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48화 (148/279)

26. 연기 ( 3 )

정성스레 포장된 드레스는 무게가 상당했다.

륜이 들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그걸 나르는 것은 아이의 몫이 되었다. 자신이 낑낑거리며 들던 커다란 꾸러미를 한 손으로 가뿐하게 들자, 륜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씩 미소를 지었다.

"이런 완력이면 나도 쉽게 들어올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고는 팔뚝에 매달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팔뚝 가득히 번져왔다. 아이는 거뜬하게 륜의 무게를 견뎌냈다. 평소에 나뭇가지처럼 휘두르는 레바테인의 무게가 륜과 비슷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륜의 키가 작은 편이어서, 멀리서 보면 오빠에게 장난을 치는 여동생처럼 보였을 것이다. 두어 번 힘자랑을 한 아이는 륜을 바닥에 내려놓고 달래듯 말했다.

"주책부리지 말고 내려오세요."

"알았네."

토라진 듯 말꼬리를 길게 빼서 대답하고 륜은 땅에 내려왔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건 관을 파는 곳이었다.

관, 죽을 때 사람이 들어가는 그 관이었다. 기나센의 풍습 때문이었다. 약혼식 날, 신랑 쪽의 부모는 관을 준비하고 신부 쪽의 부모는 옷을 준비한다. 그 다음 관에 옷을 담고, 결혼식 날까지 각자 이루고 싶은 소망을 종이에 적어서 함께 담고 결혼식 날까지 열어보지 않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신랑 쪽이 약혼하곤 전쟁에 나가서, 죽어서 돌아오는 일이 많아서 이런 풍습이 생겼다고 들었네."

그리고 죽으면 옷과 함께 그 관에 묻히는 것이었다. 용병 국가다운 풍습이었다.

"대부분 그 날까지 함께 살아있자는 걸 소망으로 적는다고 하지요."

그 말과 함께 륜은 가게의 문을 열어젖혔다. 꽤나 넓은 가게였다. 두 사람을 보고, 점원이 밝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안을 둘러보고 아이는 실소했다. 그런 비장한 전설과는 다르게, 혼례용의 관을 파는 이 가게는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관이라는 것도 형태만 관을 닮았을 뿐, 갖가지 밝은 색 안료로 채색되었고, 뚜껑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관이라기보다는 장식장처럼 보였다.

"자네가 골라 주게. 내가 옷을 준비했지 않나."

자신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륜을 보며 아이는 잠깐 상념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은 모두 천애고아였다. 통령은 그걸 신경썼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인이 잦은 계절인지, 가게 내부에는 아이 말고도 짝지어서 서 있는 남녀 손님이 많았다. 척 보기에도 특이한 아이의 용모는 이목을 잡아끌어서, 그들이 아이를 보고 수군대는 소리가 끼쳐왔다.

"저, 저기."

그들 중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허리춤엔 장검을 차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며 물어온다.

"그, 이번에 귀향하신 레이븐사이드의 가주가 맞으신지...?"

맞다고 대답하자 그는 황급히 허리를 접혀가며 정중한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그 뒤에 나왔다. 그는 이번 에페 바체 시험에서, 첫 번째에서 떨어진 자였다. 그 때문에 혼담도 깨지고 용병단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는데, 아이 덕분에 다시 기회를 얻어서 합격했고 이렇게 예식 준비를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아니, 비정상이었던 걸 원래대로 돌렸을 뿐입니다."

"겸양까지...! 정말 꿈에 그린 듯한 위인이십니다."

곧 그의 약혼자도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그들이 일으킨 소란 때문에 점내의 모두가 아이에게 주목하게 되었고, 곧 아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인사를 받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륜에 대한 주목도는 적었다. 아이가 그 열화와 같은 성원에서 풀려났을 때, 륜은 이미 관을 골라놓은 뒤였다.

"이걸로 하는게 좋겠어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이 역시 관이라기보다는, 장식품에 더 가까워보였다. 장식대로도 쓸 수 있다는 점원의 설명이 뒤따랐다. 륜은 관뚜껑을 열어보더니, 바닥에 길게 패인 두 홈을 보며 말했다.

"이건 아예 바닥에 소원을 적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더군. 이게 마음에 들었어."

