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42화 (142/279)

25. 블로어 ( 2 )

단테 아길리오.

금우궁 알데바란의 주인.

이 세상에서 마술사가 아닌 자들 중, 가장 강한 8인의 집단인 성도 8궁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가 바로 그였다. 그의 살기에선 어떤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산악처럼, 또는 넓은 바다처럼, 거대한 자연물과 같은 기세로 아이를 짓눌러왔다.

레바테인을 불러내어 두 손에 잡았다. 묵직한 대검은 손바닥에 기분 나쁜 감촉으로 감겨왔다. 단테는 균형이 아름답게 잡힌 검을 들고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왔다. 고색창연한 검날은 달빛을 빨아들여 휘황한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 검이 알데바란, 아셀라이의 나비검과 같은 성도 8궁의 보검일 것이었다.

"모든 힘을 다 해야 할 거다."

그 말과 함께 단테는 알데바란을 쓸어내렸다. 알데바란은 부드러운 쇳소리로 울어댔다.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가. 단테는 지금 아이에게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이는 레바테인을 더 세게 쥐어잡고, 검날을 겨냥하듯 세워서 단테를 겨누었다. 다음 순간, 단테의 몸이 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응?"

푸른 기가 도는 은빛이었다. 알데바란의 손잡이 끝에서부터, 백은의 갑주가 생겨나 단테의 몸을 빈틈없이 메꿔가기 시작했다. 다른 세계에서 불러와 몸에 덧씌우는 듯한 광경이었다. 저것의 알데바란의 힘인가? 긴장하며 아이는 침을 삼켰다. 그 신비스런 무장이 끝났다. 표범처럼 늘씬한 은갑으로 몸을 감싼 단테가, 투구의 구멍으로 푸른 숨결을 흘리며, 덮쳐들었다.

"큭!"

쩡! 큰 쇳소리. 간신히 막아냈다. 단테의 투구에 기다랗게 달린 붉은 장식술이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른발을 뒤로 빼어 물러서서, 레바테인을 크게 내려찍었다. 우상단에서 덮치는 일격이었다. 당장에라도 갑옷을 우그러뜨리고 흉갑을 박살낼 듯한 일격은, 그러나 실패하고 허공을 베었다. 바웅! 몸을 숙여 피한 단테는 목을 찔러왔다. 머리를 비틀어 피하고 팔을 내뻗었다. 팔뚝을 붙잡아 부러뜨리려 했다. 단테는 여유롭게 피했고, 앞발차기로 아이의 가슴께를 후려쳤다. 먹먹한 통증이 가슴 가득 퍼져서 아이는 뒤로 무너졌다. 쿵! 눈 덮인 숲의 냉기가 등을 가득히 적셔왔다. 놓치지 않고 가슴에 달려드는 찌르기, 굴러서 피했다. 단테의 칼날은 흙바닥을 부수고 검은 흙을 사방에 흩뿌렸다. 두 호흡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후욱... 후욱..."

수습하고 일어서서 레바테인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맹공을 쏟아부은 단테는 여유를 부렸다. 한 줌의 흙을 들어올려서,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며 흘려보내고 있었다. 흩어지는 흙에는 피와 눈이 섞였다. 투구의 깊고 검은 눈구멍에서, 푸른 귀화가 흘러나와 찬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모든 힘을 다 하라고 했다."

갑옷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어쩐지 검의 떨림을 닮았다. 전력, 전력이라. 아이는 중얼거렸다. 갑자기 레바테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나왔군. 단테는 알데바란을 거세게 붙잡았다. 알데바란과 일체화된 상태의 단테는, 상대의 신기를 읽을 수 있었다. 아주 깊고 무서운 것, 검고 어두운 것이 레바테인을 쥐어잡은 아이의 팔에서 몽글거리며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오른 팔뚝을 타고 올라간 기운은 아이의 뺨에 난해한 무늬를 검게 새겼다. 다음 순간, 아이는 달려들었다. 단테는 검을 세워 막았다.

쾅!

검과 검이 부딪혔다기보다는, 포탄과 성이 부딪힌 듯한 굉음이었다. 굉음은 둥글게 퍼져나가며, 숲의 나뭇가지에 더께진 눈을 떨어뜨리고 밤잠을 청하던 새들을 몰아냈다.

"흡!"

단테는 짧게 숨을 당겨 쉬며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알데바란은 공기를 찢으며 포효했다. 레바테인의 구불구불한 검날과 잇달아 부딪히며, 그 포효는 더욱 진하고 커져갔다. 쾅! 손끝 가득 묵직한 떨림이 전해졌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전력으로 싸우는 것은. 알데바란의 곱고 올곧은 검신과, 레바테인의 구불구불한 검신이 얽힐 때마다 그 넓적한 검면에 밤하늘이 비쳤다. 검면에 어린 둥근 달은 이지러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다섯 번쯤 반복했을까, 아이는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아니?"

