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16화 (116/279)

21. 귀향 ( 5 )

레테가 건네준 책자는 얇았다. 고작 열다섯 명의 가짜 에페 바체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아이 일행이 동전 세 개를 손에 넣었을 때, 이미 그 명단에 적혀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었다.

두 번째 동전은 괴물 무리를 무찌르고 얻어냈다. 금지된 숲에는 늑대 형상의 괴물이 살았다. 무리지어 사는 눈늑대로, 황소만한 몸뚱이를 가지고 발자국이 뾰족한 짐승이었다. 괴물을 모는 재주를 가진 가짜 에페 바체가 그것들을 몰아서 다른 사람들을 습격하고 다녔다.

부상당한 소년을 둥글게 포위한 늑대의 무리 위로 레바테인이 떨어졌다. 아이가 그 현장을 발견하고 도움의 손길을 보낸 것이다. 늑대들은 표적을 바꿔 이빨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피하고, 입을 부숴놓고, 피하고, 맨 주먹으로 아랫턱을 부숴놓고, 피하고, 달려드는 세 마리를 동시에 베어내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늑대는 한 마리도 남기지 못하고 박살났다. 흰 털과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누웠다. 아이를 뒤따르던 소년과 소녀가 생존자의 부상을 돌보는 동안, 아이는 재빨리 움직여 그 조종자를 찾아냈다.

그는 자신도 상처입은 연기를 하며, 눈늑대 무리와 무관한 척을 했다. 그러나 책자에는 그가 카나기 무반에게 검을 배우던 중 스승을 죽이고 달아났던 범죄자라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뒤돌아섰을 때 그 목을 베어내고 품에서 갈색 단소를 찾아냈다. 이것으로 괴물을 몰아댄 모양이었다. 품에는 동전도 있었다. 피묻은 동전이었다. 이미 다른 놈을 죽여서 증표를 얻고도, 그저 즐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덮쳤던 모양이었다.

세 번째 동전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이미 사방이 난장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짜들은 그저 다른 에페 바체를 덮쳐 죽이고 동전을 빼앗는 것으로밖에 수색을 할 줄 몰랐다. 아이가 직접 찾아 나서지 않아도, 그들은 아이 일행을 노리고 알아서 덮쳐들었다. 불나방처럼.

계약을 배반해 동료를 사지에 몰아넣고 달아난 자, 추격을 피해 신분을 바꾼 산적, 쾌락 살인마. 아이는 그들의 칼을 쳐부수며 레테가 준 책에 적혀 있던 그들의 신상을 떠올렸다. 그들의 칼은 더러웠다. 더러움을 빼고 본다면, 꽤나 검에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구역질났다.

그렇게 열 명쯤을 베어냈을 때, 아이는 이제 검로만 보고도 이 자가 가짜인지 아닌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너무나 명백히 가짜인 자를 발견하면 명단에 없더라도 베어넘겼다. 그 검이 기나센의 검이라면, 자신에게 칼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살려주었다. 그렇게 탐색은 계속되었다.

동행하던 소년, 그의 계산법으로 열세 칸을 움직여서야 세 번째 동전을 찾았다. 말라붙은 교목의 옹이구멍 속에 동전은 들어 있었다. 이것으로 시험은 일단락된 셈이었다.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아이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십칠야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귀인이 당신인 모양이네요."

그 미소가 너무 환해서 아이는 엉겁결에 악수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무심코 말을 뱉었다.

"그럼 동갑이네."

"동갑, 네? 당신이요?"

눈을 휘둥그레 뜨는 소년. 그럴 만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아이는 부쩍 자라 있었다. 솜털이 완연히 벗겨지고 심홍색 눈동자는 깊은 빛을 품어서 어떤 표정을 짓건 진중함이 담겼다. 몇 년 전 아이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 청년이 그 여자아이 같던 꼬마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이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여기서 불을 피우고, 내일 아침까지 버틴 후 집합 장소로 돌아가면 시험의 끝이었다.

"믿기 힘든데. 당신, 진짜 정체가 뭐야."

나름 훈훈했던 분위기를 깬 것은 소녀였다. 불을 피우고 둘러앉자마자, 그런 말을 꺼냈다.

"당신, 통령과 관계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녀의 말투는 진지했다. 그녀 역시 열여섯이라고 했다. 단순히 동갑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그런 생각에서 나온 어조가 아니었다.

