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06화 (106/279)

19. 수레바퀴 ( 3 )

호노레의 대화 신청은 신중했다. 아이에게 접근한 그녀는 2중, 3중으로 방음의 마술을 사용했다. 흐릿한 반구형의 방음벽이 생겨나 두 사람을 감싸서 바깥에선 대화를 전혀 엿들을 수 없게 되었다. 묵상에 잠겨 있던 아이는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타닥이는 불꽃을 반사하는 호노레의 눈동자는 진지함을 담고 있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혹시, 이 제국을 떠받치는 일곱 위의 주신이 누구누구인지 알고 계시는지요?"

아지프, 카나기, 아탕칼리, 라달라리아, 두냐, 사소필렌, 가미온. 동요로도 불리기에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었다. 아이가 대답하자 호노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한 명씩, 신의 이름과 학파의 이름을 읊으며 그 역할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지프는 제국의 국방을 담당하지요. 카나기는 괴물을 사냥하고 통제합니다. 우리는 법을 수호하고, 두냐는 어두운 질서를 수호하며, 사소필렌은 경제를 담당하죠. 하지만 단 한 명.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신이 있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미온. 유희의 학파의 가미온은, 자신의 신도를 만들지 않았다. 다른 신의 신도를 꾀어내어, 자신의 신도로 타락시킬 뿐이었다. 조디악에게 종사하는 파계 율사, 드미트리가 그 예였다. 그 신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그저 세상을 조롱하는 듯싶었다. 도대체 가미온은 왜, 어떻게 일곱 주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가?

그 질문 역시 동요만큼이나 유명한 것이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노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이 제국이 건국될 때. 일곱 위의 신이 공존하도록 계약을 맺은 자가 바로 가미온의 파계 율사이기 때문입니다."

호노레의 말은 그 해답이었다. 아이의 입의 충격으로 벌어졌다. 이것은, 분명히 라달라리아의 고위 율사인 호노레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임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펜던트였다. 그 보석에는 필기체로 라달라리아의 경구가 적혀 있었다.

"센디엘의 모든 것은 민주적이거나, 공화적이거나, 둘 다여야만 한다..."

질서와 법치는 그 연후에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정연해보이는 질서라도 압제에 불과하다.

그 뒤에는 그런 말이 붙어 있었다. 시를 읊는 듯한 어조로 호노레는 말을 이어갔다. 모닥불이 타닥이며 불티를 뿌렸고 불티는 두 사람의 얼굴을 무겁게 비추었다.

"이 경구를 만든 7위계의 율사. 기록 말살형에 처해져서 이제는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녀가 제국을 하나로 묶은 파계 율사이자,"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녀는 말을 끝맺었다.

"제 먼 선조입니다."

둘 사이에서 침묵과 어둠이 타올랐다. 복잡한 표정으로 다물어졌던 아이의 입이 벌어졌다.

"그 얘기를 제게 하는 이유가 뭐죠?"

"그리고, 그 약속을 깨는 게, 그녀의 후손인 저와 제 동료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명. 아지프의 마탑주를 무찌르기 전 그녀가 말했던 사명이 그것인 모양이었다. 아이는 조금 더 긴 이야기를 요구했다. 호노레의 목소리는 동화를 읊듯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천년 전, 제국이 세워지기 전에 센디엘은 혼돈으로 가득했다. 혼돈의 원인은 다신이었다. 너무나도 많은 신과 신앙이 세상에 퍼져 있었고, 그것은 곧 타협할 수 없는 충돌과 전쟁을 의미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듯 군기와 군세가 일어섰고 일몰이 지듯 백성이 죽어 쓸쓸한 들에 처박혔다. 누군가가 이 혼돈을 끝내야 한다, 당시 라달라리아의 정점에 있었던 그녀의 선조는 그렇게 결심했다.