막아세우려던 단테는 재빨리 검세를 바꾸었다. 아이가 투포환 선수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레고르의 절기, 대태도로 사용하던 그 절기를 레바테인으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저건 맞찔러 죽을지언정 막아낼 수 없다. 단테는 순식간에 결단을 내렸다. 허리를 폭발적으로 튕기며 일격을 쏘아내는 아이. 레바테인은 산악이라도 쳐부술 듯 흉맹한 호선을 그렸다. 단테는 송곳 같은 찌르기로 맞찔러갔다. 투구의 눈구멍과 숨구멍에서 푸른 빛이 흘러 긴 잔영을 남겼다.

후드득!

설송을 덮은 눈이 부서지며 밤공기 속에서 반짝거렸다. 승부는 났다. 오른 어깨에 구멍이 뚫린 아이는, 레바테인을 놓치고 무릎을 꿇었다. 털썩, 앞으로 쓰러진다. 그 광경을 뒤로 하고, 단테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정련된 일격이었다면.'

당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단테는 척추뼈에서 차가운 것이 흘러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알데바란의 은갑을 뒤집어쓴 단테를 쳐부수기 위해서 선주는 큰 일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유혼으로 했어야 할 일격을 억지로 레바테인으로 바꾸어 시전했다. 그 때문에 생긴 미세한 틈을, 신기를 읽는 힘으로 찾아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쩌저적, 가쁜 숨을 몰아쉬는 단테의 투구에 금이 갔다. 투구는 오른 뺨부터 부서지기 시작해서, 잠시 후 몇 조각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밤꿀 같은 금발과 진녹색의 눈이 드러났다.

'이건?'

부서진 투구를 살펴보니, 안와 쪽이 크게 우그러져 있었다. 아마도 레바테인의 크로스가드가 스치며 만들어낸 자국 같았다.

"어처구니가 없군."

단테는 실소를 흘렸다. 알데바란의 힘으로 만들어낸 갑주, 백은의 갑주는 아지프의 6위계가 쏘아내는 굉혈포를 정면에서 받고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런 방호력에, 6위계의 성녀가 걸어주는 축복을 받고 싸우는 단테는 학장 급의 마도사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그가 최강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면에서 맞은 것도 아니고, 스친 것만으로 이런 참상을 만들어낸다니.

한 달이면 복구될 터이지만 입맛이 썼다. 단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달은 중천에 걸려 있었다.

"정신이 드나?"

단테의 말에 아이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번쩍 몸을 일으켜세워보니, 어깨에서 죽도록 시린 통증이 몰려왔다. 윽, 눈을 찌푸리고 돌아보니 자신의 상반신은 알몸이었다. 단테가 벗겨놓은 모양이었다.

"더 늦게 발견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셀라이는 무슨 생각으로 너를 그냥 풀어둔 건지 모르겠군."

그리고 단테는, 알데바란으로 어떤 쇳조각을 깎아대고 있었다. 어찌나 예리하게 깎아냈는지, 쇳조각이라기보단 의료용의 철침처럼 보였다. 아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것은 방금 자신이 쳐부순, 백은의 갑주의 조각이었다.

"아파도 참아라."

그 송곳 같은 철침을 들고 다가온 단테는, 뻥 뚫린 아이의 어깨에 그 쇳조각을 쑤셔넣었다. 뜨끈한 통증이 어깨 가득 번졌다.

"끄하아아악!"

아이가 격통으로 몸을 비틀자, 단테는 의사처럼 꾸짖었다.

"이건 네 안에 잠들어있는 그 괴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참아!"

그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아이는, 간신히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어렸을 때의 고통, 키벨레의 단검에 몸을 상했을 때의 고통이 떠올랐다. 입술을 깨물고 그 격통을 참고 있노라니, 단테는 품에서 기름병을 꺼내 아이의 상처에 들이부었다. 부드럽고 축축한 촉감이 화끈한 통증 위로 번져갔다. 아마도 축성한 성유인 것 같았다. 그 기름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살이 아물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잘 참았다."

많아도 서른 중반을 넘지 않았을 단테의 목소리는 중후했다. 살이 아문 것을 확인한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처음에 앉아 있던 바위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단테는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마도 그의 연인과는 다르게, 그는 별로 말주변이 없는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입을 뻐끔거리는 그의 얼굴을 아이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알데바란의 갑주를 입고 있었다. 날렵하고도 강인한 인상을 주는 그의 턱은 억셌고, 코는 높고 오똑하면서도 오만한 빛을 보이지 않았다. 입을 몇 번이나 더 꿈틀거린 후에야 그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베루스라는 걸 알고 있나?"

