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83화 (83/279)

15. 영생 ( 3 )

세상 모든 보육사가 알고 있는 사실. 아이도 금방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귀여운 이유를. 어린아이가 귀엽지 않았다면, 진작에 인류는 멸종했을 거라는 사실을.

"오빠, 오빠는 왜 쫓겨났어요? 신들의 잔치에서 술 나르다 술을 쏟았죠? 그래서 혼나서 쫓겨난 거죠?"

쫓아다니며 조잘조잘 이런 얘기를 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아니에요? 그럼 사랑 때문에 쫓겨났어요? 남자 신이 오빠를 사랑한 거죠? 그렇죠? 그런데 오빠한테는 이미 연인이 있어서 그걸 피해서 달아난 거죠?"

기분이 조금 나쁘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겼다.

"오빠, 나중에 엄청 나중에 자랑하게 오빠 머리카락 하나만 뽑아서 가지고 있어도 돼요? 네?"

그런 말을 하고 억지로 머리카락을 뽑을 때에는, 드디어 아이는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협박에 어울려준 것을 살짝 후회할 정도로.

그 날 이후로, 엘렌은 틈만 나면 아이의 옆에 다가와서 떠들었다. 종달새처럼. 장작을 팰 때도, 빨랫감을 나를 때에도, 식사 때에도, 식후 기도 때에도, 혼자 검을 수련할 때에도, 계속 따라붙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아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걸 다 들어줘야 했다. 고막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림이 한마디 했다.

'이제라도 사실을 말하지 그러느냐? 어린 사도야.'

"됐어."

그래도 이 하얀 검사의 성격상, 한 번 어울려주기로 한 것을 뒤집을 순 없었다.

오늘도 엘렌은 아이의 옆에서 조잘댔다. 아이는 그동안 웃통을 벗고 손도끼로 장작을 팼다. 나뭇결이 쫘자작 쪼개지고 연황색의 속살이 드러난다. 여기서부터가 수련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자리에 앉아서, 도끼날에 정신을 집중했다. 도끼날이 천천히 떠오른다. 그 떠오른 도끼날은 토막 난 장작을 깎아대기 시작했다. 엘렌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이미 몇십 번이나 조각했던 것. 다나의 얼굴을 조각했기 때문에, 금세 훌륭한 완성도로 조각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조숙하고 건방진 꼬마는 무언가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오빠, 이거 나 조각한 거에요? 나 주려고?"

입을 헤벌쭉 벌리고, 얼른 달려들어서 조각상을 집는 엘렌. 아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아이와 놀다 보니 이쪽도 마음이 어린애 같아진 것인가. 갑자기 짓궂은 심술이 치솟았다.

"아니. 이건 너보다 더 어른스러운 사람인데."

"어른스러운 사람?"

"남의 머리카락을 멋대로 뽑지 않는 사람."

그 말에 토라졌다. 볼을 부풀리고 조각을 내려놓는 엘렌. 그리고는 홱 돌아서서 앉는다.

"아, 그래요? 필요 없거든요? 그냥 나나 셀렌 조각한 거면, 내가 안 받으면 부끄러워할 테니까, 그래서 그런 말 한 거거든요?"

"농담이야, 가져가."

"됐어요! 다 말해 버릴 거야."

셀렌은 그녀의 쌍둥이 동생이었다. 과묵한 동생. 정말로 토라졌는지 입이 댓발이나 나와 있다. 계속 중얼거린다. 들으라는 듯이.

"어차피 나도 그런 거 엄청 많이 가질 수 있거든요. 굳이 오빠한테 받을 필요 없어요."

"응? 어떻게?"

"나중에 엄마랑 아빠가 돌아오면 그런 거 백 개도 넘게 만들어 줄 거거든요!"

그리고 이상한 선언을 덧붙인다. 엄마랑 아빠도 천사라고. 그래서 잠시 떠난 것이니, 얼마 안 가 돌아올 것이라고.

이상함을 느낀 아이는 조심스럽게 캐물었다. 그리고 곧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이 쌍둥이 자매는, 왜 자신들이 이 교회에 보호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자신들이 흡혈귀라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을.

엘렌은, 그리고 셀렌은 흡혈귀였다. 부모도 그랬다. 부모는 죽었다. 그런데 이 두 자매에게는 그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한 듯싶었다. 그 진실을 들려주는 대신, 말 그대로 어린아이나 믿을 얘기를 둘러댄 것이다.

"왜 그래요?"

엘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아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흐려졌기 때문이었다. 아, 나는 표정을 숨기는 데에는 정말 재주가 없구나. 아이는 뒤돌아섰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쿵! 다시 장작을 패고, 다시 조각을 시작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것을 느껴서일까, 그때부터는 엘렌도 떠들지 않았다. 턱을 괴고 앉아 조용히 아이의 옆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를 정말로 피곤하게 만든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그날 밤, 일과에 지쳐 얇은 이불 하나만 덮고 잠든 아이의 방. 모두 잠든 시간에, 한 사람이 살금살금 그 방에 숨어들었다.

