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이지 슬레이어-213화 (213/279)

38. 예고된 재회 ( 3 )

아이와 단테가 황급히 돌아왔을 때, 이미 뜻밖의 방문객들은 도착한 후였다.

하늘을 찢는다.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굉음이 사방에 몰아쳤다. 잠을 깬 병사들이 놀란 얼굴로 빠져나와 어스름이 꿈틀대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날아온 용의 숫자는 수십을 헤아렸다. 용들은 빼곡하게 하늘을 메운 채 불길한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그것이 그들만의 전투 태세인 모양이었다.

아이가 몰려든 인파를 헤치고 그 중심에 나아갔을 때였다. 먹잇감을 포위하듯 빙글빙글 맴돌던 용들 중 한 마리도 땅을 향해 내려앉았다. 다른 용들보다도 세 배는 두꺼운 몸통과 커다란 비늘을 가진 놈이었다. 용은 죽을 때까지 자란다고 하던가, 아마 저 놈은 저 용군단의 모든 용 가운데서 가장 오래 산 놈인 모양이었다.

그 용은 여러모로 특징적이었다. 황금빛이 감도는 검은 비늘도, 갈기처럼 길게 늘어진 흰 수염도 그랬다. 그러나 가장 특이한 것은 이마에 달린 뿔이었다. 그 진갈색의 뿔은 얼핏 보아서는 뿔이라기보다 해묵은 노송처럼 보였다. 수백 갈래로 가지쳐 자라난 뿔은 투구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아이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그 용을 올려다보았다. 저런 용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천교룡 타스하..."

누군가가 탄식하듯 말했다. 저 용은 용군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용으로, 카나기의 문반 중에서도 학장만이 부릴 수 있는 용이었다. 그 거대한 몸을 구불거리며 똬리를 틀듯 내려앉자 거센 바람이 일어났다. 윽, 아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손을 들어 눈을 막았다. 앞머리가 미친듯 휘날렸다.

"이거 연락도 없이 내방해서 미안하군."

그 타스하의 갈기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내려와 땅을 밟았다.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학처럼 흰 옷을 입은 늙은이였다. 눈두덩과 눈 밑의 주름이 인상을 순하게 만들어줄 법도 하건만, 날카로운 삼백안 때문에 더없이 위험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호위인가, 기다란 대태도를 비끄러맨 남자가 그 뒤를 따라 타스하에서 내려왔다. 상아를 깎아 만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였다.

"윗사람을 불러오너라. 손님이 왔으니."

기다란 장죽을 지팡이처럼 짚고 선 늙은이는 아무 병사를 후려치며 말했다. 병사는 움찔하며 되물었다.

"누, 누가 왔다고 알려야 합니까?"

"이신 아이신고르. 카나기의 학장이 왔다."

그 목소리는 가마솥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낮게 들끓었다.

*시체를 태우던 들불이 가라앉고, 희뿌연 지평 너머로 먼 동이 터오를 무렵이었다.

"자네가 기나센의 통령인가? 생각보다도 더 젊군."

이신 아이신고르의 방문으로, 군막에선 뜻밖의 회합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원군을 이루는 축, 기나센과 아탕칼리와 라달라리아 모두에 더해서 이신까지 참가한 회합이었다. 아직 라달라리아와 아탕칼리의 주력은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라달라리아의 대표로는 단테가 참석했고 아탕칼리에서는 5위계의 여주교 한 명이 참석했다.

"왜 이렇게 경계하나? 이거 섭섭하군."

이신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고요한 실내에는 이따금씩 이신이 담뱃재를 터는 소리만이 울렸다. 아이의 곁에 앉은 륜은 유심히 그런 이신을 들여다보았다. 기나센의 대표로는 륜과 아이가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아이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당신이 타고 온 특이한 애완동물들 때문이죠. 저 녀석들을 저 멀리로 치우면, 경계는 훨씬 덜해지지 않을까요."

"의외로 겁이 많군, 젊은 친구. 우리는 그저, 황제의 교서를 받고 원군으로 합류했을 뿐인데."

