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61화 (61/279)

12. An inquiry into the nature ( 1 )

고행의 순례를 명받고 파견된 1위계의 율사.

호즈 아도헤르는 그날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그 저번 주에도, 저번 달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 촌구석에 박혀 있어야 하는 건데!"

듣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소리를 내지르는 호즈. 그 뒷머리에는 새빨간 장미가 한 송이 꽂혀있다. 그녀는 요즘 주변 사람들과 마구 충돌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슬슬 복귀해도 괜찮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단 세 장. 세 장의 성명서를 구하지 못해서 웨스벤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북서 자치령의 치안이 조금 안정되면 나서자. 그런 소리를 하면서, 용병들과 다른 두 명의 율사들은 웨스벤 바깥으로 나서는 걸 차일피일 미뤘다. 그런데 자치령의 상황은 안정되기는커녕 악화 일로를 걸었고, 카나기 잔당과 아지프의 탈주 마술사는 물론 조디악까지 돌아다니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오늘 아침의 회의에서, 이제 정말로 기한이 없다, 이제라도 나가자. 호즈는 그렇게 강하게 주장했지만, 유약한 나머지 두 율사들이 반대했기에 실패했다. 그래서 이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여관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쇼핑, 쇼핑이라도 하자. 그래, 저번에 그 비즈 초커, 그거 예뻤지."

이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면, 그녀는 닥치는 대로 쇼핑을 해서 푸는 습관이 있었다. 유수의 부잣집 따님다운 습관이었다. 그래서 씩씩거리며 발을 옮기던 도중,

"저, 율사 누나?"

누군가가 그 뒤를 잡아챘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호즈는, 짐짓 가면 같은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뒤돌아섰다.

"예, 무슨 일이신가요, 꼬마 신사분?"

그 말을 한 것은, 땟국물이 꼬질꼬질 흐르는 어린아이였다. 그럼에도 딱정벌레의 껍질 같은 눈만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아, 또 이런 건가. 호즈는 속으로 진절머리가 난다는 생각을 했다.

율사는 동화의 소재로 삼기 참 좋은 소재였다. 똑똑하고, 아름다우며, 선하다. 거기에 집행관이라는 남자 캐릭터가 더해지면 연애담을 쓸 수도 있다. 그러니 동화작가, 로맨스 작가들의 매너리즘과 그것을 홍보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조장한 라달라리아의 전략이 겹쳐, 세상에 만연한 동화의 7할은 율사를 소재로 하는 지경이었다.

그러니 동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율사를 보고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주인공으로 여겨 동경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특히 율사를 볼 일이 별로 없는 이런 지방에서, 그들의 인기는 거의 유명 희극배우에 준했다.

이 꼬마도 그런 꼬마처럼 보였다.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 못 해서, 가당찮은 동경과 애정을 품고 접근한 부류. 그 증거로, 손에는 본인에게만 소중할 유리구슬 같은 둥근 조약돌과 꽃을 엮어 만든 화관을 들고 있잖나.

"저, 저, 항상 너무 고맙습니다. 이거 받아주세요!"

또박또박 말하며 그 잡동사니를 내미는 꼬마. 호즈는 빙긋 웃으며, 두 손으로 그 잡동사니들을 받아들었다. 호즈는 따뜻한 어조로 말한다.

"고마워요. 이건 나중에 꼭, 제가 제 친구들과 함께 사용하도록 할게요. 그럼 평안하기를."

활짝 웃는 꼬마. 호즈는 그 뒷모습이 사라지도록 손을 흔들어주다가,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잡동사니를 내던지고 짓밟았다.

"아, 기분 나빠! 이딴 걸 주려고 내 뒤를 쫓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어린애니까 망정이지, 정말..."

소름끼친다는 듯 맨살이 드러난 어깨를 붙잡고 떠는 호즈. 정성껏 엮은 화관이 부서져 꽃잎을 흩날린다. 이런 관심이 기분 좋았던 것도 첫 한달 뿐이었지, 이제는 넌덜머리가 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자신이 점찍어둔 옷가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옷가게의 정문 앞에서 천사를 만났다.

"어!"

그 남자였다. 그 아탕칼리의 심문관과 돌아다니면서, 믿을 수 없는 무력을 뽐냈다는 용병. 4위계의 천사로 오인할 정도로 강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그에 관한 굉장한 소문이 하나 더 이 웨스벤에 흘러들어왔다.

