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54화 (154/279)

28. 귀르겐 ( 3 )

은색의 숲은 울창했다.

이 숲에만은 아직도 가을이 머무르고 있는 듯했다.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침엽수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시냇물은 살얼음을 머리에 이고도 졸졸졸 흘렀다. 그 숲의 초입에 이르러서 아이와 에바는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여기서부터는 너무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더 이상 활주가 불가능했다.

"샴발라... 샴발라라면 그거지."

에바는 살짝 긴장된 듯한, 흥분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샴발라는 집채만한 몸집을 가진, 유인원 계열의 괴물이었다. 이 곳에 오기 전 에바가 뚫어져라 보았던 도감에도 실려 있었다.

"다른 괴물들이랑 다르게 이 놈들은 무기를 쓰고, 왕을 뽑는다고 그랬어."

도감에는 다소 재미있는 해석도 실려 있었다. 인간이 없으면, 아마 세상을 지배하는 건 이 샴발라들이 아닐까.

그만큼 영리한 놈들이라는 뜻이었다. 이 숲이 은색의 숲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숲 때문이 아니었다. 이 숲은 그들의 왕국이었다. 이따금씩 겁 없는 침입자들이 나타나면 그들은 저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서 침입자를 척후했고, 느닷없이 기습해서 죽여 잡아먹었다. 그들의 털빛은 은색이었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마다 은빛 괴물들이 달라붙어 자신을 덮쳐오는 광경, 그것이 은색의 숲이라는 이름의 유래였다.

놀라운 사실은 또 있었다. 그 놈들은 무기를 쓸 줄 알았다. 무기를 만들 줄은 몰랐지만 무기를 쓸 줄 아는 괴물들이 바로 샴발라였다. 아마도 본능적인 전투 감각과 무지막지한 팔 힘이 겹쳐져서 생긴 특성일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샴발라의 대퇴골이나, 크게 부서진 돌이나, 아니면 죽은 인간의 무기를 빼앗아 사용했다.

"이렇게 말이군."

쩡!

아이는 자신의 머리 위로 덮쳐오는 일격을 후려쳤다. 여유가 넘쳤다. 아마도 보초 샴발라가 침입자를 발견하고 달려든 모양이었다. 놈은 녹슨 장검을 양 손으로 들고, 30M는 될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서 덮쳐왔다. 그 떨어질 때의 충격력까지 담은 일격은 그러나 아이의 손짓 한 번에 너무도 쉽게 가로막혔다.

"ㅡㅡㅡㅡㅡㅡㅡ!!!"

일격이 막히자 흉한 잇몸을 드러내며 울부짖는다. 그 얼굴에 재빨리 주먹을 후려쳤다. 뻑! 두툼한 코뼈가 부러지며 놈은 칼을 떨어뜨렸다. 아이는 놈이 떨어뜨린 장검을 주워들고 살펴보았다. 질이 좋지 않은 물건이었다.

"농민들이 징집될 때 쓰는 물건인데. 민가를 습격하기라도 했나?"

신기를 불어넣자 검날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녹이 일순 기화되어 사라졌다. 샴발라는 코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엄니를 드러내 위협했다. 허리를 탄력적으로 굽히더니, 네 다리로 쿵쿵 지면을 박차며 달려든다. 아이는 장검을 두 손으로 잡고 그 두꺼운 목을 향해 참격을 가했다.

서걱! 과일 써는 듯한 호쾌한 소리와 함께 샴발라의 목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잘린 머리통이 바닥에 부딪히며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죽기 직전, 샴발라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큰 비명을 내질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 나 이거 알아! 얘네 보초는 죽을 때 이렇게 비명을 내질러서 동료를 모은다고 그랬어!"

에바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참 신기한 방법으로 지식의 유용성을 체험하는 중이었다. 아이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제 이 놈들 상대로 진탕 싸워야 된다는 소리야. 싫어?"

"아니!"

