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사렘 ( 1 )
산 채로 유적이 되어버린 도시. 나사렘의 첫인상은 그것이었다.
삼백년 전 반란의 중심이었던 이 도시는, 부유할 수 있는 입지를 모두 가지고 있으나 정치적 이유로 빈곤에 가라앉아야만 하는 도시였다. 이 음울한 어긋남이 이 도시의 시민들을 진홍색 안개와 어둡게 채색된 색유리 너머로 몰아넣었다.
그 중심에 시청 대신 자리한 것은 교회. 거대한 교회였다. 몇 번이나 위로 증축을 거듭해, 유심히 들여다보면 상층과 하층의 색조가 어긋나 있다. 그것은 어쩐지 흰개미의 집을 연상시켰다.
매달 그 교회 앞에서는 불탔다. 사람이, 화형대에 매달려서.
너희들 가운데 악마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화해야겠다. 언제나 네가 순수한 인간임을 증명해라. 그 화형대 앞에서 붉은 옷의 수도사들은 그렇게 선언했다.
말로는 사람들 사이에 숨은 흡혈귀와 늑대인간, 그 같은 괴물을 정화한다는 것이었으나, 그들만 매달기 위해서 저 많은 십자가가 필요할 리가 없었고 그들만 매달았는데 매 달 꼬박꼬박 불태울 악마가 공급될 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 의뭉스러움. 그것과는 별개로 그 무자비한 정화는 실존했으며, 또 시민들을 공포로 짓눌렀다. 나사렘의 시민들은 모두 한 번쯤은 수도사에게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악몽을 꾼 적이 있다. 그 악몽은 눈을 떠도 깰 수 없다는 점이 악질적이었다.
십자가는 그것을 달래주었다. 황금 십자가를 사서 걸어놓은 집엔 심문관이 들리지 않는다, 그런 소문이 퍼졌다. 얼마 안 가 모든 부유한 집의 거실에는 십자가가 매달렸다. 유리 대신 색유리를 장식으로 사용한 집에도, 은식기에도 같은 종류의 소문이 돌았다. 이런 짓을 이백 년 거듭한 결과, 나사렘의 부촌 그 모든 저택은 각각이 하나의 작은 교회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공포는 달그락대는 은식기 따위로 먹어치울 수 없는 것이었다.
매달 초, 교회 앞에는 화형대가 설치되고,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린다. 오물이 가득한 내장이 불타는 향기가 역겹다는 의견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매달릴 자의 위장을 비우고 짙푸른 약초와 붉게 타는 향초를 십자가 밑에 깔아 불태웠다. 그러자 끔찍한 화형과 대비되어 살 굽는 달콤한 냄새 그리고 진홍색 연기가 나사렘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핏빛 연기는 교회의 박공벽, 거기 세모꼴로 음각된 주에게 입 맞추고 모든 거리를 음산히 감찰한다. 집집마다 가득한 색유리를 어루만져 그을음을 입히고, 색유리의 색조를 우울하고 어두운 톤으로 침색한 후 사흘이 지나야 가라앉았다. 그 해묵은 그을음이야말로 이 도시의 색채라고 주장하는 듯, 유리마다 달라붙어 이백 년을 성숙한 그 연기는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 도시의 모두에게 찾아오는 아침 햇살이란, 그 연기 덮인 색유리를 지나서야 어슴푸레한 빛깔로 눈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 도시는 번영을 끝내고 죽어 있다.
고로 이 도시를 살아가는 자들도, 시체 속에서 눈뜨는 송장벌레의 심정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여긴 달라진 게 없군."
나사렘으로 들어서는 길. 아셀라이가 붉은 돌담 벽을 매만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뒤에서 퉁명스럽게 말하는 목소리.
"여기 와 본 적이 있나요?"
그건 아이였다. 입이 댓발은 튀어나와 있다. 거의 반 강제로 아셀라이에게 동행을 강요받아서, 여기 나사렘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아셀라이는 감상에 젖은 눈으로, 흰 집게손가락을 길게 펴 돌담을 쓰다듬듯 문지른다. 손끝에 묻어나오는 그을음. 그걸 보며 무의식적으로 대답한다.
"그래, 언제더라, 십오 년 전에."
"십오 년 전? 당신 열 아홉살이라면서요."
그 말을 듣자 멈칫하는 아셀라이. 처음 아이와 대면했을 때, 그녀는 자기가 열아홉이라고 소개했다.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일 게 뻔했다. 인마궁의 주인이 바뀌지 않은 지가 이십 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아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열여섯살짜리와 어울리는 게 쑥스러워도, 나이를 너무 줄인 것 아닌가. 그런 힐난의 눈초리가 아셀라이에게 향한다.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당황한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다 대답했다.
