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35화 (135/279)

24. The scariest part of being alone ( 3 )

외신, 아이달로스의 사냥개. 그 힘을 완전히 풀어낸 에바를 상대하는 것은 일대 일의 싸움이 아니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검은 개의 형상도 더불어 상대해야만 하는 2대 1의 싸움이었다. 드미트리가 자신할 만 했다. 모든 힘을 개방한 에바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난적이었다.

거대한 검은 개의 형상이 에바를 감싸고 있었다. 그 개의 앞발이 먼저 아이를 후려쳤다. 코람 데오를 불러내 막았다. 은빛의 장검이 아귀에서 뛰쳐나와 앞발톱을 쪼개고 연기를 흩뿌렸다. 그러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이윽고 에바의 일격도 도착했다. 비스듬히 올려벤 코람 데오를 내려찍어 다시 막아냈다. 쩡! 금속음. 손아귀 가득 충격과 고통이 밀려들었다.

"큭!"

세 번째 타격마다, 영체를 베는 힘을 충전하는 코람 데오. 그 검날 가득 새빨간 기운이 밀려들었다. 형상의 아랫턱을 크게 후려쳤다. 검날은 턱뼈를 쳐부수고 아랫턱을 박살낼 기세로 짓쳐들었다. 그러나, 검은 개는 깨물었다. 아이달로스의 사냥개에게 물린 은빛 날은 더 전진하지 못하고 주둥이에 처박혔다. 빈틈이었다. 에바는 네 발로 다시 달려들었다.

"ㅡㅡㅡㅡㅡㅡㅡ!!!"

에바는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 입에 문 기형검으로 아랫배를 노린다. 미처 피하지 못했다. 스하악! 옷이 쓸려나가는 소리. 아랫배에 끔찍한 상처가 생겼고, 피와 살점이 연회색 돌바닥을 적셨다. 아이는 코람 데오를 놓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림, 레바테인!"

작전을 바꾸었다. 짐승의 척추뼈를 두들겨 만든 듯 구불구불한 적색의 대검이 치솟았다. 두 손을 덧대어 손잡이를 붙잡고, 힘을 쥐어짜내 휘둘렀다. 큰 횡베기. 검은 개의 앞발과 레바테인이 부딪혀 굉음이 터졌다. 검은 개의 앞발이 연기처럼 일렁이며 터져나갔다. 열린 하체를 노리고 다시 에바가 짓쳐들어왔다.

"흡!"

아이는 레바테인을 끝까지 회전시키며, 원심력으로 돌려차기를 갈겼다. 어깨에 명중했다. 어깨뼈를 부순 듯한 타격감이 발끝에 전해졌다. 하지만 에바도 손톱으로 허벅지를 길게 긁고 사라졌다. 피가 흐르고, 따끔한 통각이 화끈하게 하반신에 번져나갔다.

ㅡ 위다. 멍청한 녀석아.

"윽?"

아이는 황급히 레바테인을 방패처럼 들어올려서 얼굴을 막았다. 검은 개가 이빨을 벌려 자신을 덮쳐오고 있었다. 쿵! 딱정벌레의 껍질처럼 번들거리는 이빨과 레바테인이 부딪혔다. 까드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힘싸움이 이어졌다.

ㅡ 그대로 신기를 검끝에 몰아넣고 폭발시켜라. 찌르기를 한다는 감각으로...

조언을 한 것은 선주였다. 지금 상대하는 검은 개, 아이달로스의 사냥개는 외신이었다. 나사렘에서 보았던 박애의 아이킬로스와 마찬가지로, 외신의 기운이 선주를 눈뜨게 한 모양이었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그 조언을 따랐다.

쾅!

레바테인의 검끝이 시커먼 묵빛으로 물들었다. 휘둘러 이빨을 쳐부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레바테인이 검은 개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검은 개는 괴성을 지르며 레바테인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레바테인에 베여나간 뺨에서는 검은 신기가 아지랑이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ㅡ아아, 조금이나마 몸에 기운이 돌아오는군.

그러나 그것은 아이에게도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레바테인은 선주가 박아넣은 쐐기였다. 레바테인의 검날을 타고, 팔뚝과 어깨를 타고, 새까만 기운이 아이를 침식해왔다. 침식은 뺨에까지 도달해 흰 뺨에 어지러운 무늬를 그렸다. 아이는 이를 악물고 소리질렀다.

"꺼져!"

ㅡ이런, 먼 후배여. 배은망덕하기 그지없구나. 내 힘은 원하면서, 내게 자유를 주는 건 싫은가?

