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63화 (63/279)

12. An inquiry into the Nature ( 3 )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목탑과 석탑, 그리고 절벽으로 둘러싸인 호수.

그 호수 앞에서, 한 남자가 마지막 기억을 회상한다.

"놈. 너는 여자 때문에 신세를 망칠 상이다."

"제가 말입니까?"

기억이었다. 기억 속의 학장은 연초를 가득 메운 장죽불이 시뻘게지도록 숨을 불어넣고, 껄껄 웃으며 머리를 때렸다. 뜨거웠지. 그렇게 살이 익도록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장죽을 거두어들이고 말했다.

"너처럼 혐오스럽게 생긴 놈은 대개 그렇더군. 거기에 어중간한 권력이 있으며 그럭저럭 흉중을 꿰뚫어볼 만한 지능까지 있으니 더더욱 그렇지. 너는 우선 이성을 혐오할 것이다. 네 추한 용모를 못 견뎌 내심 너를 경멸하면서도, 네 권력 때문에 달라붙는 여자들을 보며, 또 그 속을 꿰뚫어보면서 인간관계의 범속함에 회의를 느끼다가... 어느 날 마주치게 될 게다. 반려를 말이다. 그런 놈한테도, 한 사람쯤은, 진심으로 사랑해줄 여자가 예비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는 후우욱 숨을 들이켜고 말을 끝맺었다.

"세계에 패배하는 건 악한 인간이 아니다. 모순이 있는 인간이지. 그 여자가, 철혈이 되기를 강요하는 아이신고르의 피, 그 피를 담은 잔을 깨부수는 모순이 될 게야. 너는 그 여자를 위해 죽을 거다. 그게 네가 걸어갈 길 끝에 놓인 무덤이다. 유의하거라."

"원, 여자에게 남자를 낳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까? 방계의 자식이라고 망하라는 저주도 참 다망하시군요. 늙으니 흰소리가..."

"이놈!"

그리고 머리를 내려찍었지. 바우얀 아이신고르는 그 어릴 적의 회화가 떠올라 웃었다. 어둡게.

3선, 3선을 성공한 자의 두뇌란 그렇게 영민한가. 어떻게 인간의 운명마저 그렇게 통찰할 수 있는가. 그 말대로였다. 나는 내 파멸로 걸어간다. 내 의지로. 싹둑, 바우얀은 무언가를 잘라 호수에 내던졌다.

잘라 내던진 것은 인간의 머리였다. 마술사의 머리. 호수는 용이 태어나는 호수, 용맥이었다. 그는 지금 용을 만들기 위해, 마술사의 머리와 인간의 머리를 모아 호수에 던져넣고 있었다. 더 궁극적인 목적은, 복수를 위해서.

"우스무..."

바우얀은 수염을 떨었다. 담배를 꺼내 피려고 했다. 이렇게 품을 뒤지면, 우스무가 알아서 불을 붙여주었는데. 열셋 때, 몰래 담배를 피기 시작했을 때. 그때도 그랬다. 몰래 피려고 하는데도 아득바득 나무 뒤에 숨은 나를 찾아서 불을 붙여주었지. 어리고 고운 손으로, 불길을 견디며.

그때는 그 눈치 없는 애정이, 너무나 성가셨다.

"후우우욱..."

이제는 없다. 담배의 끝에 불을 붙이는 건, 피와 점액으로 물든 추한 손이다. 바우얀은 담배로 폐를 그슬리고, 다시 정육도를 휘둘러 고깃덩이를 호수에 던져넣었다.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다. 몇 번이나 불을 다시 붙여야 했다. 쏟아지는 비. 빗물 속에서 담뱃불은 너무나 희미했다.

이 짓거리를 시작한 지 사흘이 되었다. 호수는 이미 생명이 살 수 없는 물이 되어 있었다. 죽은 붕어와 생선이 하얀 배를 드러내며 떠올라 썩어가고, 그 옆에선 인간의 머리가 둥둥 떠다닌다. 산소를 잃어 검게 말라죽은 피. 그것과 하나가 된 듯, 호수는 검붉게 변해 있다.

바우얀은 용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마지막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그 귀에, 기다려 마지 않았던 음성이 들려온다.

"개장수를 때려쳤나 했더니 이제 개백정이 되었나? 정육도를 든 꼴이 참 어울리는군. 벼멸구."

그놈이었다. 그 진홍색 법의를 입은 녀석. 눈을 돌리자마자, 가느다란 실 같은 정신의 공격이 들어온다. 이번에는 유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아낼 수 있었다. 방벽을 둘러 가느다란 마력을 쳐내고, 입을 떨며 돌아본다.

"왔는가... 왔는가."

"제법 솜씨가 늘었는데. 뭐, 곧 또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겠지만 말이야."