삼백여 명의 인골귀를 끌고 온 아지프의 군대를, 혼자서 인명피해 없이 막아냈다나.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아마도 조금 과장이 있었겠지만, 살을 붙일 대상이 있으니 과장도 있는 것이다. 이 자가 엄청나게 강한 자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 재수 없는 심문관은 없다! 어, 그러면 기회 아니야? 이름이, 음, 아이라고 그랬나?'

눈을 감고, 가게의 벽에 기대어 선 아이를 보자마자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 호즈. 이 남자를 꼬셔서, 내 집행관으로 삼고, 빨리 성명서 몇 장 받아낸 다음 나 혼자 귀가해야겠다. 계산을 끝마친 호즈는 다시 가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신비스럽게 접근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대에게 선고합니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선언한다. 그 말을 듣자, 아이는 속눈썹 아래 감춰진 눈을 떴다. 호즈의 머리에 꽂힌 장미보다도 색이 진한 심홍색의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호즈는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원래 하려던 말도 잊어버리고 그 눈을 바라보았다.

"어, 저, 여기서 이렇게 졸고 있으면, 유죄랍니다?"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당황해서 반박하거나, 귀엽다는 듯 장난을 받아주거나, 하면 지나가던 마을 처녀들의 방심을 빼앗은 죄! 뭐 이런 말을 외치면서 띄워주고 달라붙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슥 고개를 돌려버릴 줄은 몰랐다.

"어, 어, 아닙니다! 음, 아이 씨는 그 심문관 분이랑 일을 마치시고 여기 돌아오신 건가요?"

"예.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있는 거죠?"

경계하듯 묻는 아이. 호즈는 속으로 자존심이 확 구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사람도 당연히 날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표정을 확 나쁘게 만들자, 그제서야 기억한 듯 입을 벌린다.

"아, 그때 그...!"

그리고 갑자기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호즈를 의식해서가 아니었다. 마레가 던진 저질스런 농담이 떠올라서였다. 고개를 세차게 젓는 아이. 그 신호를 오인한 호즈는, 그제서야 자존심이 조금 회복되어서 은근히 웃으며 달라붙었다.

"기억해주셔서 다행이네요. 저는 그 날 이후로 하루도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속상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두 달 전이었다면 분명히 엄청나게 당황해야 할 대사였는데, 별로 동요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 심문관 분이랑은 지금 헤어지신 건가요?"

"예. 그리고 곧 재회하기로 했습니다."

일축하는 아이. 호즈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목적을 드러냈다. 그럼 재회하기 전에 어떻게든 내가 달라붙어서 이용해야 해.

"그럼, 혹시 며칠만이라도, 제 집행관이 되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실은..."

그렇게 긴 설득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짤랑, 옷가게의 출입문에 매달린 종이 소리를 내며 크게 울리고, 호즈도 아이도 무의식적으로 그 문이 열린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분홍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벨벳 드레스를 입은 분홍 머리의 여자가. 그 옷은 호즈가 방금 사려고 마음먹었던 옷이었다.

"어! 당신?"

그리고 그 사람도 호즈가 아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건방지게도 어떤 가문도 재력도 없는 주제에 자신들과 동행한 배경 없는 율사. 다나 아니스였다.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헤실대며, 호즈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들떠서 옷자락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와, 정말로 이런 거 저한테 선물해줘도 되는 거에요? 이런 비싼 옷 살면서 처음 입어보는데, 무르기 없기다? 무르면 울 거에요?"

호즈는 갑자기 배알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에게서 떨어져 돌아서며, 다나에게만 얼굴이 보이도록 냉랭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고발을 당하고 싶으신 건가요? 분명히 당신은 지금쯤 저 자치령을 헤매고 있어야 할 텐데, 왜 여기서 이런 주제에도 안 맞는 옷이나 사 입으며 노닥거리고 있는 거죠?"

"무슨 싸가지없는 소리야 이건, 어?"

적반하장의 헛소리를 내뱉는 호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다나. 그리고 아이 옆에 호즈가 붙어 있는 꼴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는지 씩 웃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안기듯 달라붙었다.

"옷 선물 정말 고맙습니다, 나의 집행관님."

"아니에요. 저번에 그 마을에서처럼 옷을 더럽히는 일이 있으면 곤란하니까, 하나쯤은 더 있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흙빛으로 구겨지는 호즈. 뭐? 선물? 갑자기 들어온 정보 때문에 뇌가 정지할 것만 같았다.

