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별이 되고 싶은 소망 ( 6 )
"천사님, 아,아까, 허리를 많이 다치셨던데..."
"여기 약입니다. 붕대입니다!"
전과를 치하할 새도 없이 달려드는 걱정. 하지만 아이는 손을 내뻗어 만류했다. 이미 재생력 때문에 그런 얕은 상처들은 나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빨리 자신이 예측한 저들의 다음 행동을 전한다.
"저놈들, 이제는 진군을 시작할 겁니다. 마술사가 하나 죽었으니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그 놈이 지휘하던 인골귀가 부서질 거거든요."
예상대로였다. 아이의 뻔한 거짓 항복에 속아 그를 놓친 사실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4위계는, 모든 인골귀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새까맣게 변하는 들판. 검은 해일 같은 망자의 공세가 진지를 덮친다. 아이는 다시 칼을 쥐고 흉벽에 올라서기 전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방어에만, 무조건 살아남는 데에만 전념하세요. 알았죠?"
쿵! 그들이 흉벽에 도착한다. 검은 인골귀가 흉벽에 다다라 그 틈새에 발을 끼워 넣고 벽을 뛰어넘으려 들었다.
"어딜!"
"꺼져, 이 개뼈다귀 새끼들아!"
긴 자루를 가진 무기. 폴암과 파이크가, 그런 해골의 가슴을 찔러 밀어 떨어뜨린다. 사전에 3인 1조를 짜서 이렇게 행동하라고 아이가 명령해두었기 때문이었다. 구원군 덕분에 방어병의 숫자가 충분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 뒤에서는 아녀자들도, 어린아이와 노인들도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소모품으로 쓸 파이크와 죽창을 나르고 있다. 이 전략은 투입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일단 인골귀를 저지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끝장낼 수 없을 뿐.
인골귀는 그렇게 가슴을 찔리고도 부서지지 않아, 바닥에 널브러지고도 일어나 다시 벽을 향해 덮쳐온다. 그런 짓거리가 다섯 번쯤 반복되었을 때 드디어 패배하는 쪽이 나왔다. 민병 쪽이었다. 그다지 질이 좋지 못한 철로 만들어진 파이크가 부러져버린 것이다.
"아, 안돼!"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두 명의 힘은 너끈히 무시하고, 흉벽을 넘어 덮쳐드는 인골귀. 이를 딱딱거리며 검을 휘둘러 생명을 빼앗으려 든다. 그 부딪음은 자신과 같은 꼴로 만들어주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선언은 실행되지 못했다.
파악!
새빨갛게 빛무리가 어린 환도가 그 해골을 베어냈기 때문이었다. 아이였다. 그는 지금 흉벽 위를 뛰어다니며, 신기의 소모가 제일 적은 환도를 이용해 그렇게 벽을 넘으려는 인골귀를 처리하는 중이었다.
"아아, 천사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3대째가 라달라리아를 섬기는 집안인데 개종하겠습니다..."
"그런 찬사는 됐고! 빨리, 빨리 새 무기를 구해 오세요!"
다급히 말하고 다른 곳을 향해 뛰쳐나가는 아이. 그런 아이의 놀라운 활약 때문에, 아직까지도 마을 측에서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지만.
"제법 하는군. 뭐, 이게 전쟁만 아니었으면 우리가 졌을 수도 있겠어."
4위계의 마술사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 또 다른 이유. 그건 이 자가 지금 진심으로 공세를 지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골귀와 함께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명확했다.
그가 지금 지휘하는 공세의 목적은 벽을 넘어서는 게 아니라, 방어병력을 한 곳으로 뭉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효율적일 정도로 공세를 한 곳에 집중한 덕분에, 지금 벽의 한 지점에만 병사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포격. 포격으로 그들 모두를 끝장내기 위해서.
"자, 준비가 끝났다."
너희들은 지금 너희가 잘나서 살아남고, 그렇게 뭉쳐 견뎌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모든 건 내가 유도한 것이다.
