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93화 (93/279)

17. 순수 ( 1 )

교회 앞 광장. 그 광장은 허무를 섬기는 신전처럼 변했다. 예스러운 황갈색으로 빛나던 바닥돌은 이빨마다 살점과 피를 물었고, 담쟁이로 장식된 가로등은 힘줄과 종기에 뒤덮여 붉은 빛을 뿌렸다. 나사렘을 집어삼키던 피의 강은 멎었지만, 여기에만은 썩은 피가 검붉게 고여 있다.

축일을 위해 준비된 잔디꽃은 갈라진 꽃잎을 말아올렸다. 피안화처럼 변하여 썩은 피 위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구석마다 백골이 잔뜩 쌓여 두개골의 눈구멍은 높다란 교회를 응시한다. 생육의 천사가 살을 파먹고 뱉어낸 것이었다. 그 교회의 꼭대기에 앉아 있던 것. 천사는 지금 그 자리에 없었다.

그것은 광장에서 날뛰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굉음을 내지르며, 사슬을 반월형으로 휘두른다. 사슬은 포석을 깨부수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올슨을 덮쳐갔다. 간신히 뒤로 굴러 피했다. 온 몸은 상처와 피로 젖어 엉망이었다. 생육의 천사는 멈추지 않았다. 사슬을 채찍처럼 휘둘러 올슨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피하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단장님!"

사방에서 비명이 치솟았다. 검을 든 성기사들이었다. 성기사들과 에바, 그들은 지금 광장에 모여 다함께 생육의 천사와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전부 대피시키고 제물의 행렬이 끊기자마자, 천사는 가슴에 뚫린 입으로 괴성을 내질렀다. 풀쩍 뛰어내려 피보라를 일으키곤 성기사와 에바를 죽이려 들었다. 그렇게 싸운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입으로 역겨운 숨을 토하며, 사슬을 잡아당기는 천사. 올슨은 그 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사슬에 끌려갔다. 턱, 그 와중 기도석상을 붙잡았지만 허사였다. 석상은 힘없이 부서지고 올슨은 더 빠르게 끌려간다. 가슴이, 그 가슴 속에서 빛나는 심장이 가까워진다.

"아, 독생자시여..."

올슨은 눈을 감았다. 그 심장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싸움을 가장 힘겹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었다. 저 심장을 바라본 자는 그 순간 환술에 빠져 그 속에 스스로 몸을 던졌고 파먹혔다. 그렇게 세 명의 성기사가 죽었다. 올슨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칼을 세게 붙잡았다. 눈을 감고, 끝까지 끌려간 다음 심장에 한 방 먹여주지. 목숨과 맞바꾼 일격이 될 게야.

"이게!"

천사의 뒤편에서 울리는 새된 기합. 에바였다. 기형검을 들고 덮쳐들어, 천사의 등에 올라타곤 목을 둥글게 벤다. 피가 튀고 붉은 선이 목어림에 그어졌다. 하지만 허사였다. 천사는 약간의 신음을 뿌릴 뿐, 사슬은 먹잇감을 무정하게 잡아챘다. 그 때였다.

"하아아압!"

기합. 그리고 검영. 사방에 고인 핏물보다 선연한 붉은 빛으로 번뜩이는 검이 호를 그렸다. 사슬을 내려찍는다. 어떤 타격에도 끄떡없던 그 사슬은 힘없이 두 조각으로 갈려 바닥에 떨어졌다. 첨벙! 큰 물소리.

"어, 어!"

사슬에서 풀려난 올슨은 검을 허우적거리다 눈을 떴다. 그리고 구원자를 쳐다보았다. 아이였다. 그 눈에는 푸른 도깨비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알다리엘을 타고 긴급히 날아온 아이가, 알다리엘에서 떨어지며 검을 크게 휘둘러 사슬을 잘라낸 것이었다. 그 손에선 한 자루의 환도가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용광이었다.

"고오오오오...."

생육의 천사는 경계심을 드러내며 뒤로 물러섰다. 교회의 한중간에 박힌 장미창에 올라선다. 돌아가는 상황을 탐색하려는 모양이었다. 아이의 뒤로, 알다리엘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그웬돌린이 내려섰다. 사방에선 전의가 치솟는다.

"왔다! 구원군이 왔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전부 정신 똑바로 차려!"

기합, 그리고 높이 치솟는 팔. 그러나 그웬돌린이 거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는 이제 자신, 아이, 그리고 에바 세 명만이 맡을 테니 그대들은 시민의 안전을 우선해달라는 말이었다. 돌려 말한 것이지, 도움이 안 되니 사라지라는 축객령이었다.

"그런, 하지만!"

"아니, 쿨럭, 그 말이 옳다."

반발. 그러나 올슨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한 시간동안, 자신과 성기사들, 그리고 위계 낮은 마술사들이 한 일이라곤 저것의 발목을 붙잡는 일밖에 없었다. 무력감을 깊숙히 절감했다. 그는 노련했고 치기에 빠지는 건 희생을 늘릴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부관의 어깨에 부러진 팔을 얹으며, 그는 후퇴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냥 도망치진 않았다.