"누구야!"

자는 중에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핏 잠들었던 아이는, 재빨리 일어났다. 그 손에는 자연스럽게 청원한 용광이 들려 있었다. 평소 암습의 위협에 시달려 몸에 밴 대응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도 푸르게 빛나는 검날을 앞세워 달려들기 직전, 멈췄다. 아이는 그 불청객이 누군지 깨달았다. 엘렌이었다.

엘렌은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쓰러져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은 것 같았다. 손에는 아이의 가방이 들려 있다.

"저, 오빠는 천사니까, 훌쩍, 뭘 좀, 훌쩍."

말을 잇지 못하고 우는 엘렌. 또 이상한 호기심으로 행동한 건가. 여기에는 아이도 정말 화가 났다. 어리광이라고 봐주었다간 오히려 더 안 좋겠다는 판단까지 들었다.

칼을 집어넣은 아이는 엘렌을 번쩍 들었다. 한밤중 일어난 소란에 놀란 것일까, 문간에는 황급히 뛰어온 그웬돌린이 서 있었다.

"나가."

아이는 엘렌을 그웬돌린의 품에 안겨주고, 문을 닫았다. 쾅, 하고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그러나 그러고도 아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린 사도야, 왜 잠들지 않는 것이냐? 모레에는 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데.'

"글쎄."

'그 꼬마에게 화를 낸 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냐?'

"아니야."

림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뒤척이며 부정하는 아이. 그러나 그 부정에는 힘이 없었다. 림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 없는 아이에게 너무 모질게 군 것 아닌가, 그런 가책이 마음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 때 메마른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똑, 똑. 노크 소리였다. 본능적으로 아이는 그 노크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웬돌린이었다.

"잠시 얘기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엘렌을 재우고 돌아온 것일까, 문 밖에 공손히 서 있던 그웬돌린은 그렇게 말했다.

*

구석에 위치한 고해실. 암갈색 책상 위에서 촛불이 흔들린다. 두 사람은 그 촛불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웬돌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엘렌이 요 며칠간 폐를 끼친 모양이더군요. 사죄드립니다."

그웬돌린은 그 아이들의 부모격이었다. 엘렌에게서 대충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사과를 하기 위해 면담을 청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어른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

아이는 이 기회에 신경 쓰고 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저 아이들은, 자기가 흡혈귀라는 것을..."

"모릅니다."

딱 잘라 말하는 그웬돌린. 촛불이 흔들린다. 주홍색의 겉불꽃, 그 윤곽을 따라 회백색의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녀는 조금 더 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의 부모가, 부탁했습니다. 부디 저 아이들은 죽는 날까지, 자기가 인간인 것으로 알고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엘렌의 행동을 변호하고 싶었던 것일까. 더 자세한 사정이 흘러나왔다. 엘렌과 셀렌의 부모, 그들은 루나틱 커넥션의 일원이었다. 동쪽 교회에 물자를 대는 상인 일을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던 정보원이었다.

루나틱 커넥션. 그들은 강한 동지의식으로 묶여 있었다. 그 동지의식을 만든 것은 차별이었다. 어둠이 빛이 부재한 곳에 모이듯 그들은 사랑 없는 곳에 모였다. 변신인간, 흡혈귀, 희귀병자, 그런 자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인류라는 이름 아래 서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칼라일. 그자는 이백 년이 넘도록, 그 조직을 어둠 속에서 이끌며 나사렘의 그림자를 지배했다. 온갖 어두운 수단을 이용하고 잔혹한 광기를 표출하며. 그 마지막 칠십 년은 순탄치 못했다. 그가 품은 만큼의 광기로 충만한 채, 이 나사렘에 흘러들어온 영혼. 카사노 센모레노가 십자가에 불을 붙이고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이백 년이라니... 두 세기 동안, 오직 한 조직을 위해 살았다고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아이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웬돌린은 담담히 대답했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이미 진심으로 친애를 담아 그를 호명할 사람들은, 다 세월 속에 스러졌을 테니. 그 조직, 그리고 그 투쟁이 그에게는 가장 절친한 친우일 것입니다."

"그런..."

말을 흐리는 아이. 그웬돌린은 단언했다.

"저는 광기를 파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엘렌의 부모. 그들도 그랬다. 처음에 커넥션에 투신한 시기,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 일하고 사랑하게 되자, 서로가 생겼다. 곧 아이도 생겼다. 그들은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웬돌린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 아이들은 주교님 밑에서, 인간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그것이 그 배신의 대가였다. 평생 가슴을 졸이고 그림자를 헤매는 삶, 부모는 딸들에게 그것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웬돌린은 받아들였다. 그것이 이 쌍둥이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또 다른 배신의 대가도 있었다.

