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58화 (158/279)

29. 겁쟁이 ( 3 )

섬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거친 풍랑 앞에서 조각배는 몇 번이나 뒤집어졌다. 아이는 몇 번씩이나 물에 빠져가며 섬으로 접근했다. 머리카락은 바닷물에 젖어서 목 뒤에 달라붙었고, 입안 가득 불쾌한 짠맛과 물비린내가 번졌다. 그림자 섬은 이름대로 어둠에 잠겨서 형체가 보이지 않았는데, 다가갈수록 그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이, 무슨..."

섬은 하얀 뼈에 파먹히고 있었다. 섬의 윤곽을 따라 커다란 등뼈가 촘촘히 자라나서, 아치형으로 구부러져 섬의 천장을 감쌌다. 그 위에는 섬뜩하게 빛나는 마법진이 있었다. 기하학적인 도형과 문양이 붉은 빛으로 부유하며 육각형을 이루었다.

'이 섬을 고립시켜서 보호할 결계를 세우는 중인 듯 보이는구나.'

림이 말했다. 섬은 지금 알 속으로 돌아가려는 생물처럼 보였다. 아이는 이를 악물고 노를 저었다. 아직 거대한 뼈가 외곽을 감쌌을 뿐,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이 들어갈 만한 틈이 여럿 보였다. 저기로 몸을 던지면 되겠다. 아이가 목표를 정하고 풍랑 위로 배를 몰아갈 때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굉음. 상어 괴물이 내지르는 함성이었다. 입이 위아래로 두 개 달린 등푸른 상어가 빈틈을 노리고 물 속에서 덮쳐들고 있었다. 아마도 아까부터 아이를 발견하고 기회를 노리던 모양이었다. 첨벙! 큰 해일과 함께 물거품이 일어서고, 상어는 조각배를 강하게 물어뜯었다. 우현이 산산조각난 조각배에 순식간에 물이 스며들어 배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고, 아이 역시 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잠겼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지느러미를 세우고 다시 덮쳐든다. 그 코는 물 속 깊이 가라앉아가는 아이를 똑똑히 추적하고 있었다. 수천 개의 이빨이 박힌 아랫턱을 크게 벌리고, 아이를 한 입에 집어삼키려 달려들 때였다.

"큭!"

상어는 칼에 입천장을 꿰뚫리고 길게 울부짖었다. 물 속에서 레바테인을 불러낸 아이가, 입 속에서 레바테인을 휘둘러 입천장에 꽂아버린 것이었다. 졸지에 입을 닫을 수 없게 된 괴물은 피를 흘리며 몸부림쳤다. 검푸른 물 위로 상어의 붉은 피가 물보라치며 둥근 무늬를 그렸다.

"얌전히 있어!"

아이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상어의 등 위로 올라탔다. 지느러미를 붙잡고 옆구리를 걷어찼다. 상어는 등에 매달린 아이를 떨쳐내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섬으로 달려들었고, 그것이 아이가 노리는 바였다. 균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서, 미끌미끌한 등 위에 일어선다. 눈 앞에 작은 뼈가 돋아나서 막혀가는 구멍이 보였다. 심호흡을 하고, 등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반발력으로 물 속으로 가라앉는 상어의 비명을 뒤로 하고, 아이는 닫혀가는 섬 속으로 몸을 던졌다. 푸스스! 원래 모래톱이었던 장소에 두어번 뒹굴고서 아이는 몸을 일으켰다. 온 몸에 흰 모래가 달라붙어 바스락대며 흩어졌다. 결국 섬에 도착한 것이었다.

'괜찮으냐?'

"괜찮아."

림의 걱정 어린 말을 들으며 아이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바닷물에 젖은 모래가 사방에 흩날렸다. 고개를 들자 커다란 마법진이 보였다. 섬의 공중에 뜬 마법진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나와 섬을 비추고 있었다. 어두운 가운데 그 붉은 조명으로만 사방을 구분할 수 있었다. 아마 저 마법진이 빛나는 섬의 중앙에 귀르겐이 있겠지. 지금 아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섬의 중앙에 가서, 마법진을 복구하고, 귀르겐을 저렇게 만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목표를 되새긴 아이는 한 발을 내딛었다. 그 때였다. 음산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결국 이 자리에 오고 말았구나."

