라고 해. 나는 내 좆대로 할 권리가 있다! 이건 빼앗아갈 수 없는 권리야! 그러다 심장이 터져 죽는다면 나는 오히려 바라는 바다!"
뢰프는 술 취한 가운데서도, 세 사람의 논의를 전부 엿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나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뢰프에게 달려가 안기는 이리나. 드미트리는 이 뜻밖의 혁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잠시 망연해 있었다.
그리고 그 독사같은 혓바닥은 또 의심과 분란의 소지를 찾아냈다.
"흠, 이제야 알겠군요. 이게 단순한 도박장 부수기가 아니라는 걸. 그럼 당신들은 이 여자에게 이제부터 돈을 맡기고, 이 여자가 도박장의 돈을 전부 빼앗아 나눠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글쎄요?"
빙글빙글 웃으며 다나를 가리키는 드미트리.
"당신들은 도박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급의 가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의 전 재산을 걸고 도박장에서 돈을 따낸 다음, 이 여자와 저 여자가 달아나버리면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래도 맡기겠습니까? 저 여자는 제가 볼 땐 아주 교활한 여자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겠다!"
우렁차게 대답하는 뢰프. 의심이 자라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우직하게 선언한다.
"술에 썩어 있어도, 나는 사람 보는 눈은 살아있다. 저 여자는 착한 여자야."
뢰프는 다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선언했다. 림은 뻔히 다나를 쳐다보았다. 다나의 어깨는 어째서인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떨리고 있었다.
"신용의 기본은 서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믿지 않고, 너도 나를 믿지 않는다는 기초 공리 위에 화폐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순진한 생각은 과연 농부답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괜찮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뢰프의 그 리더십은, 방금 전까지 심장이 터지는 형벌 때문에 고민하던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그들은 다나의 앞에 가져온 돈을 잔뜩 쌓아놓았다. 다나는 울먹이며 그 돈을 하나하나 세서 지배인의 앞에 밀어놓았다.
"전부, 해서, 1337루덴입니다. 전부, 저 여자한테 걸겠습니다."
여기서 아이가 또 승리하게 되면, 도박장이 지급해야 하는 돈은 수수료를 제하고도 33000루덴. 합계, 12만 루덴. 여기서 아이가 승리하면, 도박장의 파산은 확정이었다. 도박장을 파산시킨 자에게 조디악은 전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레버넌트로 만들어준다면 오히려 자비로운 형벌일 것이다. 지배인은 덜덜 떨며 드미트리에게 달라붙었다.
"총, 총지배인님,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드미트리는 머리카락을 긁적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방식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군요. 나오세요."
짝짝, 박수를 치는 드미트리. 그러자 천장에서 갑자기 시꺼먼 무언가가 떨어졌다. 아이가 검을 짚고 서서 가만히 기다리는 검투장으로였다. 그 떨어진 자는 시꺼멓게 옻칠한 멧돼지의 두개골을 뒤집어쓰고, 두 개의 단검을 쌍수에 들고 있었다.
"두냐의 암살자!"
"멧, 멧돼지면, 4위계의 암살자다!"
드미트리는 빙긋이 웃으며 저것을 가리키며 선언했다.
"마지막 세 번째의 대전 상대는, 제 호위로 붙어 있는 두냐의 암살자가 대신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자, 그럼 승부를 시작해 볼까요?"
다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