"지, 집행관이라니요?"

"아, 소개가 늦었군요. 이 분은 기나센 출신의 에페 바체로, 지금 잠시만 제 집행관 역할을 맡아주신 아이 씨라고 합니다. 어머? 당신하고도 안면이 있었던가요?"

모든 걸 파악하고서도 짐짓 모른 척 골을 지른다. 호즈는 간신히 자초지종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서 벗어난 이 남자는, 어쩌다 보니까 자기가 쫓아낸 이 거지 율사를 만나서, 함께 동행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싼 옷을 선물할 정도로 푹 빠진 것 같고. 그럼, 설마.

호즈는 당황해서 떠듬떠듬 말을 이어간다.

"그, 그럼, 당신은, 이미 성명서 세 장을..."

"세 장?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세요. 세 장이라니요."

아, 서명을 받지는 못했나 보구나. 비웃음을 지으려는 찰나, 믿을 수 없는 선언이 들어왔다.

"사백 장! 사백 장을 다 받아서 이제 제도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라타려고 생각하던 중이었죠?"

"헛소리하지 마세요! 무슨 사백 장!"

"진짜인데?"

비웃듯 가방에서 성명서 다발을 꺼내 보여주는 다나. 그건 이미 거의 한 권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나는 그렇게 한참을 약 올리곤, 성명서를 가방에 집어넣고 아이의 가슴에 푹 안기듯이 매달렸다. 그리고 힐끔 호즈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뭐, 사실 제 덕분이라고는 할 수 없죠. 전부 이 집행관님의 덕이랍니다. 이 집행관님이 법을 어기는 도당을 만나 깨부수고 감사를 받을 때 제가 나서서 문서를 들이댄 것, 뭐 그 정도밖엔 한 일이 없지요. 그렇죠?"

"이, 이, 이익..."

부러움으로 이를 악물고, 아이를 바라보는 호즈.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고행의 순례가 요식행사가 되었다지만, 치열한 판관 임용 경쟁에서 그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귀환한다는 것은 큰 결점이 될 게 뻔했다. 그리고 호즈는 지금 안일한 동료들 때문에 까딱하면 세 장도 받지 못하고 귀가하게 생겼는데, 사백 장이라니.

다나는 그 기색을 살펴보고, 가방을 꺼내 주섬주섬 성명서 몇 장을 꺼냈다.

"음, 어차피 전부 제 힘으로 얻은 것도 아니고 한데, 애타게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자비를 발휘해서 세 장 정도 줄 수도 있을까나 없을까나~"

호즈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호즈는 부르르 떨다가, 툭 던졌다.

"천 루덴."

"예?"

"한 장당 천 루덴씩 해서, 열 장 사겠습니다. 주세요."

"어머? 집행관님, 세상에는 돈으로 뭐든지 다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나 봐요. 어떻게 믿음과 신앙의 보증서를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그런 사람은 아주 마음이 못생긴 사람일 거예요, 그렇죠?"

자기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아이의 볼을 쿡쿡 찌르면서 그런 말을 한다. 이 거지가? 호즈는 속으로 천불이 일어났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내색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진심으로 부탁한다면, 어쩌면 그냥 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침묵. 침묵이 이어지고, 호즈는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다나 아니스 학우님. 저희를 위해 열 장만 그 성명서를 베풀어주십시오."

"예. 그럼 저는 진심으로 거절할게요. 안녕!"

"예?"

"음, 저를 믿고 주신 성명서를 어떻게 남한테 양도할 수가 있어요? 그건 범죄잖아요. 당신은 범죄 교사범인가요?"

"이, 개같은 년아! 작작 해!"

"꺄악! 욕 하는 사람이다! 무서우니까 빨리 도망쳐요!"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아이 옆에 매달려서, 억지로 거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다나. 호즈는 부르르 떨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아이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저, 흉한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도, 집행관이 필요합니다. 저도 잠시만 도와주실 수는, 없을까요?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증표와 연락처라도..."

최대한 가련한 표정으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돌아보고 거절할 뿐이었다.

"그럼 그건 바닥에 안 버리실 건가요."

"어."

아까 꼬마의 선물을 바닥에 내던진 걸, 멀리서 보았던 모양이었다. 얼어붙는 호즈. 입을 벌리고 망연히 선 채로, 거리 멀리로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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