그 법의를 입은 녀석 옆에는 하얀 검사가 서 있었다. 아이였다. 바우얀의 통보를 받은 두 사람이 빗속을 뚫고 지금 도착한 것이었다. 바우얀은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고, 두 사람을 귀신처럼 노려보았다.

"결국 왔군. 그리고 너희가 여기에 발을 들이밀었다는 것은, 나의 승리가 확정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

"허, 참. 같은 말을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듣는군."

비에 젖은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는 마레. 그리고,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최후의 제안을 날린다.

"네가 택하고 있는 죽음, 복수, 뭐 그런게 무의미하다고 부정하진 않겠다. 이래 봤자 그 죽은 아가씨가 싫어하느니 어쩌느니, 복수는 무의미하니 어쩌니, 다 어줍잖게 성인 흉내를 내는 멍청이들의 헛소리겠지. 다만 그 방식의 미추에 대해서는 논할 수 있을 거다."

"달변이군. 또 박수라도 쳐 줘야 하나?"

"그냥 귓구멍 열고 들어라. 복수의 문제라면, 굳이 용을 불러내지 않아도 양측의 균형만 용을 불러냈을 때와 같게 맞추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천사를 불러내지 않겠다. 팔 하나를 자르겠다."

"예?"

아이는 놀라서 마레를 바라보았다. 마레는 그러나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아주 높은 확률로 네가 이기겠지. 굳이 용을 불러낼 것도 없다 이 말이다. 만약 용을 불러낸다면, 너도 뒈지고 웨스벤의 사람들도 죽을 거다. 그건 하나의 복수에 갈음하기엔 지나치게 추한 방식이잖나. 어때, 내가 제의한 방식으로 복수전을 진행하는 건 어떤가, 이야, 명안 아닌가?"

바우얀은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어줍잖은 성자가 아니라 진짜 성자가 나셨군. 그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면, 이번에야말로 환호를 해 주고 싶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지. 너희는 이미 패배했어."

아이신고르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나는, 카나기. 공생의 학파의 일원이며, 그 마술사이기도 하며, 그 북서 방면군의 참모였다. 공생, 내가 공생을 모른다고 했나? 그랬었지. 그리고 나는 아이신고르다."

서성인다.

"아이신고르의 피는 철혈이다. 손에 넣는 모든 것은, 정치와 지배로 손에 넣으려 하지. 공생은 주인과 가축이 있기에 성립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공생이란 그런 것이다.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것. 짐승은 왜 인간의 손에 길들어 가축이 되는가? 축사를, 먹이를, 주인을, 그리고 죽음과 삶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구 늘어놓는다. 철학이라고 할 수 없는 흉한 현실을.

"우리에게는 인간도 그 가축과 같다. 그것이 정치다. 인간관계, 염정, 정서, 꾸며낼 수 있는 것은 꾸며낼 수 있기에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철혈이야. 우리에게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이것과 같다. 가족을 인질로 잡고, 직책을 부여하며 계급투쟁에 밀어넣고, 약점을 잡고, 그게 우리의 삶의 방식이란 말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재요약한다고 했던가, 그런 방식으로, 공생을 추구하는 카나기라는 학파의 문반은... 그것이다. 무언가를 지배하며 무언가에게 지배당하고, 그 지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지배체제의 재요약된 단말이다. 세포다. 외롭단 말이다."

"방언이라도 터졌나? 유언치곤 길군. 필사가를 불러주기를 원하는 거라면 불러주마. 아마 희극으로 팔리겠지만."

마레의 비꼼을 무시하고 말을 늘어놓는 바우얀. 그는 얼굴을 괴롭게 쥐어뜯는다.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비참한 패잔병 신세가 된 내 곁에도, 끝까지 있어주었다. 아무런 지배체제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데도, 그래, 그런 게 네가 말하는 공생이 맞다면, 나는 공생을 저버린 거겠지."

텅 빈 눈으로 마레를 바라보는 바우얀.

"용을 만들고 싶은 이유. 그건 단지 복수만은 아니다. 나는 그녀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 이 용을 만들 거야. 그러면 아마도 카나기의 용군단에 합류하겠지. 이 용에 이름을 붙이겠다. 우스무라고. 어때, 괜찮은 계획 아닌가? 그 용은 천 년, 만 년을 살며 그녀가 있었음을 증명하겠지."

"살다보니 별 미친 종류의 로맨티스트도 다 만나보는군. 너는 지금 그게 정상적인 사고라고 생각하나? 미친 자식."

"미쳤지. 그럼 너는 안 미쳤나? 죽을 게 뻔한데, 오라고 했다고 진짜 기어오는 너도 저 허여멀건 놈도, 다른 방향일 뿐이지 미친놈 아니냔 말이야."