"원군이오? 적의 원군 말입니까?"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서 아이는 매섭게 말했다. 하지만 이신은 퍽 웃으며 흘려보낼 뿐이었다.

"황제가 내린 교서에는 우리가 구원군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적혀 있던데,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원군으로 합류하지 말라는 말은 없지 않았나. 어디까지나 선의로 불원천리하고 다가온 원군을 박대하지 말아주게."

"그럼 더 일찍 오셨어야죠. 중앙 가도를 탈환하는 큰 전투 바로 다음날에 찾아오는 건 무슨 의도입니까?"

이 말에 이신은 장죽에서 입을 떼고,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젊은 친구, 예의를 좀 차리게."

그 한 마디에 실내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까부터 모인 사람들의 면면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던 여주교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불안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신의 뒤에는, 타스하에서 함께 내린 그 상아 가면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고 말을 꺼낸 것은 단테였다.

"지금 이렇게 내부에서 다툴 때가 아니오."

"그러면?"

"지금 이 내전은 제국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이오. 이 내전을 제때 진압하지 못한다면, 제국이 끝장날 뿐만 아니라 이 센디엘 전체가 파멸한다는 예언이 있었소. 내부에서 시시콜콜한 이익을 두고 하찮은 싸움을 거듭해서 실패한다면, 이 세계의 운명이 끝난다는 말이오. 원군으로 왔다고 하니 믿겠소. 대신, 협조와 신의를 부탁드리는 바요."

단테의 말은 진중했다. 칼잡이다운 올곧음과 우직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정치적 경륜은 부족한 말이었다. 이런 말로 갈등이 봉합되고 힘을 합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지금 조용히 말을 경청하는 아이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겠지. 나도 운명을 걸고 싸우러 왔다네."

예상대로였다. 이신의 말은 전혀 이해한 투가 아니었다. 단테는 답답해졌는지, 책상을 주먹으로 쿵 내려찍으며 말했다.

"예언이 있었단 말이오. 이 내전 이후 곧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다는 예언이오. 현명한 사람들은 모두 이 내전이 그 원인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어. 그런데도 이렇게 나온단 말인가!"

단테는 몇 번이나 거듭해서 설명했다. 이 멸망이라는 것이 단순한 쇠퇴나 파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 세계의 존망 자체를 뜻하는 것임을.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된 여주교만 경악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볼 뿐이었다. 그녀와 이신을 제외하면 이 자리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 뿐이었으므로, 나머지는 모두 태연했다.

"구원군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니오. 역사에, 나아가 세계 전체에 죄를 짓는 것이오. 협조하시오."

그러나 그 길고 긴 험악한 말을 듣고도 이신은 웃었다. 프흐흐흐흐... 터진 가죽북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고, 상한 술부대에서 기체가 새어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불길하고 무기력한 웃음이었다. 길게 늘어진 장죽불을 뻐끔거린 후, 이신은 다시 말했다.

"참 거창한 인질을 다 잡는구만. 이보게, 명확히 말해두겠는데, 세계가 망하든 카나기가 망하든 나에겐 같은 일일세."

"그 무슨...!"

당연한 것을 말하듯이, 이신의 어조는 태연했다.

"인간이 잃을 수 있는 것 중 최대래봤자 목숨 하나 아닌가. 이렇게 거대한 전쟁에 내가 발 하나 못 걸치고, 고기 한 점 못 얻어가서야 내 학장으로서의 지위가 남아날 리가 없지. 그러면 내 목숨도 끝장일세. 그러니 그건 인질이 되지 못해."

숨길 생각도 없이, 사익을 노리고 구원군에 끼어들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속으로 되새긴 아이는 칼자루에 손을 대고 벌떡 일어났다.

"그럼 당신은 적이군요."

신기를 집중했다. 천갈궁의 검날을 타고 붉은 불꽃이 흘렀다. 찰나의 틈도 주지 않고, 아이는 이신에게 달려들었다. 놔두면 큰 후환이 된다. 어차피 말릴 사람이 없는 지금, 여기서 목을 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휙, 탁자를 밟고 뛰쳐나간 아이의 검은 순식간에 목덜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곧 목젖을 자르고 피를 흩뿌릴 것 같았다. 칼잡이가 아닌 이신은 반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속도였다.