"아, 내가 그랬나? 스물 아홉을 잘못 말한 모양이다. 괘념치 마라."
"괘념? 그게 뭐예요?"
"뭐? 요즘 애들은 그런 단어 안 쓰나? 이상하다, 모를 리가 없는데, 삼십년 전 배포한 표준 교육용 서책에..."
"삼십년 전?"
"아."
아이의 눈초리가 더욱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실언을 깨닫고 안색이 창백해져 입을 다무는 아셀라이.
"솔직히 말해요. 당신 몇 살이에요?"
"조용히 해! 무례하구나, 자꾸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시험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잊었느냐?"
"하는 짓은 다섯 살인데."
피부가 어린아이같다, 그런 말인 줄 알고 아셀라이가 은근히 좋아하는 기색을 보인다. 아이는 어이가 없어 심술을 부리려다가, 좋아하니 됐다.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탕칼리의 성기사와 아나테마,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둘이 이렇게 함께하게 된 이유는 시험이었다. 과연 아이를 토벌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확인하라는 성 아우렐리우스의 지시, 그것을 지키기 위한 시험.
"그럼 어디보자, 요즘도 골목길에서...오."
아이를 나사렘의 허름한 뒷골목으로 이끌며 전진하던 아셀라이. 그녀의 눈에 그리운 광경이 떠올랐다. 골목길의 뒷편, 집 몇이 허물어져 생긴 이 널찍한 공터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꼬마아이들이었다.
"앗!"
꾀죄죄한 꼬마아이 하나가 실수로 공을 너무 세게 찼다. 돼지 오줌보를 부풀려 만든 공은, 쏜살같이 날아가 유리창을 향한다. 안색이 파랗게 질리는 꼬마. 곧 저 유리창이 깨지고, 엄청나게 혼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지켜지지 않았다. 좋은 방향으로.
"어?"
아셀라이가 케이론을 이용해, 그 공을 허공에서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소년! 받아라!"
그리고 웃으며 그 공을 어린아이에게 돌려주었다. 엉겁결에 그 공을 붙잡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꼬마. 그리고 다음 순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셀라이가 발재간으로 그 공을 빼앗더니, 멋진 발차기로 골대에 그 공을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흰 분필로 네모 칸을 쳐서 만든 골대에.
"누, 누나, 저, 감사한데, 뭐하는 건가요?"
"뭐긴, 시합이지. 아, 내가 끼면 수가 안 맞나?"
벽을 치고 되돌아나온 공을 왼발로 밟으면서, 씨익 웃는 아셀라이. 그러더니 아이에게 한쪽만 남은 팔을 크게 벌려 손짓한다.
"너도 끼거라! 안 그러면 균형이 맞질 않으니 말이다."
"나 참. 정말로 다섯 살배기...아!"
고개를 젓다가 얼굴에 공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아이. 뺨에 새빨간 자국이 남았다. 갑작스러운 어른의 난입에 얼어 있던 꼬마들도 그것을 보고 무서움이 달아났는지, 신나게 웃는다. 별 수 없이 아이도 공을 차며 꼬마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
그 어른답지 못한 난입 경기는, 무려 이십 분이 지나서야 막을 내렸다.
"제길, 그 소년들이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조금만 빗금이 넓었더라면..."
아이의 승리. 그것으로 경기가 끝나려 할 때마다, 승부에 승복하지 못한 아셀라이가 억지를 쓰면서 계속 연장전을 걸어댔기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분한 듯이 중얼거린다. 아이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억울하면 다음에 설욕할 기회를 드릴게요. 1대 1로."
"그 말, 꼭 지켜야 한다, 소년이여!"
그러자 얼굴을 피는 아셀라이. 극적인 어조였다. 연극과 오페라의 고장, 랭 반도 쪽에서 온 사람들의 말투에 대부분 그런 희극성이 배여 있기는 하지만, 아셀라이는 유독 두드러졌다.
"소년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쓰네요? 좋아해요?"
저벅저벅, 목적한 곳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엄정하게 구획 지어진 부촌과 달리, 난개발로 거미줄처럼 마구 자라난 거리를 따라 걷는다. 목적지는 나사렘의 교구 건물, 그 중에서도 서쪽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좋아하지. 더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예?"
"나는 소년을 좋아한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질색한 듯 아셀라이로부터 거리를 벌리는 아이. 그 기색을 눈치채고 웃음을 터뜨린 아셀라이는, 한 팔을 내뻗어 억지로 어깨동무를 했다.
"아니, 그런 뜻의 이야기가 아니야. 나는 소년만이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갑자기 진지한 톤으로 바뀌는 아셀라이의 어조. 어딘가 마레의 어조를 떠올리게 하는 어조였다. 그녀는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강처럼 굽이치는 길목을 바라보며 말한다.
