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증명 ( 6 )
한편, 그 때. 붓꽃 빛으로 일렁이는 밤하늘 아래.
아이는 불티를 멍하니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앞에선 모닥불이 타닥이고 있다. 야영을 하기 위해 피워놓은 것이었다. 아이의 눈, 그 흰자위가 검은 빛으로 번들거린다.
지금 아이가 대련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림이 보여주는 환상 속의 대련. 어찌나 그 대련에 깊게 몰두했는지, 모닥불 속에 석탄처럼 던져넣어 놓은 감자와 고구마 거지반이 새까맣게 타고 있는데도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후."
모닥불에서 코 찌르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날 때가 되어서야 대련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자마자, 림은 다급하게 말한다.
'내 어린 사도야, 그럴 때가 아니다! 큰일이다!'
"응? 뭔데? 뭐야?"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 때마침 그때,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은 숲에서는 에바와 칼라일이 충돌하고 있었다. 혹시 그 충돌을 감지하고, 뭔가 조언을 하기 위해서 나선 것일까?
'고구마가 타고 있다!'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시급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기는 했다.
아이는 깜짝 놀라서 긴 나뭇가지로 고구마를 굴려 꺼내려다가, 여의치 않자 클리브 솔리스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 뭉툭한 검면을 삽처럼 사용해서, 고구마를 안전하게 꺼냈다.
아이는 옷 소매를 당겨서 손에 검댕이 묻지 않게 한 다음, 고구마를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보드라운 황금빛 살이 달콤하게 입안에 차오른다. 아이는 그렇게 입에 까만 것을 묻히고는,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날이 없으니까 생산적으로 쓸 수 있어서 좋네."
림은 어처구니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 검은 그렇게 쓰라고 날이 없는 게 아니다...'
"어쩌라구. 자."
'나는 고구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감자를 다오.'
"싫어. 이게 제일 많이 탔단 말이야."
그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리는 림. 아이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또 다른 고구마에 내리꽂고, 공양의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단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고구마가 림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간단한 제사였다.
그렇게 뒤늦은 식사를 마치고서, 아이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연보랏빛과 더 진한 색이 섞인 밤하늘, 공기가 맑은지 그 중심에 뜬 달은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은백색이었다. 그 은백색은 오늘 만난 그 소녀를 떠올리게 했다. 에바라고 했던가.
방금 전까지 환상 속에서 대련하던 상대도 그녀였다. 이겼던 자와 왜 다시 대련을 하는가, 그건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충돌에서는 자신이 승리했지만, 만약 그 소녀의 몸에서 일렁이던 검붉은 기운. 그걸 끝까지 개방한다면, 그래도 자신이 승리할 수 있을까? 그것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림, 알려 줘."
아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검은 개는 뭐야? 뭐길래 그렇게 강한 거야."
그 우려는 정확한 것이었다. 림과 했던 가상의 대련에서, 아이는 에바와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졌다. 정확히 말하면, 검은 개에게 졌다. 그것이 인간의 형상일 때에는 어렵잖게 제압할 수 있었으나, 강신을 시작하고 검은 개의 형상을 몸에 두르자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내가 너에게 말해주어도 될까 모르겠구나.'
림은 잠시 망설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진지한 눈동자로 바라보자,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대답한다.
'그건 천 년 전부터 아이달로스의 사냥개라고 불리던 삿된 존재. 외신이다.'
"뭐?"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아이. 림은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외신의 땅에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 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지. 아이달로스의 사냥개라는 이름은 그 야만인들이 붙여준 것이다.'
외신 대부분은, 그래, 암이라는 병의 종양처럼, 그 살아가는 방식과 증식하는 방식에 규칙성이 없고 상호작용하는 데에도 일정한 법칙성이 없다. 호의를 주었는데 악의가 돌아오는 것도, 적의로 대했는데 축복이 돌아오는 것도 흔하지. 변덕스럽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 그 사냥개가 예외였다. 개 모양의 강대한 외신은 야만인들에게 일정한 방식으로 작용했다. 제물을 바치면 지켜준다는 방식으로 말이야. 그래서 야만인들은 그것에게 이름을 붙이고, 신으로 섬겼다.'