7위계는 몇백 년에 한 번 태어나는 역사적인 위인이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을 끝낼 힘이 있었다. 그녀의 보증을 따라 마술사의 동맹이 세워졌고, 그녀의 마술은 그 동맹에 절대적인 구속을 부여했다. 하나로 뭉친 동맹은 다른 모든 신들을 센디엘에서 몰아내고 제국을 세웠다. 혼돈은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하나의 제국에 뭉친 일곱 개의 학파는, 시간이 문제일 뿐 언제든 갈라서 다시 서로 전쟁으로 뒤엉킬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항구적인 평화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파계했고, 몸을 던져 내기를 걸어 천 년을 이어지는 약속을 만들었다.

"센디엘의 모든 것은 민주적이거나, 공화적이거나, 둘 다여야만 한다."

호노레는 펜던트를 더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것이 그 약속의 이름이었다. 이 약속 때문에, 제국의 모든 학파들은 학장이 권력을 세습할 수 없었고, 표면상으로나마 세속의 권력을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진흥을 목적해야만 했다. 또 반드시 선거로 학장을 교체해야만 했다.

일곱 학파는 이것을 준수하기 때문에, 그리고 준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제국에서 지위를 얻었고 서로 공존했다. 다른 모든 신들은 이것을 준수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부서져 흩어졌다.

"그게 그녀의 평화론이었습니다. 짧은 임기로, 내부적인 권력 투쟁으로, 학장이 계속해서 교체되도록 유도한 것. 학파의 최종적인 목적을 세속의 영화에 두기보다는, 학문의 완성으로 두게 유도한 것. 그 두 가지가 핵심이었지요."

일곱 개의 학파가 제국을 구성하며,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도록 만든 것이 그녀의 안배였다. 이 안배는 제국이 천 년을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그것을 보증하는 신이 가미온이었다. 각 학파는 이 안배와 이 약속이 자신들이 파국에 이르는 전쟁에 치닫지 않도록 방지턱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뜩찮지만 가미온을 주신 중 하나로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분이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최선이었겠지요.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운 신의 숫자를 일곱으로 줄이고, 또 그러면서도 하나의 신이 오롯이 승리를 구가하지 않도록 서로 견제하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호노레는 쓸쓸하게 말했다. 이런 억지 약속 하나가 진정한 민주를 만들어낼 수도 없을 것이었고 공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녀의 먼 선조가 당면했던 문제는 해답이 없는 문제였다. 해답이 없었던 땅, 북서 자치령에서 헤맸던 아이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선이라는 말뜻을.

"아지프만이 승리를 구가하는 제국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럼 이 땅은 마술의 소질을 가진 소수만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며, 그 소수 중에서도 소수만이 영광을 누리고 세계는 죽음으로 가득 차겠지요. 카나기가 승리를 구가하는 제국도, 우리 라달라리아만이 존재하는 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분께서는, 일곱 개의 학파가 아울러 영원히 존재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게, 혼돈보다는 나을 테니까..."

아이는 조용히 말을 받았다. 이것도 익숙한 번민이었다. 어쩌면 나라를, 악을 만들어내는 농장 같은 그것을 세우는 사람의 마음은 항상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호노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말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그 약속으로부터 천 년입니다. 천 년동안, 제국은 아무것도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혼돈은 압제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 저 아래의 민중들은 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고통으로 눈을 뜨며 절망으로 잠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 말 뜻은, 설마..."

"예. 저는, 그 계약을 깨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밀 결사의 일원이자 대표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이를 쳐다보는 호노레의 눈에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일견 오만해보일 정도로 오똑 솟은 콧날의 양옆에서 눈이 시리게 빛난다. 아이는 그 눈이 무슨 눈인지 알 수 있었다. 동지를 찾아 헤매는 눈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아이 씨, 비밀 결사 어포슬의 대표로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제국을 끝내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제국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 결사의 일원이 되어 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이는 침을 삼켰다. 진정하려 애썼다.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우선 이 여자의 진의를 파악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왜죠?"

"왜라고 물으신다면..."

