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50화 (150/279)

27. 불협화음 ( 2 )

"정말로 그 애송이한테 대권을 쥐어주기라도 할 셈이오? 국운이 무슨 장난감인줄 아시오!"

카를은 흉험한 기세로 책상을 두들겼다. 예에서 벗어난 일이었지만 예를 벗어난 것은 통령이 먼저였다. 그는 자신과 쌓아왔던 신의를 어기고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카를은 시선을 날카롭게 세웠다. 묵묵히 연초를 태우며 자신을 응시하는 통령이 가증스러웠다.

"대체 무슨 목적이오? 나는, 처음에는, 그저 우리의 인상을 개선시켜줄 인형을 찾는 줄 알았소. 그런데 그 포고문은 무엇이며, 왜 총력을 기울여서 여론전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오?"

카를 마이안센. 그는 소산맥파의 차기 대권 주자였다. 24가문 중 하나인 캘러미티의 가주이기도 했다. 그 직함들은 수많은 정치적 수라장을 지나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직함이었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통령이 노골적으로 아이 우르드를 밀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통령은 지나가듯 말했다.

"여론전이라. 무언가를 거짓으로 꾸며내야 여론전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널리 알려주었을 뿐이오."

"그 무슨! 똑똑히 들으시오!"

통령의 방은 차가웠다. 석달째 청소하지 않은 붉은 카페트는 이빨마다 먼지를 물어서 잿빛에 덮여 있었고, 카를의 말은 그 위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통령은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경청하고 있는 듯 보이기 위해서, 그의 시선은 카를의 뒤편에 있는 그림을 향하고 있었다. 눈 덮인 언덕과 붉은 벽돌집의 그림이었다. 눈이 가물어서, 언덕 위에 올라선 집은 자꾸 물안개 속처럼 뿌예졌다.

"신의를 지키시오!"

신의. 통령은 그 두 글자를 발음하기 위해 입에서 담배를 빼물었다. 혀뿌리 밑부터 입천장까지, 구강에 가득 고여 있던 순한 연기가 새어나와서 자욱히 피어올랐다.

통령은 카를이 지금까지 통령에게 보여준 신의, 다른 말로 충성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십오년 전의 부정이었다. 그가 젊었을 때, 그는 죽어야만 하는 싸움에 출전을 거부하고 문서를 꾸며 대리자를 보냈다. 통령은 그 증거를 모두 쥐고 있었다. 카를은 그 인생의 오점을 지우기 위해서 국권을 쥐고 싶어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소."

통령은 깊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노인의 한숨은 무거웠다. 그 무게에 카를의 기세가 눌려 누그러들었다.

"말할 수 없다면..."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그 사람, 아니, 그 아이와 만남을 주선해보겠소. 회합이오. 장소는 당신도 알고 있을, 언덕 위의 그 안가로 하겠소."

"동행자는? 수행원을 데리고 가도 되겠소?"

"수행원은 피해 주시오. 스스로의 귀와 눈을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자를 가려 골라 주시오. 그 조건 외에 나머지는 문제 없소. 만나기를 원하는 자라면, 누구든 데리고 오도록 하시오."

카를은 그 제안을 듣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통령은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았다. 카를 본인만큼이나 더럽고, 때 묻은 가주들을 불러모을 생각임이 분명했다. 곧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득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소득을 얻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으면서도, 작은 소득만 얻으면 금세 물러섰다. 통령은 백사처럼 긴 한숨을 토해냈다.

'원래는 저 자를 내 후계로 세울 생각이었건만.'

그러나 통령은 두려웠다. 카를은 사상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자였다. 소산맥파에 몸을 담은 것도, 대권을 노리는 것도 자신의 이익을 따른 행동일 뿐이었다. 그 뜻은 그의 이익이 달라지면 언제든 손바닥을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골치 아프군."

안개 속에서 붉은 집은 흐릿하게 빛났다. 그림을 응시하며 통령은 중얼거렸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통령이 쥐고 있기에, 은퇴한 후에도 배후에서 그를 충동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떄문이었다.

'그렇지만.'

드르륵,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포고문이었다. 륜과 아이가 함께 작성해서 보내준 포고문. 통령은 그것을 몇 번이나 재독했다. 그 속에서 묻어나오는, 아이 우르드라는 사람의 향취를 깊이 음미했다.