림의 긴 말을 경청하는 아이. 어디선가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아이의 머리를 자그맣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 실체야 어쨌든 그 방식은, 아직 인간이 언어도 농경도 깨우치지 못했던 시절. 곰이나 호랑이나 멧돼지 따위를 신으로 섬기는 것과 유사했다. 억지를 조금 쓴다면, 정령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겠지. 그 두냐의 마술사라는 놈들은, 그 사실을 이용해 어떻게 인공적으로 그 베들렘인가 하는 것을 만들어낸 모양이야.'
"뭐? 그,그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느냐? 이제 좀 똑똑해진 척하더니 아직 둔하구나. 그래. 그녀가 바로 그 두냐의 검은 개,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자이다.'
갑자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에 입을 크게 벌리는 아이. 동시에 호승심이 치솟았다. 아마 넌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열여섯일 거다, 마레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가 그 녀석을 완전히 이길 방법은 없어?"
그런 말이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 림은 입을 다물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진중한 음성으로 말한다.
'이래서 망설였던 것인데.'
"뭔데? 방법이 있구나?"
림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예전, 그 버려진 성에서. 그 벼멸구 같은 녀석이 금지된 약물을 뿌려 만든 외신을 죽였을 때를 기억하느냐.'
카나기의 잔당을 소탕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바우얀이 뿌린 약을 뒤집어쓰고, 들끓어 오르는 고기 형상의 괴물이 된 시커팩 로드를 죽였을 때. 림은 갑자기 아이에게 그 괴물의 심장을 공양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고... 그랬었지."
'그래. 그리고 분명히 그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알려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하게 일깨워주는 림. 그 덕에 깨달았다. 림이 방법이 있다고 했던 이유도, 망설이는 이유도. 림은 그 외신의 힘을 이용한다면 베들렘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던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에 어떤 위험부담이 있어 망설이는 것이었고.
"알려 줘."
'괜찮겠느냐? 이 힘은 너를 내부로부터 파멸시킬 수도 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 소녀의 상태도 그렇게 썩 괜찮게 보이지 않는단다.'
"선택하는 것도 감당하는 것도 다 내 몫이겠지. 알려줘."
아이의 요청을 들은 림은, 결국 그 말을 이기지 못하고 외신의 힘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 힘은 체념과 허무의 힘이다. 세상에는 어떠한 보편적인 정의도, 시대와 종교와 모든 인위를 초월한 윤리도 없으며, 그저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있을 뿐이라고.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는 세계를 이해하기를 체념하고, 그저 번성한 것을 뒤따라야 한다는. 그런 색조 검은 허무와 들끓는 악의를 몸에 받아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힘이다.'
"윽..."
'아무 검이나 꺼내어 팔을 내뻗어 보거라.'
그 말에 아이는 유혼을 불러냈다. 짐승의 이빨을 닮은 은색의 검날이, 달빛을 받아 빛난다. 생선의 배처럼.
'그럼 내가 이제 이 검에 삿된 힘을 불어넣어 보겠다. 참아라. 괴롭더라도.'
림이 그런 말을 꺼냄과 동시에. 유혼의 검날이 칙칙한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유혼에서 거무튀튀한 기운이 시체에서 풍기는 역한 향내마냥 터져 나온다. 검 끝에서부터, 천천히, 그것은 변해가기 시작한다. 하나의 생물처럼.
"으윽!"
그와 동시에, 아이의 뇌리에 원념 같은 것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보다 현명하고 진실되게 살기 위해 억눌렀다고 생각했던, 모든 마술사를 없애겠다는 원한감정, 분노, 자기연민. 파괴를 원하는 충동. 문명인이라면 억눌러야 하는 그런 모든 충동들이, 검 뿐만 아니라 뇌 또한 물들이기라도 하는 듯 마구잡이로 머릿속에서 날뛴다.