아이는 두말없이 승인했다. 물건을 정하고 등에 짊어진 뒤, 값을 치르려 하자 점원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손님께 돈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예?"

"아까 나간 두 분이 이미 결제하셨거든요."

휙, 놀란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 자신에게 연신 감사하던 그 연인, 그들이 이미 계산을 하고 떠나간 모양이었다. 어쩐지 멋쩍어서 뒤통수가 가려워졌다. 인사를 받으며 가게 문을 열었다. 차갑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서, 희고 고운 머리를 나풀대고 가려움을 씻어냈다. 가려움이 녹아내린 빈 자리에서 작고 따뜻한 무언가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건 행복이었다. 먼 옛날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평안한 일상의 행복.

등에는 관을, 손에는 옷 꾸러미를 집어든 채로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저녁이었다.

해가 저물어서 산봉우리들은 멀리로 물러났고, 저택은 끝자락부터 보랏빛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원래 짐말로 옮겨야 하는 관을, 하루 종일 손으로 들고 움직였으니 등이 뻐근했다. 아이는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거실의 카펫 위에 드러누웠다. 강철처럼 단련한 육체가 지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곤했다.

"자네도 이제 마룻바닥에 드러눕는 게 얼마나 경제적인 습관인지 깨닫게 되었는가?"

그 옆에 륜도 드러누웠다. 아이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아마도 이 사람의 글러먹은 습관이 모르는 새에 조금이나마 전염된 모양이었다. 상체를 들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륜은 반바퀴 옆으로 굴러서, 옆구리에 안겨왔다. 갑작스러운 접근이었다.

"오늘 즐거웠나?"

침묵하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소렌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는 오랜만에 향수를 느꼈다. 북서 자치령에서, 레이븐사이드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던 때의 향수였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상의 틈새에도 행복은 있었다. 륜은 조심조심 말을 고르며 말했다.

"그럼 말이죠, 혹시, 모든 게 끝난 다음에도 저와 함께 살아주실 생각은 없나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이는 잠시 우두망찰했다. 륜과의 약혼, 그건 약혼이라기보다는 사실상의 계약이었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통령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확고부동하게 가주 자리에 올라설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약혼의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륜이 드미트리에게 한 맹세 때문이었다. '아이 우르드'를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맹세.

륜이 모략의 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이는 마음 깊은 곳에서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 맹세는 륜이 그 꺼림칙함을 몰아내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아이는 아직 아이일 뿐 성이 없었다. 륜 우르드와 약혼해서 이름이 '아이 우르드'가 되면, 그 맹세의 대상이 아이가 되는 것이었고, 륜은 그 맹세를 어기면 심장이 터져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절대적인 구속의 목줄을 그녀는 스스로 바쳤다. 그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륜은 거기에 세 번째 이유를 추가하고 있었다. 그냥, 앞으로도 연인으로서, 반려로서 함께 살아달라는 부탁. 이건 사실상의 진짜 청혼이었다. 아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뜸을 들였다. 조바심이 난 륜은 황급하게 몸을 일으켜서 펜을 꺼내들었다. 관의 뚜껑을 열더니, 그 바닥에 자신의 소망을 적는다.

[ 이 세상을 멸망에서 구해낸다. ]

"물론, 지금 당장의 이야기는 아니고, 이 사명이 끝난 후여도 충분해요."

아이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눈매가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아이는 똑바로 륜의 얼굴을 마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연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연기?"

미루다는 뜻의 연기인지, 행동을 꾸며낸다는 뜻의 연기인지. 륜은 잠시 혼동했다.

"저는 가끔 당신을 막아세울지도 모르고, 당신이 하는 일에 반대할 지도 몰라요."

그러나 다음 말로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당신을 배신하는 일은 없도록 할게요."

그 말에 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놀라울 정도의 표정 변화였다. 방금 전까지 풋풋한 소녀 같았던 그것은, 어느새 차가운 모략가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륜이었다.

"실례했네. 그럼 그 말을 믿고, 나는 물러가겠네."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면서, 그녀는 흘깃 아이를 돌아보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런 끝인사를 마치고 물러났다. 아이는 상반신만 일으킨 채로 관 옆에 앉아 있었다. 옆에서 흥미롭다는 듯 두 사람을 지켜보던 림이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린 순례자야?'

"그 말대로야."

