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99화 (99/279)

18. 역마차 ( 1 )

제국의 마지막 마차역은 언제나 붐볐다. 제국 끝자락에 위치한 대도시 카라니. 벗어나면 더 이상의 대도시는 존재하지 않는 곳. 지도에 표시된 카라니는 일종의 나사못처럼 보였다. 제국과 제국 바깥을 연결하는 나사못. 이 곳은 교통의 중심지였다.

사방에서 몰려온 역마차와 사방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뒤얽혀 봄의 비린내와 겨울의 흙내음이 같은 정거장에서 너울거렸다. 쉴 새 없이 다종다양한 마차가 떠나고, 또 들어온다. 하루에도 수백 대의 마차가 오고 가는 이 마차역에 발굽 자국과 수레자국이 쌓일수록 마차역은 더욱 더 부풀어서, 지금은 카라니의 한 구석을 커다랗게 차지하는 명물이 되었다. 마차가 일으키는 부연 흙구름은 언제나 이 마차역을 휘감았다. 멀리서 그 광경은 이 마차역이 부풀어가는 광경처럼 보였다.

그 흐릿하고 거대한 마차역에서는, 마차역에 있다고 해서 모두 갈 곳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여섯 달! 서벌브 동쪽에서 범죄자들로 새 땅을 개간하는데, 함께 머물며 그 개척민들을 지켜줄 사람들을 모집한다! 급여는 월 200루덴, 숙식 제공한다! 모범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면 시장이 감장을 수여할 거다!"

"장비는?"

"장비는 제공하지만 두 번 이상 분실하면 급여에서 제한다. 빼돌려서 팔아먹는 놈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젠장. 그럼 난 댁들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요? 죄수 새끼들이랑 나뒹굴도록 내던져놓고 이쪽도 예비 죄수 취급을 하시겠다?"

"시장의 보증서가 있다! 저 인력 마차에는 이미 작년에 같은 일을 했던 사람들이 세 명이나 있어. 싫으면 꺼져!"

공무원은 문서를 손에 들고 기세등등하게 소리 질렀다. 이런 놈들은 강하게 나갈수록 오히려 믿음을 준다는 걸 그는 알았다. 그는 이 곳에서 칼잡이를 구하고 있었다. 얼굴에 칼자국 난 왈패의 갈 곳이 정해졌다. 언제 씩씩댔냐는 듯 얌전히 그가 내미는 문서에 서명을 하고, 구석에 놓인 마차로 걸어갔다. 노새 네 마리가 끄는 커다랗고 허름한 마차였다.

이처럼 이 마차역은, 고용주가 사람을 구하는 인력 시장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호위 임무, 수송 임무 따위를 끝낸 개인 용병들이 화톳불을 쬐며 한가득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에 가득한 마차 중 3할 정도는 그런 인력 마차였다. 그 마차는 떠돌이 용병을 부르고 용병은 또 마차를 불러서, 갈 곳 없는 사람들과 사람 없는 갈 곳이 계속 뒤얽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말먼지가 또 부옇게 남았다.

아이는 그것이 신기했다. 약속 하나 하지 않았는데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말 몇 마디를 듣고 한 조각 마차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도, 전부 생경하고 또 애틋했다. 청력이 좋은 아이는 들을 수 있었다. 험상궂게 말하던 왈패가, 마차의 문을 열자마자 안도와 친애로 가득한 인사를 건네는 것을. 용병이란 그런 사람들이었다.

역 곳곳에는 청동 화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는 화톳불에 손을 녹이며 그런 광경들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사람들의 냄새가 났다. 용병의 냄새였다. 그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그런 하나하나의 광경들이 어쩐지 고향에 온 듯 즐거웠다. 고향,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기나센은 분명 그의 고향이었다. 지금 아이의 들뜬 기분은 어쩌면 설렘일지도 몰랐다.

그 옆에선 에바가 불을 쬐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흘 밤낮을 달려 이 곳 카라니에 도착했다. 기나센으로 떠나는 마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시일이 촉박했기 때문에, 아이와 에바는 정말로 쉬지 않고 밤길을 달려 여기에 도착했다. 두 사람 모두 초인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에 소화할 수 있는 여정이었다. 에바가 피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어나."

"으음, 언니... 5분만 더 잘게..."

흔들어 깨우자 앙탈을 부리는 에바. 아이는 어이가 없어서 픽 웃으며 어깨를 한 번 더 강하게 흔들었다.

"내가 네 엄마야? 일어나라니까."

