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수레바퀴 ( 1 )
아지프의 마탑에선 신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살풍경한 발코니에 둥지를 튼 검은 새들은 비명을 들으며 동트는 숲으로 날아갔고, 비명을 들으며 저무는 탑으로 돌아왔다. 새들이 만든 둥지에는 부서진 뼛조각과 녹슨 수술칼이 섞여 있었다. 자정에 비명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고 새떼는 날아올라 둥근 춤을 추었다. 그 춤은 아기를 달래려는 천장의 장난감을 닮았다. 어쩌면 새들에게는, 이 탑 자체가 밤낮없이 신음을 흘리는 생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지하, 입구와 이어진 커다란 공동에선 지금도 비명이 울리고 있었다. 강제로 끌어모은 징집병을 구속한 장소였다. 그 곳에선 해묵은 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 청동과 납을 섞어 만든 고문바퀴가 회전하며 비명과 핏물을 자아낸다.
"자, 그럼 다음 회전까지 30분 휴식. 30분 후 재개한다."
징집병 중 쓸모 없는 자를 골라, 실험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문바퀴에는 피 받는 홈통이 설치되어 있어서, 아지프의 마술사는 그 피로 무언가를 계측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 실험의 내용이었다. 삼백 년 동안이나 자료를 모으고 있는 실험이다.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고통이 필요한 것인지, 그것을 수치화하고 정량화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마술사는 하품하며, 젊어서부터 몇십 번이나 보아야만 했던 실험 계획서를 살펴보아야만 했다. 수백년 전 한 미치광이 천재가 피로부터 영혼의 기억을 짜내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 야릇한 실험을 발견해냈다. 그 계획서의 마지막 문장은 익숙했다. 영혼은 결국 고통을 피하기 위한 장기에 불과하며,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나는 후학이 그것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이 실험이 요구하는 피와 살의 총량에 비하면 너무나 현학적인 주제였다. 하지만 아지프의 마술사들은 그 현학을 마음에 들어했다.
"자, 다시 시작하자."
마술사는 다시 고문바퀴로 다가갔다. 바퀴를 멈춘 사슬을 풀고, 다시 바퀴를 크게 회전시키려 들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응? 크허어억!"
바닥의 배수구, 그것을 뚫고 하나의 손이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손은 마술사의 발을 붙잡아 바닥에 넘어뜨렸다. 배수구 뚜껑을 열고 치솟은 그는 널브러진 마술사를 집어들었다. 쾅! 척추가 부서지도록 바닥에 내려찍는다. 마술사는 경련하며 저항하려 들었다. 하지만 한 줄의 주문을 외우기도 전, 그 심장에 길따란 칼날이 처박혔다. 레바테인이었다.
"후우욱."
마술사를 창졸간에 무찌른 자는 물론 아이였다. 시일이 촉박했으므로, 호노레에게서 의뢰를 듣자마자 마탑으로 뛰쳐들어온 것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지하에 가득한 징집병들이 수군거렸다.
"쉿! 여러분,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아이가 빠져나온 배수구로 아이를 뒤따라 빠져나온 다나가 장내를 진정시켰다. 그녀가,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입은 율사복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이윽고 그 뒤에선 비제와 아이비스, 에바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을 구원할 법이 당도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국의 실정법을 명백히 위반하며, 긴급시의 특례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징병을 겪어 여기 구속되셨습니다. 저와 제 집행관의 손으로 악은 징치될 것입니다!"
이 마탑의 마탑주를 무찌르기에 앞서, 먼저 이 지하실에 들린 이유. 그건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들은 장차 있을 송사에서 누구보다 확실한 증인이 되어줄 것이었고, 또 미담을 퍼뜨려줄 전파자가 될 것이었다. 메말라 있던 사람들의 눈에 희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비제와 에어비스가 재빨리 움직여 그들을 묶은 포승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모두 무장하고 여기서 기다리시오. 이 두 사람이 마탑주를 즉결처분하고 마탑의 출구를 뚫을 떄까지,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야만 하오. 나는 삼 년간 자그마한 용병단을 이끈 적이 있는, 아발랑센 산맥의 용병이오. 내가 잠시 지휘를 맡겠소."
비제가 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경력은 과장과 거짓이 섞여 있었지만, 사람들을 믿게 만들기에 충분한 힘이 담겨 있었다. 징집병으로 삼으려 일부러 데려온 만큼, 이 자들은 한 가닥씩 싸움의 소질이 있었다. 무장을 시켜주고 지휘 아래 통합하면 충분한 전력이 되어줄 것이었다. 비제, 에어비스와 다나는 이 지하실에서 증인을 확보하고 사수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아름다우신 율사님..."
