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183화 (183/279)

33. 사자궁 ( 4 )

아이의 자신만만한 선언을 들은 드미트리의 얼굴은 곧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걸? 이미 예측했다는 건가요?'

륜이라는 미지의 변수에 대해 조디악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탐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성좌의 개입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측했는데도, 단신으로 여기 왔다는 건...'

이길 자신이 있어서인가. 드미트리는 부르르 떨었다. 컨쿼러를 건 내기를 성립시키고 싶었던 건 아이 뿐만이 아니었다. 드미트리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기 결과의 이행에는 어떠한 수작도 부려놓지 않고 성실하게 조건을 걸었다. 즉, 이 결투에서 아이가 승리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아이에게 컨쿼러를 양도할 때까지 순순히 종처럼 아이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른 의도를 품거나 수작을 부리면, 심장이 멎어서 죽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내, 내가, 컨쿼러를 넘겨줄 때까지 노예가 되는 거나 다름없는데...'

드미트리는 경악으로 입을 벌린 채 넋이 빠져서 중얼거렸다. 흐릿한 것이 눈 앞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 아이와 빌헬름이었지만, 육체가 단련되지 않은 그녀는 그 싸움을 식별하기도 어려웠다.

'아니야, 그렇게 만만할 리가 없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준비한 패가 사자궁이었다. 드미트리는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아나테마로서의 힘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제약까지 걸어놓지 않았던가. 그 제약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이런 계약을 제시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드미트리는 마음을 다잡고 추이를 지켜보았다.

사실, 그 말대로, 아이에게도 사자궁 빌헬름 흐레스베인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실력으로도 그랬고, 상성상으로도 그랬다.

"큭!"

아이는 이를 악물고 손목뼈가 저려오도록 흉맹한 일격을 받아쳤다. 자연스레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빌헬름의 무기, 사자궁 네메아는 웬만한 대들보도 단숨에 토막쳐버릴 듯 흉악한 크기의 도끼였다. 그것을 식칼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빌헬름의 괴력도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아이는 우선 그 기세를 억누르기 급급했다.

"먼저 덮쳐와놓고서는 막기만 할 거냐? 엉?"

디딤발을 앞으로 내민 빌헬름이 도발적으로 외쳤다. 허리가 버드나무처럼 꺾이며 도끼날이 덮쳐온다. 도끼날의 양 끝은 독을 칠한 듯 시꺼맸다. 아이는 넘어지듯이 몸을 숙여서 간신히 피했다. 바웅! 섬뜩한 파공음이 정수리 위에서 울려퍼졌다.

"핫, 막기 다음엔 피하기냐?"

거리를 벌린 아이를 깔보듯 사자궁은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천갈궁을 치켜든 채 냉정한 눈으로 빌헬름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이미 저 자의 검세를 알고 있다.'

사자궁 빌헬름은 귀르겐이 광증에 빠졌을 때를 틈타서 그의 섬을 습격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귀르겐의 기억을 물려받은 아이는 그 결투의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였다. 제약을 걸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나선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이가 걱정했던 것은 오직 하나, 미지의 변수인 백양궁까지 조디악이 확보했을 경우였다. 그것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 지금 아이가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

"좀 즐겁게 싸워보자고!"

빌헬름은 여유로운 듯, 걸친 후드를 내던지고 말했다. 근육과 힘줄이 꿈틀대는 상박과 타오르는 듯한 갈기머리가 드러났다. 알현실의 붉은 우단을 박차고 뛰어오른 그는, 방어를 도외시한 채 도끼를 내려찍었다.

쾅!

빌헬름의 일격을 얻어맞은 돌바닥이 둥글게 박살나서 파편을 흩뿌렸다. 아이는 재빠른 뒷걸음질로 물러선 채였다. 수비만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이는 속으로 전략을 세우는 중이었다.

'저 도끼 형태는 사자궁의 가짜 모습이었지.'

사자궁은 원래 예리한 세검 형태의 물건이었다. 그것을 손잡이로 삼아서, 그 위에 도끼날을 덧씌워놓은 것이 지금 사자궁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그 도끼날은, 자기가 사냥한 데몬스폰, 불멸의 군주의 뼈로 만든 거라고 했고.'

빌헬름의 저 거대한 공격들은 하나하나가 치명타를 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빌헬름이 노리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출혈이었다. 불멸의 군주는 데몬스폰의 피와 접촉하면, 그 몸 속에 스며들어서 부활을 시도하는 악마였다.