"저리...꺼져!"
죽여, 부숴, 용서하지 마, 이런 속삭임이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로 겹쳐 울린다. 머릿속에서. 아이는 소리를 질러 그 목소리를 몰아내려 애썼다.
왜 너만, 왜 나만, 어차피 이 세상은.
그 원념은 이런 말들로 시작했다. 이 몇 가지의 서두로, 세상의 모든 악의로운 말을 다 짜낼 수 있는 듯 들린다. 그 모든 사례를 들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고작 삼십 초 남짓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 괴로움에 떠는 귓가에 림의 목소리가 울린다.
'자, 이제 휘둘러보거라.'
림의 말에 따라, 아이는 간신히 유혼을 양 손으로 붙잡았다. 유혼은 어느새 처음부터 그러기라도 했던 것처럼, 검붉은 빛으로 완전히 변색되어 있었다. 아이는 괴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유혼을 크게 휘둘렀다.
후우웅!
악룡 우스무, 그것의 혈사포를 되받았을 때. 그때가 생각났다.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깔끔한 일격이었다. 유혼의 검날에서 쏘아져 나간 검붉은 빛무리는, 숲의 나무에 부딪더니 그 일대를 커다랗게 소멸시켜버렸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깔끔한 소멸이었다.
"뭐, 뭐야?"
아이는 자신이 일으킨 참상이, 스스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입을 떡 벌렸다. 이건 파괴가 아니었다. 소멸. 그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버렸다. 원래부터 그 나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검붉은 빛무리에 빨려 들어가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해서 림이 조용히 설명을 해 주었다.
'외신의 힘은 허무의 힘. 이 세계로부터 존재를 지워버리는 힘이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는 것들, 유령이나 삿된 존재 따위를 없애버리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윽..."
'유혼의 힘은 다른 힘을 빨아들여 방출하는 것이지. 나는 그것에 허무의 힘을 더한 것이야. 그래서 이렇게 닿는 것을 소멸시키는 검기를 방출하는 힘이 완성된 것이다. 다른 검에도 마찬가지...'
"크으윽!"
그러나 아이는 림의 설명을 들을 틈이 없었다. 유혼 전체를 파먹은 검붉은, 녹처럼 퍼져나가는 기운. 그것이 어느새 유혼을 쥐어잡은 아이의 손에까지 번져 침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검을 놓아라!'
그 침식이 심상치 않은 것을 확인하고 소리 지르는 림. 하지만 아이는 그럴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들끓는 원념, 그것이 어느새 가장 아프고 슬픈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라딘폴 성에서, 레이븐사이드의 일원들과 헤어졌던 날. 그 사람들이 모두 남아있던 방에서, 떠나야만 했던 때의 기억을 꺼내어, 아이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댔다.
-왜 어리석게? 왜 진작 네 뒤를 따르던 신을 받아들여 원한을 대행하지 않은 것이냐. 네가 진작 강해졌더라면 그 사람들도 구할 수 있지 않았더냐? 왜 어리석게 현자라도 된 양 굴었던 것이냐? 너는 누구보다 바보 같은 어린아이에 불과하지 않으냐?
"닥쳐!"
이런 책망의 목소리가 뇌 속에서 쩌렁쩌렁 울려댄다. 젊은 남자의 것이었다. 그 목소리에 짙은 회한과 냉소가 배여 있는 것이 느껴진다.
외신의 힘, 그것은 대가 없는 강한 힘이 아니었다. 이렇게 머릿속에서 울리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답 없는 허무의 원념. 이것에 몸을 내주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 말이 어찌나 아팠던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침식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검붉은 기운, 계속해서 파고드는 검붉은 기운은 어느새 아이의 팔꿈치까지 도달해 그 하얀 팔을 파먹는다.
