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67화 (67/279)

2권 후일담 #1. 검은 개

푸른 물빛의 도시.

랭 반도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수상 도시, 아스마디. 그 도시는 도로보다도 운하가 많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도시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금 그 도시는 일몰을 맞고 있다.

석양빛을 받아 금빛으로 찰랑이는 물결. 그 물결을 가르며, 한 대의 곤돌라가 움직인다.

"이야, 이거 절경이군요."

뱃머리가 희게 칠해져 있는 곤돌라. 그 끝에는 석고로 만든 여신의 선수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 선수상을 부숴버리려는 듯 세게 붙잡은 채로, 한 사람이 석양을 바라본다. 저녁놀을 받아 타는 듯 반짝이는 하늘색 머리카락. 그는 어째선지 여자 율사복을 입고 있는 소년이었다.

"일주일이나 잠을 못 자서 힘들 수도 있겠지만, 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빠르게 그 사람들을 확보해야 하니까요."

그건 드미트리였다. 노를 열심히 젓고 있는 두 사람에게 느긋한 어조로 말한다. 그들은 고행 사제가 입는 거대한 회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 말씀 좀 묻겠습니다."

곧 시내에 접어들자, 물 위에 좌판을 띄워놓고 장사하는 상인들과 노점상이 보인다. 드미트리는 그들 중 한 노인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목을 가다듬어서, 여성적인 목소리를 만들어내며.

"무슨 일이슈?"

나무로 낚싯대의 손잡이를 깎던 노인은 퉁명스럽게 물어보려다가, 말한 자가 어린 여율사인 것을 보고 화색이 돌며 말한다. 목을 가다듬고, 제법 바리톤으로.

"무슨 일이오, 어린 아가씨?"

하여간, 이 반도 것들은 늙어서도. 드미트리는 속으로 웃음이 튀어나왔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어린 소녀 율사를 가장하며 묻는다.

"저, 혹시 '하일렌 천사의 집'으로 가는 곳이 어디쯤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절대로 악한 의도가 아니라는 듯, 두 손을 모으고 가녀리게 물어보는 드미트리. 노인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그것을 상세히 안내해준다. 그 뒤에서 수상쩍은 분위기를 풍기는, 팔이 유난히 긴 두 덩치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어머, 감사합니다. 그대에게 평안이 찾아오기를."

다소곳이 인사하고 고개를 드는 드미트리. 그리고 곤돌라는, 그 안내에 따라 아스마디의 깊은 뒷골목, 물과 하수가 합쳐지는 더러운 운하와 잇닿은 골목으로 흘러간다.

천사의 집, 고아원은 그 끝자락에 있었다. 아스마디의 중심에서 웅장하게 펄럭이던 황금사자의 깃발 대신, 낡은 빨랫줄이 거미줄처럼 걸려 있는 곳. 드미트리는 곤돌라에서 내려 천사의 집 앞에 올라섰다. 단도를 꺼내 갑갑하다는 듯 율사복을 찢고, 평소의 검은 율사복으로 갈아입는다.

손에 든 율사복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드미트리. 실눈에 가려진 황금색 눈동자가 경멸을 품고 잠시 드러난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노출이 많게 만들었는지, 참..."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옷을 구정물 한가운데로 집어던진다. 그렇게 라달라리아를 싫어하는 그가 하필 율사로 여장까지 한 이유는, 이곳 아스마디 그리고 랭 반도가 아탕칼리의 근거지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조디악의 주적이다. 조디악의 2인자라는 사실을 들키게 된다면, 즉석에서 재판에 회부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면서도 이곳에 온 이유. 그건 인질을 잡기 위해서였다.

"자, 들어갑시다."

경첩이 고장 나 삐꺽대는 문을 밀치고, 드미트리와 두 사람은 고아원 안으로 들어갔다.

드미트리의 뒤에 서 있던 두 덩치. 그들은 고아원 안에 들어오자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고로 몸을 감싸던 옷을 내던지고 본색을 드러낸다.