"아까부터 굉장히 많은 시험자들을 만났는데, 당신이 그 시험자들을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이 나와 딱 맞더군. 그래서 난 당신이 통령이 심은 어른이라고 생각했어."

"저, 저, 빨강 씨! 그런 말은 면전에서는!"

"그리고 얘도 그 의심에 동의했고. 애초에 이 자식이 먼저 시험관이 숨어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말해줬단 말이지."

"그런 말을 면전에서 하면 어떻게 해요!"

"시끄러. 시험관이든 뭐든 계약을 맺었으면 전우야. 전우를 속이는 건 내 좌우명엔 안 맞아."

소녀는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시험관이 아닌 건가?"

"아니. 아니야. 나도 그냥, 길 잃고 헤매다 귀향한 에페 바체야."

"정말로?"

아이는 흥미롭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시험관에게 어떤 부탁을 받은 건 맞아."

"그 부탁이라는 건 역시 가짜를 골라다 족치라는 거겠군?"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것도 파악하고 있던 것인가? 소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올해 시험은 애초부터 이상했어. 확신한 건, 그 놈들과 병장기를 맞부딪히고 나서야. 녀석들의 검은 절대 기나센의 검이 아니었어. 그 후로 그 놈들의 검을 유심히 관찰했지. 그 결과, 당신은 기나센의 검을 휘두르는 놈들은 살리고, 아닌 놈들은 전부 죽여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판단은 내 기준과 소름돋을 정도로 일치했고."

그녀는 그 말을 마치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둘을 살린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

아까부터 싸울 때마다, 소녀가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는 듯한 기분은 들었다. 그것이 예민함이 아니었던 셈이다. 더 부정하는 것도 소용 없을 것 같아서,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긍정의 표시였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을 전부 들려주었다. 소년이 감탄했다.

"특무국이요? 그거 진짜 있는 거였구나!"

아무래도 특무국은 존재가 반쯤만 공개되어 있는, 소문 속의 집단이었던 모양이었다. 소년은 신나서 특무국에 대해서 들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애국자 중의 애국자들만 선별되어 들어가는 곳으로, 모두가 고위 마술사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소문 속의 집단이라면서 소년이 늘어놓는 정보는 상세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는 피식 웃었다.

"아, 그럼 당신은 열여섯 살인데 특무국 사람과 대결해서 이겼다는 소리에요?"

문득 그것을 깨달은 소년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자랑하기도 부정하기도 뭐해서 아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림이 쇳소리 같은 웃음을 지었다.

'용과 천사도 떄려잡았다는 말을 들으면 아주 감격으로 까무러치겠구나, 어린 순례자야. 한 번 말해보지 그러느냐?'

"시끄러."

그 혼잣말을 들은 소년은 자신에게 한 말로 착각하고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영악한 건지, 순진한 건지 모를 소년이었다. 그러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소녀가 또다시 말을 걸어온 것이다.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당신은 가짜를 찾아 근절하는 중이다, 이거지?"

"요약하자면."

소녀의 얼굴이 모닥불의 빛을 받아 번쩍였다. 그녀는 아이에게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럼 제안을 해도 될까."

"무슨 제안?"

"당신이 살린 놈 중 하나. 가짜가 있어."

동전을 찾으러 헤매는 동안, 아이 일행은 수많은 시험자와 마주쳤다. 그들 모두가 레테가 준 명단에 들어 있지는 않았다. 아이는 그래서 그들의 검세와 품성을 살펴보고 죽일 자와 살릴 자를 골랐다. 그 살린 자들 중 가짜가 있다. 소녀의 선언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는 미심쩍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정말로?"

"확신해. 이건 내 심장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였다. 아셀라이에게 검을 배우면서, 아이는 검세의 속성을 구별하는 법을 철저하게 배웠다. 아이가 놓아준 자들은 분명 기나센의 검을 휘두르는 자들이었다. 여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 녀석을 죽여야 한다 이거야?"

혹시나 차도살인은 아닌가. 그런 의심을 품었기에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그 녀석과 승부를 내게 도와줘."

그 말에는 더없는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얽힌 이야기가 없이는 나오기 힘든 진지함이었다. 그거라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소녀는 아이의 눈앞까지 들이밀었던 얼굴을 물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얽힌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소녀가 지목한 가짜는 멀지 않은 곳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아까 우호적으로 헤어졌기에, 아이와 소녀의 얼굴을 보고도 그는 경계를 하지 않았다. 그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소녀가 어떤 이름을 꺼낸 후였다.

