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별이 되고 싶은 소망 ( 2 )
베들렘. 그는 8년 전 있었던 일화 때문에 유명해졌다.
"두냐를 섬기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자기 위계에 따라 맞는 짐승을 섬기도록 인도되는 걸 보셨죠? 4위계는 멧돼지, 5위계는 불사조, 6위계는 호랑이, 7위계는 검은 뱀. 이런 식으로 바뀌는데요, 아주 가끔 예외가 있어요."
다나는 차를 홀짝이고 말한다.
"그 일곱 짐승 중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는 짐승을 섬기도록 인도받는 사람이."
"예?"
"그러니까 다른 모두와 공유하는 짐승 신앙 대신, 자신만이 섬길 짐승을 두냐에게 배정받는 거에요. 아주 드물지만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는, 한 위계 전체에 나누어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혼자 독점하기 때문에, 상식을 초월하는 힘을 얻게 돼요."
반쯤 아나테마나 다름없다, 그렇게 설명하던 마레의 말이 떠올랐다. 다나는 또 한 모금 홀짝이며 말한다.
"그런 자들을 베들렘(Bedlam)이라고 부릅니다. 아수라장을 만드는 자, 그런 뜻이라고 들었어요."
"그럼, 두냐의 검은 개라는 건..."
"이번 대의 베들렘이죠. 이번 대의 베들렘은 검은 개를 그 섬기는 짐승으로 배정받았다고 해요. 베들렘은 한 시대에 단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 이상이 되면 두냐가 부여하는 마력 중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서, 전체의 힘을 깎아먹기 때문에, 그들이 알아서 더 약한 쪽을 죽여버리고 한 명만 남기거든요."
잔혹한 손속이었다. 말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짐승처럼 으르렁대던 그 암살자가 떠오른다. 아이는 속이 거북해졌다. 다나는 불을 쬐며 조용히 말했다.
"그 놈들은 두냐의 비밀 병기 취급을 받습니다. 모든 게 베일 속에 숨겨져 있죠. 그리고 아주 중요한 싸움이 있을 때에만 나선다나."
"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유명해진 거에요?"
"이례적으로, 이번엔 엄청나게 유명해질 계기가 있었거든요."
8년 전.
두냐는 카나기와 숲 하나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다툼이 격화되자, 서로 인명피해는 그만 일으키고 파계 율사를 낀 결투 재판으로 승부를 정하자는 제안이 카나기 쪽에서 나왔다. 한 명씩 대표를 정해, 결투를 벌이고, 이긴 쪽이 숲을 차지하기로. 두냐는 망설이다 그 제안에 승낙했으나 조건을 걸었다.
이런 일로 서로 고귀한 피를 흘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 서로 5위계 이상은 내지 않도록 하자. 우리도 불사조를 내지 않을 테니, 그쪽도 용군단의 용 기수 같은 것은 내지 말아라.
그런 조건이었다. 카나기는 흔쾌히 승낙했다. 결투 당일, 카나기 측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4위계의 무반을 내보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두냐의 대표는 너무 특이했다.
두냐는 대표로 작달막한 어린아이를 내세웠다. 입에 괴상한 악기처럼 생긴 무기를 물고 있는 그 꼬마를 보고, 카나기의 무반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에는 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여덟 살의 꼬마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4위계의 무반을 몰아세우고 그 목젖에 단검을 찔러넣어 절명시킨 것이다. 무반은 그 꼬마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입에 물고 있는 기형의 무기를 심장에 꽂아넣어 확인사살을 마친 그 두냐의 꼬마는, 때마침 휘영청 떠 있는 달을 보고 울음을 내질렀다. 그 몸 주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른 기운은 검은 개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여덟 살에 4위계를 죽였다구요?"
"예. 방심했던 거죠. 지금까지 베들렘들은 다 열다섯 살은 되고 나서야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지금까지 두냐 천 년의 역사상, 가장 최연소로 활동을 시작한 베들렘입니다."
"그, 그 다음에는요?"
"그리고는 행적이 묘연해졌어요. 그래서 그 녀석의 자세한 신상명세는 아무도 모릅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아무것도 몰라요. 다만, 여덟 살에 벌써 베들렘으로서 각성을 마쳤고, 4위계를 죽일 만큼 강했다는 것만 알 뿐이죠. 어머, 그러고보니 당신과 동갑이네요?"
