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92화 (92/279)

16. 박애 ( 6 )

달린다. 검을 쥐어잡고, 핏물을 박차고, 찬 공기를 허파 가득 들이마시며 달린다. 교회를 향해서.

박쥐 괴물 하나가 달려든다. 비스듬히 베어내 날개를 자르고 몸통을 쪼갠다. 달린다. 돌진하는 늑대의 아가리를 베어낸다. 덮쳐드는 놈의 목을 붙잡아 다른 놈에게 내던지고 뒤엉킨 두 늑대를 동시에 토막낸다. 달음박질친다. 어느새 언덕의 절반을 내려왔다. 유혼을 둥글게 휘둘러 괴물의 내장을, 흉곽을, 허우적거리는 팔을 자르고 피와 뼛조각을 사방에 흩뿌린다. 괴물 셋이 쓰러졌다.

"ㅡㅡㅡㅡㅡㅡㅡ!!!"

커다란 늑대가 나타났다. 다른 늑대보다 체고가 세 배는 큰 놈이었다. 검만 한 이빨을 들이밀며 덮쳐온다. 시뻘건 입천장. 턱! 유혼을 찔러넣어 입을 닫지 못하게 막는다. 쾅! 콧잔등에 박치기를 쳐박는다. 세 번 연달아 처박고,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를 뺄 때에 거세게 검을 내려찍어 얼굴을 토막친다. 아이의 이마는 붉게 까져 피가 코와 인중과 입술을 적시고 턱으로 흘러내린다. 하지만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달린다. 전차처럼.

그렇게 쉴새 없이 괴물을 쳐내고 부수고 토막내기를 반복하며 내달렸다. 또 커다란 늑대 하나가 심장을 찔려 몸을 뒤틀고 쓰러졌다. 푹! 깊게 찌른 유혼을 뽑아든 아이. 그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운다. 무의식적으로 올려다보았다. 곰이었다. 곰 모양의 거대한 괴물이 흉칙하게 웃자란 이빨을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촤악!

망설임도 없이 올려벴다. 뱃가죽을 가르고 치솟은 검날은 턱에서 멈추었다. 그것이 손으로 유혼의 검날을 붙잡은 것이다. 괴력이었다. 그 괴력보다 더 강한 괴력으로 유혼을 잡아뺴며, 그 손에 깊은 검상을 남긴다. 스하악! 곰의 힘줄과 살점을 베며 피보라가 튀었다.

"ㅡㅡㅡㅡ!!!"

괴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내지른다. 폴짝, 그 위에 올라탔다. 그 팔에 올라타 달음박질쳐 얼굴로 달려간다. 푸욱! 신기가 넘실대는 유혼을 귓구멍으로 찔러넣는다. 귓바퀴를, 고막을, 두개골을 뚫고 뇌수를 헤집은 그 검날은 뒤통수로 빠져나왔다. 끈적한 회백색 뇌수가 사방에 터져 나왔다.

눈동자를 허옇게 뒤집으며 뒤로 쓰러지는 곰. 아이는 그 곰의 얼굴로 달려든다. 머리를 밟고 뛰어올랐다. 어느새 목적지, 그웬돌린의 교회 앞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 곰의 뒤에선 흡혈귀 괴물이 마술 방벽을 두드리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높이 뛰어오른 아이의 몸은 활처럼 휘었다. 두 손으론 손잡이를 거세게 붙잡는다. 내려찍는다. 태산이라도 쪼갤 듯한 일격이었다.

"쳐먹어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통스러운 비명. 유혼에 잘린 커다란 날개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다. 등 뒤에는 깊은 검상이 비스듬히 남아 끈적한 살점과 핏물을 뿌려댔다.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흡혈귀 괴물은 몸을 뒤틀며 괴성을 토해댔다.

그러나 반격은 신속했다. 도움닫기 한 아이가 착지한 직후, 붉게 번들대는 손톱이 짓쳐들어왔다. 간신히 막아냈다. 그러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유혼과 손을 묶은 옷조각이 찢어지며 유혼을 땅바닥에 흘렸다. 자세가 무너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드는 괴물. 또 커다랗게 주먹질을 갈긴다. 아이는 어질하고 숨가쁜 와중에도 고개를 숙여 그 주먹질을 피한다. 피하고, 품에 안기듯 달려들었다. 가슴을 밟고 뛰어올라 어깨에 힘을 담고 크게 휘두른다. 아이의 주먹이 괴물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콰앙!

타격음이라기보다는 포성 같은 굉음. 사방에 고인 핏물에 파문을 일으키며 둥글게 퍼져나간다.

그 소리는 방벽을 붙잡고 있는 그웬돌린에게도 들렸다.

*

방벽 안쪽.

"주교님! 주교님! 천사가 왔어요, 그 오빠에요!"

이런 소리도 들렸다. 허리께 아래에서 배를 꽉 끌어안으며 외친 소리였다. 눈물기가 묻어 있는 듯했다. 아, 그 소년인가.

"이제 괜찮아요! 다행이에요..."