누가 오줌이라도 쌌는지, 흥건히 젖은 낡은 이불을 세탁바구니에 넣고 움직이던 수녀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질렀다.

"누, 누구, 꺄아악!"

그 남자들이 후드를 벗어던지자 드러난 것은 황금의 가면, 그리고 긴 팔. 붉은 주술문이 꼼꼼하게 새겨진 긴 팔이었다. 이들은 레버넌트였다. 두냐의 암살자가 죽어 호위가 없어진 드미트리를 위해, 특별히 배정된 강화 레버넌트.

"무, 무슨 일이시죠?"

"아, 별 일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지요."

드미트리는 빙긋이 웃는다. 그는 품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더니, 어떤 이름을 불렀다.

"엘레나 시메오네. 마레 델피에로 수사를 대부로 모시고 있는 그 여자아이에게 볼 일이 있어 내방했습니다."

"볼일이라고 하면..."

"직접 보아야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드미트리는 나긋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는 기세가 담겨 있었다. 수녀는 움찔움찔 떨더니, 곧 황급히 세탁바구니를 내던지고 안쪽으로 달려갔다. 드미트리는 삐걱이는 흔들의자에 푹 앉아 그녀를 기다린다.

잠시 후, 수녀는 곧 이 도시를 닮은 물빛 머리카락의 여자아이를 한 명 데려왔다. 머리가 길면서도, 어쩐지 개구쟁이 같은 인상을 얼굴에 담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그 꼬마는 드미트리 앞에 다가오자마자,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옳지.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군. 드미트리는 속으로 웃으며 말을 꺼냈다.

"엘레나 시메오네 양, 앞으로는 엘레나 양으로 부르죠. 엘레나 양은 지금 아주 곤란한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예..."

"엘레나 양은 원래 친조부가 살아 있고 또 그자가 반대해서, 이 천사의 집에 들어올 수 없는 입장인데, 마레 델피에로 수사가 대부를 맡고 힘을 써 주어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드는 엘레나. 드미트리는 천사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본가로 돌아가서, 창관을 경영하는 친조부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지요. 그리고 그 친조부가 서류상이 아니라 진짜 친조부가 맞는지도 의심되지만 말입니다."

"저, 그게, 무슨..."

"왜냐면 안타깝게도 마레 심문관께서는 주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기 때문이죠."

드미트리는 짐짓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표정을 어둡게 바꾼다. 아이가 북서자치령을 떠나기 전에 일을 마쳐야만 했다. 그래서 드미트리는 마레가 기권하고 저택을 떠나자마자, 급히 말을 몰아 이 랭 반도에 도착했다. 고로 그는 마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소천,이라니..."

"아, 말이 어렵나요?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셨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망이죠."

엘레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다. 어린아이란 자주 그렇지. 드미트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제안을 건넸다.

"저는 생전의 마레 수사와 연이 조금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유언으로 당신을 비롯, 그가 대부를 맡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을 돌봐 달라는 말을 남겼죠. 그리고 절대로 그 아이들과 떨어지지 않도록, 가진 재주를 이용해 계약을 해달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당신들의 양육권과 의무를 넘겨받는다는 계약이죠. 자, 이 동전을 받고 내기를 한 번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거짓말이지만. 드미트리는 실눈으로 웃으며 금화를 내민다.

드미트리의 계획은 그것이었다. 이 고아들의 양육권을 인계받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인질 삼는 것.

소니아는 마레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했다. 그는 아마 죄책감에 못 이겨서, 그리고 아이에게 죄책감을 분담하게 하기 싫어서. 상세한 사실조차 밝히지 않고 죽으려 들 것이다. 아이는 생각이 짧으니 배신당했다는 분노로 마레를 죽일 것이다.

그러면 마레가 맡던 네 명의 고아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선제적으로 움직여 그 아이들을 떠맡는다. 그리고 아이와 접선해, 마레와 조디악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죄책감을 자극한다. 만약 그것으로 죄책감이 충분치 않다면, 조디악의 협박과 위협을 과장해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렇게 자극을 마친 후에, 고아들을 인질로 삼아 아이를 조디악의 용병으로 포섭한다.

