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사렘 ( 4 )
소슬한 밤바람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커튼은 치맛자락처럼 나풀댄다.
그 바람과 함께 들이치는 달빛, 그 달빛이 비추는 에바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는,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박차듯 에바에게서 떨어져, 유혼을 불러낸다. 잠시 후 그 손에선 늑대의 이빨 같은 인상의 예리한 대태도가 빛난다.
"동료라니, 무슨 소리야?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협력자! 협력자가 있어. 그 사람이 너랑 그 재수 없는 아줌마가 같이 왔다고 알려줬어. 그래서 빨리 구하러 온 거야, 가자! 눈치채기 전에."
아이가 손에 든 유혼이 무섭지도 않은지, 에바는 무방비하게 거리를 좁혀 아이의 팔을 잡아끌려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팔을 흔들어 그것을 피하고, 더욱 물러선다. 어느새 벽을 등을 맞댈 정도로 물러났다. 에바는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왜 그러는 거야! 저 아줌마는 적당한 얘기로 널 붙들어 매고, 우리 편에 못 붙게 견제하다가, 축일에 너를 저 화형대의 제물로 불태워버릴 생각이란 말이야! 노릇노릇하게! 너 혹시 통구이가 되고 싶은 거야?"
아무래도 에바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피가 섞인 아이가 인마궁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이가 아셀라이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것으로. 그래서 이렇게 밤중에 몰래 아이를 빼돌리기 위해 접근한 모양이었다.
"선의는 고맙지만. 오해야. 너한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함께 있는..."
"바보 멍청아! 독이 든 칼을 주고 이상한 고문을 시키는 아줌마 말을 믿는 거야?"
이번에야말로 접근해 아이의 팔을 붙잡는 에바. 그리고 이를 악물고 마구 잡아끈다.
"가자. 이럴 시간이 없어. 대장이 지금 열심히 그 아줌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막고 있지만, 들키는 것도 시간문제야. 가자!"
"그만 잡아끌어, 이 바보, 그, 멍청아!"
홱 뿌리치는 아이. 그리고 유혼을 뻗고 묻는다. 에바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돌아본다.
"대장? 그게 누군데? 너 혼자 나한테 찾아온 게 아니란 말이야?"
"이거 소개가 늦었군요."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창문에 갑자기 부옇게 하얀 김이 서렸다. 그 주변의 온도가 내려갔다는 뜻이었다. 창문으로 붉은 안개가 새어 들어온다. 그리고, 목소리는 그 안개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안개는 흐릿하게 뭉치더니 곧 선명한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저번에 에바와 아셀라이가 충돌했을 때, 아셀라이를 막아선 흡혈귀. 칼라일. 그의 모습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칼라일, 이백 년째 대를 이어 당신과 우리 같은 이들을 어둠 속에서 보살피는 작은 조직, 그 결사의 수장입니다."
그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의 눈초리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나 말해요."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을 도피시켜 드리려는 것이지요. 저희는 아주 약간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멋대로 악마로 비난받고 저 끔찍한 화형대에 매달리는 자들. 가엾은 희생자들을 줄이고자 뭉친 조직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직이 해야 할 일을 하려 할 뿐입니다."
"그래! 그 말이 맞아!"
귀족적인 어투와 수사가 배여 있는 칼라일의 말, 그것을 듣고 기운이 났는지 에바가 고개를 쳐들고 말한다. 꼬리가 있었더라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운찬 외침이었다.
"대장은 무려 이백 년이나 이 썩은 지옥 같은 도시에서, 나나, 언니나, 아무튼 그런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란 말이야. 너도 돕고 싶은 것뿐이야! 넌 지금 속고 있는 거라니까, 이 바보야!"
거짓이라고는 조금도 담고 있지 않은 듯한 에바의 말. 그것에 아이의 눈이 흔들린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에바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탕칼리 놈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 알아? 정신을 연구하니 신학을 연구하니 온갖 젠체는 다 하지만, 그놈들이 하는 건 죽은 사람의 말을 받들어서 산 사람을 통구이로 만드는 것밖에 없단 말이야. 무슨 감언이설로 너를 묶어뒀을지 모르지만, 그놈들이 너를 십자가에 안 매달고 놔둘 것 같아? 오산이야!"
그 긴말이 끝나자, 이번엔 칼라일이 설득하러 나섰다.
"이 말을 들어서라도 움직여 주시지요. 아가씨는 원래 다른 곳에서, 아주 잠시 조력할 것을 조건으로 파견되었지만, 저와 제 동지들의 긍지를 목도하고 거기 감동하여 본래 조직에서의 귀환령을 거부하고 저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런 아가씨가 순수한 호의로 당신의 탈출을 돕고 싶다는데, 제가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함께 갑시다."
