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60화 (160/279)

30. 목적 ( 1 )

에바와 네이슨을 실은 배가 부두에 도착한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반쯤 외신화되었던 귀르겐이 죽으면서 결계는 무너졌고, 그에 따라 바다는 흉험해졌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견고했던 배는 걸레짝이 되어 돌아왔다. 눈뜬 괴물들은 피냄새를 맡고 몰려들어서 집요하게 배를 공격해왔다. 돌아오면서 죽인 괴물만 열셋이 넘었고, 사방을 물어뜯겨서 널빤지 한 짝 성한 곳이 없었다.

"도, 도착한 것도 천운이군."

빗물과 바닷물에 푹 젖은 네이슨은 수염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자평했다. 그 옆에는 그보다도 흠뻑 젖은 에바가 있었다. 마지막에, 선저가 뚫려서 반쯤 침수한 배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에바였다. 그녀는 두말없이 겉옷을 벗고 바다에 뛰어들어서 여기까지 배를 밀었다. 대단한 힘이었고 대단한 수영 실력이었다.

"괜찮소?"

에바는 강아지처럼 부르르 떨며 머리털에 묻은 물방울을 튕겨내고 있었다. 가장 많은 괴물을 처리한 것도 그녀였다. 처음에는 그저 종자나 시녀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배는 틀림없이 중간에 침몰했을 것이다.

"괜찮아요!"

멋대로 옷자락에 코를 크게 풀고 에바는 외쳤다. 이어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빨리 도움을 청하러 가야죠!"

그 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들은 몰랐다. 에바는 지금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상태였다. 망가진 배를 홋줄에 걸기가 무섭게 에바 일행은 교구로 달려나갔다. 랭 교구쪽에 빨리 사람을 보내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부두 인근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그들은 의외의 사람을 보았다.

"아, 아니..."

떡갈나무 문을 열어젖힌 네이슨은 그 사람을 보자마자 경직했다. 물에 젖은 생쥐꼴로 따라오던 기사들과 선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단 한 사람, 에바만이 달려들어 그 노인의 옷을 붙잡고 물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높은 사람이에요? 지금 큰 일이 생겼어요!"

그건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었다. 너무나 다급한 탓에, 스스럼없이 그 옷을 붙잡고 에바는 정황을 늘어놓았다. 네이슨은 대경해서 에바를 물리러 달려들었다.

"아니, 괜찮네."

그 방문자는 살아서 시성을 받은 유일한 성인, 성 아우렐리우스였기 때문이었다. 살아서 독대 한 번 하기 힘든 그런 거물이, 왜 이 곳에 있는지, 네이슨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에게서 에바를 떨어뜨리려는 네이슨을 제지하고, 에바의 비에 푹 젖은 머리를 닦아 주었다.

"두냐의 아이답지 않게 정이 많은 아이로구나."

그 말을 들은 에바는 금색 눈동자를 크게 부릅떴다. 꼬리가 있었다면 놀라서 바짝 곤두섰을 것이다. 어떻게?

아우렐리우스는 이 자리에 아이와 밀회를 갖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마레가 대성당에서 검을 뽑은 이후로, 그는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보다도 빠르군."

아우렐리우스는 엉거주춤 예를 취하고 있는 네이슨과 성기사들 사이를 가로질러서 교회 밖으로 걸어나갔다. 여명이 밝아오며 비가 그쳐가고 있었다. 아우렐리우스의 의도를 읽지 못한 네이슨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성인께서는 어, 어디로 가십니까?"

"저 아이의 말대로라면, 구원군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 하지만, 이미 유일한 배가 박살이..."

네이슨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네이슨은 눈이 아프도록 휘황한 빛 때문에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아탕칼리의 6위계의 마술사들 중에서도, 특별히 신앙심이 높은 자들만이 부릴 수 있다는 천사. 오르피엘이 여덟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눈 앞에 부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몸체는 수백 년 묵은 나무만큼이나 거대했다.