그제서야 에바는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정말로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기묘한 소리를 내서, 두런대던 사람들이 다 돌아볼 정도였다. 그녀는 역 중앙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더니, 볼을 부풀리고 말한다.

"뭐야, 아직 우리 마차 떠날 때까지는 두 시간이나 남았잖아! 왜 꺠우고 그래?"

"미리 준비해야지. 한 시간 전부터는 들어가도 된다고 했어. 혹시 잊어버리고 물건을 놓고 가거나 챙겨야 할 걸 안 챙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이는 이마에 딱밤을 먹이며 말했다. 챙길 것, 이라는 말을 듣자 에바의 안색이 일변했다. 환한 얼굴이 되어 말한다.

"챙길 거? 간식 더 챙겨갈까?"

"무슨 야유회라도 가는 줄 아는 거야? 치즈나 육포 같은 비상식량만 좀 챙기면 충분하다고 했잖아."

"그럼 비상식량 더 챙겨갈까?"

"이미 충분해. 너무 많이 사가면 짐이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힘들어."

"그럼 짐이 줄어들게 먹어치우면 되잖아! 역시 넌 멍청하구나!"

"그럼 보존식이 아니잖아!"

에바의 얼굴에 다시 딱밤을 날리는 아이. 그러나 에바는 이번엔 홱 몸을 빼서 피했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쪼르르 달려나갔다. 마차역 구석에 놓인, 노점의 숲으로.

"기다리고 있어! 비상식량 사 올 테니까 같이 나눠 먹자!"

"야, 이..."

에바의 몸놀림은 잽쌌다. 사람 사이를 솜씨 좋게 빠져나가 사라지는 에바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는 한숨 섞인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그 뒤를 밟아 쫓아가기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어."

그리고 의외의 노점에서 에바를 발견했다. 에바는 입에 길쭉한 생햄 하나를 우물거리면서, 뚫어져라 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바위 노점이었다. 이것도 옛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물건이어서, 아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적, 축제에서 자신이 사기당했던 그것과 같은 노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컵을 붙잡은 상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멈추자, 에바는 자신만만하게 맨 오른쪽의 컵을 지명했다. 그 컵은 텅 비어 있었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왼쪽이었는데."

울상이 되어 돈을 내미는 에바. 시계를 바라보더니 일어선다. 그만 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에바의 등에는 언제 그렇게 사 모았는지 음식이 한 자루 가득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복한 여행자라고 판단했는지, 야바위꾼이 유혹해왔다.

"자, 자, 예쁜 아가씨. 그러지 말고 딱 한 판, 딱 한 판만 더 합시다. 아가씨가 예뻐서 아가씨 구경하려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으니까, 감사 표시로 특별 서비스에요. 한 판만 더 합시다. 이거 아가씨가 이기면 아가씨가 지금까지 딴 돈 다 돌려줄게요."

"진짜요?"

이 야바위꾼들은 무슨 학습 교재라도 공유하는 것인가? 어렸을 때 들었던 말과 거의 똑같은 수법이 흘러나오자 아이는 피식 웃었다. 그럼 아마 사기 수법도 같을 것이었다. 아이는 사람의 숲을 헤치고 야바위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에바는 돈보다도 예쁘다는 말에 홀렸는지, 입꼬리를 억누르고 뚫어져라 컵을 바라보고 있었다. 컵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에바는 번개처럼 지목했다.

"오른쪽! 오른쪽이에요!"

"오른쪽이라, 그럼 어디 한 번 볼까요?"

싱글벙글 웃으며 오른쪽 컵을 들어 올리려는 야바위꾼. 그 손목을 희지만 억센 손이 가로막았다. 아이였다. 먼 옛날의 도린처럼 이 사기꾼을 검거할 생각이었다.

"당신 뭐야?"

"그냥, 이런 뻔한 사기를 두고 볼 수 없는 일행입니다."

야바위꾼을 무시하고, 아이는 나머지 컵을 들어올렸다. 나머지 컵은 텅 비어 있을 것이고, 공은 탁자 밑의 구멍으로 빼냈을 것이었다. 맨 왼쪽 컵은 텅 비어 있었다.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중앙의 컵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다른 컵이 다 비어 있으면, 이 컵에 공이 들어있는 게 맞겠..."

그리고 멈추었다. 중앙의 컵에 보풀보풀한 공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아이의 얼굴이 수치심과 당황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야바위꾼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피식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뭐야,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으셔서 사람을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겁니까? 도련님."