4위계의 마술사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곤 바닥에 새겨둔 마법진에서 손을 뗐다. 가지고 있는 마법진 제조용 시약을 전부 들이부어서 만든 이 마법진에는, 위력 배증의 마법이 세 번 중첩해 들어가 있었다. 2의 3승은 8. 이 위에 올라타서 쏘는 혈염포는, 일반적인 혈염포에 비해 여덟 배 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었다.
그 옆에선 3위계의 마술사가 헥헥대고 있었다. 그 역시 마력을 써 이 마법진을 그리는 데 동참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진의 한중간에 올라선 4위계는, 품에서 뱀이 들어간 병을 꺼냈다. 그리고 제물용의 단도를 꺼내 뱀의 목을 찢는다.
"전부 물러서라!"
외침. 그와 동시에, 줄을 서 있던 인골귀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척 갈라져 옆으로 피한다. 지금부터 날아올 포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먼지가 되어라, 버러지들아!"
광소를 흘리며 주문을 완성하는 마술사. 그 손에서는,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혈염포보다도 거대한 혈염포가 원기둥을 그리며 빛이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공기조차 찢어버릴 듯한 거대한 포격이었다. 이제 이 포격은 저 원시인의 돌담 같은 벽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고, 그리고 그 시체는 나의 군세가 되어 이 마을을 끝장내겠지. 그게 이 마술사의 생각이었다.
그 포격은 부서졌다.
"응?"
경악하는 4위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포격이 노리는 흉벽 위에 서 있던 아이가, 그 포격을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예의 그 흰 대검을 꺼내더니, 흰 그림자를 남기는 일격으로 포격의 탄두를 후려쳤다. 그러자 포격은 마치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사방에, 그 포격의 마력의 잔향을 남기고.
참마의 대검 레바테인. 마력에게 형체를 주는 것은 마술. 그 마술을 깨부숴버리는 마술사 살해의 검이 이뤄낸 업적이었다.
여기까진 생각대로 됐다. 나머지는 환상 속에서 했던 대로만 하면 돼. 아이는 이를 악물고, 레바테인을 집어던지며, 젖먹던 힘을 쥐어 짜내 새로운 검을 청원했다.
"림, 유혼!"
츠츠츠, 그 손끝에서 대태도가 솟아오른다. 마력을 빨아들여, 검기의 탄환으로 발출하는 힘을 가진 대태도가. 아이는 유혼으로 막 부서진 포격이 흘린 마력을 전부 빨아들인다. 피먹은 듯 새빨갛게 변하는 유혼. 그리고, 있는 모든 힘을 담아 초승달처럼 유혼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혈염포가 발사될 때보다도 훨씬 거대한 폭음. 그 폭음이 전장을 덮친다. 아이는 방금, 레바테인으로 깨부순 포격을 유혼으로 흡수해 반월형으로 되받아친 것이었다. 검 두 개의 능력을 연계해 사용하는 고급 기술이다. 이는 원래 선주가 사용했던 기술을, 림이 귀띔해 알려준 것이다.
품고 있는 마력이 거의 5위계의 마력에 버금갈 정도로, 마술사의 심장을 많이 공양받은 두 검이었던 덕분에, 그 포격에도 부서지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반격을 이뤄낼 수 있었다.
"뭐, 뭐야!"
그 반월형으로 쏘아져 나간 검기는 전장의 모든 것을 깨부수며 전진했다. 옆으로 서 있던 두 줄의 인골귀 중, 한 줄을 전부 덮쳐 깨부수며 파죽지세로 달려든다.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멍청히 서 있던 3위계의 마술사였다. 그는 되받아친 일격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야 몸을 움직였고, 그 결과 반신이 검기에 휩쓸려 부서져 버렸다.
반으로 부서진 전장. 유혼의 검기가 지나간 길을 따라, 기다란 파인 자국이 남았다. 마치 세계를 둘로 절단해버린 듯한 일격이었다.
아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자신이 남긴 거대한 칼자국을 바라보았다. 정적.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이 계속되고, 그 정적은 환호성으로 깨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쳤다, 미쳤어, 신이 임하셨다!"
"기적이야, 기적! 정말로 천사가 내려오셨다!"
