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별이 되고 싶은 소망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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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없이도 별빛으로 환한 밤. 모닥불이 꺼지고 사람들은 귀가한다. 빈 들판엔 풀벌레만 남아, 쏟아지는 별빛의 끝자락에 앉은 채 외로이 울어댈 뿐이었다.
축제는 막을 내렸다.
승전을 축하하는 축제였다. 원래부터 잔치를 여는 기술이 있었던 이 마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러모은 원군들을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또 돼지 여럿이 모닥불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구워지고, 처녀들은 노래를 부르며 청년들은 씨름을 했다. 그 중심에는 다나와 아이가 있었다. 곤혹스러울 정도의 즐거운 관심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어이, 율사님한테 그런 독한 술 줘서 되겠어? 물 탄 백포도주나 가져와!"
다나에게 술을 권하는 수염 난 남자가 있었다. 반은 장난, 반은 진심으로, 그를 말리는 사람들. 그 잔에는 연노랑 거품이 보글보글 이는 독한 흑맥주가 들어 있다. 하지만 다나는 씩 웃으며 그 잔의 손잡이를 잡아채고 선언했다.
"그래요? 이게 그렇게 독하다고? 그럼 내기할래요?"
"허허, 무슨 내기 말입니까?"
"한 번에 다 마시면 1루덴, 못 마시면 내가 낼게요."
당돌한 다나의 말에 넘어가 고개를 끄덕이는 턱수염. 다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놀라움의 탄사가 터졌다. 사실은 거의 절반은 가슴께로 흘리고 있었지만, 워낙 호쾌하게 들이켰기 때문에 그걸 지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텅! 빈 잔을 내려놓고 입을 닦는 다나. 그러자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나는 짐짓 취한 척 딸꾹질을 하며 말했다.
"자, 딸꾹, 이겼죠? 1루덴 내놔!"
"아이고, 율사님, 옷이 다 젖었습니다!"
"취했네 취했어, 데려가!"
황급히 수건을 들고 달려드는 아주머니. 1루덴 동전을 쥐고 헤실헤실 웃는 다나를 붙잡아 옷을 갈아입히러 끌고 나간다. 다나는 그 술 한잔으로 어지러워진 척 이마를 짚는다. 훌륭한 술자리 이탈 전략이었다.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워 취한 척 자리를 피하는 것.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던 듯했다.
다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아이 차례였다. 무수한 술잔과 손이 아이에게 날아든다. 아이에겐 다나의 것 같은, 그런 능숙한 처세술은 없었다. 그저 진귀한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쑥스럽게 웃으며, 주는 대로 술을 전부 받아먹고 질문에 전부 대답하고 말을 들어주다 이렇게 술자리가 파한 뒤에야 자유를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풀려난 하얀 검사가 향한 곳은 들판이었다. 별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탁 트인 장소.
이 마을은 유난히 밝은 성운 아래에 세워졌다. 기왕 이 마을에 들린 김에, 아이는 마레와 함께 보았던 이 별하늘을 다시 감상하기로 결심했다. 조용히 움직이는 하얀 발걸음. 그가 다가옴에 따라 풀벌레는 울음을 죽이고 몸을 숨긴다.
아이는 은색으로 잎을 반짝이는 거문비나무 옆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읽었던 책을 떠올리면서.
그 때였다.
"여기 있었군요."
하늘을 감상하던 아이의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성의 것. 다나였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가, 깜짝 놀라서 얼굴을 돌렸다. 아까 율사복이 술에 젖었기 때문일까, 이 마을의 여자들이 농사일을 할 때 입는 옷감 적게 쓴 옷을 입고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가슴과 하반신 일부만을 가리고 다리와 배를 훤히 드러낸 옷이었다. 새하얀 배꼽까지 드러난 것이, 춥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다나는 그렇게 걸어와서는 아이의 옆에 앉았다. 아이는 얼떨결에 묻는다.
"추, 춥지 않아요?"
"추워요. 그래서 좀 붙어 있을게요."
아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다나. 따스한 체온이 어깨로 확 번졌다.
"그렇게 풀에 닿아 있으면, 벌레한테 물려서 내일 가려울 거에요."
"어머? 그럼 더 붙어 있어야겠네요."
속수무책이었다. 다나는 이제 아예 아이의 무릎을 베고 드러누웠다. 머리의 꽃도 뽑고, 묶은 것도 풀어, 긴 분홍색 생머리가 담요처럼 무릎을 덮는다. 드러누운 시야에 담기는 것은 하늘. 손을 뻗어 문지르면 까만빛이 손에 묻어날 듯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그렇게 유난히 환한 이 마을의 별 밤을 한참이나 감상했다.