ㅡ전쟁터에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갓 열일곱이 되었다고 했나, 그 때 자신은 이런 생각을 품지 않았다. 자신의 강함에 취해 있었고,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쉽게 순국을 입에 담았다. 이 글에 담긴 것은 달랐다. 아이 우르드, 그는 전쟁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꺼려하고 있었다.

"그러니 신의를 지킬 순 없게 되었네."

한계까지 타오른 담뱃불이 입술가에서 뜨겁게 일렁였다. 입을 열어 꽁초를 떨어뜨리고, 통령은 포고문을 접기 시작했다. 다섯 번 접자, 그것은 하나의 창이 되었다. 그 종이 창을 붙잡고, 통령은 흐린 눈으로 벽에 걸린 그림을 응시했다.

툭, 집을 노리고 내던졌다.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늘조차 찢어발길 것 같은 굉음이 터졌다. 소산맥파의 거두들이 모두 모여 있던 통령의 안가, 그 안가는 지금 바깥에서 덮쳐든 투창에 의해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벽은 부서졌고 천장은 파열되어 산산조각났다. 범인은 아이칼마로이의 투창이었다. 멀리서 날아온 그 투창이 저택을 덮쳐서, 둘러앉아 있던 세 명의 소산맥파 가주를 피반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이, 무슨!"

카를 마이안센은 운 좋게도 직격을 피했다. 테러인가? 상황을 파악하려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이 우르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손하게 가슴을 접혀 인사했던 그가, 칼을 빼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 개자식, 암습이냐! 어디서 이런 명예롭지 않은...!"

통령은 이미 륜과 거래를 마친 상태였다. 대권 후보가 되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다. 불의의 사고로 기존의 후보들이 모두 정리되어야 비로소 순번이 돌아올 것이었다. 그래서 통령은 그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아주기로 했고, 륜은 투창으로 보답했다. 대가는 하나였다.

'당신의 사상을 지켜나가겠습니다.'

아이의 말이었다. 통령이 되고 나면, 스스로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정치적 세력을 상실할지라도, 평화와 반전을 견지하겠다는 뜻. 개인의 힘으로 나라를 지탱하겠다는 뜻이었다. 포고문을 읽고 나서 통령은 진심으로 그 말을 믿을 수 있었다. 묵은 갈증이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존 키렐의 죽음보다야 명예롭지 않겠는가."

통령은 그렇게 말하며 칼을 빼들었다. 존 키렐, 그건 카를이 자기 대신 사지로 밀어넣은 청년의 이름이었다. 카를의 표정에 경악이 번져갔다. 장검 가득 붉은 신기를 노도처럼 뿜어내고 있는 아이를 밀쳐내고, 통령은 앞으로 나섰다.

"비켜 주게. 이 자는 내가 처리하겠네."

"괜찮겠습니까?"

"허허, 이래뵈도 젊었을 때에는 이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검사였다네, 믿기 어렵겠지만."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곧 카를은 자신의 사브르를 뽑아 들고 통령에게 달려들었다. 통령은 그 돌진의 어긋남을 알아챘다. 축이 반 각쯤 틀어져 있어서, 피륙을 상하게 할지언정 목숨을 빼앗지는 못 할 돌진이었다. 통령은 피하지 않았다. 레이피어 가득 푸른 신기를 밀어넣고, 카를의 목젖을 찔러갔다. 푸욱! 긴 소리와 함께, 레이피어는 물고기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이, 이, 원한은, 반드시..."

"편히 쉬기를."

상반된 인삿말. 레이피어는 카를의 목을 찢어발기고 울대를 관통해서, 뒤까지 빠져나왔다. 카를의 사브르는 소매를 베었을 뿐이었다. 자그맣게 팔등이 까져서, 흰 커프스를 따라서 피가 길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통령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그저 조용히, 카를의 경련하는 눈동자를, 어쩌면 거기에 비치고 있을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칼을 뽑아내자 카를의 시체는 인형처럼 뒤로 쓰러졌다.

기나센 역사상 최악의 테러.

가주 넷을 죽여버린, 아이칼마로이의 투창을 이용한 테러에 대한 소식은 다음 날 바람처럼 기나센 전역에 퍼져나갔다.

*

그 범인 역시 예비되어 있었다.

이 테러는 아이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테러였다. 그 테러의 수단을, 굳이 귀하디 귀한 아이칼마로이의 투창으로 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 개자식, 말해라. 가문전에서 너희 가문이 패배한 사실에 원한을 품고 젊은 가주를 노렸나?"