반응은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4위계의 마술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미친, 말도 안 돼, 이게 뭐야? 이딴 걸 어떻게 예상해? 이건 사기야!"
눈썹을 떠는 마술사. 그리고 그는 불현듯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이 사기가 아니라 계획했던 것임을.
소수의 암살자를 만나면 군세로 그들의 터전을 짓밟아 죽이고, 성벽과 군세를 만나면 포격으로 죽인다.
이것은 아지프의 교리였다. 적이 아지프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듯 성벽을 세우고 군세를 이루었기에, 자신 역시 아무 생각 없이 포격을 하겠노라고 나섰다.
그런데 그것이, 무지의 소산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아지프를 가장 잘 아는 자의 계략이었다면?
이렇게 포격을 역이용할 기술이 있기 때문에 포격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면?
그럼 진짜 바보는 자신이었다. 4위계의 마술사는 두려운 눈으로, 저 멀리에 오연히 서 있는 흰 머리의 검사를 바라보았다.
"생각대로 되어서 다행이야."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답하며, 림에게 중얼거렸다. 림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정말로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승전을 이루어내려는 모양이구나.'
원래 림은 유격전을 권했다. 마을의 터전을 잃게 되더라도, 여기 찾아온 마술사를 시간이 걸려서라도 하나하나 암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권유였다. 물론 유격전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희생이 뒤따른다. 그러나 약간의 희생이 있더라도, 그게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면서.
아이는 거절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지프를 상대하면서. 또 아지프 밑에서 전쟁을 하면서 그러모은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이 전략을 입안해내고, 이렇게 훌륭하게 이뤄내보인 것이다.
이 일격은 팽팽해 보였던 전장의 형세를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방심하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어. 자, 가자!"
그와 동시에 부탁한 말이 도착했다. 적병이 반으로 줄었다. 저 정도의 숫자라면, 포위당하기 전에 빠르게 달려가 저 4위계의 마술사를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말안장에 올라타 고삐를 움켜쥐고, 갈기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곧바로 마술사에게 달려갔다.
"미친, 안 돼, 반전할 전략, 뒤집을 방법은..."
두려움에 찬 눈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술사. 그의 눈에 반신이 부서져 신음하는 3위계의 마술사가 보였다. 그는 품에서 시약 하나를 꺼내 그에게 집어던졌다. 불사의 저주. 그것을 거는 시약이었다.
"시간을 끌어라! 살아남으면 내가 소생시켜 주겠다!"
"소,소생이요?"
"그래! 계속 불사의 저주를 걸어서 유지 시켜주다가, 조디악에게서 영약을 받아 소생시켜주마."
"알겠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그럴 재료도 그럴 의리도 없다. 그냥 이놈을 희생시킬 생각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속은 3위계의 마술사는, 엉거주춤 일어나 자신이 이끄는 인골귀의 군세를 모아서,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아이를 감싼다.
"윽, 뭐야, 이 자식. 안 죽었어?"
말에서 뛰어내려 4위계의 마술사를 덮치려다, 갑자기 나타난 방해꾼 때문에 당황하는 아이. 말의 등을 박차고 떨어지며 환도를 뽑아든다. 덮쳐오는 두 개의 인골귀의 검을 받아쳐 깨부수고, 4위계의 마술사를 노려보았다. 그와 그의 마골귀를 주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이는 내버려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망이 아니었다.
"이 자식, 어디 가는 거야!"
대답조차 하지 않고 달려나가는 마골귀. 그게 노리는 것은 흉벽이었다. 흉벽 너머의 나약한 병사들.
'시체, 일단 시체만 많이 만들면 역전할 수 있다.'
그게 4위계의 마술사가 가진 생각이었다. 흉벽 너머에는 무력한 인간이 가득하다. 이 마골귀로 일단 그들 중 백 명만 죽이고, 그 백 명으로 인골귀를 일으킨 다음 백 명을 늘리고, 그걸 반복하면서 다시 저놈을 붙들어매는 차륜전을 반복하면, 이길 수 있다. 그게 학살에 찌든 그의 뇌가 만들어낸 해답이었다.