"오오, 성인이시여!"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한 오르피엘은 진홍색 성의를 입고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장엄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웅장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네이슨과 성기사들이 그 앞에 부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르피엘의 어깨에 올라선 아우렐리우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 천사를 타고 가면 정오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걸세. 타게."

"어, 어찌, 저희가 저 존귀한 분을..."

"타게."

짜증 섞인 아우렐리우스의 말에 정신을 차린 네이슨은 퍼뜩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에바는 겁도 없이 오르피엘의 옷자락을 타고 날갯죽지 쪽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성기사들이 모두 엉거주춤 오르피엘의 어깨 위에 올라탔을 때, 아우렐리우스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 말을 신호로 오르피엘은 여덟 장의 날개를 활짝 폈다. 오르피엘이 날개짓을 시작하자 심한 바람이 교회 앞에 몰아쳤다. 아름드리 정원수는 허리가 꺾였고 교회의 유리창은 부르르 떨다 부서졌다. 풍압 때문에 네이슨은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였다. 잠시 후, 네이슨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은 이미 바다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마, 말도 안되는..."

엄청난 속도였다. 여덟 장의 날개를 돛처럼 길게 펼치고 활공 중인 오르피엘의 낯빛은 평온했다. 이 많은 사람을 태우고, 이 속도로 날면서도 전혀 힘이 들지 않는 듯했다. 과연 성인의 천사답군. 네이슨은 속으로 납득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속도라면, 늦지 않게 그림자 섬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때였다. 초조하게 입술을 씹고 있던 에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까 배를 타고 떠나올 때 들었던 것처럼, 바다 전체를 메우는 거대한 굉음이 몰아쳤다.

"할아버지, 무, 무슨 일일까요?"

아우렐리우스에게 물었다. 그가 성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상식이 없는 에바는 여전히 스스럼없이 아우렐리우스를 대하고 있었다. 아우렐리우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글쎄. 이 늙은이가 듣기에는, 어떤 생물의 단말마처럼 들리는구나."

"단말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순간, 그 단말마가 다시 한 번 몰아쳤다. 이번엔 다른 성기사들도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끔찍한 비명이었다. 아우렐리우스는 오른팔을 들었다. 그의 팔 주변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생겨나며, 빛이 터져나왔다.

"더 빨리 날아야겠구나, 오르피엘."

그러자 오르피엘의 옆구리에 빛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날개가 생겨났다. 오르피엘은 아우렐리우스의 말대로 속도를 높였다. 윽! 옷자락을 놓치면 떨어질 것 같다, 네이슨은 그녀의 성의 자락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그녀가 날아간 길을 따라 물이 길게 갈라지며, 등 푸른 물고기들이 허우적댔다.

이윽고 그림자 섬에 도착하고서야, 그들은 그 단말마를 지른 자를 알 수 있었다.

"저건?"

에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림자 섬은 거대한 시체에 깔려 있었다. 온 몸에 작살 같은 칼날이 돋아 있는 고래 괴물, 그 괴물의 시체가 그림자 섬을 먹어치우듯 덮고 있었던 것이다.

"모비우스! 모비우스다!"

괴물 도감에서 보았던 것이었다. 가느다랗게 눈을 뜬 에바는 곧 그것이 어린 새끼라는 것도 꺠달았다. 가끔씩 먼 바다에 나타나서, 함대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괴물이라고 그랬는데. 에바는 중얼거렸다.

에바는 몰랐지만 모비우스는 외신의 화신체였다. 바다 깊숙이 봉인된 외신이 천 년 묵은 고래를 자신의 화신체로 삼아 부리던 것이었다. 조디악이 예지한 미래에서 귀르겐을 먹어치울 괴물이 바로 이 모비우스이기도 했다. 지금 눈 앞에서 모비우스는 새끼 상태로 죽었다. 하지만 원래라면, 만신창이가 된 세계에서 시체와 절망을 주워먹고 성체로 자라나 그림자 섬을 유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왜 저 괴물이... 여기서 죽어 있지?"