-원한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 같은 것이다. 무감정은 비겁한 체념, 복수는 강인한 체념이다. 무언가를 증오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침식이 거세게 진행됨에 따라, 머리에서 터져 나오는 냉소적인 목소리도 그 힘을 더해갔다. 그제서야, 아이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선주. 천년 전, 림의 아나테마였던 자. 차디찬 복수행을 선택했던 자. 그 자의 목소리였다.
"윽!"
쨍그랑.
그렇게 검에 붙들려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었을 때. 울리는 땅에 검이 부딪는 소리. 갑자기 아이는 머리가 맑아오는 기분을 느끼고 뒤로 넘어졌다. 유혼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그 덕분에 자신의 머리를 점령한 혼탁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뭐, 뭐야."
아이는 자신이 왜 검을 떨어뜨렸는지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 하나가, 아이의 손을 찔러 유혼을 바닥에 떨어뜨리게 만든 것이었다.
"어?"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그냥 단검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검, 손톱만 한 단검들이 모이고 뭉쳐 손 두 뼘만 한 단검을 형성한 것이었다. 모닥불을 반사해 금색으로 찬란히 반짝이는 그 단검은, 하나하나가 예술품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괜찮으냐? 그러기에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이 힘은 역시 봉인해야...'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잠깐만."
걱정 섞인 림의 목소리를 물리치고, 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단검의 무리가 갑자기 나풀대는 나비의 모습으로 모양을 바꾸더니, 달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거기 서!"
아이는 다급하게 그 나비를 뒤쫓기 시작했다. 나비는 잡힐 듯 말 듯 얄밉게 아이를 피해 나풀나풀 날아가더니, 곧 한 공터에 다다랐다. 격렬한 싸움이 있었던 듯, 부서진 나무와 돌조각, 파헤쳐진 흙. 흔적이 많이 남은 공터였다.
"왔군, 소년."
공터에선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이었다. 상아 같이 매끈한 이마를 드러낸 긴 금발이, 흰 성기사의 갑주를 치장하는 장식끈처럼 늘어져 있다. 그녀는 한 손으로, 그 단검으로 이루어진 조각칼을 든 채. 무언가를 조각하는 중이었다.
"어."
그녀, 아셀라이는 조각상을 아이에게 던졌다. 막 조각을 끝낸 것이었다. 아이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이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그녀가 조각한 것, 그것은 가면을 쓴 남자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부패한 법정을 덮쳤을 때 쓰고 있던 가면과 같은 모습.
"나도 입장 때문에 나설 수가 없는 사안이었는데 말이야. 내가 너를 뒤쫓아다니던 와중 보았던 광경, 그중 제일 멋진 장면이라 조각해봤다. 어떤가?"
즉 이 여자는, 내 정체를 알고 있다.
아이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든 말든, 아셀라이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그제서야 이 여자가 한쪽 팔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자마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무리 상식이 없는 아이라지만, 팔 없는 아탕칼리의 여기사, 그것도 강자. 그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면 바로 정체를 알아볼 정도의 안목은 가지고 있었다.
"소개하지. 내 이름은 아셀라이 클라릿체, 아탕칼리의 명예로운 기사단 데스티노 라디오소, 그 명예 단장직을 맡고 있다. 여기에는 너를 시험하기 위해 파견되었지."
"그렇다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레바테인을 불러내 두 손으로 붙잡는 아이. 자신을 숙청하기 위해 아셀라이가 파견된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셀라이는 그 적대행위에도 아랑곳 않고, 소리내어 웃으며 무언가를 제안할 뿐이었다.
한참이나 이어진 아셀라이의 설명, 그리고 제안. 그것을 다 들은 아이는 어처구니가 없어 눈을 크게 떴다.
"예?"
아셀라이가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는 아이. 하지만 그 장난기 많아 보이는, 이마가 드러난 얼굴은. 분명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입술이 움직여 이런 말을 토한다.
"어때, 네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받아들이겠나?"
제안은 그 말로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