드미트리가 평가하기에, 소니아의 계획과 비전은 완벽에 가까웠다.

'곧 동료가 될 수 있겠군요. 그러면 우선 뺨을 한 대 후려쳐 주겠어요.'

드미트리는 속으로,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처참하게 구겨질 아이의 얼굴을 상상하며 즐겁게 동전을 건넸다.

그러나 엘레나는 이 병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런 뚱한 얼굴로 동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안해진 드미트리. 그를 놔두고, 엘레나는 홱 돌아서서 수녀에게 말한다.

"수녀님, 이 꼬맹이 좀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아요!"

"누가 꼬맹이입니까! 아니, 아니지. 아니죠. 어린아이라면 친애하는 사람의 죽음을 부정하는 건 있을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이런 어린애한테까지 꼬마라는 말을 듣자, 잠시 화가 난 드미트리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재빨리 평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언제고 어린아이가 어린아이일 수는 없어요.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유언을 실행하십시오. 당신이 정말로 마레 델피에로 수사를 사랑했..."

"그러니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니까요? 어제도 오빠한테 편지가 왔는데!"

'뭐?'

드미트리의 눈이 크게 흔들린다. 그 편지를 항상 품에 지니고 있었는지, 엘레나는 주섬주섬 편지를 꺼내 낭독한다. 자신이 잘 있다는 사실, 책을 열심히 쓰고 있는데 매일 한 번은 잉크병을 엎어서 소매가 더러워진다는 한탄,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없어서 힘들다는 자조, 친구들과 잘 지내라는 훈계.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평온한 편지였다.

"무... 무슨...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이 꼬맹이 진짜 이상해!"

엘레나가 그렇게 말하자, 레버넌트가 준 충격에서 벗어난 수녀들도 웅성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뭔가 징수나 압류 딱지라도 가지고 온 줄 알았더니, 헛소리만 하고 있다,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아, 맞아. 이상한 꼬맹이라고 하니까 생각났다. 하늘색 머리의 꼬마가 찾아온다면, 보여주라고 한 편지가 있었는데. 당신이군요?"

엘레나는 주섬주섬 또 다른 편지를 꺼낸다. 자그마하게 봉인되어 있는 편지였다. 겉면엔 엘레나가 한 말이 적혀 있다. 드미트리는 충격에서 가시지 않은 채로, 그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 편지에는 한 줄만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예지는 틀렸다. 꺼져라, 허섭스레기.'

마레의 글씨였다. 죄악감에서 벗어나 냉정을 되찾은 마레는 이들보다 먼저 움직였다. 혹시라도 이런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미리 자신이 맡은 고아원에 생존을 알리는 편지와 함께 이런 편지를 보내놓은 듯했다.

그러나 그 통찰보다도 드미트리를 당혹케 만든 것은, 두 글자였다. 예지. 예지라니, 이 자가 그걸 알고 있단 말인가? 드미트리는 분노, 그리고 당혹함으로 황금빛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다시 감는다.

빙긋이 웃어 평정을 가장하며, 드미트리는 물러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거, 제가 잘못된 말을 들은 모양이군요. 밤중에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럼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레버넌트들과 함께 고아원을 나선다. 고아원을 나서자마자, 그는 눈을 부릅뜨고 주먹으로 마구 벽을 내려찍었다.

"제기랄! 무슨, 말도 안 돼, 소니아 님의 예지가 틀리다니!"

키레넨. 그들이 박해받은 이유는, 그들은 미약하게나마 신기를 품은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피가 아주 진한 경우에는, 신앙을 통한 마술이 아닌 피를 이용한 마술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니아가 그 경우였다. 그녀는 자신의 피를 소모해서, 미래를 예지해낼 수 있었다. 마레의 행동을 거의 정확하게 예지해낸 것도, 그녀 자신의 열의와 더불어 그 마술의 보조가 있었다. 그렇게 소모된 피를 보충하기 위해, 그녀는 늘 어린아이의 피를 수혈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공들인 예지였는데!"

