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불협화음 ( 1 )
기나센의 모든 이목은 지금 한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이미 멸문한 줄 알았던 레이븐사이드, 유서 깊은 명가에서 유일하게 살아돌아온 흰 머리의 검사가 그 집중의 대상이었다.
그는 천재였다. 그가 기나센에 들어온 이후 보여준 무위만 보아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천재임이 명명백백했다. 수십 명의 에페 바체 시험자들을 상대로 상처 하나 입지 않았고, 아마도 5위계에 준할 마술사를 상대로 이겼다. 기나센의 사람들은 어쨌든 천성이 무인이었고, 강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고된 수양을 거쳐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 반응을 더욱 열광적으로 만드는 것은 품성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무위에 걸맞는 훌륭한 품성을 보여주었다. 아이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굳이 기나센에 돌아오지 않더라도 제국에서 출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집행관을 하거나 성기사를 했더라면 더 큰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있었음을 그는 은방울꽃과 계인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그는 제국을 가로질러 기나센에 찾아왔고, 위기에 빠져 있던 은인의 가족을 구해냈다.
사람들을 가장 크게 감동시킨 것은 이 사실이었다. 아탕칼리의 제안도, 성녀의 제안도 거부하고 충의를 지키기 위해 찾아왔다는 사실. 실로 영웅담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였다. 낭만을 좋아하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이 이야기는 널리 퍼져나갔다.
"순차적으로 풀어내야겠지."
륜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손에는 예의 그 물담배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얼마 전까지는,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과향을 품은 연기가 훅 이쪽으로 끼쳐왔다. 아이는 블로어를 붙잡은 채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자네가 나사렘에서 외신의 화신체를 물리쳤다는 것, 그리고 북서 자치령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는 것. 그런 미담들도 남아 있지만 지금 풀어내면 안 돼."
륜은 이런 소문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위인의 이야기, 영웅담이 언제나 인기 있는 이유는 그 무내용함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후생을 개선시켰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법률가나 훌륭한 발명가의 이야기는 영웅담이 되지 못한다. 의무를 더 잘 준수했다고 하더라도, 성직자의 이야기 역시 영웅담이 되지 못한다.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더라도, 때로 의무를 어겼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고뇌를 넘어선 자의 이야기만이 영웅담으로 퍼지기 마련일세."
왜냐면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감상하는 자가 자신을 대입해볼 여지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정서적 이입을 끝낸 감상자는, 어느새 얼굴 한 번 본적 없을 영웅을 경애하고 사랑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러니 강조해야 할 부분은 이룬 업적이 아니라, 겪어온 고난일세. 자네는 전쟁 고아였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륜은 깃펜을 잉크로 적시고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통령에게 보낼 문서였다. 지금 통령의 관저에는, 아이의 정체와 입장을 밝혀달라는 투서가 쇄도하고 있었다. 통령은 그에 답할 권리를 륜에게 넘겨주어서, 륜이 보내주는 그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것 역시 일종의 정치적 배려였다. 아이가 정치적 자산을 얻을 큰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이 포고문은 아이가 정치전에 뛰어들었음을 알리는 포고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륜과 아이는 머리를 맞대고 글귀를 짜내는 중이었다. 이 글귀는 통령의 포고령에 실려서, 기나센과 소렌의 방방곡곡에 붙을 것이었다. 륜은 말했다.
"기나센의 대다수도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네. 농담으로 기나센의 모든 아이들은 잠재적 고아라는 말이 떠돌 정도니 말일세. 그러니 해명문의 초점을 살짝 비트는 것이 좋겠네."
륜은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저는 북서 자치령의 이름 없는 땅에 버려진 고아였습니다. 아마도 제 부모님은 전쟁에 휩쓸려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냉소적인 사람들은 아마도 너를 버렸을 것이라고 쏘아붙이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제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송장이 구름처럼 깔린 들판에서 시작됩니다. 여덟 살부터, 저는 시장바닥을 전전하며 구걸을 하거나,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벗겨 팔아서 연명했습니다. 그런 생계가 오래 유지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위병에게 덜미를 잡혔고, 저는 전쟁 노예가 되어서 아홉 살부터 창검을 잡았습니다. 그건 오히려 저에게는 행복한 기억이었습니다. 구걸하지 않고도, 돼지 먹이나마, 세끼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써도 괜찮을까요?"
륜은 아이가 들려준 경험담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미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짓말인데, 부정할까. 아이는 잠시 망설였지만, 륜의 초조한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속 써 볼게요. 혹시라도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셔도 괜찮아요."
다시 혓바닥에 펜촉을 눌러서, 굳은 잉크를 적시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하얀 손에 펜혹이 돋아 있는 것이 보였다. 륜은 아주 달필이었다.
'전쟁터에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저는 시체를 쪼아 먹는 까마귀와 사람이 어디가 다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매주마다 그들은 노예를 부려서 장난 같은 전쟁을 반복했고, 저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무기력하게 조잡한 창을 들고 나가서, 송장의 언덕이 노을에 잠길 때까지 아무렇게나 창을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창검은 계속 저를 살렸습니다. 제가 살아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이 곳 기나센에서 파견된 용병단인 레이븐사이드를 만나고 나서였습니다.'