"커넥션, 그들은 전혀 다른 군상들이 원한에 찬 동지의식 하나만으로 뭉친 조직이죠. 이런 조직은 배신자를 용서할 수 없는 법입니다. 와해될 테니까요. 그래서."

칼라일은 엘렌의 부모를 죽였다. 그들의 부모는, 카사노의 손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죽었다.

"제 불찰이었습니다. 저는 서쪽 교회만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주의를 느슨히 했습니다. 그게 제가 저 아이들은 끝까지 지키고 싶은 이유입니다."

고통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희미하게 떨리는 입술이 진정성을 드러낸다. 그웬돌린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어둠만이 보인다. 촛불이 흔들리는 곳만이 더 옅은 어둠으로 반짝일 뿐. 눈앞의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웬돌린은 생각했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 그녀는 계속 그런 생각을 되새겨야만 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울고 계십니까?"

소리 없이, 들키지 않기 위해서 소리 없이. 이 울보가 또 한 줄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껏 숨죽였지만, 눈물이 책상을 때리며 내는 소리까진 숨길 수 없었다. 아이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말했다.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침묵하는 그웬돌린. 아이는 계속 말한다.

"한 악마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악마는 자기가 악마인 걸 끝까지 모르고, 인간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인간과 사랑하고, 결국 인간처럼 죽었다면. 그 악마는 그냥 인간인 것 아닐까요. 왜 그렇게, 붙잡아서, 그렇게, 못살게 굴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런 악마는 없기 때문에. 있다 하더라도, 아주 적기 때문에. 단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옳다고 모두 생각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 우는 것마저 단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그랬다.

*

다음 날. 엘렌은 아이를 쫓아오지 않았다.

시원하면서도 서운했다. 스스로에게 놀랐다. 어느새 그 재잘대는 소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던 것인가. 고개를 젓고 도끼를 내려찍는다. 아이는 지금 늘 땔감을 구하는 산속에서, 장작을 패는 중이었다.

"아, 또 어제 조각한 걸 조각해야겠네. 누가 가지고 싶어 하던 거."

아이는 크게 혼잣말을 했다. 이러면 혹시 숨어있던 엘렌이 나올까, 싶어서였다. 앉아서 조각을 시작하는 아이. 그리고 그건 성과가 있었다.

빼꼼,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타났구나,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환하게 웃으려다,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짐짓 엄하게 조각을 계속했다. 도끼날이 날아서 나무를 깎는 모습이 신기했던 걸까. 그녀는 먹이를 흔드는 손에 접근하는 길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아이에게 접근했다.

"완성됐다."

이번에 만든 것은, 어린 시절의 다나였다. 살짝 다르긴 했지만 우기면 엘렌이라고 못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닮았다. 엘렌은 눈을 크게 뜨고 그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어제 혼났기 때문인지,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는다. 과묵하게.

"자, 받을래?"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엘렌. 어?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봐온 엘렌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어제 단단히 혼이 나기는 했나 보다,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웃었다. 엘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사가 주는 선물을 안 받으면, 큰일 나는데."

"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엘렌. 그리고 묻는다.

"당신, 천사예요?"

어제 일 때문에 무슨 기억 상실이라도 걸린 것인가? 아니면 놀리려는 것인가. 과연, 자기 입으로 자기가 천사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부끄러웠다. 아이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그 손에 조각상을 들려주었다.

"그래. 받아."

그러자 환하게 얼굴을 밝히는 엘렌.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저 멀리로 달려서 사라졌다. 기분이 풀린 모양이다. 아이는 웃으며 다시 장작을 쪼개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산이라는 건, 저녁 때 교회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믿었는데, 이 멍청이! 다 너 때문이야, 책임져!"

시든 채소를 곁들인 허여멀건한 포리지 그릇. 그 그릇이 가득한 식탁에서, 자매가 다투고 있다. 엘렌과 셀렌이었다. 엘렌이 울면서 셀렌의 머리와 볼을 마구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떨어져 깨진 나무토막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조각상이었던 나무토막이다. 자신이 준 것이었다.

"너 때문에, 네가 다 망쳤잖아! 이제, 이제 저 오빠는 못 가잖아!"

그웬돌린, 그리고 아셀라이가 나서서 싸움을 뜯어말렸다. 자매를 한 명씩 옆구리에 끼고 멀리 떨어져 섰다. 엘렌의 쌍둥이 여동생, 셀렌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안겨 있고, 반대로 엘렌은 펑펑 울고 있다. 어린아이답게.

"아."