"성명서 400장, 이제 다 모았어요."
머리에 꽂혀 있던 수국의 꽃잎을 만지작거리다, 툭 중얼거리는 다나. 그 말대로였다. 두 사람에게 큰 은혜를 입은 이 마을의 사람들은, 앞다투어 성명서에 서명하겠노라고 나섰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아흔 장의 성명서에 남아 있던 공란은 전부 찼다.
"그럼 이제 함께 웨스벤으로 돌아가야 하겠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저는 제도로, 당신은 그 기나센으로. 헤어지게 될 거에요. 당신에겐 거기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함께 다닐 때, 아이는 간략하게 자신의 상황과 배경을 설명해주었다. 핵심적인 부분은 숨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고 자신이 마술사를 싫어하게 된 이유도 몇 마디 들려주었다. 다나는 그것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마 그다음에는 평생 서로 만날 일이 없겠죠."
뒤척, 고개를 돌려 옆으로 돌아누우며 말한다. 얄포롬하게 등뼈가 들어간 자국, 그 살거죽, 자그마한 어깨와 목덜미가 보인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아이는 눈썹을 살짝 늘어뜨리고 그 말을 들었다.
"아마 저는 그 성명서랑, 델로른에서 쌓은 공적을 이용해서 좋은 스승 겸 후원자를 찾으러 갈 거고... 그리고, 아마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 당하거나, 어디 부잣집에 팔려가듯 결혼하겠죠. 그리고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그렇게 남은 여생 내내 다른 남자의 것이 되어서... 평생 제도의 한 거리. 법원이 있는 거리에서 갇혀 살다 죽게 될 거에요."
계속해서 들려오는 담담한, 그러나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아파져 오는 예상.
"그리고 그때쯤 되면 잊어버리겠죠. 여기서 당신과 함께 있었던 2개월도, 오늘 밤도, 전부 다."
"그런가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당신은 안 그런가요?"
갑자기 홱 돌아선다. 그 녹색 눈망울은 이슬을 한껏 머금은 풀잎처럼 촉촉히 젖어 있었다. 얇은 입술이 무언가를 얘기한다. 유혹을.
"그러니 평생 잊어버리지 않게, 서로 첫 추억을 나눠 가지는 건 어때요...?"
"예?"
멍청히 중얼거리는 아이. 하지만 다나는 이 정도면 전달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아이의 얼굴을 붙잡고 입술 박치기를 하려고 들었다.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는 아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다나는 또 볼품없이 땅바닥에 뒤통수를 박고 말았다. 비명.
"아얏! 아, 진짜!"
지금까지 가식적으로 내던 여성적인 목소리를 내던지고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소리친다.
"당신 진짜 고자예요? 이쯤 했으면 그냥 좀 덮쳐주면 안 되냐고요!"
"덮, 덮치다니."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요? 아니 못생겼어도 일단 이쯤 애원하면 안아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이쯤 되면 수치스러운데 진짜!"
길길이 날뛰는 다나.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음, 그런 겁니다. 그런 건 말이죠, 평생 통틀어서 이 사람을 가장 사랑할 것 같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결혼하고 책임질 자신이 있을 때에만 하는 거라고 그랬어요."
그 너무나도 때 묻지 않은 말에 다나는 피식 웃더니, 다시 아이의 무릎을 베개 삼아 퍽 드러누웠다. 자기가 맡아두기라도 한 양 당당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그럼 난 죽을 때까지 못하겠네."
"예?"
"아까 한 말, 전부 거짓말이에요. 난 결혼 안 할 거거든요. 아니, 못 한다는 말이 맞겠죠."
잠시 망설이다 덧붙인다. 진심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나한텐 누군가의 아내가 될 자격도, 엄마가 될 자격도 없으니까."
아까 했던 말보다도 더욱 어두운, 슬픈 자기성취적 예언이었다. 아이는 그 체념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잠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다나는 계속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그냥, 이대로 제도에 돌아가면, 평생 법원에서 적당히 판관이나 하면서 살다가... 은퇴하면 적당한 시골 마을의 교장이 되어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다 혼자서 조용히 죽고 싶어요."
"왜 그런..."
다나는 뭔가 결심한 듯한, 그럼에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기숙사에 머무르던 사람 중, 부모님이 없는 건 저 하나뿐이었어요. 그래서 방학만 되면 저를 빼고 전부 집으로 돌아갔죠. 저 혼자 수백 개의 텅 빈 방과 함께 기숙사 건물에 홀로 남아서 방학을 보냈고."
이번에 그 입에서 나온 것은 추억이었다.