"전원, 저 광휘 앞에 경의를!"

부러진 다리와 팔로도 홀로 일어선 올슨. 검을 치켜들어 얼굴을 가린다. 왼손으로는 가슴을 두드린다. 진은검은 날이 닳고 밤이 어두워도 오히려 더 우뚝하게 빛났다. 의례였다.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서 하는 의례. 저 강대한 적 앞에서도 의기롭게 맞서는 아이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올슨의 모습을 보고, 성기사 일동이 합창하듯 의례를 했다. 아이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환도를 곧게 들어 마주 의례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성기사들은 빠르게 물러났다. 용기를, 응원을 건네받은 아이는 손잡이를 굳세게 쥐어잡고 빙글 회전했다. 탐색을 마친 천사가 다시 장미창에서 몸을 던져 바닥에 내려앉고 있었다.

"있잖아, 저 가슴을 보면 안 돼. 알겠지? 계속 싸우면서 깨달은 건데..."

에바가 아이 옆에 다가와 그 싸움 동안 얻은 교훈을 말하려 애썼다. 하지만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웬돌린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잠깐 저 주교를 똑바로 바라봐 줘."

"응? 왜?"

반문하지만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에바의 눈 앞에도 푸른 도깨비불이 치솟았다. 환술이었다. 그웬돌린의 환술. 에바는 깜짝 놀라 사방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고인 핏물은 맑은 연못으로, 기괴한 꽃은 수련으로 변했고, 백골은 대리석이 되어 밝게 세상을 비추었다. 마지막으로 생육의 천사는, 그저 어깨에 카사노의 법의를 매달았을 뿐인 아름다운 천사로 보였다.

"이건... 이건..."

"이런 상태면 가슴을 보고 미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알다리엘을 타고 날아오면서, 그웬돌린과 함께 세운 전략이었다. 스스로 환술에 걸려 생육의 천사의 환술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유효했다. 에바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기뻐했다. 지금까지 가슴을 보는 걸 피하기 위해서,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인 속도가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봉인은 풀렸다.

"내가 오른쪽. 네가 왼쪽. 주교님이 뒤를 맡을 거야. 알겠어?"

"알겠어!"

"부디 무운을."

각자 무기를 쥐어잡고 대열을 갖추는 세 사람. 교회의 끝에 매달린 자동 종지기는 눈치도 없이 또 종을 울린다. 뎅, 뎅, 퍼져나가는 소리는 개전을 알리는 듯싶었다. 알다리엘은 그웬돌린의 뒤에서 고오오 신음을 뱉었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생육의 천사로부터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슬을 양 손으로 쥐어잡고 돌진하는 천사. 사슬로 바닥을 내려찍자 물보라와 부서진 꽃풀더미가 커다랗게 튀어오른다. 돌진의 목표는 아이였다. 입술을 깨물고 용광을 휘둘러 사슬과 검을 부딪혔다. 쾅! 굉음,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수련은 굉음에 휩쓸려 너울댔다.

아이와 천사의 박투는 격렬했다. 사슬로 아이의 목을 덮쳐 조이려고 드는 천사, 몸을 빼서 피하고 옆구리를 올려벤다. 튀는 핏물과 살점. 뱀처럼 사슬을 풀어 바닥을 쓸어낸다. 아이는 풀쩍 뛰어 피하고 팔을 맞찌른다. 팔뚝에 쳐박히는 용광. 뽑는다. 용광의 표면에 뼛조각이 가득 묻었다. 비명을 지르는 천사, 뒤로 물러난다. 사슬을 짧게 쥐어잡더니, 바닥을 마구 내려찍으며 덮쳐온다.

쾅! 쾅! 쾅!

바닥돌을 쳐부수며 달려오는 사슬. 고인 물 가득 파문을 일으켰다. 아이는 옆으로 굴러 피했다. 쾅! 천사는 광장의 끝에 다다라 사슬을 대리석에 내려찍는다. 흰 파편이 튀었다. 바닥을 구른 아이는 잠시 등을 내보였다. 천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짧게 쥐었던 사슬을 길게 풀어내 아이를 휘감았다.

"흡!"

피하려 했으나 늦었다. 촉수처럼 꿀렁이며 다가온 사슬은 아이의 가슴을 둥글게 휘감았다. 천사는 두 손으로 사슬을 붙잡고 높이 쳐들었다. 아이의 몸이 붕 떠올랐다. 내려찍는다.

쾅!

아이의 몸뚱이는 치솟아 높은 건물 벽에 부딪혔다. 벽이 움푹 파이고 벽돌이 부서저 돌조각과 흙먼지를 뿌려댄다. 격렬한 통증. 척추에 뜨거운 물을 부어넣은 듯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천사는 다시 사슬을 높이 들어 계속 아이를 내려찍으려 들었다.

"이 개자식, 놔 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괴성을 내지르는 천사. 에바였다. 에바가 벼락처럼 달려들어 그 팔을 노린 것이었다. 기형검이 팔뚝의 검면을 따라 둥글게 회전하고, 살점과 핏물이 파도처럼 튄다. 하얀 뼈가 드러나 너덜대는 팔뚝. 천사는 견디지 못하고 사슬을 놓았다. 휙 회전해 목표를 바꾼다.

