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증명 ( 3 )
정명(正名).
대의명분을 바로잡아 밝힌다는 뜻. 그것을 별칭으로 가진 검, 클리브 솔리스. 그것은 금세 그것이 휘둘러질 장소를 찾았다.
법정이었다. 얄궂게도, 법이 가장 많이 어겨지는 장소.
"이상의 죄목에 따라 5명의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 죄는 13가지 마약 원료의 밀수죄, 금지된 무기 밀수죄! 그리고..."
부패한 율사가 죽은 도시. 그 한가운데에 있는 법원에서는 졸속으로 재판이 일어나고 있었다. 재판을 주재하는 자, 오늘 처음으로 판사의 옷을 입은 율사의 지위는 고작 1위계다. 얼마 전까지 부패 율사 밑에서 형식적으로 검사 역을 맡던 자였다.
그들은 지금 졸속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제도에서 새로운 율사가 파견되기 전에, 부패한 율사가 저지른 죄를 전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서.
"시체 밀수! 북서 자치령에서 죽은 마술사의 시체를 가공해, 끔찍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밀수한 것! 증거는 이렇게 명백하다!"
자신의 집행관에게 턱짓으로 증거를 드러낼 것을 명하는 율사. 집행관은 구석에 놓인 수레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그것을 덮고 있는 흰 천막을 걷어낸다. 흡, 방청객들이 놀라 숨을 들이키는 것이 보였다. 부패하지 않도록 마술적으로 처리해 쌓아놓은 마술사의 시체, 그것이 수레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마술사의 시체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신기가 가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잘 가공하면 수많은 마술적 용도로 쓸 수 있었다. 두냐의 1위계 마술사의 시체를 가공해 만든, 조디악의 특수 레버넌트인 미트라스. 그것이 예가 될 수 있다.
부패한 율사는 여러 조직과 손잡고 이 마술사 시체의 밀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큰 죄였다. 연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그래서 빠르게 이 죄를 처리하려 이렇게 엉망진창인 재판을 열고 있는 것이었다.
"증거는 이렇게 명확하다! 변호할 말은 있는가?"
"어, 뭐, 모르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불가하다!"
"그렇네요. 졌습니다."
변호인석에 있던 또 다른 율사가 귀를 후비며 그렇게 말한다. 그 역시 부패 율사의 제자 중 하나였다. 그 역시 이 졸속 재판에서, 형식적으로 변호하는 척만 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그럼 그대들에게 선고한다!"
판사가 선고한다. 그 말과 함께, 그의 말이 금색의 주문이 되어 법원의 한가운데에 무릎 꿇고 있는 자들을 구속한다. 방청석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미친 자식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양심이 없는 거 아니야?"
"저 어린아이들이 뭘 했다는 거야!"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이 죄를 뒤집어씌울 대상으로 고른 것은, 기껏해야 열 살도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죄를 뒤집어쓸 자는, 스스로를 변호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어야만 했기에.
라달라리아는 재판이 완전히 성립했을 때에만 신벌을 내린다. 만약 변호능력이 있는 성인이, 변호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변호해낸다면, 신벌이 거부될 수 있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행위였다. 그리고 이런 꼬맹이들이 시체 밀수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에, 방청석의 모두는 이것이 누명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연극임을 알고 있었다.
그 비난을 무시하고 판사는 법봉을 두드린다.
"그에 합당한 처벌은 사형! 이들에겐 사형이 합당하다!"
쿠르릉.
그 말이 끝나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법원 위에 먹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법원의 중간, 피고인들이 법문에 묶여 무릎 꿇고 있는 그 장소. 그 위의 천장은 뻥 뚫려 있었다. 이렇게 신벌을 내릴 때, 번개가 건물을 해치지 않고 죄인을 구워버릴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었다.
어린아이들의 머리 위로 먹구름의 그림자가 검게 드리운다.
"흑, 흑, 흐아아아앙..."
묶여서 무릎 꿇린 어린아이 하나가 눈물을 터뜨렸다. 곧 저 구름으로부터, 벼락이 떨어질 거라는 것. 그게 너무나 두려워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러나 매정한 구름은 결국 번개를 토해내고야 말았다.
쩌엉!
어린아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번개는 자신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림, 클리브 솔리스!"