선주는 여유로웠다. 아이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2대 1이 아니라, 숫제 3대 1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바테인을 내버릴 수도 없었다. 저 거대하고 흉맹한 괴물에게 그나마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검은 레바테인밖에 없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검은 개는 사지를 떨면서 포효했다. 에바 역시 네 발로 엎드려서 하늘을 보고 짖었다. 목 가득 핏줄이 올라서 있는 것이 보였다. 힘을 더 끌어내는 것인가? 아이는 신음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건..."

ㅡ저 괴물들이 늘 하는 짓이군. 저 마술사의 정신을 파먹어 힘을 더 끌어내려는 모양이다. 자기 신도를 대하는 꼬락서니하고는.

"뭐? 신도?"

ㅡ몰랐나? 외신은 존재할 뜻을 잃어버린 신들의 찌꺼기다. 세상에 남기고 떠난 원한과 절망의 덩어리다. 네가 저번에 맞상대한 그 놈, 그 박애의 외신은 목적 없는 평화에 질린 평화의 신이 자살하고 남긴 허물이었어.

막 싱싱한 기운을 흡수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이의 몸을 더 빼앗기 쉽게 하기 위해서인가. 선주는 충격적인 사실을 뿌려댔다. 선주의 말에 놀란 틈을 타서, 다시 한 번 검은 개가 덮쳐들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기합을 마주 내지르며 레바테인을 올려쳤다. 거대한 검날을 따라 검붉은 검영이 번개처럼 치솟는다. 이빨과 부딪힌 검날은 삐걱대며 비명을 질렀다. 에바가 머리를 앞세워 달려드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허리를 굽혀 단검을 피하고, 눈 앞 가득 몰려든 에바의 머리에 마주 박치기를 갈겼다.

쾅!

두개골이 얼얼하게 울렸다. 에바도 만만찮은 돌머리였다.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는 피를 흘리며 뒤로 한 바퀴 굴러서 물러섰다. 검게 침식된 뺨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며, 또 귓전에서 선주의 목소리가 울렸다.

ㅡ저 검은 개는, 먼 옛날 사멸한 수렵의 신이다. 농경이 시작되고 존재할 뜻을 잃어버린 저 자는 세상의 모든 산과 바다를 가로질러 사막에 당도했고, 거기서 죽었지. 주인도 없고 사냥감도 없는 허무한 사냥개, 그게 바로 저 놈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ㅡ몸을 넘겨라. 너는 정에 빠져 죽이지 못하겠지. 내가 대신 죽여주마.

우뚝. 레바테인을 비껴세운 채 멈춰선 아이를 선주는 유혹했다. 그 어조는 담담하게 사실을 들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ㅡ어차피 저 마술사는 도구로 태어났다. 그 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그 개와 저 여자가 더없이 닮아 있었기 때문일 테지. 더없이 멍청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정의를 갈구하는 주제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닥쳐."

ㅡ스스로 목적도 적도 가늠할 수 없는 힘 따위, 산불 같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다와 산을 불태우고 사막에 다다라서야 꺼지겠지.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지 않나?

저런 것은 죽이는 것이 옳다고, 또 선주는 식상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선주의 말은 에바를 휘돌아 자신을 찔렀다. 어떤 운명의 장난일까, 두 사람은 많이 닮아 있었다. 도구로 태어났고, 유치한 꿈을 믿었으며, 가진 힘에 비해 유치한 정의 때문에 괴로워했다.

"저, 저, 무슨?"

두 손을 움켜쥐고, 예상 외로 흉험해진 결투를 바라보던 호노레가 신음을 흘렸다. 아이가 갑자기 레바테인을 내던졌기 때문이었다. 열세였던 아이가 저 대검을 꺼낸 뒤부터 호각을 이뤘음을 보았다. 그런데 그 검을 버리다니, 호노레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모두들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단테 아길리오. 성도 8궁의 일원이자 호노레 블뢰유의 집행관으로, 이 자리에 동행한 그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저 검을 꺼낸 후 아이의 반신을 장악했던 허무의 기운, 그것이 녹아내리듯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로 무엇인가가 치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자신 앞에서 포효하는 거대한 개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적을 똑똑히 망막에 새기며, 새 검을 뽑아들었다.

"림, 용광!"

츠츠츠, 그 손에 용의 무늬를 새긴 환도가 생겨났다. 그러나 괴물을 베는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만든 검이기 때문에. 선주와 어떤 연관도 없는 검이기 때문에 불러냈을 뿐이었다.

