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80화 (180/279)

33. 사자궁 ( 1 )

전후 처리는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누대에 걸쳐 나라의 수호신 역할을 해 온 카이베크의 영지는 작센 동부의 삼 할에 달했다. 그 삼 할이 잘 구운 고기덩이처럼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각자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자신의 몫으로 받은 카이베크의 영지를 너무도 쉽게 양보했다. 그 의중을 읽지 못해 불안한 몇몇의 귀족은 5년짜리 보장 조약을 요청했다.

"5년 가지고 되겠습니까. 백 년으로 하죠?"

"백, 백 년 말입니까?"

그 무례할 수 있는 조건을 아이는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백 년으로 연장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율사를 불러 서약까지 했다. 전쟁이 끝나고, 숙청이나 토사구팽될 걱정은 없어진 셈이었다. 그 후로 전후 처리는 돛을 단 듯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멀리서 블로어로 그 이야기를 들은 륜은 웃었다.

ㅡ 우습군. 그렇지 않은가? 당장 일 년 후의 미래도 읽지 못하는 주제에, 백 년을 논하다니 말일세.

어차피 일 년 안에, 세계는 지옥과도 같은 환란에 접어들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오 년을 보장하든, 백 년을 보장하든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허상에 가까운 백 년의 보장을 믿고 작센의 귀족들은 더욱 더 열심히 충성할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영지에 욕심을 낼 이유도 없죠."

카이베크의 모든 재산을 합친 것보다도 값진 것. 그것이 컨쿼러의 성구였다. 애초에 영지 전체를 요구했던 이유도, 카이베크가 성구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다면 영지 전체를 뒤져서라도 그것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위치를 알게 된 지금 영지를 아까워할 이유가 없었다.

륜과 대화를 나누며 텅 빈 카이베크의 저택을 걷던 아이는 곧 카이베크가 말한 호수에 도착했다. 그리고 눈을 찌푸렸다. 일부러 독과 오물을 풀어놓은 듯, 호수의 물빛은 검고 탁했고 수생식물의 죽은 뿌리가 둥둥 떠다녔다. 잔뿌리마다 하얗게 배를 드러내고 죽은 물고기가 거꾸로 둥둥 떠서 걸려 있었다.

ㅡ 말해 주지 않았으면 찾기 힘들 뻔했군.

호수의 상태를 전해들은 륜은 신음하듯 말했다. 아이는 심호흡을 하고, 옷을 벗어던진 후에 그 호수로 뛰어들었다. 한참을 고생한 끝에 바닥 깊이 가라앉은 여신상의 입 속에서 성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게 그 물건인가..."

아이는 그 황금빛의 공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이 성구는 컨쿼러를 움직이게 해 주는 동력원이었다. 인간의 영혼이 신기를 저장하는 동력원이라면, 성구는 컨쿼러의 인조 영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컨쿼러가 사용된 것은, 수백 년 전이었다. 거듭된 연구로 정신이 이상해진 아지프의 6위계 마술사가 십자군에서 죽은 시체를 이끌고 제국으로 쳐들어왔고, 그는 제일 먼저 물자가 풍부한 사소필렌의 도시를 노렸다. 진로의 모든 것을 죽여서 뼈로 일으켜 쳐들어온 그의 군세는 일만에 달했다.

컨쿼러는 그 일만의 군세를 쳐부쉈다. 자신을 중심으로 거대한 보호막을 만들어 아지프의 포격을 막아세웠고, 팔을 휘두를 때마다 수백의 인골귀를 쳐부쉈다. 정예와 함께 군세의 중심으로 돌격한 컨쿼러는 곧 마술사를 찾아냈고, 컨쿼러에 타 있던 라달라리아의 마술사가 아지프의 6위계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전쟁은 종식되었다.

조디악이 컨쿼러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 성물은 아지프의 군대와 맞설 수 있게 해 주는 병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사소필렌 내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컨쿼러를 은근슬쩍 빼돌렸고, 가짜를 제조해 바꿔쳤다. 그러나 이 성구가 컨쿼러의 근처에 있다면, 사소필렌의 마술사들은 그 파장으로부터 진짜 컨쿼러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성구만 분리해서 다른 곳에 보관해둔 것이었다.