쨍! 기습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재빨리 유혼을 불러내어 막아냈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똥이 튀었고, 아이를 덮친 것의 모습이 일순 드러났다. 그림자였다. 귀르겐은 섬의 중앙을 지키고 있어서, 천갈궁으로 만들어낸 그림자를 보내 아이를 가로막으려는 모양이었다.

"흡!"

세로로 덮쳐오는 검날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발을 뒤로 빼고 허리를 끝까지 당겨서, 유혼을 크게 휘둘렀다. 검날은 아름다운 호를 그렸다. 스하악! 유혼은 그림자의 열린 가슴으로 쏟아져내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러나 받아쳤다. 천갈궁은 이름 그대로, 전갈처럼 흔들리며 유혼의 검날을 다섯 번이나 두들겨 쳐냈다. 쩡, 울림이 손 가득 끼쳐왔다. 다섯 번 튕긴 끝에 유혼의 손잡이까지 다다른 천갈궁은, 여섯 번째로 검 손잡이를 후려치더니, 반탄력으로 아이의 얼굴을 노리고 치솟았다. 전갈자리를 연상시키는 궤도였다.

"큭!"

검날이 아이의 뺨에 긴 상흔을 남기고 목 옆으로 빠져나갔다. 조금만 얼굴을 빼는 게 늦었다면, 눈을 베일 뻔했다. 그림자는 강적이었다. 단순히 가진 신기의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검을 연마한 자의 원숙한 기술이 그림자 속엔 녹아 있었다.

"어딜!"

깡! 빠져나간 줄 알았던 천갈궁은 이번엔 어깨를 노리고 쏟아져내렸다. 빙글 돌아 쳐올려서 막아낸 아이는, 방어를 도외시하며 덮쳐들었다. 몸 뒤로 길게 뺀 검을 앞으로 크게 후려쳤다. 팔을 앞세워 막는 그림자. 그러나 늦었다. 스하악! 예리한 호를 그리며, 유혼은 팔을 쳐부수고 가슴까지 뻗어나가 몸통을 양단할 듯 깊숙한 상처를 남겼다.

"ㅡㅡㅡㅡㅡㅡ!!!"

타격을 입은 그림자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가슴은 형편없이 부숴져 있었는데, 좋은 소식만은 아니었다. 부숴진 자리에서 또다시 연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아까 네이슨과 함께했던 뱃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검고 끈덕진 연기였다. 그 연기는, 손을 휘둘러 물리치려 해도, 형체 없이 몰려와서 어깨로 스며들었다.

"이 검은 많은 괴물의 피를 먹어온 듯 보이는군."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아이는 뒤쫓지 못했다. 연기가 또다시 어깨로 스며들면서, 또 귀르겐의 환영을 보여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고드름이 박힌 듯 어깨가 시려왔다.

ㅡ내 어린 날, 나도 그랬다. 나는 명가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무릎을 꿇고 영웅이 되겠노라 서원하며 검을 받았다.

귀르겐의 어린 시절의 환영 사이로 목소리는 울렸다. 명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귀르겐은 어려서부터 검을 수련했고, 약한 자를 위해 대가 없이 괴물이나 산적과 맞서 싸웠다. 눈 덮인 산맥에서 홀로 커다란 곰을 베어가는 그의 검은 순결했고, 한 점의 미혹도 품지 않았다.

ㅡ그때 나는 믿었다, 끝까지 자신을 연마하면, 이 한 자루 검으로 충분히 세상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뜻입니까!"

소리치자 환영이 걷혀갔다. 아이는 이를 악물고, 섬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모래 위를 서걱거리며 나아가던 아이의 앞을 또다시 그림자가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높이 솟은 바위에서부터 떨어져오는 일격이었다.

"림, 레바테인!"

고함을 질러 레바테인을 꺼낸다. 쾅! 폭음이 울리고, 그림자의 천갈궁과 레바테인이 검면을 마찰하며 긴 쇳소리를 울렸다.

"하아아아압!"