에바는 기형검을 빼들고 씨익 웃었다. 아이와 에바는 그렇게 칼을 빼든 채로 은색의 숲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낙엽으로 가득한 숲을 사락사락 헤치고 걷다 보면, 가끔씩 불길한 것이 발에 걸렸다. 인골이었다. 아마도 이 놈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여행자나, 인근 마을의 민가를 덮쳐서 인육을 먹는 모양이었다.

몇 번의 산발적인 습격이 이어졌다. 저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덮쳐오는 습격이었다. 놈들은 나무 꼭대기에서 스스로를 내던져서 공격을 가해 왔다. 놈들이 지면에 착지할 때면, 바닥은 포탄을 얻어맞은 듯 움푹 구덩이가 패였다. 그 놈들을 베어내면서 아이는 점차 놈들이 노리는 바를 알게 되었다.

샴발라들은 나무 위에서부터 두 사람을 포위하고 있었다. 포위하되, 직접 덮쳐오지는 않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위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두터워졌다. 자신을 조여오는 포위로부터 아이는 짐승의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찐득하고도 집요했다. 컵에 물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넘쳐흐르듯이, 그 찐득한 살기는 천천히 불어나며 넘쳐 흐를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가끔씩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어린 샴발라들이 두 사람을 덮쳐왔다. 그러나 그들은 칼 두 번 부딪히기도 전에 목을 잘리거나, 내장이 박살나거나, 사지를 잘리고 심장에 칼이 꽂혔다.

다섯 마리째의 샴발라는 특히 끈질겼다. 중심에 들어설수록 더 강한 놈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놈은 오른팔과 왼다리를 잘리고도 절뚝이며 달려들었고, 잡철로 된 검이 아니라 두꺼운 강철 대검을 휘둘렀다. 놈의 사지를 토막치고 배를 걷어차서 넘어뜨리는 데에는 네 수가 필요했다. 푹, 엎어져서 버둥대는 샴발라의 심장에서 칼을 뽑아내며, 아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포위진은 거대한 고리로 불어나 있었다. 지붕처럼 밤하늘을 가린 숲그림자의 틈새마다, 은색이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드디어 컵이 넘쳐흐를 때가 된 모양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총공격을 알리는 굉음을 들으며 에바는 아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저기, 내기할까?"

아이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

"무슨 내기?"

"누가 더 저 원숭이들을 많이 죽이나, 하는 내기. 이기는 사람이 밥 사주기."

좋아, 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샴발라들의 습격은 시작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이와 에바는 정신없이 그 덮쳐오는 놈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저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포탄처럼 뛰어드는 놈들의 일격은 정말로 성가셨다. 하지만, 떨어질 때가 제일 무서울 뿐 떨어지고 난 후에는 별 것 아니었다. 허리를 젖혀 일격을 피하고, 팔을 베어내고, 달려드는 이빨을 주먹으로 쳐부수고, 뛰어서 덮쳐드는 놈을 허공에서 둘로 토막치고, 순식간에 살육의 폭풍이 몰아쳤다. 숨 두 번 쉴 동안, 아이는 네 마리의 샴발라를 무찔렀다.

"어딜!"

에바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발차기로 샴발라의 두개골을 쳐부순 에바는 곧바로 기형검을 휘둘러 다른 샴발라의 목을 끊어내고 있었다. 샴발라의 사지와 머리, 턱뼈 따위가 낙엽 깔린 숲의 바닥을 어지럽게 뒹굴었다. 샴발라를 쳐부수는 에바의 속도는 굉장했다. 이대로라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림, 레바테인!"

그럴 리가 없지. 레바테인을 불러내어서, 나름 포위진을 짜서 달려들던 세 마리의 샴발라를 단숨에 토막치며 아이는 자평했다.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서, 하늘을 가득 메웠던 샴발라들은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45마리!"

"나도 45마리."

그리고 기막히게도, 둘이 무찌른 샴발라의 수는 동률이었다. 누가 보았더라면 기가 찰 광경이었을 것이다. 샴발라는 어린 새끼라도 네 명의 병사를 능히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그 괴물을 무슨 토끼 잡듯 해치우다니, 보통 대단한 광경이 아니었다.

