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70화 (70/279)

13. 증명 ( 1 )

「 신이 없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

이런 글귀가 새겨진 채, 작고 궁핍한 도시 어귀에 놓인 표지석. 놓인 지 삼백 년이 지난 이 표지석은, 세기마다 그 의미가 반전되어 왔다.

처음에는 혁명의 표어였다. 불신자, 섬길 신이 없는 자들이 힘을 모아 이 도시를 제국에서 독립시켰을 때, 그들은 기쁨을 기념하며 이 표지석을 세웠다.

다음 세기, 제국의 혼란이 가시고 재정복이 일어났을 때. 도시의 2할이 죽고 시장이 항복했다. 이 도시는 반역향으로 지정되었다. 반란의 수괴를 불태운 마술사들은 돌아가는 길에 이 표어를 보았다.

신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표어로 이 표지석의 내용을 바꾸자, 마술사 중 누군가가 제의했다. 그거 좋은데, 누가 동의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표지석은 그대로 도시 어귀에 남았다.

처음에는 혁명의 의미, 두 번째는 반역에 대한 경고의 의미였던 것. 삼백 년이 지난 지금, 이 표지석은 이 도시가 모든 것이 가능한 무법자의 도시임을 의미하게 되었다.

무법의 이유. 그것은 이 도시에 파견되는 라달라리아의 치안 율사였다. 반역향이라는 이유 때문에, 율사 중 항상 가장 부패한 자가 선별되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부패한 법, 그것은 차라리 없으니만 못한 것이었다.

"자, 자, 다들 모였나?"

지금. 그 표지석 앞에 한 무리의 사람이 모여 있다. 용병들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어딜 덮쳐 부수기라도 하려는 듯, 기세가 흉험하다. 곧 비단옷을 입은 자가 그 웅성임 앞에 섰다. 아래턱에 살이 뒤룩뒤룩 찐 것이, 돼지와 구분하기도 힘들 지경인 중키의 남자였다.

"자, 그럼 작전 목표를 하달한다! 우리는, 크흠, 우리가 있어 마땅한 곳으로 갈 것이다!"

그 작은 동작을 하면서도 더운지, 뻘뻘 흐른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 남자. 그가 이들의 고용주인 듯했다. 그가 목을 가다듬고 제법 장군 흉내를 내려고 하자, 용병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돼지우리 말입니까?"

"이 놈!"

빼액 소리를 지르는 고용주. 하지만 용병들의 웃음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그것에 당황해 계속 말을 더듬는 고용주 대신, 애꾸눈의 용병이 손을 들고 크게 외친다.

"보쇼! 우리도 대충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소. 율사 나으리의 저택으로 몰려가서 그 뭐시냐, 나으리만 빼고 전부 족쳐놓으면 된다 이거 아니오?"

"이 놈! 말조심하거라! 정확히 말하면 나의 집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놈들을 정당하게 퇴거시키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지르는 고용주. 그는 이 도시의 재력가였다. 그 재력의 원천은 밀수였다. 반역향이라는 이유로 감시가 뜸한 것을 틈타, 온갖 금지 품목의 밀수로 배를 불린 것이다. 이 도시의 율사는 그의 파트너였다.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용주는 최선을 다했다. 이익의 2할을 바쳤고, 자신 소유의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집세로 1루덴만 받고 10년 임대해주었다. 그런데, 돈맛을 본 이 율사가 딴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윤이 되는 사업이면, 고용주를 치워버리고 자신이 밀수를 하면 어떨까, 그런 마음을 품은 게 절절히 느껴졌다.

오늘은 그래서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율사 혼자만 목숨만 부지하도록 남겨두고, 나머지 모든 식솔을 몰살함으로써. 그래서 그는 어제 아침 퇴거 요청서를 발송하고, 묵살되자 이렇게 용병을 모아 행동에 나선 것이다.

율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로 이 도시는 끝장난 도시였다.

"그래, 정당하니 나발이니 됐고, 그래서 그 비밀 무기라는 양반은 언제 보여줄 거요?"

귓구멍을 후벼 파며 사납게 말하는 애꾸눈. 모두들 그 말을 듣고 고용주를 쳐다보았다. 애꾸눈은 눈을 똑바로 뜨고 고용주를 바라보았다.

"잊은 건 아니겠지. 그 율사 나으리 옆에는 그 유명한 기나센 출신의 용병이 집행관으로 딸려 있다고 들었소. 신기를 다룰 줄 아는 놈으로. 그자를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물었더니, 비밀 무기가 있다고 했지? 그것을 지금 보여줄 것을 청하오."

"무례하구나! 감히 내 말을 의심하는 게냐?"