그 법원 천장에 둥글게 뚫린 구멍, 그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떤 검사가, 요정의 것처럼 아름다운 검으로 그 번개를 잘라내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가 천장 위에서 뛰어내리며 검을 둥글게 휘두르자, 번개는 힘없이 부서졌다. 그렇다. 번개를 잘라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재주였다.
"뭐, 뭐야?"
척, 바닥에 떨어진 그는 어린아이들을 지키듯 등지고 일어서서 판사석을 바라보았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흰 여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검사. 그는 물론 아이였다.
"역시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단순히 마술사를 죽이는 것을 넘어, 그 후폭풍을 예상하고 수습할 수 있을 정도로. 북서 자치령에서의 지난 4개월은 아이를 노련하게 성장시켰다. 이 자들은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그런 확신에 가까운 예측을 가지고 아이는 며칠간 이 도시에 머물렀다. 그리고 졸속 재판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이렇게 달려든 것이었다.
"뭐냐! 신성한 법정에 무슨 훼방이냐!"
법봉을 내던지고 악을 쓰는 율사. 아이는 가면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 눈으로, 그 율사를 바라보았다.
"신성한 법정? 벙어리 법정이 아니라 말입니까?"
"무슨 소리냐!"
"이 어린아이들이 대체 어떻게 마약을 밀수하고 시체 수레를 끈단 말입니까? 눈으로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도 아무도 말하지 못하게 하니, 이게 벙어리들의 법정이 아니면 뭡니까?"
말문이 막힌 율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얼굴이 굴욕감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방청석에서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방청객들도, 그 말을 듣고 의적이 등장했음을 알고 환호를 내질렀다.
이 도시와 같은 반역향, 그리고 부패한 율사가 지배하는 곳. 그런 곳에서는 의적의 설화도 출현도 드물지 않았다.
제국은 넓었고 넓은 땅이 다 같은 강도로 엄밀하게 지배되기는 힘든 법이다. 그 치안의 그물망이 성긴 곳에서는, 어김없이 의적이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의적도 여럿 있을 정도였다. 방청객과 같은 민초들은, 언제나 그들의 출현을 열망했다. 그렇기에 바로 아이를 의적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율사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소리쳤다.
"저, 저 건방진 죄인을 체포해라!"
이 법정에 자리한 율사는 둘, 당연히 집행관의 수도 둘. 하지만 이들은, 저번에 보았던 그 시무스라는 집행관에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수준이 낮은 자들이었다. 롱소드에 희미한 황금빛 가호를 두르고, 엉거주춤 장검을 휘둘러오는 집행관.
"흡!"
아이는 클리브 솔리스에 신기를 가득 밀어 넣고, 그 검을 피하지 않고 맞받았다. 검과 검이 부딪히자, 집행관의 검은 사탕처럼 형편없이 깨져버렸다. 집행관은 놀라서 신음성을 흘린다. 그리고 그게 그의 유언이 되었다.
클리브 솔리스를 두 손으로 바꿔 잡은 아이가, 바로 덮쳐들며 비스듬히 그 집행관을 베어버린 것이다.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몸이 반 토막이 나다시피 한 그는 앞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방청석에서 비명, 그리고 환호가 쏟아졌다. 클리브 솔리스의 색유리 장식, 거기에 피가 빨갛게 묻었다. 피로 염색된 색유리는 바닥에 흥건히 젖은 빛을 뿌려댄다.
"저, 저, 저, 무슨... 그대에게 선고한다! 그대는 살인의 죄를 저질렀으니 사형이 합당하다!"
입을 덜덜 떨다가 비명을 지르듯 외치는 율사. 그러나 그 주문은 척 보기에도 형편없었다. 다나의 것과 비교하니 어린아이의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아이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누나가 굉장히 말을 잘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다시 클리브 솔리스를 두 손으로 붙들고, 화살처럼 날아오는 금색의 문자열을 후려친다. 정명의 검, 그릇된 선고를 바로잡는 힘을 가진 그 검은 그 멍청한 법문을 흔적도 없이 깨부숴버렸다.
"뭐야! 이 마물 자식, 이 개같은 범죄의 옹호자 자식아! 그 검은 대체 뭐냐! 아까부터, 어떻게 내 마술을 전부 깨부수고 있는 거냐고!"