어린 아이 다섯 명 분의 피가, 마레와 관련된 예지에 들어갔다. 하도 과도한 수혈 때문에, 소니아는 잠시 심장이 정지한 적도 있었다. 예지는 물론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 것에 불가한 만큼,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피를 소모하고 만들어낸 예지가 틀린 적은 없었다.

"계획.... 계획이 전부 일그러졌어, 제기랄..."

곤돌라에 다시 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드미트리. 어디서부터 일그러진 거지? 뭐지? 드미트리는 도저히 이 계획이 망가진 이유.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아이였다. 조디악으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이유였다. 그들은 아이가 어떠한 인간이고, 왜 마술사에 대해 그렇게 복수심을 불태우는지를 입수했다. 여러 번 마술사에게 기만당하며, 마술사에게 이용당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입수했다. 행동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호구와 바보에 가깝다는 것도. 행동이 단선적이라는 사실도 확보했다. 그러니 마레가 위악으로 죽여달라 나선다면 두말없이 죽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들은 아이보다는, 높은 지능을 가진 마레가 깨달음을 잡아채어 예지를 일그러뜨릴까 염려했고, 마레를 유도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아이가 설마 마레를 용서하고, 살아날 방법까지 마련해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착한 마술사를 나중에 죽이고, 나쁜 마술사부터 죽인다. 그러니 모든 이들은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는 얻어야 한다. 그 어설프지만, 확실히 선의로 가득한 정의는, 그 용서의 순간 세계의 운명을 크게 바꾸었다.

"어쩔까, 억지로라도 실행해? 당장 저 집으로 다시 쳐들어가서 저 건방진 엘레나란 계집을 납치해볼까?"

그 계획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청사진의 초석에 불과했다. 그 계획을 발판으로 시행될 더 거대하고, 중요한 계획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드미트리의 고통은 더욱 극심했다. 이런 억지를 생각해볼 만큼.

"아니... 여기는 랭 반도. 아탕칼리의 앞마당인데, 그런 짓은 자살행위죠."

평온을 되찾은 드미트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레버넌트의 등을 후려쳐, 곤돌라를 몰게 시킨다. 어둠이 개이기 전에 랭 반도에서 도망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연이어 한숨을 쉬었다.

"기나센의 에페 바체... 레이븐사이드... 그게 더욱 더 필요했는데. 제기랄, 어쩔 수 없군요. 조금 우아하지 못하지만, 억지를 쓰더라도 원안대로 가야겠어요."

드미트리는 흔들리는 배 안에서, 또 다른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서신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다시, 검은 개를 불러들이십시오.

*

작가의 말

+2권 후기입니다.

마레가 등장한 이후로, 마레 쪽이 더 주인공에 가깝지 않느냐, 내가 볼 때는 마레가 더 진주인공이다.

이런 평가가 많았습니다만, 사실 그럴 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레는 정말로 제가 구상했던 다른 글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

몇 년 전, 김 모 교수님의 <애덤 스미스, 정의가 번영을 이끈다>를 교재로, 애덤 스미스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애덤 스미스의 모교인 글래스고 쪽까지 유학을 가셔서 애덤 스미스를 전공하신 국내 유일이었나, 최고였나 아무튼 대단한 전공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셨습니다.

그 말 답게, 애덤스미스 강의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애덤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라는 말은 거꾸로 말하면 애덤스미스 본인은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소리가 됩니다. 왜냐면 그가 만들기 전까지 경제학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은 스스로의 자의식이 신학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가 만든 책인 국부론으로부터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또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애덤스미스가 기업과 권력의 이익을 옹호하는 무자비한 자유방임주의자로 인상이 정해진 느낌이 있지만, 사실 그 사람은 MBTI로 치자면 INFP라고 할까, 굉장히 선하고 민초의 이익과 아픔을 염려하는 맹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국부론은 자유방임주의를 결코 지지하지 않았고, 결국 부에 대한 탐구는 민중에 대한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담고 있는, 인문학 서적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애덤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발견하게 된 계기에는 선과 악 같은 신학적 통찰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아, 인문학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실용적인 발견이 나올 수도 있구나, 그런 통찰을 제공하는게 인문학의 역할이기도 하구나. 그런 살아있는 실례였으니까요.