챙!

그러나, 막혔다. 이신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천갈궁의 칼날을 붙잡았다. 마치 얼어붙은 호수에 검을 휘두른 듯한 모양새였다. 급히 천갈궁을 뒤로 빼자, 커다란 대태도가 아이의 팔뚝을 쪼갤 기세로 덮쳐들었다. 지금까지 조용히 이신의 뒤에 있던 상아 가면을 쓴 남자가 움직인 것이었다. 탁상 위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아이는 황급히 천갈궁을 들어 대태도를 막았다. 십자로 교차된 검날에 자신의 얼굴과 상아 가면이 번갈아 반사되어 번쩍였다.

"흡!"

크게 후려쳐 대태도를 물리고 몸을 빼내자, 대태도는 그대로 탁상으로 쏟아졌다. 검격을 얻어맞은 탁상은 깔끔하게 반으로 잘려 무너졌다. 여주교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륜은 그 난리통 속에서도,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백양궁?"

단테의 반응은 달랐다. 단테는 저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힘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중얼거림은 아이의 귀에도 닿았다. 백양궁, 그런가, 카나기가 백양궁의 주인과도 연이 있었나. 벽에 등이 닿을 때까지 물러서서 채비를 가다듬던 아이는, 돌연 천갈궁을 집어던졌다. 저 방어벽이 마술에 의한 것이라면, 휘둘러야 할 검은 이게 아니었다.

"이, 무슨?"

여주교의 당황을 무시하고 아이는 텅 빈 손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상아 가면은 대태도를 두 손으로 모아쥔 채, 달려드는 아이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느릿하게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더니, 마치 투포환 선수처럼 허리를 당겼다. 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시감이 들었다. 저 자세를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었다. 부서진 탁자를 디딤대 삼아 박차고 뛰어오른 아이는, 천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내질렀다.

"레바테인!"

아이의 손을 따라 붉은 대검이 유령처럼 치솟았다. 적색의 검날 위에선 핏물처럼 새빨간 신기가 넘실댔다. 저 끝까지 물러난 대태도가 덮쳐온 것도 그와 동시였다. 그 대태도, 백양궁 위에선 푸른 빛이 도깨비불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콰직! 둘이 부딪히자, 충돌면을 중심으로 공간이 크게 일렁이며 깨져나갔다. 방어막을 만드는 백양궁과, 마술을 깨부수는 레바테인이 맞부딪혀 생긴 결과였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거대한 원반형의 거울이 깨져 사방에 조각을 흩뿌리는 것처럼 보였다. 조각 하나가 튀어나가며 아이의 뺨을 길게 베어내고 사라졌다. 뜨끈한 감각이 얼굴과 손 가득 번져갔다. 이를 악물고, 아이는 다시 한 번 레바테인을 크게 휘둘렀다.

쾅! 다시금 굉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승패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상아 가면의 남자가 주춤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이었다. 레바테인에서부터 터져나온 신기 때문에, 옷소매가 불타 사라져서 구릿빛 팔뚝이 훤히 드러났다. 상아 가면에는 커다란 금이 비스듬히 생겨 있었다. 추가타를 먹일 절호의 기회였다.

"당신, 뭐야."

하지만 아이는 레바테인을 경계하듯 쥐어잡은 채, 함부로 덮쳐들지 못했다. 강렬한 기시감이 등골을 타고 흐르며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대태도, 가면, 그리고 수백 번은 보았던 호를 그리는 일격, 저 나풀거리는 검은 장발까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가리키는 것이 어떤 사람인지.

"눈치는 조금 늘어난 모양이군."

쩌억, 그 말과 동시에 상아 가면의 반쪽이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태양빛에 노출되어 구릿빛인 피부와 대조적으로, 시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비스듬히 드러난 그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는 넋이 나간 듯, 눈 앞의 악연을 바라보며 검끝을 떨었다. 남자는 천천히 남은 반쪽의 가면도 벗어 내던졌다. 바닥에 던져진 가면은 불길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났다.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사제야."

레고르 보르지아.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사형이자 원수와의 재회는 이렇게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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