"젠장, 신기를 쓸 줄 아는 놈들은 괴물이란 말이야. 그놈 하나 잡으려고 아마 이십 명은 뒈져야 할 텐데, 그 이십 명 중 내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소? 애초에 그걸 조건으로 나는 계약에 동의한 거요. 만약 그 비밀 무기라는 게 거짓말이면, 나는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서 딸이나 잡겠수다."

애꾸눈의 말에 해명을 요구하듯 쌍심지를 켜고 고용주를 쳐다보는 용병들.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그런 말이 쏟아진다. 이들이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었다. 집행관의 마술로 보조받는, 신기를 쓸 줄 아는 용병. 그것을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빗발치는 요구에 땀을 뻘뻘 흘리던 고용주는 결국 굴복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한다.

"제기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길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겁쟁이 하룻강아지들만 모여 있으니 어쩔 수 없군. 나오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고용주의 옆에 유령처럼 한 사람이 솟아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너무 빠르게 나타난 바람에 솟아난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카나기 무반 특유의 전통 복장을 하고, 한 자루의 대태도를 허리에 비끄러맨 자. 그리고,

"뭐야, 이거. 계집 아냐? 뭐 저리 곱상해?"

"아니! 그렇다고 치기에는 체격이 너무 큰데?"

흰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 같은 자였다. 그건 카나기 무반으로 위장한 아이였다. 아이는 유혼의 손잡이에 손을 대고, 오시하듯 용병들을 바라본다.

"이 분께서는 북서 자치령에서 근무를 마치고, 하레하둔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우연히 나와 연이 닿아서! 이번 일을 처리해주시기로 한 카나기의 마술사이시다!"

"웃기지 마라!"

"헛, 북서 자치령? 그럼 패잔병이란 소리 아니야? 퉤!"

"기껏해야 열여덟이나 스물쯤 먹었겠구만. 마술사가 아니라 뒷구멍이 이따만한 남창 아닌가?"

야유가 쏟아진다. 수컷 특유의 호승심이 발휘된 결과였다. 특히 가장 심한 마지막 말은, 아까부터 불만을 주도하던 애꾸눈의 입에서 나왔다. 다음 순간, 그 애꾸눈은 멱살을 붙들려 허공에 떠 있었다.

"켁, 케에엑..."

아이는 그 애꾸눈 용병의 멱살을 잡아 허공에 들어 올린 채로, 그놈의 소드 벨트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신기를 밀어넣는다. 츠츠츠, 붉은빛의 신기가 단검 위에서 춤춘다.

"신, 신기다!"

"진짜, 진짜인가 봐..."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사방. 아이는 단검을 애꾸눈의 목에 들이댄 채로, 한 마디만 중얼거렸다.

"그 목, 시끄러운데. 구멍을 뚫어 줄까요?"

"아,켁,아닙니다, 케에엑!"

바닥에 널브러지는 용병. 아이는 그렇게 불만을 진압하고, 고용주의 옆에 그림자처럼 섰다. 고용주는 단번에 제압된 용병들을 보고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미소를 지었다.

'단번에 이 사나운 들개 같은 놈들을 제압하다니, 역시 명불허전이야. 이런 자를 고용할 수 있었던 건 천운, 천운이라고. 오늘 반드시 일을 전부 끝마쳐야 해.'

정상적인 용병들이라면 율사의 집을 습격한다는 일을 맡을 리가 없으므로, 여기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뒤가 구렸다. 그래서 통제하기도 까다로웠다. 그런 이들을 단번에 통제하다니, 경험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는 아이의 무력이 마치 자신의 무력이라도 된 듯, 으스대며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낸다. 장군 흉내를 내며 바닥을 후려쳤다. 부패한 율사가 머물고 있는 저택을 가리키며.

"가자! 출진이다!"

이것도 볼썽사나운 장군 흉내였지만, 이번에는 감히 지적하는 자가 없었다.

*

30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율사의 저택에 도착했다.

"이 자식들! 여기가 어디라고, 헙!"

쥐 같은 세모꼴의 얼굴을 한 경비병은, 용병 무리를 가로막으려다 창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그는 죽기 직전 크게 소리 질렀다.

"침입, 침입이야!"

삽시간에 벌떼처럼 경비병이 쏟아져나왔다. 고용주는 그들을 보며 이를 아드득 갈았다. 전부 원래 자신이 고용한 이들이었다. 이 집에 기생충처럼 들어앉은 율사는, 서류 몇 개를 건드려서 이들을 전부 빼앗아버렸다.

"죽여라! 먼지도 남기지 마라!"

분노로 손가락을 휘두르는 고용주. 그 우스꽝스러운 지휘를 따르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 명령을 시작으로 싸움이 시작되긴 했다. 그리고 싱겁게 끝났다.

"끄아아아악!"

유혼을 만월처럼 둥글게, 완전한 원형으로 크게 휘두른 아이. 그 붉은 칼질에 커다란 정원수가 부러져 연못에 처박혔다. 그리고 세 명의 경비병이 반토막나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경비병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사기가 떨어져선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귀신, 귀신이다!"