'우선 출혈을 일으켜서 도끼날에 데몬스폰의 피를 묻힌다. 그러면 불멸의 군주의 뼈로 만들어진 도끼날은 데몬스폰의 몸에 파고들어 십자형의 낙인처럼 변하고, 숙주를 무력화시킨다.'

그 다음, 드디어 본래의 세검 형태가 드러난 사자궁으로 그 십자의 한중간을 꿰뚫어서, 불멸의 군주와 숙주를 동시에 죽인다. 이것이 악마 사냥꾼으로 군림해온 사자궁의 숨겨진 기술이었다. 귀르겐에게 이것을 시전하면서, 자신은 이것을 '라 크로이츠'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으스대듯 말했다.

'그것만 당하지 않으면 돼.'

전략을 정한 아이는 천갈궁의 힘을 이끌어냈다. 끈적한 석유를 검날에 들이부은 것처럼, 날렵한 검신 위에서 그림자가 꿈틀대고, 천갈궁은 곧 길쭉한 대태도의 모습으로 변했다. 유혼의 모습을 빌린 것이었다.

"이제야 싸울 맘이 든 거냐?"

빌헬름은 어금니를 드러내며 외쳤다. 그리고 맹공이 시작되었다. 좌상단을 덮쳐오고, 막고, 쓸어내듯 우하단을 덮쳐오고, 쳐내고, 멀리서부터 땅을 박차고 돌진해오고, 맞부딪히고. 다른 사람들끼리의 싸움이었다면, 이미 수십 번은 서로 목숨을 잃었을 공방이 휘몰아쳤다. 싸움에 휘말린 탁자와 촛대 따위가 엉망진창으로 부서져서 사방에 흩날렸다.

"흡!"

사자궁은 기합을 내질렀다. 허리춤에 뜨끈한 통증과 함께 옷이 젖어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어느새 유령처럼 파고든 천갈궁이 자신의 허리를 뱀처럼 베어내고 사라진 것이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대태도인가 했더니, 거리를 내줄 생각이 없는 거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갈궁을 크게 휘둘렀다. 검에 묻은 피가 흰 벽에 흩뿌려져서 난해한 문양을 그렸다. 출혈을 내주지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 입장에서는 이것이 최선의 전략이었다.

"헛, 그런가, 그 겁쟁이 늙은이에게 검만 물려받은 건 아니라는 뜻이군."

아이의 의중을 읽은 것인지, 빌헬름은 자조하듯 말했다. 아마도 천갈궁에게 어떤 정보를 들은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그는 상의도 훌쩍 벗어서 내던졌다. 끔찍한 상처와 탄탄한 근육이 맞물려서 난해한 선을 그리는 그의 상체가 드러났다.

"그럼 끝까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나, 보자고!"

사자궁의 도끼자루를 더 바짝 쥐어잡은 빌헬름은, 야만인의 전사 같은 기합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정말로 방어를 도외시한 공세였다. 살, 아니 뼈를 주더라도 내 피를 가져가겠다는 뜻인가? 간격을 좁힐 필요가 있었다. 아이는 그림자를 조정해서 천갈궁의 형상을 원래의 장검으로 바꾸고, 몰아치는 금속의 폭풍에 몸을 내던졌다.

"윽!"

드미트리는 펄럭이는 소매를 들어 눈을 가렸다. 여기까지 불똥이 튈 정도로 엄청난 싸움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싸움을 바라보던 드미트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에 띌 정도로, 몸에 상처를 더해가고 있는 쪽이 사자궁이기 때문이었다.

"으랏차!"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며 아이의 머리를 쪼갤 듯 달려드는 도끼. 그러나 아이는 도끼가 머리 바로 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평정을 유지했고, 간단히 틈새를 찾아내 검날을 밀어넣어 역격했다. 피슛! 빌헬름의 볼을 천갈궁이 핥듯이 베어내고, 길따란 상처를 따라 피가 흘러내린다. 이런 일의 반복이었다.

'수행했던 것이 도움이 되고 있어.'

선주와 했던 수행. 검의 각을 유지하고 검과 하나가 되는 수행. 그것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순수한 검의 기량으로, 아이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자궁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이번엔 옆구리를 노리고 도끼날이 쳐들어왔다. 쨍! 도끼날을 쳐내어 몸을 피한 아이는, 이번에는 밑에서부터 솟구치면서 턱 끝을 베어냈다. 스하악! 빌헬름은 간신히 몸을 빼냈지만 턱 아래 길게 상처가 남는건 어쩔 수 없었다.

"제기랄, 어처구니가 없군. 엄마 뱃속에서부터 검을 휘두르기라도 한 거냐?"