아이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륜은 먼 옛날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제가 본 사람들 중, 처음으로 까마귀와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음만이 장난감처럼 쌓여가는 전쟁터에서 그들은 사람을 살릴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노예였던 저를 구해주었고, 에페 바체의 후보로 만들어서 가족을 주었습니다. 가족을 주었고, 친구를 주었고, 나라를 주었습니다. 왜 이렇게 잘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네가 만년빙의 아이일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건 그저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그 이야기로 구원을 받은 만년빙의 아이로서, 저에게는 그것이 그저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륜은 손을 휘휘 털었다. 한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써서 손이 저려오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계속 쓰세요."
"그래, 그럼..."
'그래서 이 곳에 돌아왔을 때, 어떤 세력이 그 에페 바체를 더럽히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분노했습니다. 그 더럽히는 자들을 모두 몰아내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전통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악용할 수 있는 허술한 제도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허술함이 아니고서야, 죽을 자리만을 찾고 있던 고아를 구해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끝내도 될까요?"
륜은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아이는 그 펜을 건네받아서, 마지막 한 줄을 적어넣었다.
'아무 것도 없는 전쟁 고아를 훌륭한 어른으로 길러내는 것. 그건 영화로운 제국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기나센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그렇게 포고문은 완성되었다.
*
다음 주부터, 륜과 아이가 함께 쓴 글귀는 방방곡곡에 나붙었다.
그 여파는 거대했다. 중앙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기나센의 모두가 직감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뭐야, 이건 결국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고 있잖아? 약아빠졌군."
벽보의 앞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툴툴거렸다. 옳은 비판이었다. 통령에게 요구된 것은, 에페 바체 시험을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밝히라는 것이었지만, 륜은 그것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자신의 심정만을 털어넣었다. 대답하는 척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는 기술이었다. 그는 옳은 비판을 하고 있었다.
"뭐 이새끼야?"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멱살을 붙잡는 사람 앞에서 쩔쩔매야 했다. 이 벽보 앞에서 대부분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의 심정에 공감했고, 또 분노했다. 어떤 세력이 에페 바체를 악용해서 기나센에 침투하려고 들었고, 아이가 그 시도를 으깨어 분쇄해버렸다는 것.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사건의 전말이었다. 대부분의 기나센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이해가 필요하지 않았다.
"인물이 났군. 인물이 났어."
"그래서 탈락을 무릅쓰면서 나서서 혼자 배후를 밝혀냈단 말인가?"
그 외의 텅 빈 부분들은, 대중들이 알아서 채워주기 시작했다. 수 많은 소문이 바람에 실려 기나센의 산천을 떠돌았다. 듣는 사람들은 그 소문을 재료로 저마다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의 얼개를 짜맞추기 시작했다. 륜이 노리던 대로였다.
"성녀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듣기로, 실력이 너무 훌륭해서 단테가 제자로 받으려고 했는데, 기나센에 와야 한다면서 거절했다던데?"
"그게 정말인가?"
"모르지. 두 사람만 알겠지."
"예끼 이 사람아, 그럼 두 사람만 아는 사실을 자네가 어떻게 아나?"
이런 식이었다. 아직 어떤 정치적 세력의 때도 묻지 않은 아이는 좋은 화폭이 되어주었다. 통령이 어떤 지원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에페 바체 시험의 재개를 원한다고 했던 것. 그 사실은 벽보에 훌륭한 풍미를 더해주었다. 아이에 대한 민심은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륜은 사람을 풀어서 그 정보를 면밀히 관찰했다. 풀린 소문과 정보들로 대중들이 충분히 만찬을 즐기고, 시들해지기 시작해졌을 때, 추가로 재료를 풀기 시작했다. 북서 자치령에서 다나와 함께했던 행적을 담은 소설들, 그것을 수입해서 풀어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에도 통령의 지원이 있었다.
"그곳이 생지옥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이 책대로라면 성녀와 어떻게 연이 있었는지도 해명되는군. 이 함께 다닌 율사가 그녀의 제자라지 않는가."
미담의 재료는 충분했다. 륜은 능숙한 지휘자처럼 그들의 반응을 조절했다. 예상 외의 방향으로 해석이 뻗어나갈 때에는 통제했고, 소재가 전부 소모되었을 때에는 새로운 소재를 투입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날 무렵, 기나센에서는 아이 우르드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미 젊은 사람들과 예비 에페 바체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북서 자치령에서부터 하고 다녔다는 특등 수색자 견장을 모조로 다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다. 가끔 아이가 소렌의 가게에 출타라도 하는 날이면 수많은 악수의 요청이 다가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 모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자가 있었다.
"통령! 이게 무슨 짓이오!"
카를 마이안센. 아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통령이 소산맥파의 차기 대권 주자로 점찍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한 가지를 잊지 않고 있었다. 레이븐사이드는 24가문의 일원이며, 아이 우르드는 통령으로 뽑힐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관저의 책상에서, 통령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그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