륜이 알기로 컨쿼러 본체는 왕성의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 그 왕성 지하의 컨쿼러를 탈취해서, 멸망의 원인이 된 아지프의 마술사와 싸우는 것. 그게 륜과 아이의 주된 계획이었다. 그들의 계획에 맹점이 있다면 단 한 가지였다. 자신들의 예지가 읽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조디악이, 컨쿼러의 위치를 한 번 더 옮겼다는 것이었다. 륜이 계속 읽지 못해 불안해하는 조디악의 계획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목표한 컨쿼러의 성구를 얻은 것에 기뻐할 뿐이었다. 아이는 성구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의 기운을 느끼며 말했다.

"엄청난 마력이 느껴지는데요. 굳이 컨쿼러의 동력으로 쓰지 않더라도, 이거만 있으면 못 쓸 마술이 없을 것 같아요."

ㅡ 실제로, 그건 성 하나를 통째로 옮기는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동을 위해서도 사용된 적이 있다네.

아이는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보니, 이 성구는 전설로 들었던 것보다도 더욱 더 위험하고 대단한 물건이었다. 함부로 다룰 물건이 아니었다. 미리 준비해둔 상자를 꺼낸 아이는 조심스럽게 성구를 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것으로, 작센을 둘러싼 계획의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이었다.

ㅡ 이제 왕도를 부수고 왕성을 점거해서 컨쿼러를 우리의 통제하에 두면 계획은 끝이죠, 그렇죠?

"예."

륜과 대화를 나누며 걸터앉은 아이의 눈에 카이베크의 살풍경한 저택이 보였다. 어쨌든 그는 진짜 군인이었다. 꽤나 많은 부를 가지고 있을 텐데도 그의 저택은 소박하기 그지없어서, 그 흔한 세공 장식이나 담쟁이 하나 없었다.

ㅡ 저, 그것에 관해서 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어요.

"말하세요."

망설이는 륜에게 아이는 말했다. 블로어 너머로 륜이 목을 가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ㅡ 왕도를 칠 때, 정공으로 나서지 않았으면 해요.

공성은 최하책이다. 애초에 공성이 쉽다면 세계는 유목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당연한 말로 이야기를 꺼낸 륜은 곧 이야기를 구체화했다.

ㅡ 이미 이 나라 안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은 없지요. 작센의 왕도는 유통의 중심지를 골랐기 때문에 외부로의 보급을 차단하면 그들을 말려죽이기는 쉽습니다. 그러니, 싸우기보다는 왕도 전체를 말려죽이는게 좋을 것 같아요.

"기근을 일으키란 말입니까? 싸우는 대신?"

ㅡ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요.

눈썹을 떨며 묻는 아이에게 륜은 딱 잘라 말했다.

ㅡ 기근을 일으켜서 왕도를 폐허로 만든 후에, 카이베크의 영지에 했던 것과 똑같이 왕실을 쪼개서 작센의 유력자들에게 나눠주고 협력을 보장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왕도의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게 될 텐데요."

ㅡ 왕도에 민간인은 없습니다. 모두 이 기형적인 작센의 부역자들이죠. 제 생각으로는, 작센과 더 통합된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하려면 그들은 본보기로 죽어주는 편이 좋습니다.

죽어주는 편이 좋다. 그런 말을 륜은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아이는 우선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다.

ㅡ 기나센과 작센은 똑같이 용병의 국가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용병단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기나센과 다르게 작센은 봉건제입니다. 각 용병들은 자신 가문의 용병이거나, 가족의 용병이기 이전에 왕의 용병이죠. 이 나라의 왕실은 하는 일 없이 용병들의 핏값을 갈취했고, 그것으로 개인적인 재산을 축재했습니다.

그들은 그 돈으로 은행을 차렸고, 돈놀이를 일삼았다. 심지어 예금 일부를 강제로 자신들의 은행에 예치시켰고, 그 돈을 멋대로 사용해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일삼다 큰 빚을 지기도 했다. 왕실이 조디악에게 넘어간 이유도 그것이었다.