까딱했다간 목젖을 통째로 베였을지도 모르는 상처였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또 가만히 검을 세운 채 이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기가 동한 빌헬름은, 자신이 깨부순 돌조각을 발로 쳐올려 걷어찼다.

"그럼 이것도 쳐막아봐라!"

결투라기에는 비열한 습격이었다. 돌조각으로 시야를 막고 기습할 셈인 듯했다. 황급히 돌조각을 베어낸 아이의 천갈궁은 기다렸다는 듯 그 뒤를 덮쳐오는 도끼날과 맞물렸다. 쿵! 기술이라곤 없는 힘과 힘의 싸움, 손바닥 가득 충격이 몰려왔고, 순간적으로 손목뼈가 탈골된 느낌이 왔다. 서로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검과 도끼는 굉음을 울리며 튕겨나갔다.

"쳐먹어라!"

빠악, 그리고 그 다음에 느껴진 것은 뺨 가득 울리는 통증이었다. 상황을 알아채는 데에는 몇 초가 걸렸다. 자신의 뺨을 떄린 것은 주먹이었다. 애초부터 이것이 목적이었던 듯, 빌헬름이 주먹으로 아이의 얼굴을 후려갈긴 것이었다.

"도끼로, 피를, 못, 낼 거면, 그냥 주먹으로 후려쳐서 피를 낸 다음 묻히면 되지! 안 그런가?"

아이의 코에서 주륵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한 소리였다. 어이가 없어진 아이는 피식 웃으며 맨손 격투에 뛰어들었다. 주먹으로 턱을 올려치고, 어깨를 붙잡고 박치기를 갈겼다. 빠악! 아마도 빌헬름의 턱뼈는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반격이 뒤따랐다. 주먹에 배를 얻어맞은 아이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완전히 개싸움이었다. 성좌끼리의 싸움 대신 동네 개싸움이 벌어진 것을 본 드미트리의 얼굴이 당혹과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이게 뭐하는 겁니까?"

"윽!"

그 절정은 깨물기였다. 사자궁이 달라붙어 아이의 귀를 무슨 고깃덩이라도 되는 양 가득 깨물었던 것이다. 그 얼굴에 두 번 크게 주먹을 갈겨서 간신히 짝귀가 되는 사태를 면할 수 있었다. 저 멀리로 물러난 빌헬름은 퉤, 소리와 함께 살점과 이빨 조각을 뱉어냈다.

"이제 피는 충분하군. 또 튀었다간 뒈진다. 알겠지?"

"당신도 참 미친 사람이군요."

주륵, 왼쪽 귀에서 피를 흘러내리며 아이는 웃었다. 오랜 만에 호적수를 만난 기쁨, 검사로서의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빌헬름은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어깨를 풀곤 도끼를 집어들었다. 아이의 피가 잔뜩 묻은 검지를 펴서 도끼날을 문지르자, 데몬스폰의 피를 만난 도끼날이 징징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도끼를 어깨에 걸쳐멘 사자궁은 바닥을 박차며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었다.

"자, 뒈져라!"

천갈궁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붙잡은 아이도 역격에 나섰다. 자신에게 달려오는 빌헬름을 바라보며, 아이는 귀르겐에게 건네받은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도 이랬다. 콰콰콰, 천갈궁의 검날 위에서 신기가 몰아쳤고, 아이는 자세를 낮추고 짐승처럼 뛰쳐올랐다.

"참랑격?"

귀르겐의 것에 전혀 모자라지 않는 완벽한 참랑격이었다. 옛날의 싸움에서, 귀르겐의 몸에 십자가의 낙인을 새겨넣는 데까지 성공했던 빌헬름은 이 일격 때문에 귀르겐의 목숨을 빼앗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다. 사자궁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이대로라면, 예전의 그 패배가 재현될 참이었다. 그 때였다.

"안 돼! 일어나십시오, 채무자의 왕이여!"

돌아가는 낌새를 눈치챈 드미트리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그와 동시에, 알현실의 바닥이 무너지며 밑에서부터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이 갑작스러운 사태 때문에 아이도 빌헬름도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바닥의 거죽을 뚫고 무언가가 치솟고 있었다. 아마도 이 알현실 밑에 있는 지하실 전체를 써서, 어떤 거대한 괴물을 숨기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적색의 왕관을 쓰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가면을 쓴 거인 형태의 괴물이었다. 드미트리는 팔을 내뻗으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자, 미리 준비한 조력자입니다! 같이 저 괴물을 쓰러뜨리십시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레버넌트 렉스는 괴성을 내지르며 두꺼운 팔로 아이를 덮쳐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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