그걸 눈치챈 아이는 3위계의 마술사를 내버려두고 다시 말에 올라타려 들었다. 그러나 말은 내장을 찔려 옆으로 쓰러진다.
"키히히히히, 못 가, 이 개새끼야!"
"이 자식이!"
유령처럼 웃으며 아이에게 달라붙는 3위계의 마술사. 다시 수십의 인골귀가 덮친다. 아이는 절박한 심정으로 레바테인을 불러 그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새에, 4위계는 이미 흉벽에 다다랐다.
"ㅡㅡㅡㅡㅡ!!"
손에 들고 있던 대들보를 내려찍는 마골귀. 흉벽은 버티지 못하고 부서진다.
"오, 오지 마!"
"막아! 막을 수 있어!"
우왕좌왕하며 마골귀 앞에 모여든 병사들. 거대한 마골귀 위에서 보니 그것들은 거의 벌레처럼 보였다. 일단 여기부터 쓸어버리면 되겠다. 4위계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대들보를 들어 올리게 시켰다. 경악한 병사들의 얼굴에 거대한 그림자가 어린다. 내려찍으면 개미처럼 부서지겠지.
"도, 도망쳐!"
"어딜."
포승의 저주를 사방에 전개하는 4위계의 마술사. 지름 5m의 원 반경 안의 모든 인간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들은 이제 가만히 대들보에 깔려 죽는 것을 기다려야 할 처지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대에게, 선고, 훌쩍, 한다!"
후드로 얼굴을 숨기고, 연신 돌과 물 그리고 죽창을 나르던 아녀자. 그 여자에게서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사시나무처럼 온 몸을 떨고 있는 여자였다.
"응?"
그 주문에 놀란 4위계는 번쩍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울고 있는 여자였다.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분홍색 머리의 여자. 공포로 눈물이 터진 듯 보인다.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또박또박 무언가를 읊고 있었다.
이때를 위해 법을 배워온 듯이.
"그대에게 선고한다!"
"뭐야? 율사 나부랭이 흉내를 내는 거냐?"
"그대는 지금 살인의 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그 회복조차 도모할 수 없는 영겁 속에 쳐넣는 중한 범죄를 행하였으며 그것을 질서의 회복을 바라는 율사의 앞에 드러냈으니, 그 사지를 포박당해 쓰러지는 벌이 합당하다!"
"뭐야!"
떨리면서도 치켜든 그 손가락 끝에서, 금색의 문자열이 튀어나와 4위계의 마술사를 감싼다. 방어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설마 이런 허름한 차림으로 율사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식을 전개하지 않아 사지를 묶이고 말았다.
"이런, 좆같은, 개같은 년아!"
마골귀 밑으로 형편없이 떨어지고 마는 4위계의 마술사. 그는 분홍 머리의 율사를 보고 흉악하게 소리 질렀다.
그 율사는 다나였다. 아이와 그렇게 헤어진 이후, 그녀는 매일 밤 악몽을 꿨다. 어렸을 적의 8호와, 꽃밭에서 함께 뛰노는 악몽.
화관을 선물 받고, 누나는 똑똑해, 누나는 착해. 그런 말을 하며 자신을 뒤따라오는 8호를 보여주는 악몽이었다. 그 따스할 수 있었던 기억이 지금의 17호에게는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꿈이 되어 가슴을 찔러댔다. 그 악몽의 마지막은, 싸늘한 말을 남기고 떠난 아이의 뒷모습으로 끝났다.
웨스벤으로 힘없이 터덜터덜 움직이던 그녀는, 결국 그 악몽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왔던 것이다. 얼굴을 보이면 죽인다고 했으므로, 이렇게 신분을 숨기고 작게나마 마을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이 개씨발년, 네년은 실험실에 쳐넣고 강간당하다 죽게 만들어버리겠다!"
악으로 저주를 내지르는 아지프의 마술사. 그 말을 들은 다나는 사시나무처럼 떨며 비명을 지르면서도, 이번엔 트라우마에 말려들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을 지시한다.
"지금이에요! 지금, 지금 이 자식을 죽여야 해요!"