깡! 다시 한 번 짓쳐들어오는 적들의 공격. 용광은 그 공격을 막아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손으로 용광의 칼등을 쓸어내린 아이는, 무아지경에 빠진 듯 검을 휘두르며 두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저런 삶엔 목적이 없다고?"

깡! 에바의 기형검과 용광이 크게 부딪혀 불똥을 튀겼다. 피어오른 불똥의 폭풍이 잠시 사방을 밝혔다. 쉬이익! 다시 검은 개의 발톱이 덮쳐들었지만, 아이는 보지 않고 피했다. 아이는 지금 눈 앞의 적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선주가 던진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세상의 끝까지 달려갈 수밖에 없다고?"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기나센의 산맥 끝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환상 속에서 하염없이 울던 기억이었다. 아지프의 마탑에서 보았던 한 줄의 경구도 떠올랐다. 영혼은 결국 고통을 피하기 위한 장기에 불과하며,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틀렸어!"

항변하듯 크게 소리지른다. 환도의 손잡이를 올곧게 쥐고, 정자세로 내려찍었다. 아이는 지금 순수한 무술의 힘으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이의 몸에 가득 쌓여 있던 웅혼한 신기, 그것이 새빨간 꽃처럼 피어오르며 검은 개의 어두운 기운을 밝혔다. 그 일격은 거대한 검은 개의 발을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연기를 흘리며 개는 크게 울부짖었다. 아이는 부서진 돌바닥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산맥도, 바다도, 허무로 질주하는 사람을 막아세울 수 없다면."

결국 불가피한 희생을 강요하는 듯했던 그 절망 속에서, 자신을 꺼내준 것은 영웅도 신도 아니었다. 한 조각의 선의를 가지고 다가온,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 사람. 레나였다.

"사람이 막아세우면 돼!"

아이가 마지막으로 외칠 때, 용광은 이미 자그마한 환도가 아니었다. 붉은 기가 도는 금색의 빛무리가 아지랭이처럼 피어올라 검신을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미 거대한 대검처럼 보였다. 그 대검이 검은 개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푹! 아침 햇살이 새벽의 안개를 지워내듯, 용광은 너무도 쉽게 그 몸통을 심장째로 양단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검은 개의 화신은 공회당 전체가 떠나가라 긴 비명을 질렀다. 에바는 그 비명을 들으며, 네 발로 멍하니 엎드려 있었다. 잠시 후 검은 개의 본체가 연기처럼 흐트러졌다. 에바는 그와 동시에 푹 앞으로 쓰러졌다. 자욱히 드러난 연기가 걷혔을 때, 아이는 용광을 받침대 삼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뺨에서, 선주의 흔적은 이미 말끔히 사라진 후였다.

승패는 명확했다. 장엄한 싸움의 여파로 내려앉은 침묵을 깨고, 호노레가 낭랑하게 선언했다.

"승자는 하얀 머리의 아이 우르드!"

그 선언을 시작으로, 장내에 열화와 같은 박수의 폭풍이 몰아쳤다. 비틀린 심사로 억지로 참여해 있던 골린은 이빨을 덜덜 떨었다. 자신이 저런 괴물한테 시비를 걸고, 또 지금까지 공격해왔단 말인가? 겁도 없이? 그는 그 순간 도주할 계획을 세웠다. 아이가 그렇게 시시콜콜한 보복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턱이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됩니까."

드미트리는 의외로 냉정한 표정이었다. 아이는 만신창이로 정신을 잃은 에바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결투장을 나서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흐린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조용히 공회당을 빠져나갔다. 이 순간, 기나센 내부에서 대산맥파의 구심점은 박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때요, 당신도 어쩌면 조심해야 할 걸요? 자리 지키려면?"

호노레는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다 말고, 단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물론 장난 섞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단테의 표정은 전혀 장난스럽지 않았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본 것을 복기하고 있었다.

'아셀라이 클라릿체, 당신입니까?'

방금 아이가 외신의 화신이었던 베들렘을 베어낸 검. 그건 산의 기운을 품은 검인 비에르그도, 바다의 기운을 품은 검인 탈라사도 아니었다. 아셀라이가 늘 농담처럼 말하던 것, 이미 실전되었다던 궁극의 검.

인간의 의지를 품은 검인, 베루스였다.

단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무거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륜에게, 에바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륜을 안심시키려는 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순수해보여서, 도저히 무의 극의로 향하는 길에 발을 들이민 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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