여덟 살에 4위계를 이기다니, 정상적인 범주의 강함이 아니었다. 아이는 입술을 씹었다. 마레가 처음에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근데 내가 볼 땐 당신이 더 대단한 것 같은데요. 혹시 그 검은 개라는 게, 아이 씨 아니에요?"
아이의 볼을 꾹꾹 누르면서 말하는 다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다나도 웃으면서 아이의 볼에서 손을 뗐다.
"농담이에요. 음, 당신한테 무슨 동물이 별명으로 붙는다면, 흰 토끼나 실험쥐. 뭐 이런 게 붙겠죠."
그렇게 환담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나가 고양이의 비명 같은 이상한 기합을 내지르며, 겨드랑이가 훤히 드러나도록 기지개를 킨 뒤 잠을 청하러 갈 무렵. 누군가가 수풀을 헤치며 정신없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성, 성녀님, 쿨럭."
아는 얼굴이었다. 낮에 보았던, 그 가짜 마술사다. 다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돌아섰다가,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꺄악!"
"살, 살려주십시오. 저, 저 말고, 쿠웨엑!"
노란 토사물을 쏟아내는 마술사. 토사물 사이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그럴 법했다. 그는 지금 배를 갈려, 창자를 쏟아낸 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내장 근처에선 파리가 맴돌며 말단은 보랏빛으로 썩어 있다. 이미 이 자의 몸은, 죽어 있었다.
아지프의 실험실에서 오래 있었던 아이는 지금 이게 무슨 상태인지 알았다. 불사의 저주를 거는 시약. 몸의 일부를 망자화해서, 잠시나마 삶을 더 억지로 연장하는 시약. 그것을 사용한 실험체가 딱 이런 상태였다.
"죄, 죄 없는 제 고향 사람들을, 쿨럭, 구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죠?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하세요."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한 아이는, 가짜 마술사를 눕히고 머리를 받치며 말을 종용했다. 아지프의 마탑에서 조수로 있었다고 했던가, 아마 이 자는 그 불사의 저주를 거는 시약을 챙겨두고 있다가, 자기 자신에게 다급히 사용한 모양이었다.
"마술사... 무법을 저지르고, 쿨럭, 여기로 도망친 마술사가, 우리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커훼엑!"
"진정해요!"
"이,이미, 동생은 죽었... 습. 나도 죽은 줄 알고 있을 때, 약을 마시고, 두 분을 찾아왔습니다. 구, 구해..."
아이가 건넸던 말. 마술사를 사냥하는 전문가라는 말을 기억하고, 이렇게 내장을 흘리면서도 두 사람을 찾아 헤맨 끝에 여기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고향 사람들을 구해달라는 일념 하나로. 어쩌면 그때 했던 소리는 그저 변명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부탁은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만 힘을 내서, 정보를 전해 주세요. 어떤 마술사가 습격한 건가요? 수는? 종파는?"
가짜 마술사의 몸을 뒤흔들며 다급히 말하는 아이. 그러나 이미 한계를 초월해 혹사당한 그의 몸은, 그 부탁을 유언으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푸르딩딩한 그의 눈을 편안히 감겨주었다.
"가죠!"
아이는 환도를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난다. 잠에서 깨어난 레오가 컹컹대며 그 뒤를 따랐다. 다나 역시, 힘없이 그 뒤를 졸졸 쫓아 달려갔다.
*
반나절 만에, 마을은 초토화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망연해서 중얼거리는 다나. 이 마을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셈이었는지, 마을의 외곽에 불을 놓았다. 외곽에서부터 밀려들며 마을 전체를 태워버릴 듯 달려드는 불꽃. 무너지는 서까래, 벽돌.
"어떤 놈이야."
분노로 중얼거리며, 다나의 손을 잡아끌고 불타는 마을을 헤매는 아이. 곧 그 범인이 될 만한 자를 발견했다. 진회색의 로브를 입고, 세 개의 매듭이 달린 허리끈을 차고 있으며, 입에는 푸른 립스틱을 바른 장발의 여자였다.
"아! 정말, 이렇게 간단한 일만 하면 천오백 루덴을 준다고? 좆같은 교수 새끼 좆을 몇 번을 빨아야 벌 수 있는 돈이야?"
째진 웃음을 흘리는 그녀. 그녀의 옆에 개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물어뜯으려 했으나, 허공을 깨물고 쓰러진다. 목줄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슬 때문에 이 화마가 덮쳐오는데도 이 마을에서 달아날 수 없는 개였다.
