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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슬레이어-202화 (202/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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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드미트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기억을 되살리는 마법진 위에 선 이후로 매일 밤, 먼 옛날의 기억이 꿈으로 찾아왔다. 드미트리의 삶에서 기억 중 좋은 기억은 별로 없었으므로, 매일매일이 악몽이었다.

오늘의 악몽은 그 중에서도 특별했다. 그건 그녀가 처음으로 레버넌트를 만들 때의 기억이었다. 꿈 속에서, 드미트리는 허름한 농가 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가는 중이었다. 긴장한 듯 연신 침을 삼키는 그녀의 뺨에는 솜털이 아직 하얗게 남아 있었다. 이 시절의 드미트리는 막 율사복을 벗어던져서, 아무런 실무 경험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오, 오셨습니까..."

드미트리가 방문을 두들기자, 그녀보다 훨씬 커다란 중년 남성이 난처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식사 중이었던 듯, 허름한 그릇과 누르죽죽한 빛의 귀리죽이 눈에 띄었다. 이 남자의 아내는 꾀죄죄한 꼬마를 끌어안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 광경을 살펴보며, 드미트리는 연신 헛기침을 하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차용증이었다.

"그대들에게 순수한 선의로 빌려준 곡식을 상환받을 기한이 되었기에 찾아왔습니다. 약 500루덴에 갈음하는 곡식 또는 현물, 준비되어 있습니까?"

"버,벌써... 벌써 그렇게 불어났습니까?"

넋 나간 채 읊조리는 남자의 안색은 창백했다. 산만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드미트리에게 그는 쩔쩔매고 있었다. 지난 겨울, 흉작으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이 가장은 자신의 몸을 담보로 겨울을 날 곡식을 빌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상환 기일이었다. 드미트리는 침을 꼴깍 삼키며, 가능한 한 매몰찬 목소리를 내려 애썼다.

"예. 오늘이 최종 기일입니다. 아마도 대금은 준비하지 못한 모양이지요?"

집 안의 누추한 꼴만 보아도 명백했다. 남자는 대금을 준비하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아무도 이 집안에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이었다. 이 자를 레버넌트로 만들려 접근한 조디악 외에는.

"그렇다면 게약을 이행해주셔야겠습니다. 앞으로 15년간, 당신의 신체 일체에 대한 통제권은 저희에게..."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계약서를 읽어내려가던 드미트리는 화들짝 놀라 발을 들어올렸다. 집채만한 크기의 남성이 납작 엎드려 자신의 발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 간청하기 시작했다.

"보리라도 대충 거둘 수 있을 때까지만... 날이 풀려서 막일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말미를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이거 놓으세요. 계약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미트리가 애써서 뿌리치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는지, 남성은 한참 어린 드미트리의 발목을 붙잡고 절절한 목소리로 애걸했다. 아직 이런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드미트리는, 그 간청에 놀라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거듭되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발을 뺴려 들 때, 갑자기 커다란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난장판에 놀란 꼬마가 울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었다.

"아..."

"제가 이대로 없어지면, 기껏 어르신 덕분에 연명한 저희 가족들도 끝입니다. 어르신,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

드미트리의 입술이 흐물거리며 오묘한 곡선을 그렸다. 잠시 후, 드미트리는 고개를 푹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애써 독한 척하는 목소리와 함께였다.

"제 권한으로 딱 한 달만 더 말미를 드리겠습니다. 달아나거나 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아닌데. 어차피 못 갚게 하려고 만든 빚이었는데. 속으로 그런 말을 곱씹으면서, 드미트리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일가족을 뒤로 하고 마차로 향했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타는 순간,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소니아 님?"

텅 비어 있어야 할 마차에, 뜻밖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리를 오만하게 꼰 채 부채를 쥔 소니아였다. 드미트리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소니아는 원래 이렇게 신출귀몰하게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소니아의 맞은편에 앉았을 때, 이마에 차가운 감촉이 있었다.

"왜 계획대로 추심을 진행하지 않았죠?"

소니아가 부채로 자신의 이마를 쿡 누른 것이었다. 침묵. 드미트리의 입이 몇 번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으나, 아무런 말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짙은 한숨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부채를 끌어당긴 소니아는 확 펼쳐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건 당신이 상냥하기 때문이겠지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소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 하나하나의 자그마한 희생을 보아 넘기지 못할 만큼 말이죠."

"칭찬인가요?"

"아니, 질책입니다."

부채가 확 접혔다. 가려졌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극적인 위압감을 불러일으켰다. 소니아는 천천히 얼굴을 드미트리에게 가까이 들이대며, 손으로 그녀의 양 뺨을 간지럽히듯 붙잡았다.

"하지만 당신의 그런 상냥함은, 그리고 자애로움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만 돌아가야만 합니다."

"자격 있는 자들이라면..."

"민족. 당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민족에게만 돌아가야만 합니다. 아직 당신은 내게 했던 맹세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 날, 내가 보여준 환상 속에서 당신은 뭐라고 맹세했지요?"