"흡!"

빠르게 뒹굴며 사슬을 피하는 에바. 하지만 진짜 목표는 에바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사슬을 짧게 쥐어잡고, 바닥을 마구 내려찍으며 돌진하는 천사. 목표는 그웬돌린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알다리엘이 청동빛 사슬을 휘둘러 맞선다. 하지만 그 사슬은 생육의 천사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왜소했다. 알다리엘의 사슬은 깨져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당황한 그웬돌린의 얼굴을 덮치는 사슬.

챙!

아이의 용광이 그 사슬을 가로막았다. 충격을 이기고 번개처럼 달려나와 맞받은 것이었다. 크게 휘둘러 물리친다. 쩔그렁대며 다시 달려드는 사슬. 이번엔 뱀처럼 검을 휘감으려 들었다. 횡으로 휘둘러 쳐낸다. 그 사이에 그웬돌린은 뒤로 물러서 위험에서 벗어났다.

"큭!"

확인한 아이는 재차 덮쳐오는 사슬을 크게 후려쳤다. 사슬 위로 불똥이 튀고 용광의 검은 용이 빛을 받아 꿈틀댄다. 하지만, 가벼운 환도가 대들보만한 사슬의 중량을 이기는 것은 무리였다. 검은 뱀이 꿈틀대듯 이빨을 들이미는 사슬, 아이는 칼을 내던지고 뒤로 굴렀다. 후웅! 파공음, 아이의 옷자락이 사슬자락에 쓸려 둥글게 찢어진다. 아이는 재빠르게 뒤로 세 번 더 굴러 천사로부터 충분히 멀어졌다. 날카롭게 잘린 돌조각에 쓸려 뺨에선 피가 흐른다. 그것을 스윽 닦아내며 중얼거린다.

"역시, 이 놈한테는 용광이 반응하질 않네."

밤. 조금 있으면 내일이 밝아올 것이었다. 그러면 용광을 사용할 두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된다. 그러면, 기회를 봐서 용광을 찔러넣는다. 그웬돌린과 함께 날아오면서 아이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이건 그중 첫 번째 전략이었다. 또 실패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 흡혈귀 괴물에게와 달리, 용광은 이 괴물에겐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 속에 깃든 죄책감, 저것이 선의를 품고 자멸했던 카사노의 변이체라는 것, 칼라일의 순수한 광기와 악이라고 단정짓기 힘든 저 괴이쩍은 혼돈. 무엇이 이유일진 모르나 결과는 명확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계획을 바꿔야만 했다. 아이는 용광을 수납했다. 그리고 림을 바라보았다. 붉은 피부 사이에 섬처럼 떠오른 하얀 피부조각, 그 뒤에 움푹 패인 눈. 그것이 아이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처럼. 짧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건넨다. 유혼이었다.

외로운 짐승의 이빨을 닮은 검, 하얀 대태도가 아이의 두 손에 스스스 솟아난다. 생육의 천사의 황폐한 갈비뼈와 마주한다. 그웬돌린의 환상 속에서 그것은 백옥 장식처럼 보였다. 그 백옥보다도 시린 빛으로 하얗게 빛나던 유혼, 그 검날의 뿌리가 물들기 시작한다. 검은 빛으로.

-아아, 후대의 연자여. 결국 내게로 돌아왔느냐. 네 유약함이라는 자물쇠를 부수고 문을 열어젖히려 손을 내밀었느냐.

머릿속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옛된 어조로 말을 걸어온다. 그 목소리는 어두운 기쁨으로 떨리고 있었다. 외신을 공양하고 얻은 힘. 한 번 시험했으나, 위험하여 스스로 금지했던 힘.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 두 번째 계획이었다. 이 목소리는 그 힘에 손을 대자마자 환희로 날뛰며 치솟았다.

"닥쳐."

그 목소리를 흉험한 말로 일축하며, 아이는 정신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검을 곧추세운다. 초승달처럼 예리하고 만곡한 검날, 그 코등이 위에선 검은 신기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유혼은 피를 빨아먹어 발출하는 검이었다. 여기에 외신의 힘을 두르고, 그 흡수의 힘을 사용해 외신의 피를 먹인다. 그렇게 끝까지 피를 흡수해 내지르면, 북서 자치령에서 그 용을 끝장낸 일격과 같이, 흉맹한 일격을 날려 저 괴물도 끝장낼수 있을 거라고. 림은 그렇게 일러주었다.

'단, 어떤 목소리가 너를 유혹하더라도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할 수 있겠나?'

그 제안은 그런 불안한 경고로 끝났다. 아이는 입술을 굳세게 짓씹어 그 경고를 떠올리고, 이번에는 먼저 생육의 천사에게 달려들었다. 유혼에 피를 먹이기 위해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물보라를 일으키고 꽃풀더미를 쳐부숴 허공에 흩날리면서, 사슬과 검은 또다시 충돌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