이번엔 반대편에서 그 소리가 울렸다. 아까 말한 것은 엘렌이었고 이건 셀렌이었다.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를 가진 쌍둥이건만 그웬돌린은 그 음색을 구별할 수 있었다. 가냘픈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을 들었으나 믿지는 않았다. 그웬돌린은 아이가 얼마나 강한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입 밖에 내어 그 불신을 표하진 않았다. 그 미소를 부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린 미소, 그건 그웬돌린이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녀는 여덟 살때 병을 앓았다. 열병을 앓았고 죽음 앞에 섰고 살아 돌아왔으나 시력을 잃었다. 슬픈 일이었다. 아껴 읽던 그림책의 결말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 마지막 장에서 토끼와 사자와 곰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자신의 손을 붙잡고 어머니가 흐느낄 때 그녀는 멍하니 그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그 동화책의 끝을 상상하듯 세상을 마주했다. 페이지를 넘기다 만 책처럼, 그녀의 세계는 여덟 살 때 정지되어 있었으므로 그녀에게 세계는 항상 커다랗게 남겨져 있었다. 커다랗고 미성숙한 유년의 상태였다. 어둠 너머에서 피어오르며 변화하고, 자라나고, 일렁였다.

생일에 심었던 유실수의 새싹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그녀는 영영 알지 못했다. 다만, 가만히 그 까끌까끌한 나무껍질을 어루만지며 상상할 뿐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그렇게 보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어린 것으로부터, 이것이 어떻게 성숙했을지. 가만히 상상하며 마음으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어둠, 그 어스름 같은 깜깜함 속에서 그녀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오히려 풍화되지 않고 고이 간직한, 어린 밝음이었다. 모두 어렸을 땐 세상을 이토록 찬란하고 환하고 아름답게 보았다는 것. 그 확신이 그녀를 나사렘으로 이끌었고 이 아이들의 곁으로 이끌었고 또 오늘 밤으로 이끌었다.

왜 몰랐을까.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카사노 센모레노, 그 늙은 주교의 스러져가는 몸 속에서 그런 슬픔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을.

얼마 전 광장에서 일어난 참사. 그것에 대한 솔직한 감상은 그것뿐이었다. 잠시만 지금의 다급함에서 눈돌려도 그런 회한이 튀어나왔다. 억눌러야 해, 그웬돌린은 고개를 저었다. 눈썹을 떨며 마술 방벽을 유지하는 데 힘을 더할 때였다.

쾅!

벽력 같은 소리가 터지며, 마술 방벽의 일각이 허물어졌다. 무언가가 그것을 깨부수고 교회의 벽에 쳐박혔다. 그웬돌린의 바로 옆이었다.

"으큭, 제기랄, 아니야. 괜찮아. 방심한 거야."

벽돌 조각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다. 퉤, 입에 고인 침을 뱉어내고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듯했다. 아이였다. 괴물과 사투를 벌이던 중 일격을 허용해 여기 처박힌 것이었다. 왼이마가 까져 피가 흐르지만 빠르게 멎고 있다.

"오빠!"

엘렌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거기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손을 내저어 물리고, 유혼을 휘둘렀다. 퍽! 괴물의 손틈새에 쳐박히고 핏물이 튄다. 마술 방벽의 일부가 뚫린 것을 알게 된 흡혈귀 괴물이, 손을 내뻗어 비집고 들어온 것이었다.

"흐읍!"

어떻게든 방벽을 깨부수려고 난동을 부리는 손. 아이는 심호흡을 하고 유혼을 길게 올려벴다. 얕은 호를 그리며 치솟은 유혼은 시꺼먼 손가락을 베고 긴 손톱을 조각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순간적으로 놀란 흡혈귀 괴물은 손을 뒤로 물렸다. 그웬돌린은 황급히 마술 방벽을 복구했다. 쾅! 푸르게 메워진 틈새를 다시 괴물이 두들긴다.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아이의 곁으로 다가섰다. 얼굴을 더듬는다. 아이가 맞는지, 확신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잠시 숨을 죽이고, 그 길고 하얀 손가락이 자신의 뺨을, 눈두덩을, 이마와 콧대를 만지는 것을 허락했다.

"아, 당신이 맞군요. 다행입니다..."

그웬돌린이 말했다. 떨리는 어조였다.

"제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하로 가면 통로가 있을 겁니다. 당신과 어린아이 하나 정도는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입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데려가 주십시오."

결연하게 말하는 그웬돌린. 그녀는 낙망한 상태였다. 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지키다 아이들과 함꼐 죽기를 각오하고 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되물었다.

"누구를요?"

"누구, 라니, 당신이..."

"이 많은 아이들 중, 한 명만 데려가란 말인가요. 당신은 고를 수 있습니까?"

말문이 막힌 그웬돌린. 없었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정말로 한 명만을 골라 살려야만 했다. 그런 잔인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여기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침묵하는 그웬돌린. 한 손이 그 손을 붙잡는다. 따뜻하다. 따뜻하고, 억센 손이었다.

"굳이 골라야 한다면, 당신을 택하죠."