사람의 검. 아셀라이가 알려주었던, 어떤 형태도 띄지 않는 무의 극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테는 한숨을 내쉬며 이어 말했다.

"그렇게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모르는군. 알려주지. 베루스는 아주 먼 엣날 사라진, 힘의 신의 이름이다."

그 말은 충격적이었다.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이어진 단테의 말은 더욱 더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다. 신기를 다루는 법, 검에 신기를 담아 마술을 베어내고, 몸에 신기를 축적하는 법. 그 모든 방법은 사실 먼 태곳적에 있던 힘의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베루스는 소멸했지. 그래서 그 검을 다루는 진정한 방법인 베루스는 실전되었고, 탈라사와 비에르그라는 이름으로 나뉘어서 뱃사람과 산사람들에게 따로 전해지게 된 거야."

말을 마친 단테는 알데바란을 들어 아이를 가리켰다.

"이 성도 8궁. 이것도 베루스의 유산이다."

"예?"

"베루스는 소멸을 각오하고,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직접 내려온 신이었다. 그는 인간들과 함께 괴물들을 몰아내며 세상을 개척했지. 그리고, 육체를 입고 내려온 신들의 최후는 거의 같았다. 배신당해 죽었지."

아이는 침을 삼키며 단테의 말을 들었다. 단테가 왜 이런 비밀을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인지, 아이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건틀릿으로 검날을 쓸어내리며 단테는 말했다.

"그렇게 죽은 신들은, 원념에 사로잡혀 이 세상을 멸하고자 하는 괴물이 되었다. 그게 외신이라는 존재지. 하지만 베루스는 달랐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소멸을 덤덤히 받아들였고, 자신의 소멸 위에 무언가가 건설되기를 바랬다. 그는, 자신을 믿는 자의 신도가 아니라, 모두의 신이 되고 싶어했다."

그는 무를 추구하는 것이, 자신에 대한 신앙이 되기보다는, 인간이 스스로의 영혼과 투쟁하는 도야의 과정이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세상에 신기를 다루는 무술을 퍼뜨렸다. 죽은 그의 유해는 여덟 개로 찢어져서, 외신을 죽이기 위한 여덟 개의 성물이 되었다.

"모르지, 어쩌면 무인은 모두 부지불식간에 그의 신도인 것일지도."

그렇다면 성도 8궁은 그의 대제사장인 셈이었다. 아이는 무언가가 이해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블로어는 단테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분류했다. 성도 8궁 역시 베들렘과 비슷한 이유로, 어떤 면에서는 아나테마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이기 떄문이었다.

"너는 아마 그 길을 추구하고 있는 거겠지? 아셀라이의 제자라고도 들었으니."

"예."

"사람의 검. 그저 의무를 다하기만 하면 되는 산맥의 검도 아니고, 결과를 이루기만 하면 되는 바다의 검도 아니다. 어려운 길이야. 힘내도록."

검술로써의 베루스에 대해서는 단테도 그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것일까. 단테는 검술에 대해서는 그 외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단테는 알데바란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고로, 나는 무인의 자세는 그 베루스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부가 밭을 원망하지 않고 땅에 잠들고, 어부가 바다를 원망하지 않고 바다에 잠들듯이, 무인은 자신의 죽음 뒤에 원한이 남기보다는 무언가가 건설되기를 바라며 투명하게 소멸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단테는 다시 한 번 그것을 아이에게 겨눴다. 정확히는, 아이의 오른 팔꿈치를 겨누었다.

"그런데 네 안에 잠들어 있는 것, 그것은 다르다."

아이는 침을 삼키며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단테가 박아넣은 성유물의 조각, 그것이 돋아난 뼈처럼 살 속에서 욱신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 베루스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존재이면서도, 소멸 대신 원한과 원망을 품었다. 세상을 부수고자 하는 원념으로 가득한 힘이다. 네가 드물게 올곧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에 파먹히지 않을 수 있었지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처럼 보였다. 그 재판장에서 나는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성도 8궁의 유물이라면 그 외신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단테는 말했다. 아이는 물끄러미 단테를 쳐다보았다.

"그럼..."

선주를 억누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단테는 이 숲으로 자신을 불러내 싸움을 걸어온 것인가.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기 시작했다. 은빛의 갑주가 눈이 아플 정도로 밤빛을 반사해서 번쩍였다. 그는 떠나가며 말했다.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괴물은 다시 튀어나올 거다. 그 괴물이 나오는 걸 막고 싶다면, 너도 성도 8궁이 되어야 할 거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군.

단테는 혼잣말처럼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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