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95화 (95/279)

17. 순수 ( 3 )

알다리엘이 그 앞을 막아섰다. 너덜너덜해진 사슬을 둥글게 뭉쳐 방패처럼 만들고 맞선다. 둘은 곧 충돌했다. 폭음이 터진다. 폭음이 터지고, 알다리엘을 둘러싸고 커다란 푸른 반구형의 마술 방벽이 나타났다가, 으깨져 바람에 흩날렸다.

"고오오오오오오...!!!"

알다리엘도 너덜너덜해졌다. 전신이 반쯤 부서져 푸른 로브는 찢겨 흔들리고, 검푸른 영체는 위태로운 촛불처럼 일렁거렸다. 하지만 알다리엘은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사슬로, 끌어안듯 천사를 구속한 것이다. 여기에 일격을 넣어라, 목숨을 바쳐 그런 말을 전달하고 있는 듯싶었다. 알다리엘은, 그리고 그웬돌린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쳐다보았다.

-안 돼. 무시하고, 저 여자를 잡아먹게 놔둔 다음 피를 더 모아라. 아직 칠 할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걸론 저 화신체를 끝장낼 수 없어. 내 말을 따라라, 후회하지 말고.

비꼬듯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아이는 그것을 무시하고 유혼을 휘둘렀다. 척, 발을 벌려 자세를 취한다. 혈사포를 되받아칠 때와 같은 요령으로, 검날 전체에 맺힌 원념을 터뜨린다. 짐승의 이빨은 초승달 같은 검영을 만들어내며, 검은 반달 형상의 탄환을 허공에 만들어냈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빛, 가장 깊은 밤하늘의 색으로 날아드는 탄환. 그것은 알다리엘과 씨름하는 천사의 몸을 물어뜯으려 덮쳐든다.

대리석을, 수련을, 물보라와 기둥과 석재를 뚫고 날아든 탄환은 천사의 가슴을 크게 후려쳤다!

생육의 천사와 유혼의 탄환이 부딪힌 순간. 모두의 시야는 잠시 검게 변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 갑자기 떨어졌을 때와 같은 어둠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청각만 살아남아 상황을 파악하려 애쓴다. 천사의 비명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럼, 드디어 해낸 것인가? 검기를 쏘아보낸 몸은 지치고 힘이 빠져 정신이 멍했다.

그 멍한 상태에서, 유혼을 지팡이처럼 붙잡아 간신히 몸을 지탱하는 아이.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어두운 시야에, 불길한 울림이 울렸다. 으적, 그런 소리였다. 무언가가 무언가를 씹어먹는 소리.

우적, 우적. 고오오오오.... 그런 소리가 잇달아 터진다. 그 작은 소리가 광장 전체에 휘몰아치는 굉음으로 자라날 때 시야가 회복되었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것이 나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할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고오오오...고오오오오!!!"

알다리엘이 산채로 파먹히고 있었다. 생육의 천사에게. 아직 피를 다 모으지 않은 상태에서 쏘아냈기 때문이었을까, 생육의 천사는 온 몸으로 피를 흘리고 상처 입었으나 죽지 않았다. 그 가슴에 난 입은 게걸스럽게 알다리엘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푸른 로브의 천사는, 로브 가득 검은 어둠을 토하며, 그 입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몸 한가운데서 빛나던 둥근 영체가 부서져 심장에 빨려들어간다.

"안, 안 돼..."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웬돌린이 피를 토하며 앞으로 거꾸러졌다. 알다리엘이 소멸하면서, 강제적으로 그 계약이 끊어져 정신에 큰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환술을 유지할 수 없어졌다. 아이의 눈에서, 에바의 눈에서 불타던 도깨비불이 꺼진다.

대리석은 백골로, 연못물은 핏물로, 연꽃은 피안화로 변한다. 현실의 모습을 되찾는다. 억지로 아름다운 모습만을 비추던 세계가, 원래의 어둡고 피에 젖은 나락으로 되돌아간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생육의 천사는 다시 온 몸에서 근섬유와 살점을 불끈거리며 네 장의 날개를 퍼덕였다. 그 가슴에서는 입이, 다족류 벌레처럼 흉측하게 뒤틀린 입이 부속지를 딱딱거리며 새로운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다리엘을 먹어치운 다음의 목표는, 그웬돌린이었다.

-그대여, 내가 뭐라고 했느냐.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어리석음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냐. 그대는 혹시 백치인 것인가? 낮에도 등잔이 없으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목소리는 거칠게 비꼬았다. 거기 대응할 겨를은 없었다. 빨리, 몸을 움직여서, 저 착한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질한 가운데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핏물이 크게 튀며 아이의 몸을 감싼다.

"안 돼, 이 닭대가리 새끼야!"

물에 잠겨 먹먹한 고막으로, 흐린 함성이 들려왔다. 에바였다. 그 몸을 커다란 검은 개의 기운이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강신, 두냐의 마술사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술. 그것을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에바의 몸 위로 커다란 검은 개의 형상이 돋아나고, 그 검은 개는 천사의 목을 물어뜯어 바닥에 쳐박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뒤엉켜 싸움을 벌이는 에바. 도와줘야 해. 합류해야 해, 저걸 오래 하면, 몸이 망가진다고 그랬는데.

-그런데 그대는 무엇이 두려워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냐. 저 소녀는 짐승에게도 몸을 맡기고 있지 않느냐.

이를 악물고 일어서는 아이. 그러나 여전히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외신의 힘을 사용한 반동은 크고 또 힘들었다. 캐앵! 천사의 목을 물어듣고 마구 벽에 들이받던 에바가, 사슬에 묶여 바닥에 쳐박혔다. 역부족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이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근육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아, 아...."