ㅡ 점령하기 위해 여론과 민의를 신경써야 했던 기나센과 다르게, 작센은 그냥 왕실 하나를 빚으로 먹어치운 것으로 일사천리로 집어삼킬 수 있었죠. 모든 작센인들은 그저 왕실의 멍청한 판단 하나 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전쟁에 나서야만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운영하는 작센의 왕조가 유지되었던 이유는, 그들이 용병국가이기 때문이었다. 용병의 평균 수명은 30 전후였다. 정치적 세력화되기도 전에 그들은 죽어나갔고, 저항할 세력을 갖추지 못하는 집단을 갈취하는 것에 왕실은 거리낌이 없었다.

ㅡ 귀족과 지방의 백성들이 왜 이렇게 우리에게 쉽게 협력하는가, 그 이유는 이 부패한 왕실에 넌덜머리가 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젊은이의 핏값을 갈취해 작센을 지배한 수백 년간, 역사와 함께 늘어난 것이라곤 그들의 재산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왕도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 그 왕실에 빌붙어 사는 자들이다. 왕실이 다 삼키지 못하고 흘린 핏값에 주둥이를 쳐박고 살아온 자들이다.

ㅡ 그들은 권력자에게 빌붙는 법과, 국민을 갈취한 돈을 먹는 법과, 공공사업으로 횡령하는 법을 누대에 걸쳐 배운 자들입니다. 그들은 부패한 왕과 공생하도록 진화했으므로, 만약 왕실을 제거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부패한 왕을 만들어내고야 말겠죠. 그러니 왕도는 통째로 절제되는 것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가요."

블로어 너머에서 륜은 침묵했다. 잠시 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이 다시 들려왔다.

ㅡ 제 꿈은, 그러니까, 이 세계에 다가온 멸망을 막아낸 후에 제가 하고 싶은 건, 이 세계가 절대로 다시는 이런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자유로운 국민들의 국가를 만드는 거에요.

저번에 아우렐리우스가 들려주었던 것과 비슷한 꿈이었다. 륜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ㅡ 그 부패한 도시는 머지않아 세계의 미래에 방해가 될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절제할 수 있을 때 절제하는 게 역사의 진행을 위해서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다음부터 륜은 기근을 일으키는 기술적인 방법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라달라리아를 움직일 수 있다. 적들도 이제 라달라리아와 우리가 한 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이용한다. 우선 저들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라달라리아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을 지원하겠노라고 선포하게 만든다. 그런데 식량을 운반하는 길로 왕성과 이어진 길을 요구한다. 왕실 입장에서는, 식량을 운반하는 인부로 군대가 꾸며 들어올 수 있으므로 거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민은 아집 때문에 왕실이 구호를 거절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때문에 민심은 이반될 것이다... 우리는 기근을 막으려 노력한 척 할 수 있다. 기근을 일으킨 책임은 충분히 떠넘길 수 있다. 그런 내용들이었다.

"죄는 떠넘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듣다 못한 아이는 언젠가 에길론에게 했던 말을 다시 외쳤다.

"역사의 진행을 위해서 수십만이 그냥 굶어죽어야 한다구요? 역사의 진행이란 말을 책 페이지 넘기듯 사용하지 마세요. 비록 당신 말대로 미래에 더 건전한 국가가 들어설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을 학살할 당위가 되는 건 아니에요."

ㅡ 그,렇지만...

"만약 그 역사의 진행을 위해 죽어야 하는게, 무고한 백성이 아니라 저였어도 같은 소리를 할 겁니까?"

륜은 침묵했다. 가끔씩 아이는 륜의 이런 점이 섬뜩했고, 또 동시에 가여웠다.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으려던 자애의 신이 절망해 만들어진 모략의 신, 그것이 륜이라고 했었지. 그 때문에 륜은 가끔씩 지나치게 희생에 과감했다. 그 부분은 자신이 가로막아야 한다. 그것이 아이가 느끼는 사명이었다.