"유년의 상태,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백지 같은 상태의 인간은 이미 완성된 인간이지. 고양이나 들개 같은 동물이 완성되어 있듯이 말이야. 그리고 그 유년이 소년으로 변했을 때, 소년은 고민한다.
성년도 노년도 절대 할 수 없는, 커다랗고 웅장한 것들을 말이야. 이 우주는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나에게 중요성은 있는 걸까, 좋은 삶의 방식과 그렇지 못한 삶의 방식이 있는 걸까, 이런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을."
"음..."
"그런 거대담론을 이해하려는 시도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다. 흔히들 노년을 죽어간다고 표현하잖나? 그건 더이상 삶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인생에 남은 중대사라고는 죽음밖에 없기에 하는 표현이지.
같은 이유다. 어쩌면 인간은 소년일 때에만 잠깐 살아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전부 죽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나는 그래서 항상 소년이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일부러라도 소년인 척 구는 걸까. 그래서 그렇게 강한 것일까. 어쩌면 아우렐리우스가 아이의 시험 역으로 이 성기사를 고른 것은, 단순히 강함이 그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이를 보냈더라면, 아나테마를 끌어들인다는 아우렐리우스의 발언에 반기를 들어, 곧바로 아이를 즉결처분하려 들었을 것이다. 아셀라이, 그녀이기 때문에 아이를 한 사람의 소년으로 먼저 바라보고, 편견 없이 관찰할 수 있었을지도.
그녀는 허공에 주먹을 꽉 쥐고 말한다. 연설하듯.
"물론 좌절하겠지. 자신이라면 분명 이 세상을 덮고 있는 범속함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사람이 사는 땅에서 겁 없이 폴짝 뛰어올랐을 때. 그리고 범속함을 벗어나는 것에 고귀함 대신 고독과 증오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결국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겠지.
그러고 나면 다리가 부러져 다시는 뛰지 못하게 되겠고. 그런 상태의 인간을 어른이라고 한다. 그게 주 앞에 놓인 인간의 운명일지 모른다."
진지한 어투로 말하는 아셀라이. 그것에는 진정성이 함뿍 배여 있었다. 아이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셀라이와 처음 만난 공터, 거기에서 들었던 제안을 이제서야 믿을 수 있겠다는 기분이.
아셀라이는 자신이 아우렐리우스의 명으로 파견되었음을, 그리고 그가 아이를 눈감아 줄 생각이라는 것을 숨김없이 밝혔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정말로 아이를 용인해도 괜찮은지 시험할 것을 정했으며, 자신을 그 시험의 시험관으로 파견했다는 것도. 이미 아이는 본인도 모르는 새에 몇 번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도. 모두 밝혔다.
그리고 칼라일과 루나틱 커넥션의 음모가 나사렘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게 아마 좋은 일은 아닐 거라는 것도 밝히고는, 협조를 요청했다.
"나를 도와 그 나사렘에서 일어나는 음모를 분쇄해다오. 그걸 성공한다면, 나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인정하겠다."
이게 아셀라이가 떠올린 천재적인 수법이었다. 루나틱 커넥션은 아이에게 계속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므로, 아예 함께 다니며 함께 임무를 처리하고 그걸 시험의 요건으로 내건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아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미에, 아셀라이는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소년. 내가 네게 검을 가르치게 해다오."
성도 8궁, 인마궁의 제자가 된다는 것.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 호의를, 적이어야 할 아나테마에게 베푼다는 것이,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추락하면 어떠냐! 소년이여, 웅지를 가져라. 어차피 추락해야 할 거라면, 차라리 기쁘게 추락해라. 가능한 한 화려하고 영웅적으로 도약해 비극적으로 추락해라. 그게 내 신조다."
그러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얼굴을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연극하듯 말하는 아셀라이. 그녀의 진심 어린 말을 들으니,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아셀라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을 신나서 제 말에 취해 떠들던 아셀라이는, 그 시선을 오해했는지 얼굴을 살짝 발갛게 물들이곤 큼큼 헛기침을 했다.
"더 하지 그래요?"
"아니, 됐다. 도착했군."
"부끄러워할 거면서 잘도 그렇게 노상에서..."
"도착했다!"
소리를 질러 아이의 핀잔을 일축하고, 말을 돌리는 아셀라이. 그녀의 말대로, 그들은 도착했다. 나사렘의 서쪽 교회, 나사렘의 두 대주교 중 한 사람이 머무르는 곳에.
"원래는 시험이 다 끝나면 네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물건이 여기 보관되어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먼저 주도록 하지. 감사하도록."
으스대며 문을 열어젖히는 아셀라이. 끼이익, 음산한 소리와 함께 교회의 커다란 아치문, 거기 매달린 회백색 문짝이 열린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동시에 소름 끼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교회 전체에.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그 소리의 정체.
그건 비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