"마지막 놈은 내가 잡은 건데?"

"아니, 봐. 내가 휘둘러서 허리가 끊어졌잖아."

"그 전에 내가 이미 얼굴을 부숴놨잖아!"

심지어 이런 유치한 내기로 다투기까지 하다니. 정말로 토끼 사냥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 다툼의 종지부를 찍어줄 대상은 곧 등장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샴발라의 왕, 보통 샴발라보다 세 배는 거대한 왕이 동족의 죽음에 분노해 등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왕을 눈앞에 두고도 두 사람의 반응은 태연했다.

"아직 한 놈 남아 있었네."

"저 놈을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샴발라의 왕은 한층 더 분노해서 가슴을 마구 두들겼다. 등에 비끄러맨 거대한 검을 꺼내들고, 포효를 내지르며 덮쳐왔다. 샴발라의 왕은 태산처럼 컸다. 아이와 에바를 나란히 합쳐도 더 커다랄 정도였다. 자신보다 거대한 상대와의 싸움이라. 아이는 중얼거리고 검을 세게 쥐어잡았다. 잠시 후, 아이와 에바는 섬전처럼 뛰어 참격을 가했다. 얼마 전 나누었던 대화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참랑격을 시전하고 있었다.

"흡!"

왕의 가슴을 찌르는 척했던 일격은 물 흐르듯 태세를 베꾸어 어깨를 덮쳐갔다. 아이의 검은 어깨뼈를 토막치고 갈비뼈에 깊게 처박혔다. 에바의 일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솟구쳐서, 뱃가죽을 뚫고 심장을 찔러갔다. 그 두 일격을 한 몸으로 동시에 받은 샴발라의 왕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쿵 쓰러지고 말았다.

푸스스 일어나는 먼지를 뒤로, 에바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결국 무승부네."

그 말대로였다. 아이의 일격도, 에바의 일격도 참랑격이라기에는 부족했다. 에바의 말은 그런 뜻을 품고 있었다.

"가자."

검을 크게 허공에 휘둘러서, 검에 들러붙은 피와 뼛조각을 털어낸 아이는 다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원래 노리던 목표, 여왕의 써클릿이 숨겨져 있는 동굴을 향해서였다.

*

여왕의 써클릿이 숨겨져 있는 동굴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보기 드물게 아늑한 동굴이군. 이러니까 샴발라의 왕이 여길 노렸지."

그 동굴은 이 샴발라의 왕이 거처로 삼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왕의 거처로 접근하고 있었기에 샴발라들은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동굴의 입구에는 샴발라의 털과 똥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종유석에 매달려서 잠을 청하던 박쥐들은 횃불을 보자 화들짝 놀라서 달아났다. 아이와 에바는 조심조심 동굴 안으로 나아갔다.

"저기, 이 안에, 그런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게 맞아...?"

똑, 똑, 멀리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맞아. 그리고 그 써클릿이 있는 곳을 조디악은 모르고 우리는 알고 있었던 이유. 그건 간단해."

이 동굴에 숨은 자가 얼토당토않은 모략을 품고 이 동굴에 숨어들었다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 동굴은 사람 없는 폐허로 남겨졌고, 9년 후 무너져서 그가 설치한 함정들이 모두 부서지게 된다. 어린 샴발라가 그 함정 없는 동굴에 들어가서 여왕의 써클릿을 주워 오고, 그걸 다시 사냥꾼이 빼앗아서 여왕의 써클릿은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이 동굴은 지금은 함정 투성이란 말이지. 조심해."

아이는 아무렇게나 동굴의 벽에 레바테인을 푹, 찔러넣었다. 스으윽 길게 잡아당기자, 벽이 쫘자작 부서지며 내부가 드러났다. 거기에는 화살을 자동으로 발사하는 나무통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다. 한번 더 후려쳐서 그 나무통을 박살내자 우수수, 화살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지금 동굴의 함정을 전부 부수며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 모략이라는게 뭔데?"