"얼른! 지금 서른 명 넘는 동지들이 결계를 쳐서 그 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묶고 있어, 빨리 움직여야 해!"
설득이 되었음을 확신하고 아이에게 접근하는 에바. 하지만, 아이는 유혼을 휘둘러 그런 에바를 물리쳤다.
"무, 무슨..."
"말장난은 집어치우시죠, 칼라일."
아이는 유혼을 똑바로 세워, 칼라일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백 년이나 조직을 이끌었다고 했습니까? 이백 년이나 된 조직이, 그렇게 개인의 감정 따위로 움직일 리가 없다는 걸 나는 이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바보는 그렇게 움직였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호오오, 무슨 말씀이신지."
어깨를 으쓱한다. 하지만 아이는 매서운 얼굴로 칼라일을 노려보며 말할 뿐이었다. 흔들림 없이.
"그렇게 개인의 감정 따위로 움직이는 원칙 없는 조직이라면, 이미 바람에 묻혀 사라졌겠죠. 대체 나를 인마궁에게서 떨어뜨려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뭡니까? 삼십 명의 목숨을 걸고, 대장이 직접 나설 정도로 큰 이익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버럭 소리 지르는 에바. 그리고 칼라일을 돌아본다. 순수한 호의로 다가왔는데, 크게 기분이 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칼라일은 엷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나를 당신 조직의 일원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지 그랬습니까. 그럼 일고의 가치는 있었을 텐데요."
"후, 결국 급하게 모은 정보는 사실을 담지 못하기 마련이군요. 기나센의 눈표범은 그 성정이 천사 같아서, 바보 같은 부탁도 덜컥덜컥 믿는 호구라고 그러더니. 이제 보니 꽤나 지혜롭지 않습니까."
"어? 대장?"
아이의 의심을 사실상 승인하는 칼라일의 말. 그걸 들은 에바는 당황해서 칼라일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하지만 칼라일은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짓고 말할 뿐이었다.
"아가씨, 이 자가 말을 듣지 않으니 조금 강제적인 방법을 써야겠습니다. 협력해주시죠."
딱, 손가락을 튕기는 칼라일. 그러자 방안 가득 안개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붉은 안개가. 아이는 알 수 있었다. 이 안개는 전부 흡혈귀가 변이한 것이라는 것을. 즉 자신은 지금 수많은 흡혈귀에게 포위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자, 그토록 지혜로운 당신이라면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셨겠지요? 그럼 제 손을 잡으시지요."
"목적이 뭐야!"
"솔직히 말하면, 당신에겐 볼 일이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그 귀찮은 성기사를 나사렘에서 치우고 싶을 뿐이지요. 그녀는 당신에게 용무가 있어 뒤따르고 있는 모양이던데, 당신을 주워다 저 멀리 치워버리면 나사렘에서 꺼져주지 않겠습니까. 결국 당신에게 손해가 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거절하죠. 덤벼요."
즉답하는 아이. 칼라일은 한숨을 내쉬더니, 에바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한다.
"아가씨, 조금 도와주십시오. 친구분이 아무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병을 앓고 계신 듯 합니다. 아가씨의 정성 어린 치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장..."
"대의를 위해서입니다. 아가씨."
대의. 그 말을 듣자 에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전투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기형검을 꺼내 입에 문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겠다는 표시였다.
그렇게 아이가 수십 명과 맞서는 싸움을, 홀로 시작하려는 순간.
"잘 선택했다, 소년!"
우렁찬 선언. 기특하다는 마음이 듬뿍 담긴, 칭찬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장을 뚫고 무수한 빛의 검이 쏟아져 내렸다.
"크아아아악!"
"뭐, 뭐야!"
황금색으로 빛나는 십자 형태의 단검. 자세히 보면, 그 단검은 무수한 작은 검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비검이었다. 안개로 변한 흡혈귀를 죽이기 위해, 영체를 꿰뚫는 형태로 고정된 나비검. 그것이 비처럼 쏟아져 안개 사이에 숨은 영체를 꿰뚫고, 곧 열 명이 넘는 흡혈귀가 바닥에 꽂혀 사지를 뒤흔든다.
"뭐야! 분명히 환술을 몇 겹으로 힘을 합쳐 걸었는데! 어떻게 알고 기어 들어온 거냐!"
"그깟 조잡한 기술 따위 애저녁에 간파했다. 그저 소년을 지켜보고 싶어 당한 척했을 뿐이었지."
나비검이 떨어진 이후, 천장을 둥글게 도려내고, 그 구멍으로 한 명의 여기사가 떨어진다. 아셀라이였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칼라일을 바라보았다.