기합을 내지르며 아이는 앞으로 파고들었다. 상체를 숙이고, 몸통을 양단할 듯 올려벤다. 그림자는 가슴을 빼어 피했지만 늦었다. 레바테인의 구불구불한 검날은 허리통에 길쭉한 상처를 남겼고, 또다시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림자는 뒤로 물러섰다.

ㅡ 그러나 나는 어리석었다.

귀르겐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랐다. 말꼬리 끝이 흔들렸고 어조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흐느끼고 있었다. 이번에 어깨의 시림을 타고 흘러들어온 환영은, 여왕의 기억이었다. 유독 신앙심이 신실했던 귀르겐에게 떨어진 임무였다. 죽어야만 하는 사람을 죽을 자리로 옮기는 일을 떠맡게 되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결계의 재료가 되기 위해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귀르겐에게 어떠한 원망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왕가에서, 희생시키기 위해 키운 산제물이었다. 왕가의 피를 주고 산제물의 짐을 떠넘기기 위해, 노예의 배에서 태어났고 멸시와 홀대를 받으며 자라났으며, 억지로 여왕의 자리에 앉은 뒤 1년도 되지 않아 죽을 신세에 처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태연했다. 쑥맥인 귀르겐의 멋없는 농담을 듣고도 선하게 웃었고, 숲을 걷다가 발견한 라즈베리를 대단한 보물인 양 들고와 내밀었으며, 번개가 치는 날에는 심하게 무서워했다... 그 환영 속에서, 아이는 귀르겐이 느꼈을 감정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ㅡ나는 거부했다. 나는 불가피한 희생이란 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어깨가 지독하게 시려왔다. 은랑왕과 싸우기 직전의 환영이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귀르겐이 억지로 그녀를 잡아끌어, 반드시 구해내겠다고 말한 후에야, 그녀는 자신의 본심을 말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고백과 한 자루의 검을 걸머지고 귀르겐은 싸움에 나섰다. 만월을 등지고 포효하는 늑대의 왕에게, 그는 한 점 두려움 없이 덮쳐들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이 목소리는 눈 앞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느새 섬의 중앙에 다다른 것이었다. 중앙에 높게 솟은 바위, 아마도 여왕의 무덤 위에서, 귀르겐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실패했다."

그의 음성은 쇳소리를 뚫고 빠져나오는 듯 걸걸하게 울렸다.

"이 세계는 선한 삶의 방식을 품을 수 없는 불모의 땅이며, 영웅은 없다. 스스로의 추함과 악함을 깨닫지 못한 얼간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평소에 품고 있던 절망인가. 아니면 아잘록이 보여준 미래가 만들어낸 말인가. 알 수 없었다. 그 불길한 말과 함께 귀르겐은 천갈궁을 뽑아들었다. 일어선 그는 굉장히 키가 커서, 붉게 빛나는 천장에 닿을 듯 웅장했다. 검에 힘을 밀어넣자 천갈궁은 푸르게 타올랐다. 그런 천갈궁에 호응하듯 그림자가 날아와 그의 목에 휘감겼다. 아이는 그런 귀르겐을 올려다보았다. 귀르겐의 목에 휘감긴 그림자는, 어느새 형상을 바꾸어서, 환영에서 보았던 여왕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림자의 입맞춤을 받으며 귀르겐은 푸른 숨을 흘렸다.

"그녀에게는 삶의 아무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계는 무내용했다. 그녀가 왜 번개를 무서워하는지, 왜 라즈베리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웃는지, 아는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한 발자국, 아이에게 다가오며 귀르겐은 검을 곧추세웠다. 푸른 숨이 좌우로 번져나가며 긴 자국을 남겼다. 천갈궁은 마법진의 붉은 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 번뜩이는 칼날에, 딱딱하게 굳은 아이의 얼굴이 반사되어 빛났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에게 있어 세계이다."

이것이 그가 검으로 세계를 지키는 방식인가. 그래서 이 무덤만을 끝까지 지키기로 한 것인가.

아이가 그렇게 반문할 새도 없이, 귀르겐은 천갈궁을 높이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천갈궁 파에톤을 물려받기 위한 싸움. 그 싸움은,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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