ㅡ 아니에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한테 할 수 없는 걸 남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직접적으로 륜이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당황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작센의 담배는 독했다. 연기는 모기를 쫓는 향불처럼 짙은 나선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ㅡ 사실은, 그게 진짜 목적이 아니었어요. 말하면, 아이 씨가 괴로워 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한참 뒤에야 블로어 너머에서 사과가 들려왔다. 아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럼 그 진짜 목적은 뭡니까."

ㅡ 얼마 전부터, 조디악의 간부들의 모략을 전혀 읽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들이 성좌를 확보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는 카이베크와의 전쟁에서 성좌가 투입될 것을 대비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당한 추정이었다.

ㅡ 그런데 카이베크가 무너지고 우리가 내부로 진공해서, 작센 전체를 뒤집어엎고 있는데도 성좌가 나타나질 않았어요. 저는 그게 너무 불안합니다.

"그래서요?"

ㅡ 그래서, 모든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아예 전쟁에 나서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만약에 제가 모략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이 위험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결국 아이가 위험해질 것을 두려워해서, 왕도에 기근을 일으키려 했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제가 걱정되어서 그런 제안을 꺼낸 거였나요."

ㅡ 사실은, 그래요.

아이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꺼내 호수에 집어던졌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하늘이 보였다.

"카이베크 아인샤프, 그 자는 망설이다 마지막에 이 성구를 넘기면서, 동포를 위해 써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학살로 갚을 순 없습니다. 그게 제 대답입니다."

ㅡ 하지만 아이 씨, 만약 사자궁이 오면요?

륜은 다급하게 말했다.

ㅡ 조디악이 포섭할 수 있는 성좌 중에는 사자궁이 있어요. 그는 데몬스폰을 죽이는 전문가고, 아이 씨는 그 피를 받았잖아요. 만약 그들이 사자궁을 포섭해서 어떤 식으로든 활용한다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요! 아니, 위험에 처할 거에요. 죽을 지도 몰라요!

"당신의 말대로 왕도의 수십만 명을 굶겨 죽여도, 저는 죽습니다. 영혼이요."

아이는 딱 잘라 말했다. 륜은 더 이상 권하질 못했다. 성구가 든 상자를 움켜쥐고 거처로 돌아가면서, 아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소의 희생으로."

륜과 함께 보관한 관, 거기에 적힌 글귀였다.

*

작센의 왕성.

한 쪽 귀퉁이가 부서진 왕좌에 무례하게 걸터앉은 붉은 갈기의 사내, 사자궁 네메아의 주인, 빌헬름 흐레스베인은 중얼거렸다. 따분하다는 듯한 어조였다.

"이봐, 난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 앞에는 드미트리가 있었다.

"이대로면 너의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생겼는데. 나를 모셔 놓고 대체 뭘 꾸미는지 모르겠군."

드미트리는 초조한 듯 왕성의 대리석 위를 서성거리며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이 전쟁의 승리자는 결국 우리입니다."

"뭘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 거냐?"

"그 자는 이미 기나센의 통령이죠. 이 나라, 작센까지 먹어치우게 두면 기나센과 작센을 아우르는 최고의 권력자가 되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기나센과 작센을 먹을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 자만 잡아채서 확보하면, 기나센과 작센을 먹은 거나 다름없어지죠."

사자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자라는 것이, 지금 위명이 쟁쟁한 천갈궁의 주인, 아이 우르드라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는 입장에선 뜬구름잡는 소리였다.

"그래. 그래서 그 놈을 확보하려면 쳐들어가서 박살을 내야 할 것 아닌가. 왜 나를 여기 가둬두는 거지?"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다 그와 맞서면 됩니다."

"글쎄, 어떻게 맞서냐니까."

"곧 옵니다. 곧 그가 올 거에요."

"헛, 대체 무슨 이유로 확신하는 거냐?"

드미트리는 눈을 감았다. 소니아에게 의해 선택적으로 기억을 삭제당한 그녀는, 오직 아이 우르드라는 인간을 붙잡기 위한 기억만을 남긴 상태였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북서 자치령에서, 자그마한 마을을 위해 끝내 자신을 죽이지 못했던 아이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니까요.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였다.

"습격입니다! 왕성 서쪽을 한 무리의 괴인들이 습격하고 있습니다!"

습격을 알리는 전령이 도착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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