소리 지르는 율사. 대답해줄 의무는 없었다. 아이는 오만하게 휙 돌아서서, 아직도 금색의 문자열에 붙잡혀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클리브 솔리스를 가로로 휘둘러 그 포박을 풀어주었다.
"여긴 위험할 수도 있어. 빨리 도망치렴."
상냥하게 말하는 아이. 무섭게 보이는 여우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 어조는 어린아이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선의로 가득 차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에 젖어 있던 꼬마아이들은, 포박이 풀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곤 빠르게 달아났다. 그것을 엄호하듯 바라보는 아이.
"왔군."
그리고 옆으로 슬쩍 몸을 피해, 뒤에서부터 덮쳐든 칼날을 피하고, 그 칼을 휘두른 팔을 붙잡아 꺾었다.
"끄아아아아악!"
"집행관이 뒤에서 암습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뭐, 암습하라고 일부러 등을 열어준 거지만."
아이의 괴력이 집행관의 팔을 붙잡고 비튼다. 튼튼하게 단련된 팔이었지만, 아이의 비인간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찢어져 하얀 뼈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아이는 그렇게 집행관의 팔을 부러뜨리고, 빙글 돌아 그에게 안기듯 다가서곤 힘껏 바닥에 메쳤다.
쾅!
커다란 소리. 집행관의 등이 바닥에 부딪힌다. 그 충격으로, 법정의 바닥에 살짝 금이 갈 정도였다. 집행관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해버렸다. 아이는 클리브 솔리스를 한 손에 든 채로 저벅저벅 그 위로 올라가, 목에 쿡 찔러넣었다. 간단한 확인 사살이었다. 푹, 피가 튀어 여우 가면의 흰 뺨에 한 줄기 선을 더한다.
홱, 그 가면이 고개를 들어 판사석을 바라본다. 율사에겐 그게 다음엔 너를 죽이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맞는 추측이었다. 아이는 힘찬 도움닫기로 단번에 판사석으로 접근해, 율사의 앞에 음산하게 섰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변호할 말 같은 건 없습니까?"
"이 자식, 나를 죽이면, 제도의 대법원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벌벌 떨며 변호 대신 위협을 말하는 율사. 아이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클리브 솔리스를 휘둘러 그 심장을 꿰뚫었다. 뭉툭하기 그지없는 클리브 솔리스지만, 이런 약한 인간의 살을 꿰뚫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이는 그대로 공양의 주문을 외운다. 클리브 솔리스의 끝에서 불이 치솟고, 그 힘이 마술사 살해의 신에게로 빨려 들어간다. 이 정명의 검, 짧은 시간동안 그 쓸모를 확실히 입증해낸 이 검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솔직히 갓 만든 클리브 솔리스가 이들의 주술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할 수 있었던 데에는 행운이 따랐다. 이들이 1위계밖에 안되는 송사리였다는 행운. 이제 그 심장을 하나 더 흡수했기 때문에, 이제는 2위계의 주술까지도 문제없이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펑!
그렇게 율사의 시체가 화르륵 타오름과 동시에, 그 심장에서 금색의 문자열이 튀어나왔다. 둥글게 원기둥을 이룬다. 얼마 전에도 보았던 광경, 율사가 죽었을 때 제도에 그 살해자를 고발하는 마술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아이가 율사를 죽였음이 제도로 전송될 것이다.
"어딜."
하지만 아이는 당연히 그걸 놔둘 생각이 없었다. 피를 먹어 붉은 색조임에도 아름다운 검, 클리브 솔리스. 그 가운데에 자리한 색유리는 오히려 피에 젖을 때 더욱 아름다운 듯 보였다. 그 손잡이를 붙잡고 신기를 밀어 넣는다.
"흡!"
휘두르자, 아까 번개를 베어낼 때처럼. 클리브 솔리스는 그 금색의 문자열을 너무나 쉽게 깨부수어버렸다. 고발은 제도에 전달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림이 알려준 그대로였다.
율사를 함부로 죽일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제약, 고발의 법문. 그 법문이 이제 아이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 것이었다.
"후우우."
림에게 들어서 이렇게 할 수 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속으로 조금 긴장하고 있었던 아이는 마술이 완전히 흩어진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아이는 아탕칼리와 카나기가 자신을 적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라달라리아까지 더해진다면 세계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건 사절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큰 외침이 들렸다.
"어, 어, 도망친다!"
