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세 번째 동행 ( 3 )
드미트리와 아이는 지금 제국의 변방에 있었다.
북서 자치령과의 경계였다. 사람의 흔적이 드문 숲에는 바다와 이어진 강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겉면이 하얗게 바랜 바위에 걸터앉아서 턱을 괴고 강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 아이가 연어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촤악! 물 속 깊이 들어갔던 아이가 뛰쳐오르자 물보라가 무지갯빛으로 부서졌다. 그 손에서 펄떡대는 연어는 몸통이 거의 드미트리만했다.
"조용히."
억센 팔뚝으로 그 펄떡임을 제압한 아이는 곧 연어의 목을 둥글게 베어내 숨을 끊었다. 둥근 아가미로 피가 배어나오고, 아이는 나무에 연어를 매달아 피를 빼기 시작했다. 은빛의 비늘을 타고 붉은 피가 아롱져 흘러내려서 바닥에 떨어졌다. 식사의 준비였다. 물에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던 아이는 뒤돌아서서 말했다.
"불은 다 피웠습니까?"
"불이요? 아, 그건, 저..."
지금 두 사람은 '컨쿼러를 찾을 때까지 협조한다'라는 서약에 의해 동행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공간이동 때문에 야숙과 여행에 필요한 어떤 물건도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현지에서 식량과 물건을 조달하는 중이었다.
"저...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해서, 엄청 비벼봤는데요, 불이 안 붙던데..."
그리고, 그래서 드미트리는 지금 짐덩이였다. 애초에 이런 험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데다, 조디악과 함께한 기억의 대부분이 삭제되었기 때문이었다. 드미트리의 손에 들린 어설픈 활비비를 보고 아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힐난의 시선에 얼굴이 새빨개진 드미트리는 바위에서 내려와서 다시 검불에 활비비를 올려놓고 마구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시선은 뭡니까! 잘 봐요, 조금만 기다리면 불을 피워둘 테니까...악!"
마구 휘두르던 활비비가 손에서 튀어나와 드미트리의 코를 때렸다. 드미트리는 코를 감싸쥐고 쓰러졌고, 아이는 한숨을 내쉬며 다가와 활비비를 빼앗았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림이 한 마디를 흘렸다.
'저 계집은 자주 고통을 자처하는구나. 어쩌면 고통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모저모를 들여다보던 아이는 곧 칼을 꺼내 활비비를 손보기 시작했다.
"홈을 이상하게 팠으니 불이 안 붙죠."
잠시 후, 아이는 고친 활비비로 순식간에 불을 붙였다. 잦은 야숙의 경험 덕분이었다. 거기에 받침돌과 검불, 땔감 몇을 투입하자 금세 그럴듯한 불꽃이 완성되었다. 드미트리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뜰 정도로 간단했다.
"고, 고맙습..."
자존심 때문인지 제대로 대답하진 못했다. 웅얼거리는 드미트리를 내버려두고 아이는 피가 다 빠진 연어를 내려 해체하기 시작했다. 배를 삭 갈라내자 주홍빛의 살결이 드러났고, 아이는 능숙한 솜씨로 가시를 잡아뽑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드미트리는 흠칫 떨며 생각했다. 이대로 짐덩이가 될 수는 없죠! 드미트리는 아이가 잘라놓은 연어 토막에 달려들었다.
"이 토막은 제가 가시를 뽑겠습니다. 넘겨주세요."
아이는 미심쩍다는 눈길로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이거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닌데요. 그냥 놔두세요."
"아니요! 지금 저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바락 소리를 지르자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토막을 건네주었다. 과연 아이의 말대로, 연어의 살에는 의외로 가시가 촘촘하고 두껍게 박혀 있었다. 아이가 작업을 다 마치고 살을 먹기좋게 소분할 때까지도 드미트리는 가시를 붙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아마 절반도 제거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윽..."
결국 자신이 손질한 연어를 한 입 크게 베어물었을 때, 드미트리는 입안 가득 찔러오는 가시 때문에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으적으적, 둔탁한 씹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나뭇잎 가득 기름이 번들거리는 연어 구이를 올려놓고 먹던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제가 한다고 했잖습니까."
"무슨, 윽,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오기로 가시를 으적으적 씹어 삼키고, 아픔 때문에 눈물까지 살짝 맺힌 드미트리를 보며 림은 또 중얼거렸다.
'역시 고통을 즐기는 체질이 틀림없구나.'
"그러게."
"누구랑 무슨 얘기를 하는 겁니까?"
"당신 뒷담이요."
드미트리의 얼굴은 또 불그락푸르락해졌다. 이렇게 감정이 쉽게 드러나는 사람이었던가? 아이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곧 연어 토막을 크게 씹어먹곤 대화를 이어갔다.
"저야말로 묻고 싶은 게 산더미인데요. 내가 쓰러진 자리에 가득했다던 그 괴물들은 뭡니까. 정말로 아는 게 없습니까?"
그 말에 드미트리는 복잡한 표정을 짓다 대답했다.
"없습니다. 맹세코."
그 외에도 몇 가지의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건네는 심문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대화를 마친 아이는 블로어를 불러내어 륜과 연락을 시도했다. 이제 드미트리는 사자궁과 멀어진 상태였고, 그러므로 륜이 드미트리의 모략을 읽어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대강 판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랑 말하다 말고, 검을 꺼내서 뭘 하는 건가요?"
그 사실을 모르는 드미트리에겐 그저 무례한 행동으로 보일 뿐이었다. 자신의 물음에도 아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드미트리는 턱을 괴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이의 인상은 굉장히 많이 변해 있었다. 드미트리는 그 표변이 신기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아이와는 다르게, 한 줄기의 수심과 뾰족함이 그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의 본질을 알죠.'