일행에서 가장 쓸모가 없었기에, 버려지다시피 희생당했던 늙은 자유기사가 무릎을 꿇고 다나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다나는 짐짓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것을 받아주었다. 그 광경은 사람들의 의지를 북돋았다. 그렇게 모두가 전의를 다질 무렵, 초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지랄, 웃기고 있네! 쿨럭, 켈록, 병신 나부랭이들이 뭘 하는 거야!"
고문바퀴에 묶여 있던 남자였다. 그는 온 몸으로 피를 흘리며 횡설수설했다. 그 자는 까닭 없이 고문바퀴에 묶인 다른 징집병을 위해 항의하다가, 그 다음 차례로 붙들리는 신세가 되어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자 그가 묶일 때에는 아무도 그를 위해 항의해주지 않았다.
"애새끼들이랑 잡병 나부랭이가, 아, 아지프의 마탑주를, 5위계를, 죽인다고? 개소리 하지 마!"
그 이유가 그 얄궂음인지, 고문바퀴의 고통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고결했던 영혼은 파괴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덜덜 떨며 아이에게 저주를 내뱉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길래 감히 여기 기어들어왔느냐, 너는 실패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놈들 말에 따르는 게 아니라 이 침입자들을 묶어 바쳐서 포상을 받고 풀려나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었다. 아이는 가만히 사방을 둘러보다 그 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명치에 강한 일격을 때려넣었다.
"크헉!"
"잠시 주무시는 게 좋겠군요."
그는 풀썩 앞으로 쓰러졌다. 그 자를 옆으로 치우고 아이는 마술사의 품을 뒤졌다. 곧 작은 수첩에서 마탑의 지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가자, 아이는 곁눈질로 에바를 불러 그 지도에 그려진 통로를 향해 나아갔다. 지도에는 최상층으로 단번에 올라갈 수 있는 승강기가 표시되어 있었다.
"누구냐!"
"침입자다!"
벽에 걸린 횃불에선 기름 향기가 진하게 흘렀다. 횃불을 쥐고 돌 통로를 걸어가다보니, 갑옷을 뒤집어쓴 보초가 소리질렀다. 아이는 피식 웃으며 한 손으로 유혼을 꺼내들었다.
"알면서 왜 물어봐."
쐐액! 유혼의 검풍에 횃불이 일렁여 벽에 그림자를 뿌렸다. 유혼은 번개처럼 쇄도했다. 보초는 황급히 가죽 검집에서 장검을 꺼내 막으려 했으나, 검을 뽑기도 전에 쇳조각과 피를 뿌리며 반으로 조각나고 말았다. 다른 보초는 에바의 몫이었다. 에바는 순식간에 보초의 뒤에 있었다. 목을 붙잡고 꺾는다.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보초는 바닥에 쓰러졌다.
승강기에 도달할 때까지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보초들은 비명 하나 흘리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그들은 아이가 손에 든 횃불조차 꺼뜨리지 못했다. 횃불이 일렁이고, 그림자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검이 번뜩이고, 쇠와 살조각이 마탑의 바닥을 축축하게 적시고, 어느새 끝에 도달했다. 승강기였다.
널따란 어둠 위로 네모난 바닥이 꼭짓점마다 사슬을 매달고 결박되어 있었다. 거대한 바닥은 쇳조각을 이어붙여 만든 듯했다. 홈과 홈이 선을 그려 바닥에 산양의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는 심호흡을 하고, 그 위로 발을 올려놓았다. 바닥은 출렁였다. 에바도 훌쩍 바닥 위로 올라탔다. 그 오른쪽 구석에 있는 손잡이를 당기자, 사슬이 철컹대며 승강기는 바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마탑의 꼭대기로, 이 마탑의 마탑주가 기다리는 곳으로.
영혼은 결국 고통을 피하기 위한 장기에 불과하며,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아이는 그동안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저 손장난인가, 그 수첩의 끝에는 이런 문장이 여러 번 휘갈겨 적혀 있었다. 실험을 진행하던 아지프의 마술사가 실험이 끝날 때마다 무의미하게 끄적인 것이었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이런 현학은 결국 자기 정신 속에서 스스로 가부를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자신이 틀린지, 맞는지, 감당하는 일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달린 일일 터였다.