"왜 저한테 그런 위험한 얘기를 하시는 거죠? 어떻게 들어도 거의 반역에 가까운 사상과 행동인데요. 제가 어디 고발해버리거나 하면..."

"그러실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저는 잘못한 게 없는 셈이겠죠."

빙그레 웃는 호노레. 그녀는 당황해하는 아이에게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결사의 내력과, 가진 힘과, 사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곱은 부족하다. 이것이 저희 어포슬의 새로운 경구입니다."

다원적인 여러 학파를 세워 서로 견제하게 만들고, 그 학파의 내부에선 선거로 스스로를 견제하게 만든다. 이것이 그녀의 선조가 세운 기본 도식이었다. 그리고 천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 도식은 썩고 낡아서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들게 되었다.

국방을 담당하는 아지프는 군사를 쥐고 제국 안을 흔들었고, 그들을 감시해야 할 라달라리아는 부패하여 쉬운 판결 앞에서만 엄정해졌으며, 카나기는 괴물을 무찌르기보다는 길들여 정치에 나섰고, 사소필렌은 돈을 위한 돈에 골몰했다. 두냐는 돈의 개로 전락했고 아탕칼리는 해묵은 교리에 묶여 사람보다 허깨비와 더 친해졌다.

세계는 썩었다. 깊이 썩어들어가도록, 아무도 그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 못했고 개복하지 못했다. 너무나 단단한 수술실로 묶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수술실의 이름은 건국의 계약이었다. 7위계의 파계 율사가 만들어낸, 먼 옛날의 계약.

"완전무결한 제도도, 영원한 평화도 없습니다. 평화는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것이겠죠.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선의와 아집을 관철한 결과, 세계는 지금 이렇게 남루하게 썩어서 민중은 혼돈과 다를 바 없는 선명한 압제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깨부숴야만 합니다."

어포슬. 그 단체가 그 제도를 깨부술 동력으로 지목한 것은,

"아나테마입니다."

아나테마였다. 호노레는 금기를 차분한 입술로 말했다. 일곱으로는 부족했다. 겨우 일곱의 거대한 학파가 세상을 전부 점해버렸기 때문에, 서로 견제해야 할 그들은 서로 야합하고 타협했으며 함께 썩어갔다. 그것이 호노레의 선조, 그녀가 보지 못한 유일한 맹점이다. 그게 어포슬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세계는 더 많은 신과 더 많은 학파를 필요로 한다. 제국은 아나테마를 허용해야 한다. 허용해서, 화해할 수 없는 요소들끼리 서로 긴장하도록, 영원한 침묵의 투쟁 위에서 평화의 꽃을 피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지론은 불확실하게 들끓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상론에 불과할 지도 모르고, 수술실처럼 예리하고 명료한 계약에 비하면 너무나 변덕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이어야, 썩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호노레의 말이었다.

"또, 궁극적으로는... 제 먼 선조가 만들어낸 업을 끝내야 하겠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제가 왜 당신에게 이런 제안을 드리는지 이해하셨나요? 어린 사도께서는."

직접 대면하고 나서, 그녀는 아이가 아나테마라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귓전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림의 목소리가 쨍하게 울렸다.

"제 연인인 성도 8궁... 단테 아길리오. 그 사람 역시 어포슬의 일원입니다. 어포슬은 삼백여 년을 계승해온 비밀 결사이며,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을 성녀로 만들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당신의 맑은 영혼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아나테마라는 사실보다도, 분노에 이끌려 신의 도구로 살아가지 않는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움직여 당신에게 이런 제안을 드리게 만들었습니다. 부디, 이 썩은 제국을 수술하는 데 힘을 보태주시기를."

호노레는 할 말을 마쳤다는 듯 가슴께에 손을 모으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아이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거창한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은 있습니까."

"예?"

"제국의 부패도, 마술사의 횡포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잖아요. 삼백 년이나 된 단체라면, 삼백 년동안 뭘 한 겁니까."

호노레는 당황해서 눈을 껌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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