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70화 (170/279)

31. 불면증 ( 5 )

아이를 욕실로 인도하고 응접실로 빠져나오던 호노레는 기막힌 것을 목격했다.

거무튀튀하고 질척한 점액질의 무언가를 얼굴 가득 바른 채 서성이고 있는 괴인이었다. 그 몰골에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부여잡고 자세히 보니, 그녀의 제자, 다나였다. 왜 그렇게 놀라냐는 듯 말을 걸어오기까지 했다.

"스승님? 어디 다녀오신다더니 되게 빨리 돌아오셨네요?"

"그 꼴은 뭡니까?"

"아, 이거요? 피부를 더 촉촉하고 말랑말랑하게 보이게 해 준다는 진흙이에요. 오늘을 위해서 상여금을 털어다 준비했죠."

공식적으로 아이에게 방문하기로 한 날은 내일이었다. 그래서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나는 혹여나 피부에서 떨어질까, 점액으로 찐득찐득한 자신의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격무에 시달려서 메마르고 생기가 없어진 피부에 신기를 여과해서 밀어넣어서, 태어난 직후의 아기피부같은 보송보송한 상태로 만들어준대요."

호노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다나의 얼굴을 덮고 있는 진흙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아도 그런 마술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호노레의 의심에 다나는 발끈하며 대답했다.

"스승님, 15루덴이나 주고 샀으니까 절대 사기일 리 없어요!"

"가격이 어떻게 근거가 됩니까."

호노레는 한심하다는 듯 다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제자는 이런 상술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눈 밑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죽은 걸 아이 씨한테 보이면, 걱정할지도 모르잖아요..."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걱정스러운 말투로 자신의 눈두덩을 매만지는 다나를 보며 호노레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다나가 저렇게 맹목적으로 속아넘어간 데에는 지난 한 달간, 계속해서 다나가 격무에 시달리게 만든 자신의 책임도 있을 터였다. 그럼 조금쯤은 오지랖을 부려도 괜찮겠죠.

"빨리 욕실로 가서 전부 씻어내세요."

"예? 하지만..."

"그럼 15루덴보다 좋은 일이 있을 거에요."

호노레는 휘적휘적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응접실에는 눈을 커다랗게 뜬 다나 혼자 남았다.

*

"내가 죽였다."

뿌연 수증기가 후덥지근하게 가득 찬 욕실에서, 선주는 물에 몸을 담근 채로 나직이 말했다. 아이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의 흰 돌에 닿은 수증기는 찬 물방울이 되어 비처럼 떨어졌다. 이마에 그 찬 물방울을 맞으며, 아이는 선주의 회상을 들었다.

"원래 이 세계에 자리할 제국은 두 개였다. 일곱 주신을 기둥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제국. 그리고, 세 주신을 기둥 삼아 만들어질 두 번째 제국. 둘 다 마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제국이었지."

선주는 존재가 역사에서 지워지는 형벌을 받았다. 금기의 에단이라고 불리는 신을 죽인 대가였다. 그 결과로, 그가 이뤄낸 업적은 다른 사람의 업적이나 우연한 결과로 치부되었다. 그 자신조차, 림조차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선주'라는 대명사로만 불릴 정도였다. 지금 선주의 입에서 나오는 사실은 몇몇을 제외하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나는 둘 다 쳐부술 생각이었다만, 두 번째 제국을 이루는 세 주신을 죽이고 힘이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엿같은 사실을 깨달았지."

그 말을 끝으로 선주는 침묵했다. 아이는 물어보았다.

"그게 뭔가요."

"건국."

"예?"

"내 연인은 첫 번째 제국을 완성하고 종적을 감추었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분했다만, 신 두 마리의 목을 치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센디엘에 두 번째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말이다."

"그, 말뜻은?"

"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맹약을 만들어낸 7위계의 파계 율사, 그게 블뢰유다."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호노레가 말했던 그 이름 없는 7위계의 파계 율사, 그게 호노레의 선조이자 선주의 연인이었다는 뜻이었다. 선주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담담하게 말했다.

"에단의 신전으로 가는 길은 결계로 막혀 있었다. 아주 오래되었고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주문이었어. 어떤 마술사의 심장을 쪼개야 접근할 수 있는 종류의 결계였지. 어떤 놈을 쳐죽여야 길이 열리는지 몰라서 헤매던 나는, 블뢰유가 그 심장의 주인이라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블뢰유가 붙잡혀서 협박을 당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어. 자기 손으로, 이 땅에 그 독버섯 같은 마술사의 제국을 하나 더 세우기 위해서, 스스로 부역하고 있던 거였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죽였다. 블뢰유는 나와 같이 저주를 받았고, 그 멍청한 여자도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져버렸지. 뭐, 나만큼 철저하게 말소된 건 아닌 모양이다만."

선주는 그림자로 곰방대를 만들어내 입에 물었다.

"다행이지 않나, 이 세상이 두 배로 고통받을 뻔한 걸 반으로 줄였으니 말이야."

선주는 뻐끔대며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아이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수증기 때문에 어질어질했다. 선주는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아까 그 여자는 블뢰유의 먼 후손이겠지."

"그렇게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닮았나요?"

"그 심장에서 메아리치는 마력이 닮았다. 아마 저 여자는 십 년 안에 죽을 게다."

"예?"

"율사들은 선고와 대결을 통해 자신의 마력을 옮길 수 있지. 그 응용이다. 저건 블뢰유의 마력을 품고 있고, 생긴 것도 닮았다. 아마 대를 거듭해서 후손에게 마력을 옮겨온 것 같은데. 그 덕분에 젊은 나이에 6위계까지 위계를 올린 모양이다만, 그 대가로 심장이 심각하게 약해져 있어. 아마 가만히 놔둬도 십 년을 못 버티고 죽을 것 같군."