"여름에는 그래도 문제없었는데, 겨울에는 그것 때문에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난방을 해 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디서 버려진 난로를 주워다... 문집이며, 필기 노트며, 그런 추억이 될 법한 것들도 전부 땔감으로 때려 박고 희미한 불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덜덜 떨다가 어느새 잠들고. 그런, 겨울밤을 지새우는, 그런 게 제 삶이었던 거 같아요."
추억을 자신의 손으로 불태웠던 추억.
"그럼 죽음도 정해져 있는 거죠. 추위와 외로움에 떨다가, 본인도 모르는 새에 혼자 조용히 잠드는, 그렇게 죽고 싶어요."
아이는 갑자기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며 묻는다.
"제가 방금 당신에게, 음, 뭔가 큰 상처를 주는 말을 했나요? 갑자기 왜 그렇게..."
"아니오. 항상 생각해왔던 겁니다. 아니, 아닌가, 이건 나 같은 인간한테 너무 편안한 죽음이겠죠."
그녀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아이를 등지고 앉은 채로 엉덩이를 움직여 아이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담배였다.
"어, 어, 당신..."
"젠장. 마지막으로 아다 정돈 떼고 가고 싶었는데."
다나는 담뱃불을 붙여 입으로 담배를 가져간다. 아이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당신 담배도 피웠었어요?"
"예. 열네 살부터 폈죠. 당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안 피는 척했어요. 사실 제 폐는 이미 개씹창나있답니다?"
"그,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치는 아이를 보고, 배를 잡고 웃는다. 그리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여, 향을 피우듯 연기를 별 하늘로 올려보낸다.
"미안해요. 이딴 여자라서. 그런데 어쩌겠어요, 안 피면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는데."
"그런..."
그녀는 하늘로 퍼져나가는 잿빛 연기를 바라보며, 흠향하듯 그 향기를 들이키곤 말을 이어갔다.
"뭘 그렇게 악을 쓰면서 살았을까요."
그 말의 내용은 자조. 폐에서 쥐어 짜낸 듯한 자조였다.
"어차피 살아봤자, 좋은 일도 하나도 없는데."
언젠가 자신이 했던 말. 그것과 거의 같은 말이다. 아이는 멍하니 자신이 들었던 말로 대답했다.
"그런 사람은 없어요."
"있다니까요. 당신 눈앞에 있잖아요. 나 스스로는 살 이유도 살아갈 희망도 없는데, 다리 한 쪽이 만신창이로 부서져서 혼자서는 걷기는커녕 설 수도 없는데... 부모님이 주신 이유가 어깨를 붙들어서... 억지로 부축받아서 걷는, 나는 그런 걸어 다니는 시체입니다. 그러니 부디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주시기를."
담뱃불을 지져 끄고 내던진다. 흩날리는 검은 잿가루.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아이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너무 아파서, 그냥 주저앉고 싶은데, 쉴 자리를 찾지 못해서 못 쉬고 있었어요."
눈을 감고. 선언한다.
"이제 그만 쉬고 싶습니다."
침묵. 적막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고,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아이만이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놀라 눈썹을 떨 뿐이었다. 다나의 목소리가 그 고요를 깼다.
"본 검사는, 피고 다나 아니스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 판결을 부탁합니다."
"갑자기 무슨..."
"저는 제 동생을 죽였어요."
"그 얘기는 이미 했잖아요?"
그 말을 듣자, 그녀는 격렬하게 고개를 젓고 다시 무릎에 머리를 뉘이며 말한다.
"아니오. 그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란 말입니다. 저는, 이 추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착하고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저를 따르던 동생을... 이 손으로, 죽였습니다. 아주 잔혹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아연한 아이. 림이 했던 말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 그렇게까지 저항하는 것도 너답다만, 하나만 알려주마. 이 여자는 이미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 그건 결코 정당방위 따위가 아니었다. 이제 이 여자에 대한 환상이 좀 사라졌나?
다나는 덤덤하게, 그 선고를 이어간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선고하는 것처럼 무감정한 어조였다.
"아무리 되새겨보아도, 이 자에게는 사형이 적합합니다. 그 아지프의 여마술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혹, 사형을 집행한다면, 마지막 자비로 장례만은 율사의 법복을 입혀 치러주십시오."
하얀 배가 드러난다. 그 몸은, 평온한 척하나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이토록 옷감이 적은 옷을 입고 온 이유, 원래의 율사복을 일부러 벗어두고 온 이유. 전부 그것이었다.
동생과 너무도 닮은 남자를 또 한 번 배신하고 도망쳐 악몽에 시달리던 다나. 그녀가 이곳에 돌아온 이유는, 속죄만은 아니었다.
고해.
그리고, 자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