질린 듯 말하는 마레. 바우얀은 그러나 실성한 사람처럼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아이신고르의 일족들은 최후의 한 수로 언제나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다. 함부로 숙청당하지 않도록, 또는 선거에서 함부로 버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지. 그리고 그 맹세는 함묵의 맹세로 묶여 있지. 함묵의 맹세가 깨지면, 바로 하레하둔에 신호가 간다."

웃는다.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새빨갛게 벌린 입에 빗물이 들어가도 아랑곳앉고 웃는다.

"그러니 이미 나의 복수는 완성된 것이지. 아, 구스루 아이신고르는 사생아다."

"뭐?"

눈을 껌뻑이는 마레.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은 파랗다,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말을 꺼내는 바우얀. 그 입에선 더 끔찍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근친상간으로 낳은 사생아다. 이신 아이신고르는 자신의 딸과 관계해서 구스루 아이신고르를 낳았다. 그리고 딸이 그걸 약점 삼아 탄핵을 시도하자 죽였다. 이건 아이신고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으윽!"

그는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 입에서 피가 쏟아진다. 함묵의 맹세. 그것을 깬 대가로, 내장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그 말이, 무엇보다도 이게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 무슨..."

아이와 마레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먼저 깨달은 것은, 마레였다.

"그렇군, 쓰레기 자식. 이래서 이미 이겼다는 말을... 너는 이미 죽을 생각이었군."

"카하하하하하! 쿨럭, 쿨럭, 그래, 네 말이 맞다! 더 얘기해주지. 이신 아이신고르는, 쿨럭, 진심으로 자신의 딸을 사랑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가 둘을 갈라놓았, 쿨럭, 다. 아이신고르라면 다 아는 사실이야. 그래서 구스루 아이신고르를, 쿨럭, 세습시키려 한다. 축양으로, 6위계에 올려서."

계속해서 함묵의 맹세를 깨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입에선 피가 미친 듯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계속 저주를 퍼붓듯이 끔찍한 진실을 토해낸다.

"이제 너희는, 카나기 최고 수장의 약점을... 알았다. 맹세가 깨지면서, 너희 둘이 그걸 들었다는 게 하레하둔에 전달될 거야. 그러면 이제 하레하둔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 둘을 죽이려 들겠지. 아아, 너희들의 적은 이제 카나기 전체다. 어때, 이미 나의 승리 아닌가?"

그게 목적이었다. 이신 아이신고르의 역린이 되는 약점을 두 사람의 귓바퀴에 밀어 넣어서, 숙청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이 자는 처음부터 용을 어떻게든 길들여보겠다거나, 용으로 복수를 하겠다던가, 그런 생각은 없었다.

설사 이들이 용과 맞서 싸우는 것을 중도에 포기하더라도, 확실히 죽을 수 있도록.

정치. 정치로 두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어 죽일 생각이었다.

"그럼, 이만 퇴장 인사를 해야겠군."

그는 연이어 몰아친 말의 폭풍 때문에 멈춰 있는 아이와 마레를 내버려두고,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멈춰!"

마지막으로 자신을 제물로 바칠 셈인 듯했다. 상황을 파악한 아이가, 레바테인을 불러내어 앞으로 달려든다. 그러나, 바우얀은 아이보다 조금 더 빨랐다.

"우욱!"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피를 토하는 바우얀. 그의 몸은, 천천히 검붉은 호수로 떨어져 갔다. 아이가 그 앞에 다다랐을 때, 바우얀은 이미 호수 깊이 떨어져 사라져 있었다. 검붉은 호수가 시체를 삼키고 물거품만을 내뱉는다.

"이, 이런..."

"물러서!"

라그엘을 불러내고 뒤로 물러서는 마레. 망연히 서 있던 아이는 그 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ㅡ쿠우우우우웅...

지진이 일어나는 소리. 그와 함께, 사방이 진동한다. 절벽의 끝이 무너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석탑과 목탑의 처마에 매달려 있는, 귀신 모양의 조각들. 그 조각들이 시뻘겋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ㅡ후우우우웅!

검붉은 호수가, 몸을 일으킨다. 축양으로 엄청난 양의 신기를 쌓은 바우얀. 그 바우얀의 시체를 삼킨 것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용을 불러낼 모든 제물이 모인 듯했다. 핏물이 섞여 어두운 색인 호숫물이 와류를 이루며 빙글빙글 하늘로 치솟는다.

높다란 석탑과 목탑 사이에서, 그보다도 더 높다랗게 솟은 물기둥. 그 물기둥이 알이 깨지듯 좌우로 갈라지고, 그것이 나타난다. 바우얀이 마지막으로 이름붙인, 웨스벤의 모든 시민을 잡아먹을 용이.

악룡 우스무.

그 몸에 곤두선 비늘 하나하나는, 비늘이라기보다는 검처럼 뾰족하고 예리하다. 용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뱀 같은 그것은, 기어이 태어나버렸다.

어떤 동화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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