그제서야 아이는 깨달았다. 오늘 조각을 받으러 온 녀석, 그건 셀렌이었던 것이다. 아마 조각을 받고 나서, 신나게 언니한테 자랑하러 달려갔겠지. 그리고 엘렌은 알아챈 것이다. 이제 두 사람한테 정체를 들켜서, 아이가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저 오빠가 천사들 있는 데로 돌아가면, 엄마 아빠한테 전하려고, 편지를 가방에 넣어 놓으려고 했는데, 빨리 돌아오라는 편지 넣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을 흘리는 엘렌. 아, 그래서 숨어든 것이었나. 아이는 말문이 막혔다. 어린아이에 대한 또 다른 사실도 배웠다. 모든 부모가 깨닫게 되는 사실을. 영악함과 순진함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것, 그래서 늘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 그것이 어린아이라는 것을.

"이제 끝났어, 다 끝났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계획이었지만, 엘렌에게는 너무나 거대한 상실감이었을까. 엘렌은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자신의 경솔한 여동생을 욕하며 울고만 있었다. 그 눈물은 전염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집단 사이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교회 전체로 퍼져나간 울음, 그걸 진정시키는 데에는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자, 자, 소년 소녀들이여, 이것을 봐라!"

참다못한 아셀라이가 나비검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아이들의 요청을 받아, 코끼리니 사자니 구름이니 신기한 것을 만들어주자 울음이 뚝 그쳤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엘렌을 달랠 수는 없었다. 아이는 사자 모양을 만들고 으시대는 아셀라이에게 박수를 쳐 주면서도, 고개를 흘긋 돌려 엘렌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는 엘렌의 이불에, 손님이 찾아왔다.

"어?"

아이였다. 그것을 보자, 이불을 홱 잡아당겨 도롱이 벌레처럼 숨는 엘렌. 그러나 아이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불을 갑옷처럼 두르고, 빼꼼 얼굴만 이불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말한다.

"왜요, 내 동생 때문에 이제 하늘로 못 가게 된 거, 따지러 왔어요?"

"아니."

엄하게 말하는 아이. 엘렌은 움츠러들어서, 이제 이불 밖으로 눈만 보이게 만들곤 말한다.

"그럼요?"

"내가 못 돌아가게 된 건 알아채서가 아니야. 나 때문에 너희들이 다투고, 언니면서 동생을 용서도 안 해줘서 그런 거야."

눈을 크게 뜨는 엘렌.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다. 아이는 이불을 비틀어 빼앗았다. 기운 자국이 여기저기 보이는 요 위로 굴러나오는 엘렌. 다시 허우적대며 이불을 붙잡으려 한다. 그게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그러나 그 전에, 색다른 것이 엘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

"자. 받아."

그건 조각상이었다. 아이가 조각한 엘렌과 셀렌의 부모의 조각상. 그웬돌린에게 그들의 초상화를 받아, 그동안 기른 조각 실력으로 정성껏 조각한 것이다. 엘렌에게는 그 두 조각상 중 아버지의 것을 건네줄 생각이었다.

"이게 뭐에요? 와, 진짜, 잘 만들었다..."

천사들만 아는 비밀이다, 아이는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계속 말했다. 이것들이 너희를 지켜봐 줄 거라고, 다만, 하나는 너에게. 하나는 네 동생에게 주었으니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할 거라고. 그렇게 싸우지 않고 십 년만 지나면, 더이상 이게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정말요?"

그 말을, 십 년이 지나면 부모가 돌아온다는 말로 알아들은 것인지. 엘렌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렌은 갑자기 얼굴을 환하게 밝히더니, 꾸벅 인사하곤 조각상을 받아 달려나갔다. 저렇게 좋아하나, 아이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 십 년 후면 저게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일어섰다. 뒤돌아섰다. 침대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신의 뒤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관람객이 있었다.

"이제 보니 거짓말에도 재능이 있군, 소년?"

"안 자고 뭐 해요?"

아셀라이였다. 능글맞은 얼굴을 하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방금 전까지 자기가 했던, 동화같은 행동들이 부끄러워서였다. 그 꼴이 그냥 넘어가기에는 걸작이었던지, 아셀라이는 침실로 돌아가는 아이의 등을 쿡쿡 찌르며 놀려댔다.

"거기 천사 양반. 나도 요즘 잠자리가 외로운데, 나도 뭐 선물 하나 안 주나?"

"시끄러워요!"

"아, 매정하군. 천사라는 사람이 그래서 어디 소천하겠어?"

"제발 나잇값 좀 하세요!"

결국 그날 밤 아이는 잠들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었다.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겨우 선잠이 들어서, 점심 즈음에야 깼다. 하지만 그 눈에 들어온 것은 아침의 태양보다 밝은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목상을 든 채, 서로 끌어안고 웃고 있는 자매의 모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