도박장의 일들을 떠올린 드미트리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 동행에 함께한 것, 그 이유는 서약의 강제성 때문만이 아니었다.
'바로 호구라는 것.'
저 표변은, 순진한 척 조디악을 속였던 륜 때문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드미트리는 그 이후 아이의 행보를 전부 조사해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기억을 삭제하면서도, 아이를 상대하기 위해서 그에 대한 기억만은 남겨두었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을 모략에 밀어넣는 그녀와 손을 잡았다면, 우리와 손을 잡지 못할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동행을 틈타서 륜에 대한 아이의 의심을 부추겨 두 사람을 갈라놓고, 아이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 드미트리가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 목적이 선하다 한들, 아이는 이미 이상주의적이었던 소년기의 순수에서 벗어나 손을 더럽힌 상태였다. 그 서글픈 추락이 드미트리는 은근히 기뻤다. 이상과 현실 중 어느 것을 고르느냐는 본질의 차이지만, 여기서부터는 정도의 차이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킬 수 있다면, 국가를 위해서 못할 것은 뭐가 있겠는가...
어떤 교섭재료를 쓸 수 있을 것인가, 드미트리는 턱을 괴고 상상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더 확실하게 세상의 멸망을 막을 방법을 갖추고 있다고 하면 될까? 아니면, 키레넨 말고 다른 사람들도 구제하겠다고 범위를 넓히면 될까? 드미트리가 곰곰히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는 블로어로 들려오는 불쾌한 목소리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ㅡ 아주 불쾌한 생각을 하고 있군.
"그래서, 그 괴물들의 정체를 모른다는 건 사실입니까."
ㅡ 사실일세.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모른다는 게 사실이야. 아마도 우리가 이런 독심을 상습적으로 할 것을 대비해서, 기억을 꽤 말끔하게 지워놓은 모양일세. 서둘러서 기억을 복구시키는 게 좋겠군.
"복구의 방법은?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ㅡ 그 성구를 이용하면 가능할 걸세. 그런데 그 공간이동 때문에 성구에 저장된 마력을 소진해서, 모종의 방법으로 충전할 필요가 있겠군. 구체적인 계획은 이 쪽에서 취합해서 전달해주겠네. 그리고... 부탁이 있어요.
아이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블로어로 들려온 륜의 마지막 말은, 개인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듯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뭔가요."
ㅡ 저 여자의 이마를 한 대 때려주실 수 있나요?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드미트리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악! 비명을 내지르며 이마를 붙잡은 드미트리는 억울하다는 듯 아이를 바라보고 항변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은 상습적으로 동행인을 때리는 기벽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를 존중하십시오!"
"못된 생각을 한 벌이라는데요."
"무,무슨,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찔리는 것이 있어서 말을 더듬는 드미트리를 뒤로 하고, 아이는 다시 짐을 챙겨 이동하기 시작했다. 륜이 행선지와 계획을 들려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드미트리는 부랴부랴 아이를 뒤따랐다.
*
숲에서 벗어나 큰길을 걷던 두 사람은, 곧 행선지가 겹치는 상인의 마차에 올라탔다.
"당신 이제 담배도 핍니까?"
담배를 권하는 상인과 불을 비비는 아이를 보며 드미트리는 질겁해서 말했다. 일 년 만에, 인상이 변해도 너무나 변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 말을 무시하며 상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허허, 나야 마술사 놈들한테 밥줄을 붙잡힌 입장이니 그 생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중이지만, 댁들은 대체 무슨 까닭으로 거기 가는 거요?"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이 마차는 지금 아지프의 마탑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생지옥? 드미트리는 상인의 말에 자그맣게 반문했다.
"여기가 생지옥이란 말입니까? 나름대로 치안이 잘 잡혀 있는 곳으로 아는데..."
"모르고 계셨소? 그럼 내려서 다른 곳을 돌아가는 걸 권하오. 한 세 달 전부터, 아지프의 마탑이 있는 곳마다 아주 난리도 아니라오."
"왜, 왜 그렇습니까?"
"그 놈들한테 엄청나게 중요한 실험인지 뭔지, 그 방법이 준비된 모양이오. 그리고 그 놈들의 실험은 늘 희생자가 필요하지. 그래서 여행자나 부랑자를 마구 붙잡아서 괴이쩍은 실험에 쑤셔박고 있다던데. 당신들도 함부로 들어갔다간 잡혀가서 약품에 절여질지도 모르오."
드미트리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동요한 기색 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꼭 가셔야겠소?"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품에서 5루덴 동전을 꺼내 상인에게 건넸다. 담뱃값이자, 입막음의 값이었다. 힐끗 품에 들어있는 성구를 바라보았다. 성구의 마력을 충전하기 위한 방법, 그건 마탑의 핵을 부수고 성구에 흡수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아지프의 마탑은 준동하기 시작했죠.'
그게 멸망의 전조였다. 마탑들이 날뛰는 이유를 상인은 몰랐지만 아이는 알고 있었다. 길 아잘록을 7위계로 올린 실험의 내용이 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각지의 마탑들은 자신 파벌의 수장을 위해 희생물을 모으고 있었고, 그 일대는 극도로 피폐하고 혼란해졌다.
'그 혼란을 틈타 아지프의 마탑을 부수고, 성구를 충전한다.'
그게 륜과 아이가 상의해서 만든 계획이었다. 아이는 입에 담배를 문 채 마차벽에 팔짱을 끼고 기댔다. 아지프의 마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세계의 파국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귀로 직접 전해듣자 마음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그런 아이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드미트리는 연기로 너구리굴처럼 되어버린 마차 안에서 코를 막고 캘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