얼마 전부터, 정확히 말하면 가문전이 끝난 후부터, 륜은 이상할 정도로 친밀하게 아이에게 다가왔다. 이제 곧 본격적인 세상과의 투쟁에 나서야 하니 그 전에 확답을 받아두고 싶었던 것일 터였다.

"그 드미트리의 계약은, 륜 씨가 나를 위해 행동한다는 보증은 있어도 반대는 없으니까."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헤이든을 몰살시키라는 지시를 아이가 거부했을 때, 그녀는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엎드려서 계산하고 있던 것은 아마 통령의 계획이 아니었을 것이다. 통령은 성도 8궁도, 7위계의 마술사도 아니고 아나테마도 아니다. 그의 계획을 읽는 데에는 공책과 계산이 필요하지 않다.

"아마 나를 계산했겠지."

'음.'

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이 관계는 위험하다고.

륜의 방식은 일종의 결과주의였다. 결과가 아름다울 순 있어도 방식이 아름답기는 힘든 종류의 행동거지였다. 만일 아이가 그 방식의 추함에 지친다면? 또는 륜을 혐오하게 되서, 칼을 들고 덮쳐온다면? 아마 륜은 그런 계산을 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인 매력으로 나를 묶어두려고 했을 거야."

그 근거는 그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원래 세웠던 계획에서, 그녀는 네 번이나 결혼과 파혼을 거듭하며 세상을 지키려고 했다고 했다. 에바가 고뇌할 때, 그냥 남자로서 사로잡으라고 했다. 그건 그녀가 그 자신조차도 도구로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했다.

'흐으으음.'

림은 깊게 신음하며 날개를 펄럭였다. 관 옆에 걸터앉아서 아이는 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딱딱한 촉감이 느껴졌다. 담뱃갑이었다. 통령이 건네준 것이었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담뱃갑을 꺼내서, 한 개비를 뽑아 들여다보았다. 불을 붙이자 순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입에 댈 생각은 없었다. 아이는 그저, 정물을 들여다보듯이, 그 연기의 떨림을 바라보았다. 그 떨림은 통령의 손떨림을 닮았다.

결정적으로 의심하게 된 계기는 통령에 대한 륜의 말이었다. 륜은 우리가 통령에게 약점을 쥐어주어야만 통령이 우리에게 지원을 해 줄 것이므로, 몰살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 우르드를 위한다'는 맹세로 자신에게 목줄을 쥐어주었다. 그녀는 약했고, 사람을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자신의 목줄을 상대에게 쥐어주는 방식으로 신뢰를 구하는 듯했다.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통령과 륜은 닮아 있었다.

아이는 통령이 가여웠듯이 륜 또한 가여웠다. 그녀가 품고 있는 모략의 신은 자애의 신이 절망하며 죽어서 남긴 것이라고 했다. 그 절망은 아마도 자애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서까지 세상을 구하려 하는 이유를, 아이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연기는 뭉근하게 피어올라 관을 휘돌았다. 륜의 연기 위로 통령의 연기가 포개져서, 유리에 그을음이 흐리게 서렸다.

"그래서 거절했어."

그렇게 스스로를 수단으로 삼는 결혼을, 그녀는 꿈 속에서 네 번이나 거듭했다고 한다. 그걸 다섯 번째로 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녀를 묶고 있는 사명이 끝나서, 그녀가 정말로 한 사람의 인간일 수 있게 된 이후에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포장을 끌러서 흰 드레스를 꺼냈다. 관을 열고 드레스를 집어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관을 열자마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 이 세상을 멸망에서 구해낸다. ]

륜이 남기고 간 글자였다. 그 위에는 공란이 흰 채로 남아 있었다. 자신을 위해 비어있는 곳이었다. 아이는 드레스를 내려놓고, 륜이 남기고 간 펜을 집어들었다. 고민하던 아이는 그 위에 여덟 글자를 새겼다.

[ 최소한의 희생으로 ]

[ 이 세상을 멸망에서 구해낸다. ]

그것이 아마, 두 사람이 맡은 각자의 몫일 것이었다.

그 두 문장 위에 드레스를 포갰다. 아까까지 륜이 입었기 때문일까, 흰 레이스에는 그녀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관의 뚜껑을 덮으면서, 아이는 고개를 저어 연기를 몰아내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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