현대 경제의 아버지가 오히려 현대의 냉혹한 자본주의를 가장 염려한 사람이라는 이 아이러니는, ‘애덤 스미스 구하기’라는 책에서 이미 한 번 형상화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애덤스미스가, 현대에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 책으로부터 이런 냉혹한 일부 자본가가 나타난 것을 대면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책이지요.

그래서 그 강의를 들으면서 마레라는 캐릭터를 구상했습니다 ^^;; 그리고 추리소설 비슷한 소설을 구상했었죠. 다크나이트랑 장미의 이름을 합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기독교가 분리되지 않아서, 돈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가지고 있을 때, 혼자서 국부론을 통찰하고 경제적 후생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어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경제적 정의를 위해 파계승 행세를 하며 이베리아 반도를 돌아다니는 내용의 소설이었죠.

그때 움베르토 에코를 읽고 있었기 떄문에 감히 아주 무거운 문체로 도전했습니다만... 저는 움베르토 에코가 아닌 관계로 ^^:;;; 포기했는데.

그렇게 묻어둔 줄 알았던 캐릭터가 갑자기 글쓰다보니 떠올라서 주인공 자리를 먹어버리려고 들더군요...

즉, 제가 부족한 필력으로 온전히 담지 못했던 애덤 스미스라는 인물을 좀 더 알고 싶으시면 <애덤 스미스, 정의가 번영을 이끈다, 한길사>와, <애덤 스미스 구하기, 생각의 나무> 이 두 책을 추천드립니다...

+2권 최후반부를 쓸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별이 되고 싶은 소망 챕터만으로도 이미 2권 완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여기서 플롯을 틀어버릴까?

아니면 진짜로 이걸 써버릴까?

여기서 정말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면... 읽어보셨으니 알겠지만

웹소에서 전혀 안 하는 짓을 했거든요 ㅠㅠ....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서 상기한 책들을 열심히 읽으면서 열심히 풀어 썼고 또 저 개인의 생각도 조금 담았지만, 재미라는 웹소설의 본질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는 내용이기도 했지요...

저는 지금까지 웹소설에서 하면 안 되는 짓만 하다가 1년간 망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짓 했을때 다음날 갑자기 선작이 훅훅 떨어지는 걸 좀 경험했기 때문에

이게 소위 ‘뇌절’아닐까? 미친 짓 하는거 아닐까? 이런 걱정이 들어서 노심초사하면서 선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너무 필요 이상으로 멘탈이 깨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염려와 다르게, 독자분들이 쪽지로, 또 어떤 사이트 글로 너무 멋진 리뷰와 제 글을 다 이해했음은 물론 더 멋지게 소화한 서평을 작성해주셔서

아,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게 전달되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고 이렇게 다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꼭 이런 짓을 해야 했을까? 사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고, 그냥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주목받는것도 무서워하고... 그런데, 글을 쓰다가 보면 꼭 이건 써야 한다 싶어서 떠오르는 부분이 있습니다...ㅠㅠ... 인정받지 못하거나 욕먹어도 써야된다, 이런 부분이 가끔씩 떠오르는데

이게 2권 최후반부였습니다...

이게 제 고질병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뇌절 치고 선작이 훅 빠졌던 경험이 좀 많이 있어서.. 오늘 좀 쓸데없이 멘탈이 많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이제 진짜로 멘탈 단단한 강철인생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으려고 펼친 글에서 갑자기 사변의 덩어리가 나와서 불쾌하셨을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약속드립니다. 그 사변이 끝나고 나면 다시 재미있는 것을 마련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

그리고 절대로 제가 함부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계몽하거나, 공격적 자의식으로 가득해서 ‘닐 드럭만’으로 하지 않고, 화해할 수 없는 두 요소의 대립을 재현함으로써 독자분들이 참여해 스스로 완성된 세계를 품에 얻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을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지각해서 죄송하구...

아무튼 그렇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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