아이의 등에 휘날리는 붉은 망토. 아탕칼리의 계인이 새겨진 그 망토는 자유 기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탕칼리의 자유 기사는 아이처럼 정말로 인정을 받을 만한 세속의 무인에게 수여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냥 돈은 많으나 마술의 적성이 없는 귀족집 도련님들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의 곱상한 외모와 망토를 보고 철없는 도련님쯤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 거듭 사과를 하고 에바의 손목을 끌고 움직였다. 화톳불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야? 뭐야? 왜 나선 거야?"

"시, 시끄러. 그냥, 사기인 줄 알았지."

"구냥, 이뤈 뻔한 사기를 볼 수 없는~"

"하지 마!"

에바도 더없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놀리고 있었다. 우스꽝스럽게 아이의 흉내를 냈다. 화로에 부끄럽게 앉아 있는 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화톳불과 아이의 뺨, 둘 중 어느 것이 더 새빨간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야, 시도는 좋았는데, 안타깝게 됐소."

두 사람이 불을 쬐고 둘러앉은 화톳불. 그 앞에 한 남자가 앉으며 이런 말을 꺼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갈색이 섞인 더러운 금발에, 남부 용병 특유의 검은 빛 도는 가죽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아까 그 추태를 보고 아이에게 말을 붙이러 온 모양이었다.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시작해."

남매인가? 그 옆에는 기다란 헤어밴드로 머리를 고정한 녹색 옷의 여자가 있었다. 이쪽도 용병인 모양이었다. 커다란 롱보우를 등에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쪽은 궁수였다. 여자의 만류에도 아랑곳않고, 남자는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아니, 비꼬려는 게 아니라. 그 놈 그거 사기 맞았거든. 너도 알았지, 에이비스?"

"그건, 그렇지만..."

"큰 형이 어렸을 때 맨날 저거로 먹고 살았으니까 알지, 음."

두 사람의 대화에 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 끔뻑였다. 오빠 용병은 만면에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예?"

"방법은 좋았는데 수법이 미숙했다구, 도련님. 그렇게 눈 부릅뜨고 다음에 덮쳐들 거니까 조심하세요! 하고 온 몸으로 소리를 지르고 바라보면, 그걸로 먹고 사는 놈이 눈치를 못 챌 리가 있나. 딱 봐도 검거한답시고 달려들 게 보이니까 밑 구멍으로 빼가지고 중앙 구멍에 쑤셔넣어놓은 거지."

"아!"

생각해보면, 빼낼 수 있는 구멍이면 집어넣을 수도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지도 못한 게 오히려 더 놀라웠다. 남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는데 그냥 댁을 몰아낸 거야."

"그건 왜 그런..."

"저걸 해서 밭을 사겠어, 말을 사겠어? 발병신이 할 수 있는 게 저거밖에 없어서 저걸 하고 있는데, 딱 봐도 으리으리한 집 도련님이 달라붙으니까 댁 쪽이 더 옳아도 댁 쪽이 더 싫었던 거지. 세상이 그런 거요."

"비제 오빠!"

에어비스가 그 무례한 말에 놀라서 등짝을 쳤다. 하지만 아이는 비제라고 불린 그 사람의 말에서, 악의를 찾을 수 없었다. 정말로 조언을 하는 듯 들렸다. 아이는 꾸벅 인사하고 말했다.

"제가 여러모로 경솔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비제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라는 듯. 도련님이 용병 나부랭이에게 머리를 숙여도 되는 거냐? 그런 말이 뒤따랐고 아이는 딱히 자기가 도련님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미리 준비한, 적당히 각색한 인생사를 들려주자 비제는 크게 웃었다. 경계심을 푼 에어비스와 햄을 다 먹은 에바도 대화에 뛰어들어서, 네 사람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거 신기한데.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왠지 모르게 굉장히 가까운 사람 같은 기분이 들어."

시간이 되어 떠나기 전, 비제는 웃으며 그런 말을 건넸다. 빈말이 아닌 듯했다. 그런 알 수 없는 친밀감을 아이도 느끼고 있었다.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라면?"

"뭔가, 형제 같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로 어떤 인연이 있다면, 다음에 또 만나게 될 것 같다. 어차피 댁도 용병이라는 모양인데, 용병은 온 세상의 길을 떠돌아다니므로 의외로 쉽게 만나게 된다는 게 그 골자였다. 아이는 손을 흔들어 그를 배웅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선 눈과 흙이 뒤섞인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루어졌다.

"이런, 이런."

에바가 너무 많이 사온 음식을 적당히 처리하고 나서, 떠나기 직전 마차에 올라탄 아이와 에바. 그들이 올라타서 보게 된 얼굴이 비제와 에어비스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앞으로 일주일간, 같은 마차를 타야 하는 동행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