"설욕을 할 기회를 주어 고맙군. 220년을 살았다고 했나, 그럼 오늘 내 손에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스르릉, 아셀라이는 등에 맨 커다란 십자검을 능숙하게 뽑아들었다. 그리고 아이와 등을 맞대듯 선다. 아셀라이가 기습으로 꿰뚫은 흡혈귀의 수는 열 둘, 아직 열여덟이나 되는 흡혈귀들이 안개의 형태로 농밀하게 둘을 포위하고 있었다.
"가세하겠다, 내 등 정도는 잘 지키도록."
"당신이야말로."
아이는 등 뒤가 든든한 온기로 차오름을 느끼고, 유혼에 신기를 불어넣었다. 둘을 둘러싼 안개, 그것보다도 훨씬 붉고 농밀한 신기가 유혼의 검날 가득 차오른다.
그렇게 신기를 불어넣고 귀를 기울이자니, 안개 속에서 희미한 술렁임이 이는 것이 들렸다. 아이는 귀를 집중해서 그 말을 듣는다.
"이길 수 없어...."
"백, 백 년은 넘게 산 정예들인데, 그런 동지들을 저렇게..."
그 말은 절망을 담고 있었다. 100년을 넘게 산 흡혈귀는 4위계의 마술사와 맞서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 흡혈귀를 곤충을 박제하듯 한 번에 열둘이나 매달아버린 꼴을 보고, 전의가 꺾이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그들은 피를 빨았을 때 늙어 죽지 않을 뿐이지,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우리에겐 베들렘이 있다! 승산은 있어! 덮쳐!"
외치는 칼라일.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흡혈귀들은 안개로 일렁일 뿐 둘을 덮쳐오지 않았다. 그러자 칼라일은 다시 한 번 마력을 담아 소리 질렀다.
"너희들의 피의 주인이 명한다! 저 둘을 살려보내지 마라!"
피의 주인. 이들을 흡혈귀로 만든 게 칼라일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안개가 들끓는다. 그 흐릿한 연무가 뭉쳐 날개가 이빨처럼 날카로운 박쥐의 형상, 선명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덮쳐든다!
"흡!"
신기를 가득 밀어 넣은 유혼, 그것으로 박쥐의 무리를 베는 아이. 일곱 마리 중 다섯 마리는 베었다. 하지만 두 마리는 놓치고 말았다. 연기처럼 뿌옇게 날아든 그 박쥐 중 한 마리가, 아이의 뺨을 베고 지나간다.
"이런,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소년."
아셀라이는 그 모습을 보고도 여유만만이었다. 한손으로 십자검을 쥐고, 케이론에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자 바닥에 꽂혀 있던 나비검이 날아올라, 십자검에 잔뜩 달라붙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십자검은 거의 레바테인만 한 거대한 대검이 되었다.
"이렇게 해야지."
바웅!
한 손으로도 어렵잖게 그 대검을 다루는 아셀라이. 아이 쪽에 일곱의 박쥐가 날아들었다면, 아셀라이 쪽으로는 열 마리의 박쥐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열 마리는 이 한 번의 일격에 전부 부채를 얻어맞은 모기처럼 박살이 나고 말았다.
"커허억!"
그렇게 변형한 나비검에도 영체를 부수는 힘이 있었던 것인가, 안개의 형상이 풀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흡혈귀들. 등을 맞댄 아이와 아셀라이, 두 사람은 한 번 반격으로 삼십의 흡혈귀 중 절반을 쓸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셀라이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조심해! 진짜는 그 칼라일이라는 놈과 검은 개다!"
"알고 있어요!"
어디에서 달려들까, 신경을 집중해 사방을 살피는 아이. 그리고 어이없는 사실을 알아챘다.
"뭐야?"
칼라일은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구리에 에바를 끼고. 에바는 싸우고 싶은 듯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칼라일에게 속수무책으로 묶여 먼 밤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아이는 어이가 없어 소리질렀다.
"저, 저 자식!"
"아, 그런가. 이백 년이나 도둑고양이처럼 살려면 저래야겠지."
아셀라이는 그 모습을 보고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 중얼거린다. 애초부터 그는 퇴로를 확실히 구하기 위해서, 삼십 명이나 되는 동지를 사지에 내몰았던 것이다.
"뒤쫓죠! 쫓을 방법은 없나요?"
"글쎄. 이 녀석들이 그렇게 놔둘 것 같지 않은걸."
그 말대로였다. 십자검을 대검의 형상으로 바꾸기 위해, 처음에 습격할 때 흡혈귀들을 묶어두었던 나비검이 사라졌다. 그러자 거기 묶여있던 열둘의 흡혈귀가 몸을 일으켜, 손을 맞잡고 안개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윽고 거대한 박쥐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에게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웅대한 일격으로 맞서라, 소년!"
아셀라이의 외침. 가장 웅대한 일격이라, 그럼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림, 레바테인!"