올려다보니 마탑의 천장이 보였다. 이 흰 마탑에 들어찬 자들은, 왜 그런 것 하나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이를 희생하는 방식으로만 스스로를 확인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이는 그 천장에서 머무르던 무언가와 눈을 마주쳤다. 괴물이었다. 뼈로 만든 괴물. 인골을 수십 개 덧붙여 거인을 만들면 저렇게 될까? 예전에 북서 자치령에서 마주쳤던 마골귀, 그것을 더욱 더 강하게 만들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마 마탑주의 사역마일 것이었다. 그것은 뼈가 울리는 괴성을 내지르더니, 승강기로 훌쩍 뛰어내렸다.
"조심해!"
재빨리 몸을 굴려 아이는 그 낙하지점에서 벗어났다. 쿵! 승강기의 철판에 떨어진 마골귀는 괴성을 내질렀다. 철판은 충격량을 견디지 못하고 미친 듯 출렁였다. 마골귀는 괴성을 내지르며 두툼한 팔을 휘둘렀다. 거대한 일격이 바닥을 쓸고 아이와 에바를 덮친다.
"흡!"
풀쩍 뛰어올라 그 일격을 피하고, 아이는 마골귀의 가슴으로 짓쳐들었다. 고함을 내지른다.
"림, 레바테인!"
그 손끝에서 검붉은 대검이 치솟는다. 레바테인은 구불구불한 날을 앞세워 짓쳐들었다. 마골귀의 오른 가슴께에 쳐박힌다. 가슴께를 이루는 해골이 조각나 부서지며 흰 뼛조각을 사방에 휘날렸다.
"ㅡㅡㅡㅡㅡㅡㅡ!!!"
괴성을 내지르는 마골귀. 아이는 레바테인을 비스듬히 잡아당겼다. 쫘자작, 레바테인은 대나무를 쪼개듯 가슴팍을 쪼개고 뼈와 어둠을 갈라냈다. 레바테인이 마골귀의 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아이는 다시 휘둘렀다. 횡베기가 마골귀의 허리뼈를 덮친다. 쾅! 둔기를 내려찍은 듯한 굉음, 뼈에는 길다란 금이 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지만 허리뼈는 단단했다. 일격에 쪼개지지는 않았다. 마골귀는 손을 내뻗으며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아이는 피했다. 하지만, 다른 적이 있었다. 무게중심이었다. 무게중심이 쏠린 승강기의 바닥이 높이 치솟아 기우뚱했다. 아이는 미끄러져 승강기의 끝까지 내몰렸다.
"큭!"
간신히 그 끝을 붙잡아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린다. 마골귀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아이의 손을 짓밟으려 발을 크게 들었다.
"어딜!"
에바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날렵하게 사슬을 타고 올라가, 무게를 가득 싣은 발차기를 날린 것이었다. 에바의 발은 마골귀의 목뼈를 가격했다. 푹! 널따란 목뼈가 움푹 파여 부서지고, 인골귀는 휘청였다. 무게중심과 기울어진 승강기의 바닥은 마골귀도 집어삼켰다. 균형을 잃은 마골귀는 곧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후우욱. 기습이었어."
에바의 손을 붙잡고 승강기 위로 올라오는 아이. 에바는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기가 아이를 구한 것이 기쁘고 으스대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어때, 너 혼자 갔으면 큰일날 뻔했지?"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바테인을 붙잡고, 달려들어 크게 휘둘렀다. 에바는 깜짝 놀라 바닥에 엎드리듯 숙였다. 그 레바테인이 노린 것은 에바가 아니었다. 마골귀였다. 바닥에 떨어진 줄 알았던 마골귀가, 벽을 붙잡고 도마뱀처럼 기어올라 다시 승강기를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아아압!"
레바테인의 검날 가득 붉은 신기가 넘실댄다. 허리힘을 가득 담아 최대의 반경으로 휘둘렀다. 그 거대한 참격은 달이라도 베어낼 것처럼 보였다. 달려드는 마골귀의 가슴을 쳐부순 레바테인은, 마골귀를 반으로 토막쳤다. 뼛가루가 우박처럼 사방에 흩날려 시야를 가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굉음을 마지막으로, 양단된 마골귀는 힘을 잃고 추락했다. 쿵! 잠시 후, 바닥에 마골귀가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에바는 싸움 도중에 긴장을 풀어서, 위기를 맞을 뻔한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머뭇거렸다. 아이는 슬몃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긴장해. 이제 끝이다."
철컥. 그 말대로였다. 승강기를 끌어올리는 도르래는 어느새 그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탑의 최상층, 마탑주의 방에 도착한 것이었다. 아이는 에바의 손을 붙잡고 승강기에서 내려서, 그 문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