"살려 줘!"

"쫓아라! 목격자를 남기면 안 돼!"

다급하게 소리 지르는 고용주. 그의 계획은 이 저택에서 율사를 제외한 모든 이를 죽인 뒤, 저택을 뒤져 율사의 약점이 될 만한 문서를 붙잡아 개목걸이를 채우는 것이었다. 다시는 엉큼한 꿍꿍이속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그러기 위해선 생존자가 있어선 안 됐다.

사람 간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칠면조 사냥 같은, 일방적인 싸움이 끝나고. 경비병은 전부 목이 잘려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이거 간단하군. 이게 다 나의 우수한 지휘 덕분이겠지."

툭 튀어나온 배를 으시대며 뻐기듯이 앞장서 걷는 고용주. 지금은 비록 이렇게 돼지같은 짓이나 하고 있으나, 그의 어릴 적 꿈은 장군이었다. 그것이 그가 이렇게 연극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 듯했다. 다른 용병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픽 흘리며 그 뒤를 뒤따른다.

그가 저택으로 들어서는 문을 열려 문 손잡이를 붙잡는 찰나, 조용히 뒤따르던 아이가 조언했다.

"함정이 있을 수 있어요. 내가 열죠."

"무슨 소리! 지휘관의 귀감은 항상 선봉에 서야 하는 법... 으아아악!"

그 말을 무시하고 기어이 문을 열어젖힌 고용주는, 눈을 감싸 쥐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문이 열리면 쏟아지도록 준비된 하얀 액체, 그걸 얼굴에 정통으로 두들겨 맞은 것이다. 살을 녹이는 액체인 듯 했다. 바보, 그러니까 말 좀 듣지, 하고 핀잔을 줄 새도 없이, 다음 공격이 들어왔다.

"그대에게 선고한다! 그대는 살인 교사의 죄를 저질렀다! 포박을 받아라!"

간단한 약식 기소의 주문. 그것이 금색의 문자열이 되어, 바닥에서 데굴거리는 고용주를 휘감았다. 시야를 잃은 고용주는 꼼짝없이 그 문자열에 사지를 구속당해 매달리게 되었다. 돼지처럼 꽥꽥거린다.

"구해 줘! 구해 달라고! 그러려고 너희를 돈 주고 산 거 아냐! 빨리!"

"나 참."

아이는 주먹을 쥐고 그 머리를 크게 후려쳤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가라앉는다. 혼절한 것이다. 그러자 당황한 목소리가 앞에서부터 들려왔다.

"뭐냐? 네 고용주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돈 벌고 싶지 않은 게냐?"

콧수염을 위풍당당하게 기른 중년 남자 율사였다. 그는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곤 고용주를 인질로 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여긴 듯했다. 고용주가 죽으면 돈을 벌 수 없으므로.

하지만 아이는 애당초,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악명을 널리 떨치고 있는, 이 부패 율사를 죽여 검으로 만드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습격해온 카나기 무반의 옷을 빼앗아 이렇게 위장하고, 이런 형태로 이 집에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래, 돈 따위 필요 없다."

"미친 놈! 시무스, 덮쳐!"

그렇게 말하자, 율사의 곁에 있던 검사가 레이피어를 빼 들고 송곳 같은 찌르기로 달려들었다. 몸을 급하게 옆으로 틀어 피하는 아이. 그러나 찌르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다시 덮쳐든다. 아이는 선 채로 허리를 눕듯이 굽혀 그 공격을 피한다. 그리고 거리를 벌렸다.

"후후후, 어디서 굴러먹던 양아치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성실한 집행관인 시무스는 너 같은 것과 격이 다르다! 이 자는 기나센의 용병이란 말이다!"

율사는 그 시무스라는 남자의 검세를 보고 자신감을 얻었는지, 위협하듯 소리 질렀다.

"응? 무슨 헛소리죠. 검이나 검술이나, 전부 동부 것이지 기나센 것이 아닌데."

아이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디서 제법 수련을 하긴 했지만, 결코 기나센의 것은 아니었다. 레이븐사이드의 모든 편대장과 검을 맞부딪혀 본 아이는 알 수 있었다. 기본적인 검의 이론부터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유혼을 세워 들고 말한다.

"그 주인에 그 집행관이군요. 주인이 출신을 따지는 것 같으니, 용병 명가 출신으로 신분을 위조해서 일자리를 구했군. 부끄럽지 않습니까? 당신의 스승에게?"

시무스라는 남자, 얼굴빛이 거무튀튀한 검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율사는 그런 시무스의 반응을 보고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떨쳐내고 주문을 외웠다. 언젠가 자신도 들었던 주문, 집행관의 검에 축복을 거는 주문이었다.

"자, 저 녀석을 쳐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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