"이런, 이 개새끼는 뭐야."
그녀는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 개에게 다가가더니 머리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무언가 주문을 읊조린다.
후웅!
그 개의 밑바닥에 검은 구멍이 열리고, 척추뼈를 모아 만든 듯한 골탑이 솟아오른다. 그 골탑은 개를 빈틈없이 감싸더니, 그 피를 짜내 여자의 손에 어리게 만들었다.
"혈염포."
콰앙! 그 여자의 손에 어린 빛무리가 원기둥을 그리며 터져나간다. 그것은 마을의 한가운데에서, 화마에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버티던 풍차를 무너뜨렸다. 그녀는 또다시 째진 웃음을 내질렀다.
"버러지 같아! 다 장난감 병정 같다고! 제국에서 벗어나니까, 3위계 조무래기였던 나도 엄청 대마술사라도 된 거 같잖아? 아하하하하! 아지프시여, 내가 볼 때 내 주제로 당신의 뜻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곳은 이곳입니다!"
그 골탑은 아이가 익히 아는 탑이었다. 환골탑. 이 마을을 덮친 것은, 일탈을 원해 마탑에서 도망친 무법자 아지프 마술사였다. 그녀는 그렇게 앙천광소를 마치고 박수를 쳤다.
그러자 사방에서 뼈와 검게 찐덕이는 점액으로 만들어진 병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낮까지만 하더라도 이 마을의 주민이었던 이들이었다. 그녀는 인골귀(人骨鬼)들을 사열시키더니,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자, 백 명 모아서 대장한테 오랬는데, 몇 놈이나 만들었나 보자. 하나, 둘..."
아이는 건물 뒤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의뢰주, 천오백 루덴, 그리고 대장이라. 뭔가 계획의 일부로군."
마레에게서 배운 추론의 기술이었다. 저 놈은, 절대로 편하게 죽게 하지 않겠어. 아이는 그렇게 결심하고, 조용히 몸을 숨긴 벽의 바깥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아끄는 떨리는 손이 있었다.
"가, 가지 마요. 도망쳐요."
다나였다. 환골탑이 나타날 때부터, 미친 듯이 이를 떨면서 자리에 주저앉은 다나. 그녀의 눈은 공포로 하얗게 풀려 있었다. 아이도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한 마디 중얼거린다.
"왜 그래요? 저놈은 제가 얼마 전에 잡았던 놈보다 약한 녀석인데."
"아니야, 주인님은 못 이겨요. 못 이긴단 말이에요. 주인님,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머리를 감싸 쥐고 덜덜 떠는 다나. 그녀는 지금 저 모여 있는 해골이, 그리고 환골탑이, 죽음보다도 더 두려운 것처럼 보였다. 탁 풀린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그녀는 갑자기 아이를 꽉 끌어안더니 속삭였다.
"도망쳐요, 제발, 무서워. 너무 무섭단 말이야..."
"진정, 진정해요. 그럼 여기서 기다리세요."
아이는 그걸 힘있게 포옹해주곤, 번쩍 들어 벽 구석에 앉혔다. 다나는 그럼에도 엄지손가락 끝을 깨물고, 덜덜 떨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어라?"
인골귀의 수를 사십까지 헤아리던 아지프의 마도사는,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하얀 검사를 보고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뭐니? 아, 여기 네 친구들이랑 같은 꼴이 되고 싶어서 기어 나온 거니?"
피식 웃는 마술사. 그 파랗게 칠한 립스틱이, 불의 열기에 녹아 번들거린다. 아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 여자를 노려보았다. 명백한 적의였다. 아지프의 마술사는 핥는 듯한 눈으로 아이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더니, 그 얼굴을 보고 입술을 핥았다.
"흐으음. 보니까 허우대나 가죽이나 그냥 바로 뼈만 남기고 벗겨버리기엔 아까운데. 결정했다. 너는 박제해서 장난감으로 쓰다 썩으면 버려야겠다."
그리고 손을 번쩍 들어, 인골귀들이 아이에게 돌진하게 시킨다.
"레바테인!"
다음 순간, 아이의 손에서 은백색 검날이 솟아나고, 그 대검은 단 한 번의 참격으로 스물이 넘는 인골귀를 깨부쉈다.
쫘자작!
비산하는 뼛조각. 여유만만하던 마술사의 눈이 당혹으로 물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