포박의 저주는 풀렸다. 민병은 그 명령에 따라, 각종 병장기를 쳐들고 쓰러진 마술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익, 이거 뭐야! 왜, 왜 안 들어가!"
그리고 절망한다. 4위계 이상의 마술사를 감싸고 있는 마술방벽, 그것을 뚫기 위해서는 아주 고질량의 물건을 강한 검사가 내려찍거나, 또는 신기를 이용해야 한다. 고작 민병 따위가 그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허공에서 검은 방벽에 붙잡혀 멈추는 병장기들.
4위계의 마술사는 비릿하게 웃으며, 천천히 자신을 감싸고 있는 주문을 해주했다. 얼음처럼 녹아내리는 금색의 문자열들.
"히이익!"
사람들은 놀라 도망친다. 4위계의 마술사는 일어서 사방을 오시하더니, 마골귀 위로 올라탄다. 그 눈이 노려볼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이 개같은 년, 너부터 육포로 만들어주지."
다나는 덜덜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골귀가 들고 있는 대들보가 하늘로 향하고, 다나가 머리를 웅크리고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레바테인!"
지난 사흘동안. 자신이 너무나 그리워했던,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고막을 가득 점했다. 다나는 눈물로 뿌예진 시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3위계의 마술사를 뿌리치고 돌아온 아이가, 거대한 쯔바이핸더를 들고 뼈로 이루어진 거인에 맞서 당당히 싸움을 하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
비껴 벤 일섬. 그것에 거인은 팔을 잃고 울부짖는다. 아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어깨를 밟고 뛰어가 그 머리에 앉아 있는 마술사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 개자식, 넌 뭐야! 넌 뭐하는 괴물이야!"
경악해 소리 지르는 4위계. 그의 상식으로는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사실상 이 자는, 혼자서 천 명 분의 군대를 무찌른 거나 다름없었다. 이 정도면 5위계 이상 급 아닌가? 그게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그런 경악을 담은 비명이었다. 아이는 피식 웃으며, 미제리코드를 꺼내 그의 심장에 꽂아 박으며 중얼거렸다.
"인간이다."
화르륵! 불길이 치솟으며, 마술사의 심장이 공양된다. 그와 동시에, 마골귀를 지탱하던 마력이 끊기고, 마골귀는 천천히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쿵! 굉음, 솟아오르는 먼지.
그 먼지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이였다. 뺨에서는 한 줄기 피를 흘리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천천히 노란 먼지 바깥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그 손에는 레바테인이 들려 있었다.
그는 직진하고 있었다. 다나를 향해.
다음에 볼 때는 적입니다. 그 말이 다나의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한낮의 빛을 받은 검이 번뜩인다. 그 검은 피와 쇠를 번뜩이며 자신에게로 아지랑이처럼 접근해온다. 아, 그런 건가. 이런 짓 따위를 했다고 용서할 순 없겠지. 다나는 체념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슴 가득 퍼져오는 따뜻함 때문에 눈을 떴다.
"어?"
자신 앞에 다가온 아이는, 레바테인을 내버리고, 자신을 일으켜 가슴과 가슴으로 꽉 포옹해 주었던 것이다.
"잘 돌아왔어요, 성녀님."
이번엔 조롱도, 농담조도 아니었다. 다나의 귓가를 점하는 조용한 음성. 이미 눈물로 범벅이었던 눈시울이 무너져내리며, 아기처럼 엉엉 울며 아이의 품에 매달렸다.
주변에서는 웃음과 환성이 쏟아진다. 박수도, 부러움과 질시를 섞은 휘파람도 있었다. 아이는 그 모든 것을 귀로 들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서는 어떤 때보다도 밝은 햇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는 잠시 생각했다. 아마 저 햇빛 옆에선 별도 빛나고 있겠지. 다만, 햇빛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패애앵!"
"아니, 멋대로 남의 옷에 코 풀면 안 돼요. 모양 빠지잖아요."
다나는 그제서야 쑥스러운듯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숨겼다.
전투는 그렇게 한 편의 동화처럼 끝이 났다.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