"예?"

놀라 입을 벌린 그웬돌린. 아이는 그 손을 붙잡고 방벽 가까이로 움직였다. 흡혈귀 괴물의 앞으로. 교회의 지붕에 올라앉아 방벽을 수호하던 알다리엘도 사슬을 끌며 그 뒤를 뒤따른다.

"나가요. 여기서 나가서, 같이 이 밤의 막을 내리죠."

단호하고 강인하다. 그 어조에는 힘이 있었다. 죄책감과 회한에 젖은 그웬돌린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녀는 말없이 마술 방벽을 물렸다. 마력이 그녀의 몸에 깃들고, 알다리엘의 후드와 사슬이 푸르게 빛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갑자기 제 발로 토끼굴에서 기어 나온 토끼를 보는 느낌이었을까. 흡혈귀 괴물은 환희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포효를 토했다. 핏줄이 울컥이는 팔뚝을 휘두른다. 챙! 알다리엘이 사슬을 휘둘러 그 두 팔을 묶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몸을 뒤흔들며 사슬의 구속을 벗기려 애쓰는 괴물. 그웬돌린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알다리엘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커다란 천사와 괴물의 사이에서, 아이는 어깨너비로 발을 벌려 섰다. 정자세였다. 검을 청한다. 이런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스스로 어둠을 딛고 만들었던 검을.

"림, 용광!"

그 손에 아름다운 검이 생겨나, 붓처럼 곧고 아름다운 선을 그린다. 그 검의 궤적을 따라 황금을 닮은 빛무리가 어리고, 빛은 어둠을 삼키며 나아가 괴물을 덮쳐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단말마. 비참한 단말마가 울린다. 용광에서 뻗어 나온 광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들판에서 부글대는 수많은 괴물들, 그 슬픈 괴물들을 적시고 녹이며 새벽의 태양빛처럼 돌진한다. 그 돌진이 끝났을 때, 들판에는 더는 괴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건, 이건... 무슨... 당신, 정말로 천사였던 겁니까?"

그 위용을 느끼고 놀라 중얼거리는 그웬돌린. 아이는 용광을 집어넣으며 그 찬사를 돌렸다. 그웬돌린에게로.

"아뇨. 이건 당신에게서 빌린 힘이에요. 자랑스러워해도 좋아요."

그 말대로였다. 용살의 검, 용광. 카나기의 괴물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어야 할 그 검은, 그저 복수만을 바라지 않았던 아이의 의지로 빚어졌다. 그래서 거기에 맞는 특이한 변형을 겪었다. 이 검은 강대한 괴물을 만났을 때, 그 괴물을 지우는 휘황한 빛을 내뿜는다. 단, 조건이 있었다.

누군가가 진정한 선의로 더 약한 누군가를 지키려 할 때. 그 의지를 망막에 새겨 가슴으로 확인했을 때. 그때에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약도 달려 있었다. 태양은 하루에 한 번만 뜨기 마련이니까, 라고 림은 말했다.

성가신 제약이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다. 들판에 가득한 괴물들은 그 빛을 바라보자 태양에 어둠이 녹아내리듯 녹아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 용광을 빛나게 만든 것은 아이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웬돌린, 그녀의 의지였다.

"어!"

안전이 확인되자, 숨어 떨던 아이들이 두 사람에게 와락 안겼다. 아이는 순식간에 매미뗴의 습격을 받은 고목나무 같은 상태가 되었다. 참으로 위엄이 없는 모양새였지만, 그런 모습으로 웃으며 그웬돌린에게 손을 건넨다.

"중앙 광장으로 가죠. 힘을 보태주세요. 힘을 합치면, 그 이상한 고깃덩이도 무찌를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을까. 책임은. 망설이던 그웬돌린은 그 손을 붙잡았다. 책임은, 이 사태를 끝내는 것으로 치르도록 하죠. 그런 생각이었다.

"어!"

그 순간, 꼬마 하나가 바닥을 보며 소리 질렀다. 아이는 그 꼬마가 가리키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같이 놀랐다.

"핏물이 사라지고 있어?"

그 말대로였다. 애초에 마법적으로 생겨난 핏물이기 때문인지, 사라지는 것도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애초에 환상이었던 것처럼, 뿌옇게 흐려지며 마른 땅을 드러내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해석은 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 기사단장과 검은 개가 일을 잘 해주었던 모양이다.'

"뭐라고?"

'그 놈들이 광장을 지키며 시민들을 전부 대피시켜서 더 이상 제물이 입 속으로 걸어들어오지 않으니까. 제물을 거둬들이는 걸 그만둔 거야. 그리고 그 성가신 방해꾼들을 없앨 생각이겠지.'

"그럼 위기잖아!"

아이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황급히 그웬돌린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죠! 다른 사람들이 그 괴물과 맞서 싸우고 있어요!"

대처는 빨랐다. 시간이 없었다. 아이와 그웬돌린은 알다리엘의 양어깨에 올라타 그 목을 부여잡고, 나사렘의 어두운 하늘을 뚫으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최후의 결전 장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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