그런 아이의 얼굴에 그웬돌린의 얼굴이 들어왔다. 난리통에 안대가 반쯤 찢어져, 탁한 우윳빛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녀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도망쳐요, 그런 말이었다. 아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머릿속에서 커다란 조소가 터진다.

- 또 모든 것을 망쳐 놓았구나. 너는 또 도망치려느냐? 나는 네 삶을 들여다보았다. 네 삶은 도망과 멍청한 짓으로 얼룩져 있더구나. 내 후신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닥쳐!"

아이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대는 목소리를 떨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고,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말았다. 천사의 심장을.

'어린 순례자야! 눈을 돌려라!'

림의 고함. 그러나 그 고함은 아이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 심장은 또다시 아이를 먼 심연으로 인도한다. 이번의 어둠은 이전에 보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아이는 어둠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구불거리며 사방으로 퍼진 길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길과 아이만이 어둠 속에서 처연하게 빛난다.

- 왜 진작 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냐. 왜 사형을 진작 죽이지 않았던 것이냐. 왜 용서했고 왜 도망쳤고 왜 속아넘어간 것이냐.

죽기 전엔 스스로 들여다볼 수 없는 심연. 몸 속 등뼈 속에 깊이 고인 심연이 말을 건네왔다. 눈 앞에서 갈라진 혓바닥을 내밀며 속삭인다. 그건 뱀이었다. 등뼈 뿐이 아니었다. 빗장뼈에, 갈비뼈에, 모든 뼈마다 뱀이 들어차 있었다.

- 너는 네 유약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나 나는 그것이 역겹다. 너는 또 도망치려느냐? 희생과 필요악을 부정하고 고집을 부리다 세상을 망쳐놓고 혼자 도망치려느냐? 꿋꿋하게 가장 멍청한 길만 골라 걷는구나. 네가 가지 않은 길, 버려진 길들이 울부짖는 게 들리지 않느냐?

그건 뱀이자 길이었다. 어리석음과 망설임으로 가지 않았던 길, 그 모든 길은 뱀이 되어 몰래 아이의 등골 속을 파고들었다. 이따금 난동을 부리며 뼛골을 시리게 만들었고 독니로 살을 물고 독을 불어넣어 울게 만들었다. 심장이 보여준 환술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몸 가득 부글거리며 내장을 파먹는 뱀 무리가 보였다.

-망설일 시간은 끝났다. 저것을 무찌르고 싶으냐? 아니면 네 그 아둔한 위선을 지키고 싶으냐? 선택해라. 내게 몸을 맡기고 체념해라...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길이 구불거리다 뱀으로 변했다. 진작 이것의 말을 들어, 에바나 그웬돌린을 희생시키더라도 천사를 무찔렀다면. 그런 이름의 길이었다. 그것은 뱀으로 변해 아이의 입속으로 날아들려 하고 있었다. 턱, 그것을 잡아챘다. 꽃 같은 무늬를 가진 독사였다. 독사는 혓바닥을 쉿쉿거리며 아이를 위협했다.

-체념해라, 복수는 강인한 체념이다.

아이는 그 세모꼴의 대가리를 바라보았다. 결심했다. 입을 크게 벌려, 그 대가리를 물어뜯어 짓씹고 삼켰다. 이것의 말을 들어, 이 자에게 힘을 받으려는 행동이었다. 꿀꺽, 목울대가 넘어가는 순간. 어둠이 걷히고 세상이 일변했다.

'어린 순례자야! 정신을 차려라!'

다시 한 번 귓전 가득 울리는 림의 고함. 아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연자여, 오랜만이군. 그대만은 아직 나를 잊지 않았겠지."

연자, 인연을 맺은 자. 그 말을 들은 림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호칭으로 자신을 부른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너는..."

"그 고아한 얼굴도 머리칼도 잃고 이게 무슨 꼴인가. 뭐, 이름 잃은 망령이 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조소하듯 웃는 아이. 아니, 그것은 지금 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몸이었다. 거추장스럽군, 그 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머리를 땋아 묶은 끈을 풀어낸다. 흰 머리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 머리끝에서 검은 기운이 차올라, 아이의 머리털은 순식간에 신기로 검게 물들었다.

"천 년만의 바깥들이인가. 하지만 이 빌어먹을 대륙은 여전하군 그래."

척, 유혼을 집어든다. 그 하얀 검날 역시 순식간에 시커먼 묵빛으로 물들었다. 그런 재주가 가능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선주. 천년 전, 림의 아나테마가 되어 세 신의 목을 친 사내.

림이 하사한 일곱 개의 검에는 그 선주의 영혼이, 조각이나마 들어 있었다. 잠자고 있었던 그 영혼이 외신의 힘이라는 자극을 받아, 궁지에 몰린 아이의 영혼을 쫓아내고 몸을 차지한 것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한 낌새를 느낀 생육의 천사. 그것은 에바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다 말고 몸을 돌렸다. 선주를 바라보고 놀라 눈을 부릅떴다. 이미 무력화되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당당하게 일어서 검을 붙잡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선주에게 달려든다.

"하찮군."

선주는 뒤로 물러서며, 유혼을 둥글게 베어냈다. 춤이라도 추는 듯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놀라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과일을 베듯 간단하게, 천사의 두꺼운 팔을 잘라낸 것이다. 대들보만한 팔은 핏물에 떨어져 어둠 가득 피보라를 일으켰다. 선주의 눈은 여전히 고요했다. 림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라, 천 년만에 재회한 자신의 사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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