아이는 그 말을 곱씹었다. 옛날에, 호노레가 자신을 처음 어포슬의 일원이 되도록 권유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힘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게 그런 의미였나. 아이는 멍하니 물었다.

"그것도 당신의 연인이라는 7위계의 율사가 계획한 건가요?"

"그렇겠지."

"무슨 목적으로요?"

"내가 알았으면 지금 이 꼴이겠나."

"그런 건, 잔혹합니다. 저주나 다름없잖아요. 후손에게 대대로 억지로 마력을 뒤집어씌워서, 자신의 유업을 이어나가게 만들다니..."

"네가 할 말인가?"

그 날카로운 말에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일 년 전의 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아이는 그렇게 타인을 비난할 권리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아이는 힘을 빼고 넓은 욕탕에 가라앉았다. 물을 보글거리며 물었다.

"그럼 호노레 성녀는 당신의 먼 후손이기도 하겠군요?"

그래서 그렇게 충격받은 건가, 납득하려 할 때 선주는 피식 웃었다.

"아니다."

"예?"

"생물학적으로 저 여자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선주는 새까만 그림자를 토해내며 말했다.

"블뢰유는 내 연인이었다만, 첫 번째 제국을 세울 때 다른 놈과 결혼했다. 당연한 일이지. 마술사의 제국을 세우겠다는 사람이, 마술사를 몰살시키며 돌아다니는 떠돌이와 혼인할 순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선주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지독히도 쓸쓸해보였다. 그는 진실로 망령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를 기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잘 된 일이지."

"그런,가요."

"결혼식에서 언뜻 보았다. 웃고 있더군. 그러니 잘 된 일이었을 게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선주의 차가운 얼굴은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아이는 그 무감정이 오히려 슬펐다. 지옥도를 그려달라던 선주의 요구가 떠올랐다. 지옥도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떠올리라는 선주의 말도 이어서 떠올랐다. 지금이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 세상이 그대로 지옥일지도 몰랐다.

"말을 많이 했더니 어지럽군."

들여보내달라는 뜻이었다. 아이는 조용히 천갈궁에 선주를 갈무리했다. 일렁이는 그림자 탓에 뿌옇게 일그러져 있던 시야가 걷히고, 하얀 김만이 욕실에 가득 찼다. 넓은 욕실에는 아이 홀로 남았다. 쏴아아, 입으로 끊임없이 물을 쏟아내는 사자 동상을 바라보며 아이는 곰곰이 방금의 대화를 곱씹었다.

"림, 있어?"

불러보았다. 하지만 림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림은 륜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가야겠다. 몇 번이나 더 림을 부르던 아이는 아무런 응답도 없자 몸을 일으켰다. 후두둑, 물이 쏟아지며 뜨거운 목욕물 수면 위로 파문이 길게 번졌다. 그 때였다.

드르륵!

누군가가 거침없이 욕실 문을 열어젖혔다. 누구지? 귀빈을 맞이하기 위해 세워진 이 저택에는 지금 자신과 다나 일행밖에 없었다. 욕탕은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단테인가? 단테라고 하기에는 수증기 너머로 비치는 몸집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암습인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지금 아이는 기나센에서 명실공히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암살을 시도하는 세력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목욕탕까지 천갈궁을 들고 들어선 이유도 그것이었다. 천갈궁을 뽑아든 아이는 조심스럽게 소리내지 않고 물러섰다. 목욕탕에 들어선 그림자는 거침없이 자신이 몸담은 욕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윽?"

그리고 수증기 너머로 그 얼굴이 드러났을 때, 아이는 순간 신음을 흘렸다. 얼굴에 새까만 점액을 덕지덕지 바른 사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주 잠깐, 나사렘에서 보았던 그 외신화된 인간인 것으로 착각해서 칼을 휘두를 뻔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반응이 더 격렬했다.

"어? 어?"

그 얼굴에서 새어나온 것은 여자 목소리였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얼빠진 듯 위아래로 자신 앞에 선 아이를 바라보던 그 사람은 갑자기 욕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

그 이후 욕실.

"하여간, 성녀님도, 젊은 척하는 아줌마답게 이런 삼류 오지랖을..."

투덜거리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듯, 다나는 욕탕에 몸을 깊이 담궜다. 그 이상한 진흙은 얼굴에서 다 걷어낸 후였다. 효과가 정말로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다나의 피부는 막 삶은 계란처럼 맨들맨들했다. 물을 내뿜는 사자상을 경계로 등진 채 두 사람은 같은 욕탕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는 물을 떠서 세수를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누나를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농간은 이십 년 전 싸구려 방화집에서나 나오는 거지, 현실에서 하면 안 되는 건데 말이죠. 그렇죠?"

동의를 구하듯 묻는 다나였지만, 그 어조 끝에는 숨길 수 없는 설렘이 묻어 있었다. 입꼬리도 살짝 말려올라간 채였다. 아이는 뒤돌아선 채로 짧게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 씨한테도 큰 민폐잖아요? 멋대로 저택에 데려와서는 이렇게 마음의 준비도 못 하게 만들고... 정말로 다음에 크게 따져야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님.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나는 어느새 처음 보았을 때보다도 더 다부지게 변한 아이의 어깨를 보며, 물 속에서 조금씩 접근해갔다.

"그래서 민폐를 끼쳐서 사죄하고 싶은데, 머리라도 감겨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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