아이의 손에서 유혼이 사라지고, 은백의 거대한 대검이 솟아난다. 그리고 휘두른다. 무아지경으로.
곧 아이의 손에 들린 은색의 검영과, 아셀라이의 손에 들린 금색의 검영. 두 상반된 빛이 번쩍이며 피처럼 붉은 박쥐와 충돌했다.
쿵!
이 충돌에서 빚어진 후폭풍이 어찌나 거대했는지, 울렁이는 소리와 함께 여관의 벽 일부가 무너져내렸다. 후두둑 떨어지는 돌조각, 천장 조각. 솟아오르는 흙먼지. 그것이 걷혔을 때, 땅 위에 당당히 서 있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
아이와 아셀라이, 두 사람. 흡혈귀들은 피곤죽이 되어 바닥을 붉게 칠하며 널브러졌다. 삼십의 흡혈귀, 살아온 세월을 합치면 수천 년은 족히 되었을 그들이 단 오분을 버티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쓸려나간 것이다.
"우린 꽤 잘 어울리는 듯하군, 안 그런가?"
미소를 지으며 나비검을 되돌리는 아셀라이.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풋풋했던지, 아셀라이는 벽이 무너져 드러난 달을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저, 저, 영웅님들? 이 무슨..."
그 웃음은, 느닷없는 사고를 전해 듣고 여관주인이 사색이 되어 달려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
다음 날 아침, 여관 1층.
대부분의 여관이 그렇듯 식당을 겸하는 그 여관의 카운터에서, 아이는 식사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검은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이유는 간단했다. 어제 일으킨 소동 때문에 얼굴이 팔려서,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끔찍했어.'
칼집을 낸 두툼한 소시지, 그것을 포크로 꾹꾹 찌르며 아이는 어젯밤을 회상했다. 나사렘, 흡혈귀와 늑대인간 같은 괴물이 인간 사이에 숨어 사는 이 도시에서는, 어젯밤 같은 소동이 흔하진 않아도 드물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또 건방진 흡혈귀가 여관 투숙객을 노리고 밤새 숨어들었다가 성기사에게 걸려 혼쭐이 난 것, 사람들은 경험에 비추어 어제의 소동을 그런 일로 짐작했다. 그러곤 떠들썩하게 아셀라이와 아이를 칭송하는 바람에, 그 내막을 길게 말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찬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고역이었다.
"인마궁은 아무 생각 없이 술 주니까 덥썩덥썩 잘 받아먹었지만."
혼잣말하는 아이. 어떻게 그렇게 신경줄이 굵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지금 그 아셀라이가 준비를 마치고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언제 오는 거야?"
내려오는 계단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아이. 그렇게 술을 받아먹더니, 숙취에 취해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얼거리니 긴 금발의 여성 한 명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셀라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소시지로 시선을 돌려 접시에 포크를 대고 있자니, 그 금발의 여성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하군, 소년. 평소와 다른 옷을 입느라 시간이 걸렸다."
"응?"
그 금발의 여자가 아셀라이였다. 눈을 크게 뜨는 아이. 얼굴을 보니, 아셀라이가 확신했다. 그런데 멀리서 보고 알아채지 못한 이유는, 아셀라이가 완전히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었다. 하인 같은 복장으로.
평소에는 훨씬 강인해 보이는 두꺼운 갑옷과 성기사의 코트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복장의 변화만으로도 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특히, 한쪽 팔이 없는 것을 절묘하게 가리는 목장식이 일품이었다. 이런 변장을 많이 해 본 솜씨였다.
"자, 그럼 가 볼까?"
"아."
아이가 입에 가져가려는 소시지를, 케이론을 이용해 멋대로 뺴앗아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우물우물 씹으며 말하는 아셀라이.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아셀라이였다.
아이가 항의할 틈도 주지 않고, 성큼성큼 여관 밖으로 걸어나간다. 아이는 허겁지겁 남은 소시지를 입으로 가져가고 그 뒤를 따랐다. 여관 밖을 나서자마자, 장갑 아래 숨긴 케이론을 활성화시키는 아셀라이. 그러자 나비검이 뭉쳐 팔 같은 형상이 되었다. 아셀라이는 그 위에 긴 장갑을 낀다.
"이러면 이제 슬쩍 봐선 아무도 나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겠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인마궁의 가장 유명한 특징은 외팔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변장하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 고약한 변절자도 말이야."
변절자. 어제 에바가 무심코 흘린 말은, 이 나사렘 교구에 루나틱 커넥션에 협력하는 배신자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사태를 수습하고 숙의한 끝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두 사람은, 오늘 아침부터 교구를 돌아다니며 그 배신자를 찾아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렇게 신분을 숨기려 변장한 것이었다.
그들이 처음 향하는 곳은 동쪽의 교회.
나사렘의 또 다른 대주교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