"성도 8궁을 암살하는 것."

"뭐?"

발치에 길게 늘어져 있는 철선을 끊어내며 아이는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이 동굴을 만든 사람은 명예욕에 시달리던 암살자인데, 아무리 많은 대상을 죽여도 자기 명성은 오르질 않으니까. 성도 8궁을 암살하면 내가 성도 8궁보다 강한게 되는 거겠지, 그러니 암살하면 성도 8궁도 나한테 넘어오겠지. 이 따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나봐."

멍청해보이는 소리였지만, 암살자로 살다간 자에게 그런 사고방식은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그는 세상에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되는 몸이었다. 은신을 위해서 이 은색의 숲의 동굴에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이따금씩 샴발라를 상대로 수련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가 기껏 정리해놓은 동굴을, 샴발라의 왕이 노리고 찾아와 거처로 삼아버린 것이다.

"왕의 거처는 샴발라들이 가장 예민하게 지키는 곳이거든. 그러니까 그 암살자는 졸지에 우리가 뚫었던 포위망, 그 포위망을 뚫어야만 살아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이거지."

그리고 그는 실패했다. 아마도 샴발라의 왕이 들고 있던 무기는 그의 무기였으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동굴의 끝에 도달했다. 그 끝에는 명백히 인간이 만든 철문이 매달려 있었다.

"림, 레바테인."

바깥에선 열 수 없도록 두껍게 만들어진 철문이었지만, 레바테인으로는 어렵잖게 베어낼 수 있었다. 둘로 조각난 철문은 쿵 소리와 함께 뒤로 무너졌다. 잠시 후, 먼지가 걷히고, 그 뒤에선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가득한 방이 드러났다.

그 방을 조사한 두 사람은 금세 써클릿을 찾아냈다.

"찾았다!"

에바가 구석에서 써클릿을 발견하고 소리질렀다. 아까 아이가 대충 포장했던 가짜와는 다르게, 아름다운 금색으로 빛나는 써클릿이었다. 중앙에는 큼지막한 아쿠아마린이 박혀 있었다. 주인에게 잘 건네드릴게요. 아이는 속으로 다짐했다. 아이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곱게 써클릿을 포장해서, 품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멍청한 암살자는 이걸 왜 챙겨놓고 있던 거야?"

"암살을 위해서."

에바의 질문에 아이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는 귀르겐에게 이것을 선물해서, 의심을 덜고 암살을 할 생각이었다. 에바는 할 말을 잃었다. 잠시 고민하던 에바는, 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아이의 망토자락을 붙잡고 물었다.

"그럼 여기 성도 8궁에 관련된 다른 보물도 있지 않을까?"

타당한 지적이었다. 어쩌면 아셀라이나 단테에 관련된 물건이 있을지도 몰랐다. 뒤돌아선 아이는 곧 에바와 함께 그 암살자가 살았던 방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그렇게 지났지만 원했던 소득은 없었다. 대신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조사...일지?"

그건 성도 8궁에 대한 모든 전설이나 풍문을 기록해놓은 일지였다. 아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마도 이 암살자는 정말로 철저하게 준비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 일지에는 웬만한 조사로는 알기 어려울 아셀라이의 숨겨진 과거까지 적혀 있었다.

"이런 건 태워버리는게..."

불을 붙이려던 아이의 손이 멈췄다. 그 일지가 품은 다른 가능성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성도 8궁, 그들은 아나테마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변수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속한 세력이 있고, 예외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끼친 영향이 미미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난국에서 그들이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담긴 이 책은, 그 변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 생각을 마친 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일지의 내용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분실할 때를 대비해서였다. 제일 먼저 눈이 간 것은 귀르겐의 이름이었다. 그의 행적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서 도감에서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특이한 것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는 의외로... 매우 겁이 많다?"

귀르겐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문장으로 끝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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