"억울, 억울합니다, 끄아아아아악!"

치이익, 달군 인두가 살을 지지는 비명이 고문실 가득 퍼져나왔다. 심문관은 이미 혐의를 확정하고 있었다. 그건 헤이든의 총관이었다. 륜이, 헤이든이 아이칼마로이의 투창을 낙찰받아서 장부를 조작해 보관하고 있었다는 자료를 전부 보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가문전에서 패배한 주인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헤이든의 충성스런 총관이 테러를 실행했다는 이야기를.

"말도 안 됩니다!"

"그래? 억울한 사실이 있나? 공범이 있으면 남김없이 털어놔라."

총관은 미치고 팔짝 뛸 작정이었다. 총관은 분명 세간에 매우 충성스러운 자로 알려져 있었고, 누구보다 헤이든의 가솔들을 염려했다. 아이칼마로이의 투창을 숨기려 한 것도 그 충성심의 발로였다. 그런데 이미 그건 들켜서, 레이븐사이드의 안주인에게 넘겨주었는데.

몇 번의 고문을 더 견딘 후에야 말할 기회가 왔다. 살 굽는 향기와 뿌연 수증기 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서도, 총관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흐윽, 쿨럭, 그건 말입니다, 아."

그리고 총관은 깨달았다. 륜의 이름을 입에 담으려던 총관은 입을 벌린 채 우두망찰했다.

'범인이 그 안주인...'

그건 확실했다. 아이칼마로이의 투창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고, 그 존재를 아는 건 자신과 륜밖에 없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이칼마로이의 투창을 건네받을 때, 륜은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했다. 이런 위험물을 은폐한 죄를 덮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뒤따랐고, 총관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헤이든의 가솔들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것은, 아아아...'

그저 사람이 착해서 헤이든의 희생을 최소화했고, 또 생계를 대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걸 총관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그 안주인의 이름을 대면.'

레이븐사이드의 힘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할 헤이든의 남은 가솔들은 전부 굶어죽고 말 것이었다. 굶어죽거나, 추방되거나... 총관은 눈을 감았다. 귀에 그녀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 생계를 장담하겠다는 말은, 자신을 매수하기 위한 대가였다. 그의 입이 열렸다.

"예. 억울하게 돌아가신 주인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제가 독단적으로 저질렀습니다."

다음 날, 총관의 목은 잘려서 시장 초소에 내걸렸다.

사람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몰려와서 그 매달린 목에 돌과 침을 던져댔다. 그 틈에는 아이도 섞여 있었다. 그림자가 짙어서 밑에서 그 표정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진범이 옆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아무도 아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 역시 세간에는 투창에 당할 뻔한 피해자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한나절 동안이나 그 목을 올려다보면서, 아이는 계속 충동을 느꼈다. 내가 진범이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었다.

분풀이는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먼 하늘이 검게 젖어가고 땅거미가 산맥 위로 내려앉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초소를 떠나서 이내 광장은 텅 비었다. 저무는 노을 속에서, 아이는 장대를 타고 올라가 총관의 시체를 내려주었다. 길게 빼물린 혀를 입에 넣어주고,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죽은 눈은 갖은 수모에도 불구하고 평안했다.

무언가를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었을까.

륜은 양산을 들고 그 뒤에 서서, 검붉은 노을빛에 잠긴 아이와 총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절부절하는 듯, 발을 세워서 바닥을 톡톡 치고 있었다.

"혹시 내가 싫어졌나?"

돌아오는 길, 륜은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는 물끄러미 륜을 쳐다보았다. 죽은 총관의 눈과 륜의 눈이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말 없이 고개를 젓자, 륜은 안도한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륜은 조심스레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손 크기가 꽤나 차이가 나서 간신히 움켜쥘 수 있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요."

아이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대로였다. 륜과 아이가 세운 계획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공식적인 발표를 위한 장소.

관저의 연단에서 통령은 선언했다.

"조사 결과를 얻었소. 이건 조디악, 그 빌어먹을 돈놀이꾼들의 사주를 받은 헤이든의 잔당이 저지른 무자비한 폭거였소!"

여기까지는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통령은 이어서 선언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충격적인 사실을 얻어냈소!"

여기서부터는 모두가 거짓말이었다. 성도 8궁이 된 채로 통령이 되기 위해,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허구였고 명분이었다. 아이는 침을 삼키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