"키레넨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그 모든 것에는 당신의 양심도, 연민도, 상냥함도, 모든 감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당신의 삶은 키레넨의 건국이라는 정치적 의제에 봉헌되었습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개인의 자아와 정치적 자아를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비합리적인 충동, 감흥, 질서 없는 정서가 치솟을 때면, 그것이 최종적인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검토하십시오. 그 과정은 이제 호흡처럼, 당신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소니아는 길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드미트리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탁 풀린 눈으로 소니아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탁 풀린 눈동자를 응시하며, 소니아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부채를 펼쳤다.

"그러지 못하겠다면, 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어디까지나 당신에게 자발적인 협조를 구하는 것이지, 부리려는 것이 아니니까요."

또 긴 시간이 흘렀다. 드미트리는 무릎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로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푸른 수정으로 장식한 유리창에 스며 두 사람을 비추던 달빛이 저 너머로 기울어질 때까지, 조용한 긴장은 계속되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한숨이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드미트리는 마차의 문가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여유로운 음성. 소니아가 묻자, 드미트리는 손에 든 차용증을 꾹 움켜쥐며 대답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유예한 임무를 끝마치러 갑니다."

동시에, 째지는 듯한 웃음이 터졌다. 그 다음, 소니아는 짧게 박수를 쳤다. 드르륵, 문이 열린 것은 그와 동시였다.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이미 끝마쳤으니까요."

문을 열어젖힌 것은, 황금 가면을 뒤집어쓴 커다란 레버넌트였다. 체형과 복장으로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건 이 차용증의 주인인 남자였다. 이 마차에 들어와 있을 때, 소니아는 이미 다른 부하를 파견해 작업을 끝마쳤던 것이었다.

"아..."

남자의 얼굴 대신 자리한 황금 가면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 금속성의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드미트리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껴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자꾸 눈물이 났다. 소니아는 여전히 줄이 끊어진 현악기처럼, 찢어지는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윽!'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드미트리는 잠에서 꺴다. 빌려 입은 상아색 잠옷은 땀에 젖어 축축하게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잠에서 깼는데도 그 불쾌한 기분이 진흙처럼 온 몸에 달라붙어 있어서, 이불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맞아... 그랬지, 그래서..."

저 다음부터, 드미트리는 레버넌트를 만들 때 망설이지 않았다. 그럴 듯한 계약과 내기로 누군가를 속여 넘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때의 눈물과 함께 마음 속에 있던 어떤 걸 다 흘려보낸 것처럼, 소니아를 위해 일해 왔다. 그게 민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을 제 3자의 일처럼 들여다보는 경험은 놀라웠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소니아는 레버넌트를 문 앞에 대기시키고 있었던 건가?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레버넌트의 손에 들려 있던 쇠스랑은 무슨 의미였을까, 만약 자신이 협조하지 않겠다고 하고 문을 나섰더라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

드미트리의 마음 속에서, 그 국경의 마탑으로부터 시작된 소니아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이불을 끌어안고 누워서, 드미트리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 짜내려 애썼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어차피... 가까운 미래에, 다 알게 되겠지요."

앞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리며, 드미트리는 땀으로 끈적하게 젖은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전투의 준비였다. 오늘 새벽, 아이와 드미트리는 저 레버넌트의 포위진을 뚫고 마즈눈에게 도달하기로 결정했다. 슬슬 시간이었다. 보호를 위해 두꺼운 옷과 갑옷을 여러 겹 껴입은 드미트리는 뒤뚱거리며 약속한 장소로 걸어갔다.

"깨우러 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제때 도착해서 다행이군요."

나무에 기댄 채 기다리던 아이는 드미트리가 도착하자 이런 말을 꺼냈다. 드미트리와는 대조적으로 집행관의 복장에 검 한 자루를 옆에 찼을 뿐인 아이는, 험지로 향하는데도 여전히 태연해 보였다.

"누가, 이런 중요한 때에, 늦잠이나 잘 사람으로 보입니까?"

너무 옷을 많이 껴입어서 목이 조이는 탓에, 받아치는 말 사이사이 헐떡임이 들어갔다. 어쩔 수 없었다. 구름처럼 몰려든 레버넌트 사이를 돌파하려면, 일반인보다도 체력이 떨어지는 드미트리는 이렇게 방호구라도 엄청나게 둘러야 했다.

"그럼, 갑시다!"

힘겹게 드미트리가 앞 발을 내딛었을 때, 갑자기 온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을 느껴 버둥거렸다 당황해서 뒤돌아보니, 아이가 자신의 뒷덜미를 붙잡고 토끼처럼 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는 한 겹도 돌파 못하겠는데요. 업히시죠."

"예?"

반항할 새도 없었다. 드미트리를 등에 억지로 업은 아이는, 델로른의 작은 담장을 넘어 저 멀리로 뛰쳐나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떨어지지 않게 안간힘을 다해 아이의 목을 꽉 붙잡는 일뿐이었다. 오늘 쏟아지는 달빛은 유달리 흐릿해서, 새벽의 사과 농장을 아스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새벽에 녹아들듯이 사과꽃 사이를 가로질러 달려나갔다. 그 질주 속에서, 드미트리는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어째서일까, 험지로 향하는데도, 방에서 혼자 있을때보다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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