"크레리앙 호."

"뜬금없이 무슨 소리시죠?"

"모르겠지. 진짜 크레든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니까. 남쪽, 해안가의 군사 학교에서 우리 둘이 탄 나룻배에 붙힌 이름이다."

시사이드는 산지인 기나센에서도 특이하게 배 타는 용병을 기르는 곳이었다. 기나센에는 바다가 없어서, 커다란 호수 옆이 그들의 본거지였다. 소녀는 어렸을 때 배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갔다. 거기에서 비슷한 이유로 유학을 온 에페 바체를 만났다.

"그리고 크레든 오빠는 그 배를 타고 구조 활동을 하다가, 물에 빠져서 죽었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 치욕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죽음은 은폐됐고...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걸로 처리되었지만, 나는 알아."

크레든. 그런 이름으로 활동한 눈 앞의 이 가짜는 다른 가짜들과 달랐다. 한참 일찍 돌아와서 두 번째 해부터 시험을 치렀다. 그래서 레테도, 특무국도 이 자가 가짜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었다. 가짜 크레든은 검을 뽑아들었다. 소녀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마주 검을 뽑았다. 그러자 소녀가 크게 소리질렀다.

"나서지 마!"

그리고 물수리를 두 손으로 꼬나쥔다. 이건 자신의 싸움이라고 선언하는 듯한 동작이었다. 어쩌면 아이를 부른 것은, 자신이 이 싸움에서 져서 패배한 후를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패배해서 죽더라도, 이 가짜가 처단받게 하기 위한 안배.

그런 걱정을 해야 할 만큼 크레든의 검세는 출중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가짜를 구해온 것인가, 정말로 제대로 배운 기나센의 검을 휘둘렀다. 아이는 검 손잡이를 움켜쥔 채로 두 사람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싸움은 흉험했다. 소녀의 굽슬굽슬한 붉은 머리가 한 움큼이나 잘려 바닥에 흩날렸고, 쇠 부딪는 불꽃이 밤공기 속에 피어올랐다. 한참 뒤에야 승부가 났다. 승자는 소녀였다. 가짜 크레든은 물수리의 자루로 뺨을 얻어맞고 자세가 무너졌고, 가슴에 세 개의 창날을 받았다. 그는 휘청이며 피를 흘리고 뒤로 쓰러졌다.

그의 죽음은 고요했다. 복수, 복수라면 복수였을 그것을 끝마친 소녀 역시 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조용히 물수리의 창날을 뽑아들 뿐이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이.

"고마워."

그녀는 다가와서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그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듯싶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던 것일까, 아이는 멍하니 생각했다. 죽은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친우가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그녀와, 그녀가 느꼈을 환희와, 가짜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보았을 때의 절망을 생각했다. 그것을 홀로 삭였어야 했던 분노를 생각했다. 그런 복잡한 감정들에 비하면, 저렇게 등을 돌리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소녀의 태도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앞장서서 야영지로 돌아가던 그녀는 한 마디를 던졌다.

"이 은혜는, 나중에라도 꼭 갚을게."

그 한 마디도 절제된 것처럼 보였지만, 많은 것을 품었음이 틀림없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림이 의아한 듯 물었다.

'빨리 돌아가지 않는 게냐?'

"저 사람도 혼자 있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돌아가야지."

그런 미묘한 감정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게 된 아이였다. 숲의 밤하늘은 아련한 검은빛이었다. 숲 가득 깔린 눈밭에 그 검은빛이 스몄고 사방은 적막했다. 아이는 쓰러져 죽은 가짜 크레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 시체는 말이 없지만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죽인 에페 바체들은, 슬쩍 훑어보아도 가짜임이 드러날 정도로 허술한 가짜들이었다. 그러나 이 가짜 크레든은 달랐다. 우연이 아니었더라면 그 정체가 드러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하게 위장했고, 그 검세도 분명히 기나센의 검세를 품고 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혹시."

그 허술한 가짜들은 그저, 이런 잘 준비된 가짜들을 위한 위장이 아니었을까? 나뭇잎을 숨기기 위한 숲을 만들려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멀리서 긴 비명이 터졌다.

"뭐지?"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급히 그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달려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