그리고 에바는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산처럼 거대한 모비우스의 청동빛 시체 위에 한 사람이 칼을 꽂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칼은 천갈궁이었고, 남자는 흰 머리를 바닷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아이였다.

호시탐탐 결계가 꺼지기만을 기다리던 모비우스는 섬을 덮던 뼈의 천장이 무너지자마자 그림자 섬을 덮쳐왔다. 천갈궁을 막 손에 쥔 아이는 모비우스와 사투를 벌였고, 승리한 것이었다.

"아!"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에바는 훌쩍 오르피엘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네이슨이 놀라서 말렸지만 소용 없었다. 곡예사를 연상시키는 멋진 착지로 아이의 옆에 내려앉아서 미끈미끈한 기름으로 덮인 모비우스를 밟고 뛰어갔다. 아이는 정신을 잃고, 머리에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왔어! 안심해!"

에바는 우왕좌왕하며 얼른 품에서 물을 꺼내 젖을 먹이듯 물을 흘려넣었다. 귀르겐에 이어, 모비우스와의 연전을 치른 아이는 지금 위중한 상태였다.

모비우스와 싸우면서, 아이는 막 얻은 천갈궁의 힘을 사용했다. 절대적인 타격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아까 귀르겐의 기억을 엿보면서, 아이는 천갈궁을 사용하는 방법을 습득한 상태였다. 천갈궁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함께 싸운다면 타격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곧 아이는 레바테인을 든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모비우스의 내장 속으로 들어가 사방을 난도질하며 등의 숨구멍으로 빠져나왔다. 모비우스는 마지막에 몸부림치며 다시 심해로 도망치려 했고, 그림자와 함께 막 배운 참랑격을 사용해 그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정말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휘두른 것이었다.

이미 예전에 한계치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상태였기 때문에, 데몬스폰 특유의 재생력은 사그라들어 있었고, 피는 멎지 않았다. 아이의 입에 물을 부어넣은 에바는 눈물을 글썽이며 깍지손으로 심장을 마구 두드렸다.

"어떡해, 어떡해..."

그 옆에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우렐리우스였다. 그는 아이의 용태를 확인하더니, 두말 없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상태가 위중하구나. 이걸 쓰도록 해라."

"성, 성인이시여, 그건!"

네이슨이 소리질렀다. 아우렐리우스가 꺼낸 것은 천상의 이슬이라는 이름의 약병이었다. 신앙심 깊은 수도사가, 은밀한 험지에서 백 년을 달여내야 만들 수 있는 약이었다. 그 약은 죽지만 않았으면 어떤 사람이든 살려낼 수 있는 물건이었고, 아탕칼리에서도 아우렐리우스 정도의 위치가 되어야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지금 아우렐리우스는 그 정도의 물건을 그냥 내준 것이었다.

하지만 에바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감사의 표시도 없이 아우렐리우스에게서 약병을 빼앗은 에바는, 곧 약을 먹일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기 떄문이었다. 하는 수 없지. 에바는 퐁 뚜껑을 따서 입에 약을 머금고, 아이의 입술에 입술을 맞대고 약을 흘려넣었다. 정신을 잃은 아이는 아기새처럼 목으로 흘려보내는 약을 받아마셨다.

"됐다!"

잠시 후, 아이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물고 피가 멎었다. 에바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모두 힘을 합쳐 오르피엘의 어깨에 정신을 잃은 아이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네이슨에게 천상의 이슬이 어떤 물건인지 주워들은 에바는, 깜짝 놀라서 아우렐리우스에게 여러 번 인사를 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에바를 보고 있지 않았다. 삐졌나? 에바가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아우렐리우스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천사처럼 잠든 아이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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