"막아! 의적님, 남은 율사 놈이 도망칩니다!"
형식적으로 가짜 변호사 역을 맡던 율사, 자신의 집행관을 잃어버린 그 율사가 줄행랑을 시도하던 것이었다.
"비켜! 이, 이자식, 너는 건방져서 사형이다! 사형을 선고한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아이에게 형편없이 마술을 남용하는 율사. 약식 선고의 마술이었다. 정식 재판 절차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훨씬 쉽게 신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술. 조잡하다. 마술사 흉내를 내는 자나, 심지가 굳은 성인만 되었어도 무효화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이 자는 교활하게 어린아이를 노렸다.
율사의 앞을 가로막던 어린아이가 온몸을 묶이고, 그 위에 먹구름이 모여든다. 아까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자그맣지만, 어린아이를 죽이기엔 충분한 번개. 그런 번개를 품은 먹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
아이는 황급히 달려들어 그 먹구름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후려쳤다. 클리브 솔리스는 이번에도 훌륭하게 번개를 베어냈다. 휙, 다시 아래로 검을 휘둘러 구속도 베어낸다.
"아아, 감사합니다, 의적님. 감사합니다..."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재빠르게 자신의 아들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여 아이에게 절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 인사를 받을 틈이 없었다.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아 시간을 끌고, 그 율사는 이미 밖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내 어린 순례자야, 율사들은 제도로 보낼 수 있는 전서구도 가지고 있다. 반드시 쫓아가서 죽여놔야 후환이 없다.'
"알고 있어!"
'내가 추적을 돕겠다.'
옆에서 눈을 번뜩이며 선언하는 림. 그 말을 따라, 아이는 재빠르게 법정의 밖으로 달려나갔다. 달아난 율사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빠져나가고 난 뒤, 방청석에서는 환호성과 경탄 그리고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다 말고 중얼거렸다.
"저, 저분은 누구시지? 어디서 활동하시는 의적이신가?"
"하얀 번개? 서리사슬? 아니야, 저렇게 강한 의적은 들어본 적이 없어!"
"맞아, 집행관 둘을 단숨에 쳐죽이다니! 마술을 물리치는 힘은 또 어떻고? 그냥 의적이 아니야, 대의적이 나타난 거야!"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 방금 일어난 광경은, 이 무법지대에서 희망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충분한 멋진 광경이었다. 특히, 꼼짝없이 아이를 번개에 잃게 생겼던 부모들의 감사가 제일 컸다.
수백 명이 신나서 웅성거린다. 그리고 사람이 수백 명이나 모이면, 반사회성 인격장애자가 한 명은 꼭 있기 마련이었다. 딸기코의 남자 하나가 심사가 뒤틀려 소리 지른다
"의적은 무슨, 저 여우 가면 안 보여? 그냥 지 뱃속 챙기려고 온 괴물딱지 새끼겠지. 다들 닥치라고! 괴물 놈들과 한 편으로 몰려서 십자가에 매달리고 싶어? 딸꾹."
십자가에 매달린다, 그런 말을 듣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뚝 멈췄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딸기코는 마치 자신이 이 수백명의 사람들을 지배한 것 같은 기분에 빠져, 으스대려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발을 움켜쥐고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악! 뭐, 뭐야!"
칠흑처럼 검은 후드. 그걸 머리끝까지 뒤집고 유령처럼 앉아있던 자가, 딸기코의 곁을 지나며 그 발을 세게 짓밟았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강한 힘이었는지, 그 짓밟음 하나만으로 딸기코의 발은 코끼리에 짓밟힌 듯 뭉개져 버렸다.
혹여나 그런 꼴이 될까 봐, 바다처럼 갈라져 그 후드에게 길을 내주는 사람들. 그는 곧 법정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쓰레기 같은 인간 놈들."
그 후드를 뒤집어쓴 자가 중얼거린다. 그 후드 안, 빛을 완전히 차단하며 고인 어둠 속에서는, 고양이의 것 같은 노릿한 홍채가 빛나고 있었다. 그 위에는 일자로 자른 회색의 단발이 자리하고 있다. 냉정해 보이는 얼굴, 그러나 나이가 많지는 않은 소녀의 얼굴이었다.
법정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나무를 가볍게 타고 올라간다. 그리고 놀라운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율사와 아이를 뒤쫓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마리의 짐승 같은 움직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